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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7월 4일 대만 장화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애지중지 키운 반려견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곳저곳 찾다가 반려견을 찾아주면 30만 대만달러(약 1280만원)의 사례비를 주겠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는데 SNS를 본 누리꾼들이 직접 반려견을 세 사람이 이틀 만에 찾아 주인에게 돌려준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반려견 주인 품으로 돌아왔는데 참 좋은 주인 만났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 딸이 결혼해서 두 자녀를 양육하며 잘 살고 있는데 오래 전 부모의 잘못으로 딸이 어릴 때 충무시장에서 상당 시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하늘이 파랄 정도로 정신이 나간 것처럼 이곳 저곳 은혜야! 부르며 시장바닥을 찾느라 헤매던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누구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내게 없었을 때는 모르고 그냥 살지요 그러나 늘 함께 소통하며 즐겁게 지내다가 어느 날 사라지면 그 공백이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닮은 삶을 본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한 생명의 가치를 천하와 비교를 했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말씀하셨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 말씀을 읽을 때는 실감이 납니다. 목자가 100마리의 양을 푸른초장에서 자기 생명처럼 여기며 키우는데 어느 날 뜻하지 않게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습니다. 목자는 이곳 저곳 찾아다니며 한 마리 양을 기필코 찾습니다. 그리고 어깨에 매고 집으로 돌아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는데 예수님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한사람의 가치를 아흔 아홉의 의인이 천국에 와 있는 것도 기쁘지만 잃어버렸던 한 사람 죄인을 찾는 것은 더 기쁘다고 했습니다.(눅15:7) 그만큼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본문말씀 10절...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 한 절 말씀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 사역하실 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크게 세 지방으로 나누어집니다. 남쪽은 유대로 수도인 예루살렘 있고 중부지역은 사마리아로 여리고가 중심지역입니다, 그리고 북쪽은 갈길리 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사마리아 땅 여리고성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낙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고 특히 종려나무가 많아 올리브유를 수출하여 돈을 많이 버는 도시였습니다. 땅이 비옥하여 이스라엘에서 부자 지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로마라는 강대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세금을 거두어 로마정부에 받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금을 가장 많이 거두는 지역이 여리고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라는 사람이 이곳에 살았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금을 걷는 책임자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정부에 책정된 세금을 받치고 나머지는 세리들의 몫으로 챙기면서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시켜 동족인 유대인들로 부터 매국노!!~~ 동적의 피를 빨아 먹는 자로 비난받으며 살아가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방문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개역성경: 뽕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돌 무화과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군중에 휩싸여 계시던 예수님이 돌 무화과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가서 유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삭개오는 너무나 기뻐서 급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 한마디로 삭개오는 사람들로 부터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것이지요
그런데 삭개오는 이런 말들을 개의치 않고 집으로 예수님 모시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백 합니다. “주님!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의 참회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이상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마지막 10절 주의깊게 살펴 보세요.... 예수님의 이런 외침 속에는 삭개오 만이 잃어버린 자가 아닙니다........ 구경삼아 모여든 모든 사람이 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사람 삭개오와 1대 1대로 만나는 감격적인 순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감격적인 순간이 매 순간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55: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예배 공동체 이 자리는 주님이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개인과 개인을 통해 만나주십니다. 문제는 주님을 만날 때 나는 구경꾼인가? 아니면 주님에 대해 궁금히 여겨 주님은 어떤 분인가? 자신의 결단에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여리고에 오신 예수님을 지금 만나지 못하면 언제 만날 수 있겠는가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이 감격적 순간이후 예수님의 다음 행보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는 때 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지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삭개오는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예수님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눅19:28이하)
삭개오는 예수님의 다음 시간표를 전혀 알지 못하지요 그러나 오늘 주님을 만나 절호의 이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이 중요합니다. 내일 결단하겠다. 내일 시행 하겠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 예배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우리예수님은 사모하는 한 영혼 삭개오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너무나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그 인생이 새로운 역전의 순간이 이루어지는데 삭개오를 통하여 인생역전의 순간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1대 1대로 만나는 감격적인 축복을 얻은 삭개오 그가 어떤 믿음의 자세이었기에 이런 감격을 얻게 되었는가?
먼저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3절.....“ 그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하여 보고자 하되 ”
예수님에 대한 삭개오의 관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고자 하되” 이 말은 단순히 호기심이 아닙니다...... 유명인사를 보고자 하는 군중심리도 아닙니다....... 헬라어 문법으로 보면 “보고자 하되”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워했다는 뜻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그리워했다는 것은 가난해서 예수님 만나 부를 구해야겠다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워한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가 몸에 무서운 질병이 있어서 예수님 만나 병 고침을 받아야지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삶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문제였습니다. 즉 나는 누구인가?
