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하산사 신실 상량문(霞山祠 神室 上樑文)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조상의 적덕(積德)과 누인(累仁)이 당일까지 유휴(流庥)하고 음호(陰護)하여 주심은 진실로 이치가 있으므로 당연한 것이요, 자손이 축실하여 사채(舍采)함에 무궁토록 추원보본함은 또한 하늘에서 정한 상도(常道)의 발로이다.
공경하옵게도 시조이신 아찬공은 신라의 명신이요, 대당의 학사이시다. 모토(茅土)를 나누어주고 벼슬을 받았으며 회주(懷州)의 채읍(采邑)에 봉되었고, 공덕을 세우고 선치(善治)하여 성명이 사기(史記)에 찬란하지 않을 수 없다.
충렬공(忠烈公)은 수세를 역사하면서 강직하여 죽음으로 군왕을 간쟁(諫爭)하였고 만춘(萬春)의 사치하고 화려함을 배척하였고, 지후공은 구방의 회복을 생각하고 종용(從容)히 신복되기를 거절하여 신왕(新王)의 형장(刑杖)과 유배를 입었다.
천안절 글은 문장의 병랑(炳烺)함을 보겠고 자릉대의 글귀는 절의의 쟁영(崢嶸)함을 알리라. 구묘(邱墓)의 수전(守傳)을 잃어 일찍 단선(壇墠)을 쌓았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또한 흩어졌고 추향에 분필(芬苾)을 드렸으나 매양 눈바람에 서 있어 깊은 탄식이 자연히 생기었네. 많은 자손들이 궁벽한 지역임을 꺼리어 이에 신실을 이축하기로 결의하였다.
황량이 홀로 자금을 담당하니 어찌 이 군간(窘艱)을 고려(顧慮)하였으며 용철이 부지런하여 이에 공사를 감독하였으니 조석으로 노고를 견딤이 애처롭다 아니할 소냐. 재목은 다른 지역에서 가져왔으니 박로(欂櫨)나 외얼(椳闑)이 모두 그 마땅함을 얻었고 터는 백산(栢山)을 선택하였으니 천석과 연하(煙霞)가 어느 곳이 이곳보다 승지라 하리요.
진실로 귀서(龜筮)가 길일을 도왔고 이에 장석(匠石)이 마음을 다했네. 경영한지 1년이 지남에 우리 일가는 자나 깨나 마음속에 있었고 갈고 닦은 지 수개월이 못되어 이 집이 우뚝 솟아 안전에 나타났네. 준분(駿奔)하여 관장(灌將)하니 이에 많은 후손들의 덕이 후한대로 돌아가고 힐향(肹蠁)하여 척강(陟降)하니 거의 세분 선생의 영혼이 영원히 편안하리라.
감히 6위의 노래를 불러 긴 들보를 들어 도우리라. 어기어차 들보를 동으로 던져라. 부상(扶桑) 솟은 해가 단충(丹衷)을 비치구나. 대대로 충효를 전함이 가문 위한 계책이니 손꼽아 보아도 남주(南州)에서 누가 같을 소냐? 어기어차 들보를 서로 던져라. 석제(石堤) 비온 뒤에 풀이 무성하다. 서호(西湖)는 막막(漠漠)하여 어찌 그리 가득한가. 슬프다. 우리 중생 희미한 길 같구나.
어기어차 들보를 남으로 던져라. 억불산 옥립봉(玉立峯)이 청람(晴嵐)에 둘러있네. 지금의 뭉친 정기 만천년을 이어가니 길러냄이 몇 명의 사나인가. 어기어차 들보를 북으로 던져라. 무수한 중성(衆星)이 북두성을 떠받드네. 우리 조상 당년에 모훈(謨訓)을 남겼으니 지금처럼 어찌 가히 모칙(模則)하지 않으리오. 어기어차 들보를 위로 던져라. 우주를 바라보니 기운이 청랑하다. 창창(蹌蹌)하고 제제(濟濟)하게 정성을 드릴 때에 정령이 방불하게 오르고 내리구나.
어기어차 들보를 아래로 던져라. 저 구구(區區)하게 반측(反側)한 자 흘겨보네. 의(義) 행(行)하고 강(綱) 붙들어 나완(懦頑)함을 깨우치고 면면히 천재(千載)토록 향화(香火)를 이어가세. 엎드려 원하옵건대 상량한 뒤에 계산(溪山)이 빛을 더하고 첨우(簷宇)가 항상 새로우리. 천지의 요기(妖氣)를 소제(掃除)하여 거의 황하(黃河)가 다시 오늘에 맑아질 것이요, 충효의 아름다운 행실을 일과처럼 책임지고 우리 성씨가 장차 천추토록 떨칠 것을 기다린다.
단기(檀紀) 4310년 정사(丁巳) 입하절(立夏節)
후손 석한(錫漢) 근술(謹述)
충렬공의 강직하고 청렴한 의지가 돋보입니다~~,
하산사 신실 상량문에 대한글이네요.
잘보고 공부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