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포츠 김성록으로부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배우다
유튜브에서 '꿀포츠'로 꽤 널리 알려져있는 테너 김성록씨를 우연히 '발견!'했다. 노래하는 양봉인? 펜카페 회원이 수천명에 이르고, 전국을 누비며 초청공연을 다니고, 영국의 테너 폴포츠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한다. '꿀포츠'는 김성록씨가 정상적인(?) 성악가의 성장코스를 밟지않은 폴포츠와 비슷한데다가 양봉을 하고있다 해서 붙여진 별명인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이제사 알게된 건 순전히 내 좁은 오지랖 탓이다.
# 꿀포츠 김성록씨의 발견 경로 - 사소한 것도 우발적이다
'꿀포츠의 발견' 경로를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해도 희한해서 정리해본다. 올해 초, 정원꾸미기에 관심이 많은 우리 부부는 홍천군 우리꽃연구회에 가입했다. 거기서 알게된 회원 두세분의 합창단 가입권유에 응해서 홍천군 무궁화합창단에도 가입했다. 우리 부부는 젊은 축에 속했다.
거기서 현재 연습 중인 '청산에 살리라' 라는 악보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그 곡과 친해지기 위해 유튜브에 '합창 청산에 살리라'를 검색해서 들었다. 오랜만에 합창곡을 들으니 나의 정서 어딘가에 파묻혀있던 어떤 감흥이 일어났다. 까마득한 나의 초중고 6년여의 합창반 기억이 눈 앞에 생생해졌다. 40여년 전에 애창하던 가곡을 합창으로 들으니 감동이 더욱 풍성해진다.
유튜브는 이미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있는 모양이다. 유튜브는 끊임없이 "이곡 어때요?" 하며 곡을 권유하는데 십중육칠의 확률로 듣고싶은 곡을 내가 아는 범위 너머로 나를 인도한다. 남자의자격 넬라 판타지와 애니메이션메들리까지 들었다. 방송국에서 그 인기의 여세를 몰아 청춘합창단을 구성했던 모양이다. 이제 유튜브는 청춘합창단의 부분부분을 보여준다. 청춘합창단을 듣다가 김성록씨를 '발견!'한 것이다.
# 그의 노래가 감동을 주는 이유 - 자연에 깃들어 살기 때문이다
벌치는 성악가. 궁금증은 더 커진다. KBS로 들어가 그가 출연한 인간극장 5부작을 보았다. 그리고나서 약간의 검색. 서울대 성악과 중퇴, 서울시립합창단원, 경북 영양으로 귀농, 양봉, 집은 15년째 미완성. 청춘합창단 지원, 성악인으로 유명해짐. 지금은 상주시 한방단지 힐링센터에 입주 정착.
꿀포츠 김성록. 많은 성악 전공자들의 의욕을 일거에 꺽어버린 사람이겠다. 누구는 그렇게 열심히 해도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인 입지를 다지기가 어려운데, 누구는 산골에 내려가 양봉하며 기타치고 노래하다가 겨우 TV 합창 프로그램에 응시해 얼떨결에(?) 유명 음악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운일까?
사람은 스토리에 빠져든다. 역사(history)도 스토리다. 스토리 앞에 붙어있는 'hi'는 'he'인지 'high'인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노래연습만 한 전문음악가보다 자연에 사는 음악애호가에게 흥미를 느낀다. 음악에 스토리가 이미 가미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TV, 신문, 잡지에 들들 볶인 편이다. 인간극장 출연제의도 세 차례 이상 받아봤다. 내게 특별한 이유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자연 품에 안겨살면 그게 곧 스토리다.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도시를 떠날 때 친구들의 공통적 반응. "충분히 모았어? 애들 교육은?" 어쩌면 시청자들이 제일 궁금한 건 그와 관계된 것이겠다.
김성록씨의 노래는 감동을 준다. 원래 실력이 좋아서인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완성된 것인지, 그의 스토리 때문에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서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정서적 풍부함이 노래기술 차이를 극복하고도 남을 수는 있겠다. 자연은 스스로 완성케 하는 치유능력을 넘어선 그 무엇이 있다. 자연은 스토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스스로 완성될 수 있도록 하는 넓은 품이다.
