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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2월 4일 수요일
[(녹)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다윗은 주님께서 내리시려는 재앙에 괴로워하면서도 주님의 자비를 믿으며 겸허하게 받아들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놀라신다(복음).
제1독서
<인구 조사를 하여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24,2.9-17
그 무렵 다윗 2 임금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대의 장수 요압에게 말하였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9 요압이 조사한 백성의 수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
이스라엘에서 칼을 다룰 수 있는 장정이 팔십만 명,
유다에서 오십만 명이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 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11 이튿날 아침 다윗이 일어났을 때,
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 예언자에게 내렸다.
12 “다윗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면서 일러라.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을 터이니, 그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13 가드가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알렸다.
“임금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을 뒤쫓는 적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 다니시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임금님 나라에 사흘 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까?
저를 보내신 분께 무엇이라고 회답해야 할지
지금 잘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14 그러자 다윗이 가드에게 말하였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15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흑사병을 내리시니,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백성 가운데에서 칠만 명이 죽었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
17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알았어요. 알았다니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는 합니다. 특히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 더 그렇지요. 어쩌면 이 말의 속뜻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일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알았어요.” 한마디로 대화를 닫아 버리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을 막고, 마음을 닫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처음에는 감탄하지만 곧 그분의 출신과 신분을 문제 삼으며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하였지만, 정작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이성만으로 온전히 파악될 수 없는, 무한히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지혜의 말은 “너 자신을 알라.”입니다. 이런 겸손이야말로 신앙인의 참된 자세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면, 더 이상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요. 이에 오늘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그러므로 신앙 안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오늘 영성체송이 그것을 일깨워 줍니다.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바라고 청하는 이는 자만하거나 고집스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허물은, 내 뜻이 전부인 줄 아는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화답송을 되뇌어 봅니다. “주님,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소서.”(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호젓한 들길을 걸어가다가 무성한 잡초 속에 피어있는 예쁜 보라색 도라지꽃 한 송이를 만났을 때, 많은 사람은 외칩니다. “와! 도라지다. 도라지 뿌리가 기관지에 엄청 좋다던데. 새콤달콤한 양념해서 무쳐 먹으면 정말 맛 있는데...”
그러나 영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작고 어여쁜 꽃 한 송이에 담겨있는 창조주 하느님의 손길을 떠올리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함께 뿌려진 수많은 씨앗은 세상도 보지 못했을 텐데, 저렇게 청초하게 피어나기까지 치러야 했던 꽃 나름의 노고와 발버둥 쳤던 세월을 헤아립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너무나 왜곡되고 흐려져 있었다는 것을 반성합니다.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살아가는 한계와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 지난 시절의 상처와 아픔에만 연연합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며 좌절과 실패의 흔적들만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비록 죄투성이고 상처 투성이인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시고, 그분의 영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심을 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가치있고 존귀한 존재인지를 아예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인식하고 판단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보지 못합니다. 바라봄의 폭이 좁고 제한적이다 보니, 왜곡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30년 세월을 동고동락했던 나자렛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도 제한적인 시선으로 그분을 바라봤습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주님을 판단한 것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마르 6,3)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돌아보니 저 역시 얼마나 왜곡되고 제한적인 시선으로 나와 이웃을, 세상과 하느님을 바라봤었는지,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특히 나만의 잣대와 경험치로 하느님과 세상을 바라봤으니, 그간의 영성 생활이 얼마나 어색하고 위험한 것이었는지...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시야가 괜찮은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을 내다보고 있는지?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신원과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그분을 그저 내 건강과 성공, 안락한 생활을 위한 안전장치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 아닌 하느님을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멈추어야 할 가장 명확한 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주 익숙하지만, 가슴 아픈 장면을 목격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 가셨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고, 형제들도 다 우리가 알지 않느냐?” 그들은 예수님을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안다’는 확신은 예수님을 ‘목수’라는 작은 상자 안에 가두는 감옥이 되었고, 결국 그분의 신성이 들어올 틈, 즉 기적을 막아버렸습니다.
