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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과 천도교
교당에 걸린 최린의 사진
광복 60주년 관련한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80년대 초반 경상도 지역의 어느 교구에 걸려 있던 여암 최린의 사진이다.
수운, 해월, 의암 세 분의 초상화와 함께 나란히 걸린 여암의 사진을 보고 나는 뜨끔했다. 친일행위로 지탄받고 있는 여암의 사진이 교당에 당당히 걸려 있다니! 지금도 그 곳에 사진이 걸려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당시에 받은 충격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생생하다.
일제로부터 해방 된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천도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최린의 친일행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가 없다. 최린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 되어 있는 듯 했다. 혹자는 여암이 천도교단의 보호를 위해 친일의 거죽을 쓴 것이라 하고 여러 사례를 들어 여암을 변호한다.
그러나 여암의 친일행위는 역사적 사실이다.
최린의 경우는 2차대전 말기 악랄하게 발악하며 우리 민족을 닦달하던 일제의 등살에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했던 경우와는 다르다. 여암의 친일문제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4년 ‘연정회’조직을 시도하며 자치운동에 앞장선다. 자치운동이란 실질적으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용인하는 것으로 독립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중추원 칙임참의가 되고, 형식적인 자치권을 요구하는 것도 내버리고 ‘시중회’를 만들어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걸고 일선융합(日鮮融合)을 외치면서 본격적인 친일에 나선다.
최린의 친일문제는 최린 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운동-자치운동의 일파가 어떻게 친일로 귀결되어갔는가 하는 문제이며, 천도교단 내에서 이루어진 신문화운동 등 1920-30년대의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1920년대에 이루어진 신문화운동은 천도교의 자랑스런 역사임에 분명하다. 출판문화운동, 어린이운동 등 7부문운동의 활동은 오늘날 보아도 부럽기 조차한 것이다. 그러나 천도교단에서 앞장서서 주도한 문화운동의 한계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은 당연한 현상이다. 가시적으로 이루어진 문화운동의 성과 뒤에는 이에 대한 어두운 면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운동 등 실력양성운동의 사상적 기반은 주로 ‘사회진화론’에 바탕한 것으로, 사회진화론에 대한 비판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최근 박노자의 글이나 책에서 언급되면서 보다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약육강식이 곧 우주와 사회의 도리”이며 “적자생존은 우주 불변의 법칙”이는 단순 원리에 집약되는 사회진화론은 인간사회에서 ‘힘’과 ‘경쟁’이 사회의 진화를 이끈다는 이데올로기이다. ‘힘의 숭배’는 일제하 신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종종 강한 자인 서구와 일본에 대한 예찬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 비판
문화운동의 최선봉에서 맹활약하던 소춘 김기전은 스스로 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의 한계를 절감했던지, 1925년 <개벽>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조선의 오늘의 형편에서 교육보급, 산업발전운동이 조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 겠습니까? 설혹 실력양성을 힘쓴다 할지라도 힘쓰는 그 정신은 다른 무엇을 기성해 나가는데 보탬될 한 과정으로 하여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실력양성이면 그만이오, 동시에 실력양성운동만은 그 형편 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함은 역시 일종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소춘의 언급은 문화운동, 실력양성이 그 자체로 매몰되면서 ‘자치운동’ 등 일제에 보다 유착되고 민족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해가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또한 야뢰 이돈화는 1924년 <신인철학>에서 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사회진화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 근대의 제국주의 군국주의 사상은 실로 이 참담한 생존경쟁설이 실제 인심을 지배하게 된데서 나온 과실(過失)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인의 사회관은 생존경쟁,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원리에 입각한 점이 많았다.”
야뢰는 사회진화론의 대안으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등을 소개면서 동물계에서의 흰앵무새, 페리칸, 참새 등을 예로 들고, 해월신사의 이천식천의 연관하여 상호부조를 동질적 기화로 해석하고, 생존경쟁을 이질적 기화로 설명한다.
“생존경쟁이라는 관념은 현세기에 있어 가장 큰 개괄적 통념이다. 그러나 생물은 생존경쟁에 의하여 번식한다기 보다는 상호부조에 의하여 그 생존을 보호한다. 즉 생존경쟁은 수단이 되고, 상호부조는 주격이 된다........여기서 기화(氣化)라는 말은 상호부조가 주(主)가 되고 생존경쟁이 종(從)이 된다는 원리로 돌아가고 만다. 한울을 잘 키우는 방법은 생존경쟁 즉 이질적 기화를 무리(無理)로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오, 상호부조 즉 동질적 기화를 합리(合理)적으로 하는데 있다.”
해방이후 60년이 지났지만 천도교단내에서 최린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암을 여전히 스승으로 모시는 계파들이 많기 때문인가? 신-구파의 논란이 재연되는 것이 두려운 때문일까?
