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과 섬의 산록에 자라는 상록교목입니다.
껍질에 상처가 나면 황색 칠액이 나오므로 황칠나무죠.
이 수액으로 가구의 칠에 사용하고 잎 줄기와 함께 약재로도 쓰며
상록성의 잎과 미끈한 수피의 아름다움을 사서
남부의 따뜻한 지역에서는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는데
황색 염료의 대표 격인 치자열매나 황련뿌리를 따돌릴만한
높은 차원의 순도와 채도는 자랑할만하답니다.
보통 어린나무의 잎은 오리발처럼 갈라지고
커가면서 차차 타원형, 원형으로 모습을 바꿔가요.
황칠나무는 인삼이나 오갈피나무처럼 두릅나무과에 속한 난대성식물입니다.
황칠나무와 혼동되는 유사한 이름으로 ‘황벽나무’와 ‘황철나무’가 있죠.
황벽나무(운향과)는 노란 속껍질을 말려 약재(황백)와 염재로 쓰고
황철나무(버드나무과)는 이름만 비슷할 뿐 닮은 데가 거의 없는 나무예요.
그대 보지 못 하였는가
궁복산 가득한 황칠나무를
금빛 액체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껍질 벗겨 즙 취하기를 옻처럼 하는데
아름드리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네
상자에 칠을 하면 검붉은 색 사라지니
잘 익은 치자 물감 이와 견줄까
서예가의 경황지가 이로써 더 좋으니
납지, 양각이 무색하여 모두 물러나네
이 나무의 명성이 천하에 자자하여
박물지에 왕왕 그 이름이 오른다네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 가고
아전들의 농간을 막을 길 없어
지방민이 이 나무 악목이라 여기고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몰래 찍었다네
지난 봄 조정에서 공납 면제해준 후로
영릉에 종유 나듯 신기하게 다시 나네
바람 불어 비가 오니 죽은 등걸 싹이 나고
나뭇가지 무성하여 푸른 하늘 어울리네
- 다산 정약용의 시 「황칠(黃漆)」
학명의 뜻이 곧 ‘병(morbi)을 가져가는(ferus)
만병통치(panax) 식물(Dendro)’인 약나무입니다.
맛은 달고 쓰고 매우며, 성미는 따뜻하다. 심, 간, 비경으로 들어가
안신정지(安神定志: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킴),
거풍통락(祛風通絡: 풍습을 없애고 경락을 통하게 함),
활혈장근(活血壯筋: 혈행을 촉진하여 근육을 강화함),
윤장통변(潤腸通便: 장을 윤택하게 하여 대변을 잘 통하게 함)하는
효능이 있답니다...
잎에서 추출한 황칠이 당뇨 유도 쥐의 혈당을
의미 있게 낮추는 효과가 발표된바 있으며,
용량비례적으로 저밀도콜레스테롤(LDL)과
트리글리세린(중성지방)의 수치를 감소시킨다는 논문에,
간 기능 개선, 항산화작용, 뼈의 재생, 면역력 강화,
신경안정, 항염 및 항암의 효과가 발표되기도 하였어요.
어디 한 번 화순에서도 산가 보자 하고
재작년에 집 뒤안 보일러실이 가까워서
늘 가차이서 만날 수 있는 공간에 황칠 묘목 한나를 심어보았지요.
비닐봉지는 씌워줬지만 작년의 혹한에 얼어죽었나 싶었죠.
그런데 봄으로 밑둥에서 새 줄기가 나와 다시 꽤 자랐답니다.
기특하고 갸륵하여 올해는 나무 밑으로 톱밥을 높여주고
수도관에 쓰는 스티로폼 피복을 입혀주었으며
커다란 비닐봉지를 쓰개치마처럼 씌워 똘똘 감아주었어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아랫목을 덥히고 옷을 두툼히 입어야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봐요.
"죽으문 죽고 살문 살고"라던 지난 입술이 미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