여러분, 살면서 누군가가 여러분을 향해 “아유, 내가 너 속을 다 알지. 너는 딱 여기까지야”라고 단정 짓는다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소름 끼치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아주 명확한 인간관계의 법칙 하나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을 향해 “나는 너를 다 안다”라고 말하며 여러분을 자신의 낡은 지식 상자 안에 가두려 한다면, 그때가 바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다’는 말은 사실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겠다. 나는 더 이상 너를 궁금해하지 않겠다”는 절교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1. 엄마의 빗나간 사랑: 블랙 스완의 비극
이 무서운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입니다. 주인공 니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발레리나입니다. 그녀의 엄마 에리카는 왕년에 발레리나였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여인입니다. 엄마는 딸 니나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아니, 사랑한다고 착각합니다. 엄마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합니다. 손톱 깎는 것부터, 식사량, 심지어 잠잘 때 자세까지 간섭합니다. 엄마는 늘 말합니다. “니나, 엄마는 널 다 알아. 넌 내 딸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지.”
하지만 엄마가 ‘안다’고 확신했던 니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착한 딸’이라는 인형일 뿐이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만 규정했듯, 엄마는 니나를 ‘착한 딸’로만 규정하고 그 이상의 가능성(예술적 열정)을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니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그 좁은 감옥을 깨부수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광기의 춤을 추게 됩니다. “너를 안다”는 엄마의 말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고,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저주였습니다.
2. 자베르 경감의 자살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자베르 경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법과 원칙의 화신입니다. 그에게 세상은 딱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뉩니다. 법을 지키는 선인과, 법을 어긴 죄인. 그는 장발장을 쫓으며 확신합니다. “범죄자는 영원히 범죄자다. 개꼬리가 3년 묵는다고 황모가 되더냐?” 그는 장발장을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장발장은 변했습니다. 은촛대를 받고 영혼이 뒤집힌 장발장은 성인에 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베르 경감이 혁명군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살려준 건 다름 아닌 장발장이었습니다. 자베르는 혼란에 빠집니다. “범죄자는 악당이어야 하는데, 나를 살려주다니? 내 데이터에 오류가 생겼다!” 그는 자신이 평생 믿어왔던 낡은 지식 체계가 무너지자,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센강에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그는 판단을 멈추지 못해 스스로를 파괴했습니다.
3. “오늘의 김우진은 어떤 모습인가요?”
반대로, 상대를 다 안다고 말하지 않고 끊임없이 궁금해함으로써 사랑을 완성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셨나요? 남자 주인공 우진은 자고 일어나면 매일 모습이 바뀝니다. 오늘은 노인, 내일은 아이, 모레는 외국인 여자... 겉모습만 봐서는 도저히 그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한 여자 이수는 다릅니다. 그녀는 매일 바뀌는 낯선 얼굴들 속에서 우진 고유의 눈빛, 말투, 그리고 따뜻한 마음씨를 찾아내려 애씁니다. 그녀는 그를 만날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오늘의 김우진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녀에게 사랑은 ‘파악 완료’가 아니라 ‘매일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모네도 그랬습니다. 그는 ‘루앙 대성당’을 그릴 때, 똑같은 성당을 수십 번 그렸습니다. 아침의 성당, 점심의 성당, 비 오는 날의 성당...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아니, 다 아는 성당을 뭐 하러 또 그립니까?” 모네는 답했습니다. “빛에 따라 성당은 매 순간 다릅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성당을 보고 싶습니다.” 대상을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빛(은총)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변화하는 생명으로 바라보려는 그 호기심 어린 시선이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4.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호기심의 상실’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하느님을 다 파악하고 나서 “아, 이제 알 거 다 알았으니 좀 쉬자” 하며 하품하는 곳일까요? 아닙니다. 4세기 신학자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는 신앙생활을 ‘에펙타시스(Epektasis)’, 즉 “끊임없이 뻗어 나가는 것”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영원히 그분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지루한 휴식이 아니라, 매 순간 하느님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와! 당신은 이런 분이셨군요!”라고 감탄하며 더 깊이, 더 높이 빨려 들어가는 역동적인 모험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혹시 나자렛 사람들처럼 “예수님? 아, 그분 하느님 아들이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뭐 착하게 살라고 하셨지. 나 다 알아!” 하며 퉁명스럽게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다 안다”고 말하며 성경책을 덮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을 무한하신 하느님이 아니라 내 좁은 머릿속에 갇힌 피조물로 만들어버리는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결론: 영원한 연애를 시작하십시오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멈추어야 할 가장 명확한 때가 언제냐고요? 그 사람이 나를 향해 “난 널 다 알아. 넌 변하지 않아”라며 나의 가능성을 닫아버릴 때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쟤는 원래 저래”라며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때 사랑은 끝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점검해 보십시오. 혹시 권태기 부부처럼 “당신 얘기는 안 들어도 뻔해” 하며 10분도 안 되는 복음 말씀을 흘려듣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처럼, 처음에는 ‘유다 남자’로 알았다가, ‘선생님’으로, ‘예언자’로, 마침내 ‘그리스도’로 앎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물동이를 버리고 뛰쳐나가는 그 설렘을 회복하십시오.
