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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그에겐 4강 이상의 성적표가 필요하다. 팬들도 롯데가 준플레이오프 이상 진출하길 기대한다. 올 시즌 롯데의 성적은 과연 어떨까 |
롯데 자이언츠의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은 가능할까. 5월 22일까지 롯데는 20승25패로 5위를 달리고 있다. 4위 KIA와 2경기 차를 고려할 때 언제든 4강 이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6위 LG와 0.5경기 차임을 고려하면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야구전문가가 올 시즌 롯데의 4강행을 불안한 시선으로 본다.
롯데 전력이 예년에 비해 약하다고 생각한 까닭일까. 그래서 4강 진출이 어렵다고 한 것일까. 아니다. 반대다. “롯데 정도의 전력이면 포스트 시즌 진출이 아니라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려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한 술 더 떠 “사령탑과 참모들의 무능이 롯데의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서 사령탑은 바로 제리 로이스터(58) 롯데 감독을 겨냥한 소리다.
타자만 있고, 야수는 없는 롯데
올 시즌 롯데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 있다. “타자만 있고, 야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롯데의 팀 타율(이하 5월 22일 기준)은 2할7푼8리로 2할9푼2리의 두산과 2할8푼2리의 SK 다음으로 높다.
팀 홈런도 47개로 두산, SK에 이어 역시 3위다. 홍성흔,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을 다른 팀 투수들은 ‘미친 갈매기 타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수비로 고개를 돌리면 갈매기들은 미쳤다기보다 술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즌 개막전부터 팀 실책 1위를 고수하다가 현재는 실책 35개로 3위를 달리지만, 여전히 롯데 수비는 ‘잠재적 위험’이다. 롯데의 실책 가운데 팀 패배로 이어지는 결정적 실책이 많다는 건 누구보다 선수들이 잘 안다.
롯데는 '타격의 팀'이다. 그러나 타격만으로 이길 순 없다. 이겨도 우승까진 어렵다. 그것이 야구의 진리다 |
야구계에선 득점과 관계없는 4타수 4안타보다 2사 만루에서 우중간으로 흐르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해 잡는 걸 더 가치 있는 플레이로 평가한다. 왜냐? 한 번의 호수비가 경기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SK 김성근 감독과 두산 김경문 감독이 ‘수비 야구’를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일부 야구전문가들은 “롯데 수비수, 그 가운데 외야진은 아직도 외야 호수비보다 4타수 4안타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다”고 평한다. 그들은 “롯데 수비수들이 수비를 대하는 관점을 바꾸지 않고, 선수들의 실책을 ‘선수 탓’ ‘감독 탓’으로 돌리는 코치진이 있는 이상 롯데는 4개의 안타를 치고도 한 번의 수비실수로 지는 걸 계속 되풀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로이스터 감독은 야구를 모른다?
야구계 격언 가운데 “타격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수비는 훈련으로 보강할 수 있다”가 있다. 그런 관점이라면 로이스터 감독은 무능한 감독일지 모른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 롯데는 팀 실책 92개로 이 부문 3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96개로 단독 1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도 이 부문 상위권이다. 그렇다면 로이스터 감독은 실책을 줄이려고 어떤 노력을 했을까.
로이스터 감독은 현역 시절 좋은 수비수였다. 한때는 수비 전문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수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리 없다. 코치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
수도권 팀의 어느 수비코치도 “수비는 반복훈련밖에 답이 없다”며 그 이유를 “타구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해 자동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코치는 “롯데 야수들의 실책 대부분이 훈련부족에서 생긴 것”이라며 “(롯데엔)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야수들도 많다”라고 지적했다.
이 코치는 “롯데 코치 가운데 한 이가 ‘수비강화를 위해 수비코치가 평상시보다 다소 많은 펑고를 치는 것조차 감독이 막는다’며 울상을 지었다”라고 털어놨다.
수비문제는 비단 내·외야수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포수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롯데 포수 강민호의 별명은 ‘강몸쪽’이다. 철저히 타자 몸쪽 위주로 공 배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민호의 몸쪽 사인이 로이스터 감독의 요구임이 밝혀진 건 최근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강민호가 바깥쪽 사인이라도 내면 화를 내며 쓰레기통을 차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로이스터 감독은 1970년 LA 다저스에 입단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양키스를 거쳐 1989년 은퇴한 16년 프로경력의 메이저리거이자 2002년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을 포함해 마이너리그 코치, 감독까지 10년 가까이 지도자로 생활한 이다. 야구해설가들과 다른 팀 코치, 선수들이 뻔히 아는 내용을 그가 모를 리 있을까.
