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도(巨金島)의 옛 이름은 절이도(折爾島)이다.
<충무공유사(忠武公遺事)>에는 이순신 장군이 절이도 앞바다에서 적선 6척을 통째로 포획하고, 적군의 머리 69급(級)을 베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때 7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간척 사업으로 인해 큰 섬들이 새로 생기면서 11번째의 섬으로 밀려났다.
거금도는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통해 배를 타지 않아도 차가 바로 들어갈 수 있으니 참 편리해졌다.
소록도(小鹿島)는 고흥10경 중 제2경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사슴을 닮았대서 지어진 이름 소록도는 한센인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한센인들의 슬픈 역사는 일제(1916년)가 소록도 땅을 강제로 매수하여 ‘소록도자혜원‘을 지은 다음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검시실엔 한센인들의 정관수술과 부검 등 생체실험이 이루어졌던 곳이고, 감금실도 있다.
소나무 우거진 숲 면회소에서 가족과 친지를 만나더라도 즐겁기보다는 신세가 한탄스러워 탄식을 했다는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리던 곳이 있었다.
10여년 전 적대봉 산행 후 귀갓길에 잠깐 둘러 보았으나, 이번 기회에 그때와 다른 시각으로 돌아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한라산(1,950m)이 제주도의 대명사라면 적대봉(積臺峰·592.2m)은 곧 거금도(巨金島)의 대명사다.
적대봉 산자락이 사방으로 뻗어있어 거금도 어디로 가던 적대봉 산그늘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팔영산(八影山·608.6m)에 이어 고흥에서 두 번째 높은 산으로 정상엔 조선시대 봉수대가 세워졌을 만큼 사방 막힌 곳 없는 산이기도 하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오천저수지와 오천천계곡이 발 병이 난 필자를 유혹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탈출을 감행한 아름다운 오천천은 알고보니 거금도 주민들의 식수원이였다.
상수원 보호구역이 되기 전엔 우리네 민초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밭을 일구고, 숯을 굽는 등 힘든 삶을 영위한 흔적들이 잡목에 뒤엉켜 있었고,
상류엔 오천천의 발원지인 '물만내'가 있다.
등로에는 떨거덕거리는 넓직한 구들장 돌들이 널려있으며, 적대봉 남쪽자락 금장 방면엔 말을 키우던 목장성(牧場城) 흔적이 남아 있다.
GPX
고도표
참고용 지도
소록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소록도를...
살짝 당겨보니 소록도 성당의 하얀 종탑이 보인다.
1933년 강제동원된 한센인들이 지었다는 건물들엔 감금실과 불임수술실, 또 생체 실험실이 있었다고 한다.
유전병으로 인식되던 그 시절, 정관수술을 받기 위해 초조한 마음으로 감금실에 갇혀 있었을 젊은 환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곤 소록터널을 지나...
다시 거금대교를 건너자마자...
거금휴게소 앞에 팔을 하늘로 뻗어올린 커다란 조형물을 만난다.
네비창엔 '고흥군 금산면 오천리 621-1'을 입력하여 내동삼거리에 멈췄다.
적대봉이 올려다 보이는 육각정자와 송도수산 커다란 표석이 있는 너른 공터가 원점회귀 지점.
채비를 갖추어서...
도로명 주소인 '오천물만내길'을 따라...
<이 지점의 이정표>
내동삼거리 화장실 좌측 옆으로 출발을 한다.
삼거리 출발지점의 안내판과...
등산로.
조금 들어와서 돌아본 공터에 주차된 우리 버스와 이정표.
이곳 오천항이 있는 오천리(五泉里)는 예전에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아서 오류천(梧柳川)이라 불리다가 서촌마을과 동촌마을이 분리되면서
오천리로 되었다고...
다시 돌아본 모습으로 우리 버스와, 바다 한가운데에 둥그스럼한 '준도(峻島)'
포장도로를 버리고 본격 산길로 접어드는 지점.
그 지점의 이정표에 적대봉이 6.4km.
'무덤쉼터'를 지나면...
첫 슬랩바위를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조망이 트인다.
제일 좌측으로 길게 보이는 건 지죽도(支竹島).그 우측으로 여러 섬들을 일일이 짚어본다.
<살짝 당긴 사진> 우측부터 준도(峻島)와 길게 드러누운 시산도(矢山島), 또 점으로 보이는 작은 섬 두 개인 모녀도(母女島)와 좌측 끝 독도(獨島).
참고한 국제신문 개념도엔 '보아뱀 바위'라고 하는 지점에서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슬랩바위를 올려다 본다. * 보아뱀은 커다란 왕뱀의 학명.
그리곤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며...
슬랩바위에 올라섰더니 사방이 일망무제로 트인다.
나중에 필자가 탈출한 오천저수지가 능선 좌측으로 보이고, 그 위로 일행들이 내려갔던 능선이 바다를 향하여 내달린다.
진행방향으로 올려다보면 갈 길이 한참 멀어보이는 적대봉이 중앙에 우뚝해 뵈고, 그 밑으로 오천골이 깊게 파여져 있다.
경사도가 완만한 슬랩바위를 따라...
하늘선 등로는 선명히 드러난다.
또다시 돌라본 오천쪽 바다와 작은 섬들.
능선 등로 좌우로 조망이 트여 자꾸만 시간이 지체된다.
기차바위인가...
길게 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앞서간 일행들도 시간이 지체되긴 마찬가지.
그들의 꽁무니를 물었다.
한눈에 드러나는 능선길과 적대봉의 위용.