하느님은 매일 새롭습니다. 그분에 대한 호기심이 살아날 때, 나자렛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던 기적이 여러분의 삶에서는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아직 모릅니다. 오늘 저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이 호기심 가득한 질문 하나가, 오늘 여러분의 하루를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가슴 뛰는 천국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아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이 힘들기 마련입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집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성과 성격이 좋지 않은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은 먼저 가족과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1592년 일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이야기하면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명나라를 정복하려고 하니 조선은 길을 열어달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뜻을 어겼습니다. 그 바람에 이스라엘에는 흑사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회개하였을 때, 하느님은 이스라엘에서 흑사병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보았던 예수님의 겉모습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는 많은 표징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본당 공동체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갈등이 있으면 본당 공동체의 활력이 없어집니다. 많은 교우가 다른 성당으로 가기도 합니다. 성직자와 교우가 갈등이 있으면 본당 공동체가 분열되기도 합니다. 성직자가 본당을 떠나기도 하고, 많은 교우가 성당을 떠나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을 통해서 분열과 갈등이 있는 공동체를 엄하게 꾸짖기도 하고, 다시 화목하게 될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를 하기도 합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의 혜안과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차도 별로 없었는데 대통령은 50년을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그 고속도로를 통해서 물류가 발전하였고, 일일생활권이 되었습니다. 경제 발전 5개년의 큰 꿈은 이 고속도로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수출 100억 불의 꿈도 이 고속도로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단합으로 극복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 디지털 고속도로인 광케이블을 깔았습니다. 그 고속도로 위에 대한민국은 인터넷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고속도로 위에 대한민국은 빛의 혁명을 이루었고, 계엄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인공지능의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대한민국에 인공지능 고속도로에 필요한 ‘GPU’를 26만 장 제공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던 ‘노아’는 구원의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구원의 방주가 있어서 홍수의 심판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정든 고향을 기꺼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굳건한 믿음은 우리 신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땅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건널 수 있었던 고속도로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회개한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의 신학과 교리를 정립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열쇠를 맡겨 주셨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는 속담의 주인공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이 ‘원님 덕에 나팔 분다.’라는 속담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요한 데 브리토 (John de Britto)
활동년도 : 1647-1693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출신의 예수회원인 성 요한(Joannes)은 1673년에 인도 선교사로 파견되어 주로 마두라(Madura) 지역에서 선교하였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주민들의 언어와 관습을 따르려고 노력하였으나 끝내 죽음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마라바(Marava) 지방의 어느 개종자가 자기 아내들을 포기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곳은 일부다처주의가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기 시작하면서 박해가 일어났다. 결국 그는 오리우르(Oriyur)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는 1852년 2월 17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7년 6월 22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안드레아 코르시노(Andrew Corsin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피에졸레(Fiesole)
활동연도 : 1302-1373년
같은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코르시누스, 코르시니
1302년 이탈리아의 피렌체(Firenze)에서 태어난 성 안드레아 코르시누스(Andreas Corsinus, 또는 안드레아 코르시노)는 어린 시절 성질이 고약한 문제아였는데, 갑작스럽게 마음을 고쳐먹고 1317년 피렌체의 카르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아주 모범적인 수도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프랑스 파리(Paris)와 아비뇽(Avignon)에서 수학한 후 1349년 피에졸레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직책을 모면하려고 멀리 도망을 쳐서 엔나(Enna)의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몸을 숨겼으나 이내 발견되어 결국 주교 축성식을 가졌다.
주교로서 성 안드레아는 분쟁을 조정하는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 때문에 그는 볼로냐(Bologna) 시의 불안을 화해시키는 교황사절로 임명되어 맹활약을 하였다.
그는 1374년 시복되었고, 1629년 4월 29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1737년 코르시니(Corsini) 가문 출신인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는 로마(Roma)의 성 요한 라테라노 성당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웠다.
성 요셉 (Joseph)
신분 : 신부, 증거자
활동지역 : 레오니사(Leonissa)
활동연도 : 1556-1612년
같은이름 :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움브리아의 레오네사 출신인 그는 18세 떄에 카푸친회원으로 서약한 뒤, 요셉이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지극히 겸손하고 순종적이었으며 영웅적으로 극기생활을 하였으니, 한번은 3주간 동안이나 물도 빵도 없이 지낸적이 있었다.
