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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글을 씁니다. 미 국무부 브리핑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는데 결국 알바와 시험준비에 막히고 말았습니다. 혼자서는 그냥 쓱 보면 되지만 아무래도 글을 올리려면 작업도 해야하다보니 작업에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드네요. 영어실력이라도 좋으면 괜찮았을텐데...
아무튼 이 글을 마지막으로 7월 중순까지는 미 국무부 브리핑 작업을 잠시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도 본래는 이번 공동성명을 가지고 Fact Sheet와 기자회견문들까지 살펴보면서 이번 국빈방문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려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작업은 지금 저의 역량과 에너지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워싱턴 선언'만 다뤄보고자 합니다.
Today President Joseph R. Biden Jr. of the United States (U.S.) and President Yoon Suk Yeol of the Republic of Korea (ROK) met in Washington to commemorate the 70th anniversary of the U.S.-ROK Alliance. This is the second State Visit of the Biden-Harris Administration. While our two nations are inseparably tied by our deep and unwavering security cooperation—reinforced today by the Presidents’ commitments in the Washington Declaration to develop ever-stronger mutual defense and deterrence—the greatest success of the Alliance is its clear and expanding focus on achieving a secure and brighter future for the American and Korean people. Together, we will increase our comprehensive global cooperation, deepen our robust regional engagement, and broaden our ironclad bilateral ties during the next 70 years of our Alliance to face the 21st century’s most difficult challenges head-on. Guided by our shared commitment to defend universal human rights, freedom, and the rule of law, the United States and the ROK are constructing an Alliance that will provide future generations with a firm foundation upon which to build prosperity and security.
일단 위에서 강조표시한 대로 이번 공동성명의 주된 포인트는 이른바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이라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 워싱턴 선언은 "우리의 깊고 흔들리지 않는 안보 협력our deep and unwavering security cooperation"이 무엇인지 말하는 한미 상호간의 공약commitment으로 보이고요.
그리고 누군가 저에게 워싱턴 선언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워싱턴 선언은 '확장된 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단어 없이 설명될 수 없다. 미국은 자국의 핵전력을 자국뿐만 아니라 남한을 위해서도 사용할 것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반복하여reiterate 약속하였고, 남한은 미국의 약속을 신뢰하고 진전된 비핵능력Advanced non-nuclear capabilities을 기반으로 북한의 핵 도전을 억제할 것을 약속한 선언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북한의 핵 문제에 있어서 미국은 남한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것을 공약했고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하고 비핵전력에 전념할 것을 공약한 겁니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확장된 억제Extended deterrence에서 확장된 차원은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차원은 지리적 차원으로써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에게까지 미치는 핵우산을 의미하며, 또다른 차원은 수단의 차원으로써 진전된 비핵능력Advanced non-nuclear capabilities을 의미합니다.
즉, 확장억제는 핵에 핵으로 맞서는 기존의 개념(핵우산)을 넘어선 핵에 비핵수단으로도 맞서는 확장된 개념(그래서 Extension이 아니라 Extended)인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전세계에 단일한 핵 정책을 적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국가들에 따라서 각국상황에 걸맞는 맞춤형 핵 정책들(들!)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맞춤형 억제전략Tailored Deterrence Strategy, TDS이라고 표현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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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표현하자면 미국은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의 핵 게임에 말려들어가지 말라고 요구했고 윤석열 행정부는 미국의 이러한 요구에 굴복했습니다. 그 항복문서가 '워싱턴 선언'입니다. 비록 항복문서이지만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핵은 소유한 국가로 하여금 '먼저 쏘면 이길 수 있다'는 유혹을 받게 만들어서 아주 작은 위기상황을 아주 크게 고조escalate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니 말입니다. 쿠바 미사일 사태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21세기의 쿠바로 가장 유력한 곳은 바로 남한이고요.
