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바쁘다
남녘의 봄소식 - 낙안읍성, 영벽정, 세량지, 고창학원농장 23.4.8
이때만 되면 봄바람에 몸살이 난다. 봄이 바람든 건지 내가 바람든 건지 구분이 안간다. 새 생명들이 연록색으로 움트거나 꽃피우는 계절. 남녘으로부터 봄은 바람을 타고 바쁘게 올라온다. 나이들어 사진에 취미를 붙인 후부터는 특히 봄, 가을 만 되면 대자연의 놀라운 변신을 직접 보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서곤 한다. 물론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 대로 색다른 자연의 변모를 볼 수 있어 어느 계절도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가 어렵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등산과 섬여행에 푹 빠지게 된 것도 어쩌면 사진 취미가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등산, 여행을 즐기다 보니 사진을 잘 찍어야겠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됐고, 사진을 배우면서부터는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 곳곳의 관광명소들, 더 많은 산과 섬, 남들이 잘 다니지않은 산간오지들을 찾아다니게 됐던 것이다.
각설하고, 최근에 다녀온 해남의 주작산 진달래 바위능선 역시 벼르고벼르던 출사지 중의 하나였다. 등산 베테랑들이나 오를 수 있는 산인줄 알았던 강진의 주작산 암릉, 기암절벽 사이사이에 카펫처럼 피어 있는 진달래꽃동산을 무거운 DSLR카메라와 삼각대까지 들쳐메고 오를 수 있었다니 이 얼마나 큰 도전과 환희인가?
주작산 오른지 불과 3일 밖에 지나지않았는데 이번엔 다시 남녘의 봄소식이 궁금해 밤 11시에 출발하는 전남 낙안읍성-영벽정-세량지 행 무박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도권에서 편도 5시간 정도 걸리는 먼 길이라 개인적으로 다녀오기는 부담이 되는 출사지들. 등산이나 사진계에서는 소위 ‘안내 카페’라는 게 있다. 등산이나 사진 출사지 안내를 전문으로 하는 영업목적의 인터넷 상설 동호인모임이다. 건강 만 받쳐준다면 시간절약은 물론 비용도 저렴한 편이어서 이용해볼만 하다. 버스에서 앉은 채로 몇시간 선 잠을 잔 후 새벽에 현지에 도착, 등산이나 사진출사지로 간다.
새벽 5시경 먼저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읍성’에 도착, 야경촬영을 시작했다. 서문성곽 쪽 조망포인트에서 읍성 내 가로등 불빛이 사라지기 전에 촬영해야 한다. 낙안읍성 야경촬영은 초저녁에 촬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집집마다 방문에 불이 켜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출 후에는 성곽 위 또는 마을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초가집 사이사이로 서 있는 연록색 나무들과 유채밭을 담아본다.
이곳은 기와집은 관아건물 몇채 만 있고 거의 대부분이 초가집이어서 비교적 정겹다.
읍성 내 민속음식점에서 아침식사 후 다음 일정은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위치한 영벽정. 영벽정은 1984년에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 67호로 지정된 곳이라 한다. 막상 가보면 정자 하나 있고 앞에 강이 흐르는 평범한 모습이다. 이곳 강은 지석강이라 부르고, 강건너 산은 연주산이다.
사진작가들에게 이곳 영벽정이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바로 옆에 철로가 있어 영벽정과 지석강 풍경을 지나가는 열차와 함께 담으면 제법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적어 지석강이 잔잔해지면 영벽정 및 열차 모습이 반영으로 강에 비춰져 운치를 더한다. 열차는 오전 11시 경의 경우 11시 5분 하행, 11시 10분 상행 열차가 지나간다. 산비탈에서 내려다보면서 다가오는 열차를 담을 수 있지만 장소가 비좁고 삼각대를 설치할 장소가 마땅치않다. 보통 열차사진을 찍을 경우에는 1//10초-1/20초 정도의 느린 셔터스피드로 촬영하여 정적인 풍경과 동적인 열차 움직임을 함께 표현하면 좋은데 이를 위해서는 삼각대 설치가 필요하다.
영벽정 촬영포인트는 두군데 정도이다. 다가오는 열차를 하이앵글로 내려다보면서 정면으로 찍을 수 있는 1차포인트, 열차를 측면에서 올려다보고 찍어야 하는 2차포인트가 그것이다. 당연히 1차포인트가 좋아 보이지만 이곳은 장소가 비좁고 영벽정 조망이 좁아 단체 출사시에는 여러명 촬영이 어렵다. 2차포인트는 지석강 강변으로 영벽정 조망이 열려 있고 1차포인트에 비해 장소가 조금 넓기는 하지만 낮은 앵글로 열차를 올려다 보고 찍어야 한다. 열차가 측면이라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저속촬영으로 동감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운게 단점이다.