롯데를 잘 아는 어느 코치는 “로이스터 감독이 야구를 잘 모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로이스터 감독이 사인을 내지 못하는 통에 3루 주루코치가 안절부절못하기 일쑤였다”며 “수비 시프트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단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모 야구해설가는 로이스터 감독의 메이저리그 사령탑 경력이 1년에 지나지 않는 대신 마이너리그 감독 경험이 풍부한 점에 주목했다. 이 해설가는 “마이너리그는 승패와 상관없이 선수 육성에 주력하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감독의 역할은 ‘선수 관리’”라며 “그 때문에 로이스터 감독이 선수들의 기분을 잘 맞춰주고 특성은 제대로 분석하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된 용병술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선수들의 절대적 신임
롯데 주전포수 강민호는 진화 중이다. 그가 '제2의 진갑용', '포스트 박경완'이 되길 바란다면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더 기다려야 한다. 로이스터 감독처럼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강민호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오늘도 어제와 같은 노력을 발판삼아 진화 중이다 |
시즌 전 사이판 롯데 스프링캠프를 방문한 모 야구관계자는 골프장에서 롯데 선수들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홍성흔이 후배 이인구에게 “골프 할 때처럼 실전에서도 똑같이 스윙하라”고 조언하자 이인구가 진지한 태도로 야구와 골프의 메커니즘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캠프에서 코치도 아니고 선수들이 훈련이 끝나고 개인훈련 대신 골프를 치는 것도 생경했지만, 골프를 통해 선·후배가 진지하게 야구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게 이 관계자는 여간 신선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다수 야구전문가가 롯데의 훈련량을 적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스프링캠프에 다녀오고서 생각을 고쳤다. “롯데가 눈에 보이는 훈련량은 적어도, 시간 대비 효율과 선수들 스스로 고민하는 야구는 8개 구단 가운데 최고”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이 수비 펑고를 금지하고, 강민호에게 몸쪽 공만을 던지길 요구했다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롯데의 수비가 한창 불안할 때 선수들이 펑고훈련을 자청했다. 이때 로이스터 감독은 특별 펑고훈련을 눈감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감은 정도가 아니라, 선수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몹시 기뻐했다.
최근 강민호가 몸쪽 승부 일변도에서 바깥쪽 공을 적절히 섞는 새로운 공 배합을 시도했을 때도 로이스터 감독은 별말 하지 않았다. 되레 기자에게 "강민호가 창의적으로 공 배합을 하길 오랫동안 기다렸다"며 강민호를 연방 칭찬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그것이 로이스터 야구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선수들에게 길만 제시하고, 막상 길은 선수들 스스로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1992년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맛보지 못한 롯데. 그러나 롯데는 우승을 제외하고도 많은 가치를 한국야구계에 전달해줬다. 관중의 중요성, 마케팅, 다양한 야구의 시각 등이 그것이다 |
2008년 1월 8일 로이스터 감독은 감독취임 기자회견장에서 두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선수 육성(Make Players Better)과 선수들의 편이 되는 감독(Players’ Manager)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로이스터 감독은 비전에 충실한 감독이다.
그가 팀을 맡은 이후 손아섭, 박종윤, 김주찬, 박기혁은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조정훈, 장원준은 진정한 투수가 됐다. 이제는 전준우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여기다 롯데 선수들은 “로이스터 감독과 계속 야구를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승리가 필요하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8개 구단 가운데 선수들이 이렇듯 절대적으로 감독을 신뢰하는 팀은 많지 않다. 롯데가 그 가운데 한팀임은 분명하다.
로이스터 감독은 말한다. “선수들이 내가 필요한 것이지 내가 선수들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난 신이 아니다. 그저 매니저일 뿐이다”라고.
로이스터 감독은 ‘틀린’ 감독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야구에서 보지 못한 ‘다른’ 감독이 아닐까. 아직 롯데의 4강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이르다. 왜냐? 롯데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또 어떤 기적을 연출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기적의 뒤엔 분명 로이스터 감독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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