그는 항상 손에 십자가를 들고 설교했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폭발시키는 듯한 자세로 열변을 토하였다.
1587년, 그는 터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페라로 파견되어 수많은 배교자들을 회두시키고, 모슬렘인들을 상대로 설교하였으므로, 두차례나 투옥되었다.
두번째의 투옥에서 그는 잔인한 죽음을 당하여 순교하였다.(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1556년 북 이탈리아의 밀라노 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계승하는 카푸친 수도원의 수사 페르토의 요셉이라고 하는 한 사제가 서거했다.
이사람은 유럽에 상당히 알려져 있는 40시간의 성체조배라는 신심을 처음 주창한 분으로서 유명하지만, 그것은 그 이름과 같이 신자가 성당을 방문해 40시간 낮이나 밤이나 그침없이 계속 제대 위에 모신 성체께 대해 기도를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같은 해에 움브리아의 아시시에 가까운 레오니사라는 마을에 몇 년 후에 이 40시간의 성체조배의 신심을 성대하게 한 성인이 태어났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잇을 것이다.
그는 데시데디의 요한이라는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백작(伯爵)의 가정에서 태어나 세례 때에는 오이플라니오라는 본명으로 불렸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비델보 대학 교수인 백부의 슬하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천재적 두뇌는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게 되었다.
백부는 장래 어떤 귀족의 딸과 결혼시키려고 했지만, 본인은 학생 시대에 여러 가지의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보존해 온 정결한 마음 그대로 세속적 명예나 가정생활을 원하는 기색은 추호도 없으므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창립한 카푸친 수도원에 들어가서 요셉이라는 수도명을 받고 남몰래 착복식까지 다 치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백부는 자기의 소망이 다 일그러진 것에 대해 대단히 분노해 폭력을 써서라도 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으나, 요셉은 시종일관 수도원에 끝까지 머물러 있으면서 완덕의 길을 걸을 결심을 하고 성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본받아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행을 감행하고, 밤낮 제대앞에 부복해 열렬한 기도를 바치는 등 다만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버리는 데 더욱 진력했다.
이와 같이 세라핌보다도 못지 않은 사랑을 지니고 있던 그는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본래부터 원하던 바이고,1587년 커푸찬회 총장으로 부터 터키로 가라는 명령을 받자마자 기뻐하며 이교의 나라에 가서 콘스탄티노플에 노예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로하며 구출해 주었을 뿐아니라,회교에 빠져 있는 터키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특히 여러가지 환난에 못 이겨 배교한 신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깨우쳐 주며 개종시키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성녀 요안나(Jane)
신분 : 왕비, 설립자
활동지역 : 발루아(Valois)
활동연도 : 1464-1505년
같은이름 :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발루아의 성녀 요안나(Joanna de Valois)는 1464년 4월 23일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당시의 왕인 루이 11세(Louis XI)와 왕비인 사부아(Savoie)의 샤를로트(Charlotto)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육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더욱이 곱사등이에 마마 자국까지 있었기 때문에 국왕인 그녀의 부친은 그녀를 매우 냉대하였다.
그러나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오를레앙(Orleans)의 공작인 루이(Louis)와 결혼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에 성녀 요안나는 12세가 되던 해에 여러 가지 정치적인 정황에 따라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오를레앙의 공작은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했으나, 이러한 모진 대우들을 그녀는 고결한 성품으로 이겨냈다. 후에 루이 12세로 왕위에 오른 오를레앙의 루이 공작은 자신의 결혼은 루이 11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그의 이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해 주었다. 결국 혼인무효와 함께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 베리(Berry)의 공작으로 봉해진 성녀 요안나는 자신의 영지를 왕국 안에서 가장 지혜롭게 운영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병자와 전염병 환자 구호, 주거 시설 복구, 가난한 일꾼들의 급여 인상, 여자 어린이들의 교육,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 모금, 수도원 개혁 등을 계획에 따라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작은 형제회 회원이자 자신의 고해사제였던 가브리엘 마리아(Gabriel Maria, 8월 27일) 신부의 도움으로 신심 깊은 10명의 여성들을 모아 관상 수도원인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자신이 세운 수녀원에서 1504년에 가브리엘라 마리아(Gabriella Maria)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했지만,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궁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녀는 남모르는 고행과 여러 번의 신비로운 종교체험을 한 후 1505년 2월 4일 부르주(Bourges)에서 사망하였다. 성녀 요안나는 1742년 4월 21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50년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