이제는 이도 저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앞으로의 방향설정을 할 만한 여력이 지금의 천도교에는 없는 까닭인가?
천도교단 밖에서는 천도교의 노선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연구와 비판이 많다. 이는 그만큼 일제하에서 천도교가 민족운동 내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의 천도교가 지난 시기를 반성하고 되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지난 6월 초 신임교령으로부터 새로이 도첩을 받은 교서편찬위원회에서는 자랑스런 역사는 새롭게 부각시켜야겠지만, 최린의 친일과 관련된 부끄러운 역사도 참회와 반성의 차원에서 가감 없이 기록했으면 한다.
역사를 기록함에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할 천도교인의 자랑스런 아들이 있다.
임종국선생이다. 친일파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던 분으로 30여 년 전 <친일파연구>라는 글에서 그는 천도교의 친일을 언급하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 석자를 친일파 명단에 빠뜨리지 않았고 이러한 정신은 지금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이어가고 있다.
용서는 좋은 거지!
광복 60주년을 맞는 천도교에서 해야 할 일은 많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지난 과거의 역사, 특히 최린이 친일행위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 좋은 일도 아닌데 지난 일을 들추어 내어 어쩌자는 것인가! 남들보다 한참을 뒤져 앞 만 보고 달려도 부족한데 뒤돌아 보는 게 무슨 소용인가! 물론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천도교가 항시 앞이라 여기고 달려가던 통일운동의 그 방향이며 방법이 올바른 것인지를 확인하는데는 반드시 뒤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혹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정신없이 달려는 가지만 엉뚱하게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것은 아닌지?
천도교단에서 통일관련 이야기를 나는 무수히 들었다. 해방 60년을 맞이하는 지금, 천도교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통일운동에 어떻게 참여하고 기여할 것인가? 참으로 그럴 듯한 화두이다.
그러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하자는 그 상대는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적’이다. 그 적은 바로 북이다. 얼마 전 천도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장식하던 국가보안법 관련 논란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천도교 통일운동의 사상적 정신적 기반이 너무도 허약하다고 느꼈다.
겉으로는 통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북을 적으로 여기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그런 감정이 너무도 깊은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항시 통일을 부르짖던 천도교단이었다. 한 때는 남에서 불온한 단체로 찍히고 했던 그런 천도교였다. 그래서 적어도 천도교인들은 그런 사람이 별 없을 거라 짐작했던 내가 참으로 한심했다.
이 글을 쓰기 몇 일 전 평택에서 미군부대 확장을 반대하는 만 여명의 시민들에게 경찰이 과잉 진압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잡혀갔다. 그리고 지난 5월 광주의 미군부대를 반대하는 시위로 철조망이 일부 망가지는 사태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최근 내가 거주하는 진주지역에서도 여파가 미쳐 4명이 구속되어 광주교도소에 있다. 나는 미군부대에 반대하는 운동역시 통일운동의 하나로 파악한다.
평택의 미군부대 확장은
<그 어린이의 나막신 소리에 내 가슴이 아프더라>
고 말씀하시고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 살같이 하라>
하신 해월신사의 말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또한 미군부대에 반대하는 것은
<언제 현도가 되겠습니까>
라고 제자들의 물음에 대해
<만국병마가 우리 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이니라>
하고 대답하신 해월신사의 말씀에 대한 구체적 실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믈론 이러한 나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는 천도교인들도 많을 것이다. 전혀 찬성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 절차나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분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해방후 6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주류를 지배해 왔던 사회분위기를 고려하면, 오히려 나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더욱 부각시켜야 하고, 서로의 약점이나 잘못된 점보다는 장점을 서로 살려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이제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그러하고, 남과 북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통일하자는 데는 상대가 있다. 단순히 남과 북의 문제만이 아니다. 남과 북, 북과 미, 남과 미! 북에 대한 증오를 앞세워서는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월산 김승복도정께서 지난해 환원하시기 얼마 전 어느 기자에게 했다는 다음의 말씀은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두고두고 새겼으면 한다.
“한울은 불택선악이야. 정해진 게 아니지.
한반도도 우리 하기에 달린 거지. 용서는 좋은 거지. 상대가 몰라서 그런 거니 용서할 수 있는 거지.”
이러한 말씀이면 정치적 구호와 마음공부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겠다 싶다. 마음공부가 결코 현실 정치와 무관하지 않고, ‘통일’이라는 정치적 구호가 마음공부와 따로 떨어진 것도 아니다.
국가보안법 철폐 논란에서 경험했듯이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아니기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전개되는 논란은 더욱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한발짝 물러서 ‘용서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내가 옳기에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잘못이기에 용서받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불택선악이다!
