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푸틴 러시아 야권 '아이콘'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1일 엄수됐다. 이튿날(2일)에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모스크바 동남부 보리소프스코예 공동묘지(на Борисовском кладбище, 보리소프 공동묘지)로 꾸준히 이어졌다는 소식이다. AFP통신은 이날 조문객들이 나발니가 묻힌 공동묘지를 찾아 러시아식 방식으로 그의 무덤 앞에 꽃과 십자가, 그의 사진 등을 놓고 추모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조용한 '나발니 죽음' 이후 상황 전개다.
나발니 장례식및 추모 영상 모음/텔레그램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나발니 장례식이 열린 1일과 이튿날인 2일은 모스크바로 국제 사회의 관심이 쏠린 날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옥사(獄死)가 2주 가량 앞둔 러시아 대통령 선거와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했다. 특히 2일에는 나발니와 피살된 지 9주년을 맞은 또다른 야권인사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를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고됐다. 하지만, 이 집회는 모스크바 당국에 의해 금지됐고, 실제로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스트라나.ua는 "나발니 장례식에 1만명~1만5천명(친 러시아 정부 측 집계)의 시민이 참가한 것은 예상된 규모"라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과 그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10~20% 정도로 추정되는데, 수만 명(?)의 장례식 추모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장례식 도중에 “전쟁 반대”, “푸틴은 살인자” 등의 구호를 외치고, "영웅(나발니)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인은 좋은 사람"이라는 슬로건은 등장했지만, 정착 관심은 그 이후였다. 장례식 행사 후 추모객과 경찰의 충돌, 크렘린으로 행진, 반푸틴 대규모 시위 징후 등 정치적 시위로 확산될 것인지 여부였다.
하지만,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반푸틴 구호를 외치고 나발니를 기리며, 장례식장으로, 또 묘지로 몰려왔지만, 장례 행사가 끝나고 공동묘지 입장이 폐쇄되자, 모두 그 곳을 떠났다. 나발니가 독일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치료하고 귀국했던 2021년이나, 2011~2012년의 반정부 시위에 비하면 추모 열기도 뜨겁지 않았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몰고온 슬픔과 충격도 2주 가량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사그러진 듯했다.
나발니 장례식에 몰린 인파/영상 캡처
예상대로 러시아 당국은 3월 2일로 예정된 추모집회를 금지했다. 집회는 무산됐고, 나발니 추모 본부는 나발니 장례식에 많은 인파가 몰린 데 대해 만족해야 했다. 나발니 측은 "장례식에 온 수많은 추모객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며 "특수 군사작전(2022년 2월 24일) 이후 푸틴과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집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방 지도자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숄츠 독일 총리는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나발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그의 유산을 받아들였다"고 말했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나발니 장례식에 와서 추모하는 행동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그가 남긴 유산"이라고 격려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측 인사들의 대규모 정치적 행동은 성공하지 못했고, 대선을 흔들려는 시도도 실패했다고 주징했다. 과격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나발니 장례식 참가를 굳이 방해하지 않았던 이유로 보인다. 현지 독립적인 매체(반정부 성향의 매체/편집자)들도 "경찰들은 묘지 주변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쳤지만, 추모객들을 저지하지 않았고, 평화로웠다"고 당일 모습을 전했다.
우크라이나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러시아 야권은 옛날부터 단호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겁쟁이들이고 노예 근성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은 이미 예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푸틴, 전쟁 반대 인사들이 이미 많이 러시아를 떠났기 때문이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도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당국의 체포를 두려워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반대 여론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레베다 센터'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6%가 전쟁에 반대했을 뿐이다(지지는 77%).
더욱이, 군사작전 2년을 넘기면서 전쟁과 서방의 제재로 인한 충격은 이미 엘리트 계층에서 사라졌고, 공포감이 크게 줄어들었다.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프리고진 주도의 6.24 군사반란이 실패하고, 지난해 여름의 우크라이나군 반격이 무산됨과 동시에 전쟁의 주도권이 다시 러시아군에게 넘어오면서, 더욱 그렇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지적이다. 또 러시아 경제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기업가)들은 그 속에서 돈을 버는 법을 배웠다.
반면, 진보 야권 세력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무엇보다도 나발니의 사망 이후 그를 대신할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3월 대선 출마를 시도했다가 좌절된 보리스 나데즈딘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다. 그의 후보 등록 기각에 항의하는 시위도 거의 열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주장도 제각각이라고 한다.
나발니의 장례식은 1일 그가 생전 살았던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노(в Марьино)에 있는 성모 마리아 이콘 성당(в храме иконы Божьей Матери)인 '우톨리 모야 페찰리'(Утоли моя печали, 나의 슬픔을 없애달라는 뜻)에서 열렸다. 나발니의 어머니 류드밀라 나발나야 등 친인척들은 정교회 신부의 안내에 따라 나발니에게 마지막 인사(통상 얼굴에 입맞춤을 한다)를 했다.
나발니의 장례식에서 관 뚜껑을 연 모습(위)와 그의 얼굴에 키스하는 어머니/영상 캡처
이후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보리소프스코예 공동묘지'에서 하관식이 진행됐다. 생전 나발니가 최고의 영화로 꼽은 '터미네이터 2'의 마지막 장면 속 음악이, 또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My Way)가 흐르는 가운데, 그의 관은 천천히 무덤 속으로 내려졌다. 보리스 나데즈딘과 예카테리나 둔초바 등 야권 인사들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서방의 대사들이 이 모습을 지켜봤다.
나발니의 관 위에 흙을 뿌리는 어머니/영상 캡처
그러나 그의 사망 직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면담했던 아내 율리아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 다리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율리아는 이날 소셜미디어(SNS) 엑스(X)를 통해 남편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지난 26년간 너무 행복하게 해줘 감사해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주고 감옥에서도 날 웃게 해주고. 항상 나를 생각해 줬어요. 당신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늘에 있는 당신이 날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진짜 노력할게요.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확신해요. 당신을 위해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노래가 너무 많은데, 꼭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 노래를 들으며 나를 안아주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