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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
지난주, 제사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난 뒤 주위 사람들에게 “댁네 제사음식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 다들 할 말들이 많다. 전 한 가지만 두고도 배추전이 있어야 제사음식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음식은 듣도 보도 못했다는 이가 있고, 제상에 닭을 올리는 집이 있는가 하면 생선이라고는 조기만 달랑 올리는 집도 있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지역색이 나오고, 잘게 나누면 집집이 다 다르다. 지난주에 소개한 진주헛제삿밥 상차림에서 안동 상차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을 찾자면 상어고기가 있느냐 여부다. 안동에서는 상어고기를 찌거나 부침을 해서 제상에 올리는 데 비해 진주에서는 올리지 않는다. 내 고향 마산에서도 상어고기를 제상에 올리는 집안은 드물다. 상어고기를 제상에 올리는 지역은 안동, 영주, 영천, 봉화, 청송, 의성 등 경북 내륙지방이다. 이 지역에서는 상어고기를 돔배기, 돔배, 돔배고기 등으로 부르며 제상에 반드시 올려야 하는 음식으로 여긴다. 또 귀한 손님이 왔을 때도 이 음식을 낸다. 경북 내륙지방이 원조 … 강렬한 향에 군침 절로 10여 년 전 경북 내륙지방의 한 오일장에서 상어고기를 처음 접하고 ‘한반도에 이런 음식도 있다니’ 하고 퍽 놀랐다. 상어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발라 입에 넣자 암모니아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생선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은 홍어밖에 없는 줄 알았다. 홍어와 달리 살코기가 퍽퍽해 첫 입에는 결코 맛있다고 느낄 수 없었다. 경북 내륙지방에서 상어고기가 주요 제사음식으로 쓰이게 된 것은열악한 물류 사정 때문이다. 경북 해안지방에서 내륙까지 해산물을 실어 나르려면 이틀은 꼬박 걸렸다. 그래서 제상에 올릴 수 있는 어물은 말리거나 소금에 절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개중에 상어는 쉬 상하지 않아 해안과 내륙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꽤 인기 있는 품목이었을 것이다. 상어가 쉽게 상하지 않는 이유는, 상어는 배설물을 피부로 배출하는데 오줌에 들어 있는 요소가 암모니아 발효를 일으켜 상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홍어가 발효되는 것과 똑같다. 이후 경북 내륙지방을 여행하면서 상어고기를 여러 차례 먹게 되었는데, 암모니아 향이 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에야 두어 시간이면 닿는 거리이니 상어가 발효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처음 먹은 상어고기에 대한 인상이 강했던 때문인지 암모니아 냄새 없는 상어고기는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도 관심이 생기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안동이나 진주의 헛제삿밥이 아니더라도 각 지역의 제사음식이 음식점 메뉴로 올려지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싶어 그런 사례가 또 없나 살피다가 우연히 서울 한복판에서 ‘귀한’ 상어고기를 접하게 되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뒤 ‘김씨도마’(02-738-9288)라는 식당이다. 이름 뒤에 ‘~도마’라고 되어 있어 일본식 횟집인 줄 알았는데 경북 지역의 토속 음식을 내는 식당이다. 곰국수, 메밀묵, 문어, 수육 따위가 주요 메뉴인데 그 한 귀퉁이에 ‘돔배기’가 떡하니 적혀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상어 살코기와 껍질, 그리고 껍질로 만든 묵 세 가지를 내왔다. 놋그릇에 담아 내놓은 모양이 영남 양반집 손님상처럼 보였다. 찍어 먹으라고 조선간장도 함께 냈다. 장소가 서울인지라 ‘본토’인 경북 내륙지방의 ‘정통’ 상어고기 향을 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첫 입에 나는 녹다운이 되고 말았다. 살코기에서 푹 삭힌 홍어찜만큼 강렬한 향이 뿜어져나온 것이다. 껍질은 향이 적었으나 특유의 씁쓸한 맛이 침샘을 자극했다. 껍질묵은 버터 향이 살짝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 음식에는 막걸리가 딱 어울릴 것 같은데, 하필 막걸리가 떨어져 22도짜리 안동소주와 함께 먹었다. 안동소주는 항상 마시고 난 뒤 단내가 돌아 부드럽게 넘기지 못했는데 상어고기의 향이 워낙 강해 그냥저냥 먹을 만했다. 막걸리에 상어고기 한 점 하러 곧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