영벽정 촬영후 다음 행선지는 세량지. 세량지는 새벽 일찍 가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담아야 제격인데 이번 일정에서는 주최측에서 낙안읍성 야경 및 새벽풍경을 먼저 잡아 무척 아쉬웠다. 특히 우리 일행이 방문한 날은 4월 날씨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추워졌고 기온고저차가 커서 물안개 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실제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세량지의 물안개가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10년내에 이런 4월 날씨가 또 올 수 있을까를 예상한다면 수년내에는 보기 어려운 세량지 풍경이었다고 강조한다.
2014.4.8 촬영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에 위치한 세량지는 4월이 되면 저수지 물 속에 드리운 산벚꽃과 연록색 신록의 숲 반영, 그리고 물안개로 마치 선경(仙景)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는 곳이다. 2012년에는 미국 CNN 방송의 ‘한국의 꼭 가봐야 할 곳 50선’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산벚꽃이 만발하는 봄 뿐 만 아니라 가을 풍경 역시 절경이다.
2014.4.8 촬영
물안개는 해 뜨기 직전에 저수지 수면에서 조금씩 일다가 햇볕이 들기 시작하면 타오르듯 수면 위로 오른다. 물안개는 지나치게 많아도 좋지않다. 물안개가 심하면 신록숲의 물 속 그림자가 보이지않기 때문이다.
2014.4.8 촬영
적당한 물안개를 보기 위해서는 출발 전 기상청을 통해 세량지의 기상상태와 기온 차 등을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데 수도권 등 멀리서 내려오는 사진가들에게는 일정 맞추기가 쉽지않다.
우리 일행이 낮시간에 찾은 세량지는 당연히 물안개는 전혀 없었고, 산벚꽃도 절정 시기가 약간 지난 듯 했다.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이 심해 반영보기도 쉽지않았다. 바람이 적은 제방 우측 끝으로 다가가 저수지인접까지 내려간 후 삼각대를 최대한 낮게 세우고 앉아서 찍어봤다. 이렇게 해야 그나마 반영 있는 사진을 몇 컷 건질 수 있었다.
필자는 세량지 방문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찾았던 때는 9년 전인 2014.4.8. 당시에도 물안개는 많지는 않았지만 산벚꽃과 신록의 색감은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좋은 사진을 얻기가 이렇게 어렵다.
이번 출사의 마지막 코스는 고창 학원농장.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 위치한 고창 학원농장은 무려 30만평 규모를 자랑하는 대농원이다. 드라마 ‘도깨비’를 비롯, 웰컴투동막골, 육룡이 나르샤, 백일의 낭군님, 사임당 빛의 일기, 만남의 광장, 스물, 늑대소년, 엽기적인 그녀, 청춘월당, 슈룹, 카지노, 녹두꽃, 꽃길만 걸어요, 협녀 칼의 기억, 조선마술사, 7일의 왕비,녹두전, 라켓소년단 등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 학원농원은 특히 청보리밭이 유명하다. 올해는 4월 15일부터 5월 7일까지 청보리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필자가 방문한 4월 8일에는 유채꽃은 절정이었지만 청보리는 아직 새싹 수준이었다. 유채꽃밭 규모도 2만여 평에 이른다.
이곳 학원농장 역시 내겐 2015.5.1. 방문 후 두 번째다. 당시의 기억으로 보면 4월 말경에서 5월 초순 정도 돼야 보기 좋게 자란 보리밭을 볼 수 있지않을까 예상된다.
이곳 고창 학원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 씨와 부인 이학 여사가 1963년 10월 설립했고 장남 진영호 씨가 대를 이어 1992년 5월부터 운영해오고 있다고 한다.
열악한 농업환경 속에서 새로운 농업, 새로운 농촌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2013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에는 우리나라 산업인들의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바도 있다.
확 트인 넓은 대자연 속에서 보리밭 사잇길 걷기, 보리밭 속 음악감상, 보리피리 만들기 등 학원농장에서만 가능한 멋진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보리밭의 면적은 학원농장과 그 주변 농가들의 밭까지 합치면 30만 평 정도라고 한다. 봄에는 유채 및 청보리축제, 여름에는 해바라기꽃 잔치, 가을엔 메밀꽃 잔치 등이 펼쳐진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