삭개오 보세요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문을 막 빠져나가려는 출구에서 예수께 달려 나온 것을 보면 많이 망설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삭개오 어느 날 문득 일어나 두 주먹 불끈 쥡니다. 내 인생에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예수님을 그냥 지나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막상 달려나와 보니 예수님이 두 팔 벌리고 기다리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도 간절히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달려왔건만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키가 작은 것은 내 안에 있는 원인입니다. 사람이 많은 것은 환경적인 요인입니다. 장애물이 한 겹 두 겹 우겨 싸이는 거예요 그런데 삭개오 어떻게 했습니까? 키가 작은 것 때문에 사람이 많은 것 때문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그냥 올라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보기 위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성인입니다. 아이들도 아니고 어른이 뽕나무 위로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웃을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삭개오는 당시에 그 지역의 유지였습니다. 세리장 이었습니다. 체통머리 없다고 비난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려는 그 열정과 끈기에는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앞에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려고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사탄 마귀가 환경을 통하여 장난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 마귀는 우리를 여러 모양으로 신앙생활을 못하도록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세 가지의 유혹으로 예수님을 넘어 뜨릴려고 했지 않습니까?
우리 앞에 여러 환경적 요인 장애물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반드시 문제의 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가정에 모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5-6절.....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를 보세요 넘어야 할 장애물을 뛰어 넘으니까 그 즉시 주님의 관심은 오직 삭개오 한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있음을 보고 계십니까? 그리고 우리 예수님 삭개오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주십니다.
“오늘 밤에 네 집에서 유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그냥 눈길만 주어도 고맙고 악수만 해 주어도 감격스러운 일인데 우리 집에서 하루 밤을 묻고 가신다니 세상에 이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광주에 오셨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지명했는데 여러분의 집에 하루 밤을 묻고 가신다면 이것은 가문의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 되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하루 밤을 묵고 예수님과 1:1로 만나는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바램이요 축복은 우리 주님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우리 집에 함께 계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런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네가 너희 집에 유하리라~~~
삭개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8절.....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신후 삭개오는 엄청난 심령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동안 돈과 물질과 명예밖에 오르던 삭개오..... 돈이라면 조국도 이웃도 동족도 없던 삭개오....... 돈이라면 무슨 말을 들어도 좋다고 생각하던 황금만능주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그동안 남의 것을 불법으로 빼앗았거나 불의로 착취한 것에 대하여는 4배로 갚겠다는 했습니다.
삭개오의 파격적인 변화는 자기중심적 삶에서 180% 새롭게 방향을 전환하는 회개의 표시입니다.
삭개오는 더러운 재물을 청산함에 있어서 이런 저런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결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한 순간에 결정한 것입니다......신앙의 결단은 한 순간에 성령님 강권하심으로 역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농부가 기쁜 얼굴로 아내에게 말하기를 “ 우리 소가 새끼를 두 마리나 낳았소 라고 하였습니다. 새끼중에 한 마리는 붉은 색이요 다른 한 마리는 하얀색입니다 말하니까 농부는 덧붙여 말하기를 이중 한 마리는 자란후에 하나님께 드릴것이요 말하니까 아내가 농부에게 어느 송아지를 하나님께 드린것이냐고 물으니까 농부는 지금 딱 결정할것이 아니고 자란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몇 개웡이 지났을까요? 어느날 농부가 슬픈 기색을 하면서 아내에게 말을 하는데 하나님께 드릴 송아지가 죽었소~~ 아내는 하나님께 드릴 송아지를 바칠지 결정도 안했는데 어떻게 그런말을 할수 있느냐고 하니까 농부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 드릴 송아지 하얀 송아지였는데 죽은 송아지도 하얀 송아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결단은 언제나 첫 순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편의 대로 잣대를 드리되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물질을 단칼로 베듯 바른 결단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삭개오의 변화를 보시고 이제 엄청난 축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이 표현을 주목하십시오. 구원은 늘 ‘오늘’ 일어납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보다는 지금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합니다.
삭개오는 모은 재산을 환원하는 순간 삭개오는 물질로부터 체면과 명예로부터 왼전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순간 우리 예수님 삭개오를 보시고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지난날 우리가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삭개오에게 돈을 모은 것에 대해 전혀 묻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일까요 “오늘”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가정에 구원의 선물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오늘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앞에서는 누구나 영적인 숙제가 놓여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삭개오 같은 한사람이 죄악된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찾고 계시고 1대1로 만나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누구이든 잃어버린 영혼이 나 자신 일 수 있습니다........ 내 가족 중에 한사람 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찾고자 하십니다. 찾는 그날이 곧 삭개오가 변화된 날이요 우리가 변화된 날임을 믿습니다.
그날이 인생의 역전 되는 날이요 영혼이 변화되고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된 삭개오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