북한처녀와 결혼하세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7월말로 예정된 6자회담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좋은 결과가 계속되어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위험이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되면 북은 개방과 개혁으로 나아갈 것이고, 경제적인 난관도 점차 극복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아마 핵무기보다 더 위협적이고 거센 자본의 힘! 달러의 위세를 북은 제대로 막아 낼 수 있을까?
자본의 힘은 물샐 틈 없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이 전체적으로 사용했던 포탄보다 1.5배나 많은 포탄을 퍼부었음에도 결국은 패배했던 전쟁. 작지만 위대한 승전국 베트남. 이 나라에서도 개혁과 개방이 진행되고, 자본의 공세가 빈틈없다는 사실을 엉뜽하게도 “베트남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에서 실감할 수 있다.
북이라고 별 다를까?
개방이 가속화 되면 혹 “북한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을 남녘 길거리에서 보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이 때를 맞아 북의 천도교며 청우당은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을까?
북쪽에서 천도교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회단체에 비해 우위에 있어 보이지만, 여전히 북쪽 천도교 활동의 많은 부분은 ‘전술적 필요’에 따른 것이리라.
앞으로는 보다 더 동학적이고 천도교적인 언어로 생각하고 발언해야 될 것이다. ‘전술적’ 활동은 물론 지금의 북의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으나, 동학-천도교가 수단이며 결코 목적이 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동학-천도교의 큰 줄기를 잡아 계승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점차 가속화될 자본의 가공할 침투에 모두 휩쓸려 버릴 것이다.
보다 동학적이고 천도교적인 사고와 언어로 발언하고 정리할 능력을 갖춘 인물이 있다. 남과 북을 통틀어 동학-천도교에 관한 최고의 철학자, 윤노빈! 남에서 대만을 거쳐 지금은 북에 있다고 알려진 <동학의 세계 사상사적 의미>라는 논문, <신생철학>을 집필한 철학자다. 윤노빈은
'사람이 바로 한울님이다'라는 경주의 인내천혁명은 밀레토스의 로고스적 혁명이나 예루살렘의 파토스적 혁명이 가져온 결과보다 더 놀라운 변화를 인류의 앞날에다 가져다 줄 것
이라고 확언한바 있다.
20여년전 나는 시천(侍天), 양천(養天), 체천(體天)을 해석하는 그의 글에 놀라 눈이 번쩍 뜨였다. 성령출세설이며 삼전론 등을 대수롭기 않게 여기다가 윤노빈의 글에 자극받아 경전을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읽었다. 나아가 의암성사의 진면목을 보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내 머리 속에 든 동학-천도교에 대한 대부분의 관념들은 이 분의 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전부터 윤노빈을 통해 주체철학과 인내천철학이 만나고 새롭게 변모하면 좋겠다는 바램을 지니고 있었다. 북의 천도교에서 이런 분을 영입, 아니 ‘포덕’하고 물샐 틈 없이 밀려들 자본의 공세에 대비하면 아니 될까? 이런 생각들은 앞뒤가 없고 섣부른 억측이긴 하지만, 그리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예상하여 둔다고 해될 것은 없다. 대신사께서 말씀하셨다.
선불처변명불수(善不處變名不秀)!
중앙총부의 이전은 어떠하올지?
이 글을 쓰면서 천도교 게시판을 뒤져보니 매우 상쾌하고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획기적인 제안을 보았다. 광복 60주년! 천도교100년! 중일변! 이러한 주제에 딱 맞는 제언이라 여겨겼다. 지난 6월 27일 김시완님이 올린 글이다.
엉뚱하게 생각할 분도 있지만 충분히 고려할 만하지 않은가! 이 글에 대한 답 글도 몇 개 올라 있다.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이 제안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김시완 동덕의 제안이 광복 60년, 천도교 100년을 맞이하는 교단 내에서 심도있게 검토되고 공론화되기를 심고 드린다.
“ 대도중흥을 위하여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글에 저도 한 가지를 거들까 합니다. 최근에 정부에서는 신행정수도의 건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통하여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도의 운수가 우리나라의 운수라 하셨으니.....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을 본받아 우리 천도교도 중앙총부를 경주시내 용담정 인근으로 이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먼저 수운회관을 리모델링하여 임대를 하거나 매도하여 이전 비용을 마련하고, 그 수입금으로 용담정 인근의 땅을 사들여 전통적 방식으로 건물을 짓고, 중앙총부의 이전과 더불어 대학원을 비롯한 각종 교육사업과 복지사업을 운용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니 우리도 거름지고 장에 가듯 중앙총부를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세이자 우리도의 운수라 생각하신다면 아니 "영일만(포항)에 성미를 실은 배가 가득해질 것"이란 말씀을 믿으신다면, 그 배에 실린 성미를 받을 중앙총부가 당연히 경주나 포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인간 2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