한번 지도를 펼쳐서 쿠바와 우리나라를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에게 쿠바에, 중국에게 남한에 핵이 배치되었을때 어떻게 이해 될수 있을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왜 핵 게임에 말려들어가지 말아야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이 왜 핵이라는 요란한 카드를 꺼내들었는가를 돌이켜봐야 합니다. 가장 원시적인 이유는 무력을 통한 통일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핵 프로그램 자체는 오랫동안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에 비핵화를 두고 진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카드를 실제로 꺼내들었습니다. 그러한 근본적 이유는 기존의 경제성장을 통한 군비경쟁이라는 게임에서 도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게임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고자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겁니다. 새로운 게임의 룰. 그게 바로 핵을 가지고 벌이는 벼랑끝 전술인 핵 게임입니다.
북한은 새로운 게임의 룰을 꺼내들었고 그 룰은 제대로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핵을 막는 측보다 핵을 쏘는 측이 훨씬 유리하니까요. 바다에서 쏘든, 육지에서 쏘든, 저수지에서 쏘든, 핵어뢰를 쏘든, 피탐당하지 않고 선제타격할 수 있는 수단은 가지각색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일관되게 이러한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너희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우리의 핵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굴복하라. 우리의 요구대로 국제사회에서 움직여라>.
하지만 우리로선 굳이 굴복할 이유도 없고 새로운 게임의 룰에 말려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기존의 게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한민국이 일관되게 북한과 국제사회에 보내야 할 메세지는 이러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핵을 꺼내들었어도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굴복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북한의 게임에 휘둘리지 않고 기존의 룰대로 게임을 이어나갈 것이다. 북한의 남한 및 미국에 대한 핵사용은 곧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의미한다. 김정은 정권의 종말은 핵이 아닌 통상적 역량Conventional Force에 의해서도 충분히 구현될 수 있다>.
이러한 메세지는 남사스러운게 아닙니다. 이미 미국은 대놓고 이러한 메세지를 보내왔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이번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중에서도 바이든은 똑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른바 진보는 물론이고 이른바 보수라는 사람들에게서조차 '북한의 핵사용 = 북진통일'이라는 도식이 발화되지 않고 있는게 의아하게 느껴질 지경입니다. 모두가 '눈에는 눈'이라는 도식에 갇혀 '핵에는 핵'만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핵에는 핵만 생각하다보니 쿠바 미사일 사태의 교훈은 모두에게서 잊혀져 버렸고 말입니다.
제가 이전에 게시했던 Voice of America 인터뷰 영상의 前 미국관리의 발언처럼, 적대국의 핵 확산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핵 확산도 미국에게는 국익이 아니라는게 미국이 냉전때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지금에도 바뀌지 않은것 같고요.
https://cafe.daum.net/shogun/OCbn/6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행정부는 한미동맹의 적통을 주장하면서도 막상 미국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번 국빈방문을 통해서야 미국의 메세지가 전달되었고, 그에 수긍(수긍이라 해야할지 항복이라 해야할지)하였고요.
https://cafe.daum.net/shogun/OCbn/558
https://cafe.daum.net/shogun/OCbn/545
물론, 이번 국빈방문을 통해 윤석열 행정부는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을 신설하여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운용에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는 없고 미국 핵무기의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큰 사건이긴 하지만, 사실상 바뀐건 없습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426079500504
// 그러나 미국은 보유 핵무기를 사용하는데 있어 한국과 '공동기획'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단지 유사시 핵무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과정인 운용 협의 측면으로 역할을 한정하는 쪽으로 NCG를 운용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
// 미 고위 당국자는 나토에는 전술핵무기를 전방에 배치했지만, 한국에는 그런 핵무기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핵선제 공격 가능성까지 열어둔 공세적인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이후 국내에서 '핵무장' 여론이 높아지고, 최소한 저위력의 전술핵탄두를 주한미군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지만, 미국은 현재도, 미래에도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발언이다.