# 먹고사니즘은 고립을 부른다 - 무위의 삶이 최고
김성록씨는 인간극장에 출연해서 마당에 솥단지를 걸다가 툭 던진다. "일은 힘들어도 즐겁다. 돈버는 것과 연관되어 있지만 않으면" 이라고. 음악을 그만둔 것도 먹고살기 위해 음악하는 것이 싫어서였다고 했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고싶다고 했다. 음악을 가볍게 대했더니 음악이 더 가까이 다가온 경우같다. 밀당법칙은 청춘남녀 사이에서만 작용하는 법칙이 아닌듯 싶다. 사실 먹고사니즘이 그렇다. 죽어라고 쫒아가도 좁혀지지 않고 잊고 살면 곁에 와있다. 나의 귀농생활 전반에도 그랬다.
긴장과 이완, 경쟁과 협력, 고립과 관계... 참 희한하다. 긴장 속의 경쟁은 성공 아닌 고립을, 이완 상태의 협력은 관계 속의 행복을 가져다주곤 하니 말이다. 두려움에 휩싸일수록 떨수록 평화는 멀어지고, 집착이 심할수록 자유를 느끼기 어렵다. 직업, 교육도 그렇다. 즐거워하면 소득과 성적이 따라오고, 억지로 하면 소득과 성적은 멀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즐거워서가 아니라 억지로 하지않는가?
우리집에서는 내가 준비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많아 쓸데없이 바쁜 편인데, 집사람(초록손이)은 하고싶은 일 아니면 절대 안한다. 내 성격대로 살지못하고 집사람에게 맞춰사는 편인데 희한한 것은 그렇게 사는게 더 잘 풀린다는 점이다. 내 일임에도 불구하고 알고도 모를 일이다.
김성록씨가 아무리 노래를 좋아한다 해도 청춘합창단 모집에 지원하기는 쉽지않다. 우선 먹고사니즘에 도움이 되지않는다. (방송을 보니 여유있어 보이지 않는다) 합격하더라도 매번 연습하러 경북 영양에서 서울로 가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합창단에 지원했다. 먹고사니즘은 고립이라고 하는 개미지옥의 아가리다.
# 정체성의 조화 - 경제인, 문화인, 자유인
문득, 삶의 의미(U)를 경제인(A), 문화인(B), 자유인(C)이라고 하는 정체성의 집합관계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경제인으로서의 정체성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삶은 팍팍해진다. 심리적으로나 관계론적으로 고립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이 그렇다. 문화인으로서의 정체성 비중이 높아지면 삶은 공허해진다. 자유인으로서의 정체성 비중이 높아지면 삶은 비루해지기 쉽다.
위의 벤다이어그램처럼 균형을 이루기는 쉽지않다. 특히 경제인으로서의 비중이 앞도적으로 높고, 자유인으로서의 비중은 너무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원생이 지도교수가 인분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사례가 그 증거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인위적인 비중 조절은 쉽지않다. 그럼 무엇이 우선일까? 문화인, 자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먼저 가져야 하지 않을까? 김성록씨가 그 증거 아닐까?
인간에게는 원초적 두려움이 있다. 본능적인 자기보호 작용이다. 누구나 두려움에 대처하는 각자의 신념과 원칙이 있다. 에니어그램에서 성격이란 바로 두려움에 대한 대처방식이다. 이 대처방식은 거의 기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벗어나고자 하는 집착이 강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싸우지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 미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두려움과 싸우지 말라는 것이 주제다.
"삶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이 우리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것보다 생각보다 많다"
(마이클 싱어)
카잔차키스의 자찬묘비명에 답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첫댓글 원푸리님 덕분에 김성록씨 검색해서 찾아보았어요. 티비를 안보다보니 그동안 몰랐네요~ 유투브 없었다면 어쨌을까싶네요. 김성록씨의 노래도 삶도 감동입니다. 자연속에서 사는 모습이 학교를 탈출한 우리와 닮아있어 친근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쵸?^^
삶이란 무엇이다! 라는 또 하나의 정의가 담겨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