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라와 김홍석은 각자의 개별적인 작품 발표와는 별도로 2000년부터 공동 작업을 진행하며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 해 왔다. 이번 아트선재의 전시 <ANTARCTICA>는 ‘남극’이라는 하나의 전시 제목으로 두 작가의 예술적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두 개의 개인전’인 동시에, 두 작가가 서로의 작업에 상호 반응하며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관객들을 ANTARCTICA라는 동일한 스페이스에 초대한다는 특징이 있다.
미술관 입구 자동문에 쓰여진 김홍석의 <1st. South Pole Centennial>을 통과하여 2층으로 들어선 관객들은 김소라가 작업한 <화산>과 <도서관>으로 구성된 복합공간(complex)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실재하는 곳인 ANTARCTICA에서 탐험가들이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사건들을 겪었던 것처럼, 전시기간 동안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새로운 경험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전시장 2층에 위치한 원형 합판으로 만든 <화산> 꼭대기에는 마그마가 용솟음치듯 팝콘 기계가 계속해서 팝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버린 책들을 모아놓은 거대한 기둥 형태의 <도서관>에서 관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꺼내서 읽을 수 있다.
한편 버려진 책들에서 김소라는 컬러 아이템을 찾아내어 2, 3층 전시장의 벽면 색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작가는 3층에 동료 작가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버린 작품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그것을 재활용한 <라운지>를 만들었다. 이는 독립된 하나의 작품인 동시에 김홍석의 작업과 오프닝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는 기능적 가구로도 작용한다.
김홍석의 작업들은 오브제, 벽면 텍스트, 영상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제주도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의 포즈를 기록한 <I document it – Jeju Island>에서 작가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학습되어진 태도와 자세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본다. 3층에 설치된 비디오 작업인 <G5>에서는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5명의 사람들이 한국어로 번역한 미국, 러시아, 영국, 일본, 프랑스의 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 모두가 국가, 문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김홍석은 2, 3층에 걸쳐 여러 개의 벽면 텍스트 작품들을 보여준다. 코헨 형제의 동명 영화에 나타나는 한글 자막을 발췌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는 영화의 이미지를 대신하는 일종의 문자 스크린으로 관객들은 자막만으로도 영화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다. 김수영의 <꽃잎 1>과 윌리엄 블레이크의 <America, Plate 10>을 벽면 텍스트로 옮긴 동명 작업은 각각 한국어에서 영어 혹은 영어에서 한국어로 여러 차례 번역된 시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 텍스트나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왜곡을 가시화하여, 언어와 문화를 번역하는 것에 대한 한계에 물음을 던진다.
한편 전시 오프닝에서 김홍석은 로버트 인디애나의 동명작품을 패러디한 <LOVE>, 둥그런 바위가 벽면에 박히면서 우연히 생선된 단어를 다룬 <G.N.P>, 그리고 전시장 바닥에 글씨를 쓴 <Well>과 같은 오브제 작업들을 배경으로 오프닝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김소라와 김홍석은 이번 전시에서 선형적이고 순차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전시와 작가, 그리고 관객 간의 역동적, 양방향적인 소통을 생산하고, 완결된 이미지의 재현보다는 다양한 요소들의 유기적 결합과 그것이 무엇인가로 재생성되는 상황을 관객들에게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