좌측 적대봉과 우측으로 뻗어 내리는 하산능선.
능선 좌측으로 금장,익금해변이 바다로 기어드는 악어의 모습으로 보이고, 석재공장도 보인다.
석재공장 우측에 보이는 두루뭉실한 봉우리는 용두봉(龍頭峰).
돌출된 암봉과 오천골 건너로 하산할 능선..
용두봉 방향 능선으로 길이 열려있는 듯.
진행방향으로...
갈 길은 한참 멀고...
진행방향 좌측으로 거금대교와 소록도를 바라본다.
다시 살펴보는 거금대교와 소록도.
살짝 당겨본 거금대교와 소록도. 거금대교 아래에 대화도(大花島)와 소화도가 보이고, 맨 우측에 동명이도(同名異島)인 하화도(下花島)인 듯.
마당목재에 닿았다.
여러 이정표가 팔을 벌리고 있고...
오천리쪽으로 우리가 올라온 우측 능선과 내려갈 좌측 능선사이 끝자락에 오천저수지가 보인다.
이제 정상도 얼마남지 않아...
앞서간 일행들을 살짝 당겨보며...
하산 능선(생태숲,남천) 우측으로 갈림길을 만나면...
금방 적대봉 정상에 올라선다. 키큰 정상석은 예전에 없었던 것.
봉화대는 군사목적상의 통신수단.
봉화대 아래의 이 비석같은 돌덩이를 확인키 위해 빙빙 둘러 보아도 새겨진 아무런 글자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에 쓰는 어떤 물건인고?
적대봉 정상의 이정표.
봉화대로 올라가 보았더니 예전과 달리 봉화대를 따라 둥글게 석벽이 둘러져 있어 안전하기는 하지만 주위를 쉽게 조망할 수 없음은 옥의 티다.
봉화대에서 오천저수지 좌측능선으로 하산길.
봉화대 너머 거금대교와 소록도.
적대봉 북릉으로 동정리 방향의 능선길.
키큰 정상석의 뒷태를 뒤로하고 U턴하여 하산능선 갈림길로 내려간다.
이정표의 하산능선(생태숲,남천,명천)길은 오천골을 사이에 두고 두 능선이 산길을 열고 있다.
곧 샘터를 지나고...
한눈에 보아도 명당임을 느낄 수 있는 오천리가 눈아래다. 성주의 세종대왕 태실에서 보았던 꼭 그 산세이다.
두 능선이 여인의 두 다리라고 할 때 오천지는 여인의 자궁에 해당할 터. 성주군의 세종대왕 자태실은 그래서 왕의 태실을 정했다고 하였다.
안부에 내려서자 등로 우측으로 나무에 매달린 '출입금지'라는 조그만 푯말을 본다. 아이구, 발이야~
계획했던 능선길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내내 불편하였던 발바닥은 갑자기 더 아파오니 월금선(越禁線)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만다.
능선도 아니고, 계곡도 아닌 펑퍼짐한 산자락을 따라...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가며...
이따금 모진 겨울을 견디어낸 동백의 초록내음도 맡으며 천천히 내려 가노라면...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 돌담이 나타나더니 계곡물소리도 들리기 시직한다.
돌담은 인접한 여러군데서 보이기 시작하며...
예전 사람들이 삶을 영위할 때 소유권을 구분짖는 영역표시로 보인다.
계곡으로 내려섰다.
계곡 건너 맞은편에도 역시 크게 훼손되지 않은 돌담이 서있고...
계곡을 따라 우거진 숲속으로 오천천은 흘러내리고 있었다.
등로는 계곡을 따라 나있지만 금세 길이 없어지면서 계곡치기도 감수해야만 한다.
널따란 너럭바위엔 한여름 풍류객들의 질펀한 놀이미당으로 한구실을 했을 법도 해뵌다.
가느다란 오솔길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돌담이 보이고...
거의 원형으로 보존된 돌담이 완전한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다. 아마도 염소 등 목축을 한 흔적으로 보인다.
계곡 옆으로 오솔길이 나 있었지만 길위로 잡목덩쿨이 우거져 아예 계곡으로 내려서는 게 오히려 나아...
동백나무 숲속을 헤집고...
봄소식을 전하는 버들개지가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계곡을 징검징검 건너며...
너른 암반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계곡을 따라...
아픈 발의 고통도 잊은 채 유유자적...
봄마중을 한다.
'상수원보호구역' 표석과 안내판을 만나면 오천저수지에 닿게되고...
봄살에 일렁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절룩거리며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오천골 너머로 적대봉이 우뚝하다.
경고판이 있는 오천저수지 제방에 닿으니 닫힌 철문이 앞을 가로 막는다. 아이쿠~
철문 좌측 바위를 타고 월(越)담을 하였는데, 나와서 돌아보니 자물쇠는 열어 그냥 걸어 두었던 것.
철문을 나와 조금 내려오니 '거금도상수도 오천정수장'이 있다. 따라서 오천골은 출입통제 지역.
마늘과 양파가 식재된 들판을 내려서다 다시 돌아보는 적대봉.
원점회귀를 이루는 내동삼거리 너른 공터.
아픈 발을 들어올리고 일행들 사이에 비집고 앉았다.
그리고 귀가하는 차안에서 문둥이 시인 '한하운'님의 '봄'이라는 시를 가만히 읊조려 본다.
- 봄 -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에도 한 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민들레꽃 이른 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빨간 모가지
땅속에서 움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웁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
<한 하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