삼상 17
3. 승리의 군사(17장)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친숙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많은 실천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여러 종류의 거인들을 직면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러한 거인들을 정복할 수가 있다. 골리앗은 150파운드(약 68kg)의 무장을 한 10피트(약 3미터)는 되는 거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이었으며 더구나 그들의 위대한 참피온이었다. 그는 무시무시하여 유대 군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11절). 사울이 경건한 지도자였다면 신명기 20장을 주장하여 그의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나면 다른 사람들을 패망으로 인도해 갈 뿐이다.
다윗은 형제들의 양식을 가지고 도착하였으며 즉각적으로 그 거인의 도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의 형제들이 그를 꾸짖었으며 용기를 꺾으려 했음에 주목하자. 사단은 누구를 통해서나 “그것은 안될 일이야“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사울조차도 “네가 능치 못하리라“(33절)고 하여 그를 단념시키려 하였다. 다윗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었으나 여호와의 힘으로는 어떤 적이라도 정복할 수가 있다(빌 4:13/엡 3:20-21 참조). 사울은 다윗에게 몇가지 무기를 주려고 하였으나 다윗은 그것을 착용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였다. 사울이 누군가에게 승리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 다윗은 자기 양들과 함께 목장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입증했었다. 그는 이제 그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전시하려는 것이다. 이 전체 이야기를 통하여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주목해서 보자.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승리를 주신다는 실제적인 교훈을 얻는다. 하나님은 사자와 곰으로 은밀히 다윗을 시험하셨으며 이제 거인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시험을 치루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개인적인 전쟁에서 충실하다면 하나님은 공식적인 시험들을 통하여 우리를 알게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길에 닥치는 “작은 시험들“이 앞으로 반드시 닥쳐올 보다 큰 전쟁을 위한 준비임을 깨닫지 못하고 넘기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다윗은 간단하고 하찮은 무기로서 물매와 다섯 개의 돌을 사용하였다(고전 1:27-28/고후 10:3-5 참조). 다윗은 기드온이 미약한 무기로써 어떻게 승리를 얻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기드온의 하나님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형제들의 비판이나 사울의 불신앙도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을 믿는 다윗의 믿음을 막지는 못했다. 돌은 목표에 적중했다. 거인은 쓰러졌고, 다윗은 그 거인의 칼로 목을 베었다. 이 한 번의 승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블레셋을 공격하여 그들의 진을 약탈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우리는 “정복자 이상의“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모형적인 교훈도 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훌륭한 모형이기 때문이다. 다윗이란 이름은 “사랑받는“이란 뜻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다. 둘 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둘 다 형제들에게 거절을 당하였다. 물론 다윗이 왕이 된 후에는 형제들이 그를 영접하였으며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기 위해 다시 돌아오실 때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과 같다. 다윗은 통치하도록 허락받기 오래 전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의 왕이지만 사단이 멸망하기까지는 통치하시지 않는 것과 같다. 사울 왕은 오늘날 현 시대의 사단을 모형으로 보여 준다. 왜냐하면 사울은 거절을 당하고 패전하였으나, 다윗이 보좌에 오를 때까지는 통치하도록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도록 허락을 받았으나 어느 날 멸망할 것이다.
다윗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전쟁터로 보냄을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 골리앗은 그 교만함과 능력에 있어서 사단을 예증한다(눅 11:14-23 참조). 사단은 자기의 소유(그의 지배 아래 있는 영혼들)를 지키는 강한 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를 이기는 보다 강한 자이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왕국을 침략하여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그의 무기를 빼앗으셨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여 전리품을 나누고 계시다. 이것은 그 날 다윗이 한 일이다. 그는 강한 자를 이기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리품을 나누도록 하였다(52-54절).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승리로부터 싸움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울은 왜 자기 무기 관리인인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는지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그가 악령의 영향 아래 있었을 때, 다윗을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또다른 원인은 다윗이 궁정에 있는 여러 종들 중의 하나였으므로 사울이 그들을 혼동하는 일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울은 승리자에게 딸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는 소년의 가족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삼상 18
▣ 다윗과 요나단-사무엘상 18-21장-
이 부분에서는 다윗이 사울의 궁정에서 봉사하다가 망명자로서 유랑하는 그 중간의 변화를 다루며, 다윗이 어떻게 사울의 총애를 받던 자리에서 그의 원수가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중심 내용은 다윗의 믿음이며, 우리는 이 장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생애에 닥치는 시련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끝까지 잃지 않은 비결을 알게 된다.
1. 여호와를 신뢰하는 다윗(18장)
다윗이 가장 큰 신앙의 시험에 봉착했던 것은 골리앗을 직면했을 때가 아니라 그가 매일 사울의 궁정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의 신앙이 시험을 받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주목하자.
인기에 대한 시험(18:1-11)-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이것 자체가 시험의 기회였다. 다윗은 다음 왕이 될 것이었으나 권리상으로는 요나단이 왕관을 물려 받게 되어 있었다. 이 두 하나님의 사람 사이의 우정은 우리에게 위대한 본이 된다. 다윗이 받은 영광에 대하여 요나단은 시기하거나 증오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문제가 달랐다. 다윗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때문이다. 여자들이 다윗을 찬양했으며 다윗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았음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다윗은 지혜로와서 그들의 말을 지나치게 신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보다 다윗이 더욱 찬양을 받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 시기심으로 가득 찼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잠 27:21). 칭찬은 뜨거운 도가니와 같으며 그 사람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나타낸다. 다윗을 겸손케 한 그 칭찬은 사울의 마음에 불순물이 꼭대기까지 차게 만들었으며 영광을 받으려는 교만과 욕망을 드러내었다.
강등(降等)에 대한 시험(18:12-16)-5절에 보면 다윗이 사울의 개인 경호 책임자였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제는 강등되어 단지 1,000명만을 거느리는 대장이 되었다. 이러한 일이 다윗을 변화시켰는가 ? 아니다! 그의 신앙은 여호와께 있었으며 그는 계속해서 왕을 섬기고 존중하였다. 이 일은 사울을 무엇보다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셨음과 다윗에게 축복이 주어졌음을 알았다. 백성들 앞에서 강등을 당하고도 여전히 겸손과 봉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참된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실의에 대한 시험(18:17-30)-사울은 골리앗을 물리치는 사람에게 그의 딸들 중의 하나를 주기로 약속했었다(17:25). 그리고 이제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하였다. 왕 앞에서 다윗이 겸손한 것을 보자(18절). 그러나 사울이 그의 약속을 지켰는가? 아니다. 그 여인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다. 그리고는 그의 딸 미갈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이는 도구로 삼고자 하였다. 즉, 왕은 불가능한 지참금을 요구했으며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다가 다윗이 죽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고, 그 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가 미갈과 결혼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결합이 결코 행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추방을 당하고 있던 동안 다윗은 미갈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가(25:44) 헤브론에서 통치를 시작했을 때 도로 얻었다(삼하 3:13-16). 그러나 다윗에 대한 그녀의 태도 때문에 나중에는 완전히 갈라 서게 되었다(삼하 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