이와 달리 나토식 핵공유체제는 전술핵무기 배치가 골격이다. //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의 Fact Sheet의 해당 부분인 <DEFENSE AND GLOBAL SECURITY COOPERATION>를 보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남한은 비핵화 체제의 영속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고, 미국측은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의 통합(integration)을 통한 한반도 핵억지를 추구하고자 우리측에게 미 국방부로 교육오라고 제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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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사실의 영역인 부분입니다. 이 사실의 영역에서 무엇을 말하시고 무엇을 생각하실지는 여러분들 각자의 몫일거 같습니다.
다만, 이 사실의 영역들이 무언가 생산적이고 유익한 생각과 말들을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바라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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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워싱턴 선언의 본문은 이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것과 이것.
https://www.whitehouse.gov/briefing-room/statements-releases/2023/04/26/washington-declaration-2/
The ROK has full confidence in U.S. extended deterrence commitments and recognizes the importance, necessity, and benefit of its enduring reliance on the U.S. nuclear deterrent.
In parallel, both Presidents remain steadfast in their pursuit of dialogue and diplomacy with the DPRK, without preconditions, <as a means to advance the shared goal of achieving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삭제된 댓글 입니다.
불행하게도 핵무기는 상대방을 완전히 전멸시킬 수 있지 않는 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도리어 선제 핵타격의 대상이 될 뿐이구요.
지금 북한이 핵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지 못하여 그에 따른 혜택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으로는 미국과 같은 다른 핵보유국들과 공멸관계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핵을 가진다고 해서 만사가, 심지어 안보문제조차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핵무기는 의외로 치루어야 할 비용대비 효용이 적은 수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한의 핵보유나 미국의 핵병기 재배치를 찬성하진 않습니다.
@스안 불행히도 2가지 전제가 빠져있는 생각이십니다. 하나는 핵무장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 있는 사항이라는 점(그리고 남한의 빈자리는 일본이 채워가겠지요), 또 하나는 중국도 북한은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김씨일가와 정치 엘리트들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는 기형적 체제입니다. 그래서 국제제재로 인해서 "인민들"이 죽어나감에도 불구하고 핵무장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요. 북한이 이미 핵무장을 선택한 이상 미국이건 중국이건 누가 뭐라 한다해도 핵을 순순히 포기할 것이라는 건 환상에 불과합니다. 북한은 이미 선택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남한이 실제로 핵무장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지금 일부러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핵탄두의 숫자를 남한을 전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만 더 늘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중국의 핵탄두 증대는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서방세계 전체의 문제로 비화됩니다. 즉, 남한의 핵무장은 도리어 중국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동맹국이더라도 핵확산은 자국의 이익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스안 북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제사회에서 남을 신경안쓰고 지 ㅈ대로 움직이려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립되고 제재도 먹고 있고요. 그리고 남한의 핵무장도 마찬가지로 남을 신경 안쓰고 우리 ㅈ대로 움직이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마찬가지로 고립되고 제재를 먹겠죠.
굳이 왜 우리가 고립과 제재를 자초해야할까요. 우리는 스안님께서 말하시는 카드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카드, 위상으로도 우리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대결구도에 처한 중국에게도 딜을 할 수 있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스안 역대 정부가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 추진하였다는게 사실이라 해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핵농축조차 하지 않고 전량 수입하는 나라로 남아있는게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솔직히 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일본의 롯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의 존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은 일본에 대한 제재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두가지겠지요.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은 용인해주고 있거나 아니면 일본은 아직 핵무장에 이르진 않았거나. 전자는 스안님의 세계관에 부합한다면 후자는 저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문장이겠지요.
스안님은 우리나라는 언젠가 핵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는거 같고, 저는 우리나라의 핵무장 혹은 핵무기 재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둘의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저는 위에 적은 것들 이외의 다른 의견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cjs5x5 큰 문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으로 배운 박사들 조차도 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핵이란 시스템 앞에서는 모든 군사/정치/외교의 시스템이 굴종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크나큰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관심있게 보는 김지윤 교수도 핵에 대한 인식이 딱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진심으로 충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