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중증 과민 반응
안녕하세요? 설암 4기 환자였던 50대 남동생의 누나입니다. 동생은 수술한지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갔지만 그동안 몇가지 질문에 대해서 성의껏 대답해주시고 실제적인 도움도 많이 주셨으며 늘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주신 설암 환우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남동생이 말을 하지 못하고 식사를 제대로 못한지 한참 되어서 뒤늦게 병원을 찾은뒤 암환자임이 판정되었을때 안타깝게도 치료시기를 그만 놓친듯 하여 동생의 투병생활은 출발부터 험난하였읍니다. 남동생의 혀전절제 수술과 이식 수술은 잘되었으나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읍니다. 2달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퇴원할수 있었읍니다. 막 퇴원하고 만나본 동생은 살이 많이 빠진 것은 물론 졸지에 연하장애가 생겨 미음을 간신히 먹을 수 있었고 물 마시기도 힘들어하였으며 말을 하기는 했지만 반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읍니다. 그래도 퇴원해서 맑은 공기를 마실수 있게 되어 앞으로의 투병생활도 잘 이겨낼 수 있는 듯 새로운 각오와 희망에 차있었읍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면서 한편으로 연하장애 재활치료에 들어갔읍니다.
그러나 퇴원한 지 한달이 되면서 불길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읍니다. 드디어 외래 진찰에서 턱밑과 폐전이가 언급되었읍니다. 올추석 유난히 긴연휴가 다 지난 후에야 갖가지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검사를 기다리면서 동생은 아주 힘들어했읍니다.그전까지 동생은 저와 멀리 태평양을 건너 카톡으로 거의 매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곤 하였으나 이때부터 간신히 몇마디를 보낼 수 있었읍니다. (숨이 끊어지기전까지 제가 보낸 카톡 문자 메시지를 읽었던 흔적이 있어 조금 위안이 됩니다.) 굉장히 상태가 안좋아지고 있는게 사실이며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도 효과가 없는 듯하다고 하였읍니다. 그래도 내가 애써 보내준 단백질 가루를 몇번 먹었나봅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받아본 세침검사의 결과를 받아보고 동생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읍니다. 턱밑과 폐전이 예상을 뛰어넘어 온몸의 여기저기에 전이 되었다는 사실에 동생은 참담해했읍니다. 그러니까 설암에 수술만큼이나 효과적이라고 하는 방사선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읍니다.
어쨌든 동생은 각종 조사결과에 대한 상담이 끝나는대로 급히 항암치료를 위해서 입원하게 되었읍니다. 물론 환자와 가족은 일련의 항암치료가 완치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고 고식적 목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읍니다. 항암치료 제반준비가 끝나는대로 일반 (세균독성 화학) 항암치료에 들어갔읍니다. 예의 도세탁셀 + 시스플라틴 + 5fu 조합으로 1차 항암치료에 들어갔읍니다. 담당의사선생님과 병구완을 하고 있던 여동생 그리고 저자신이 모두 남동생이 표적 항암치료를 받기를 원했으나 남동생은 일반 항암을 택했읍니다. 이계통의 암치료를 전문으로 하고있는 의사 친구에 의하면 암이 이렇게 몸전체로 퍼지면 표적항암치료를 하든 일반항암치료를 하든 큰 기대를 할수 없다고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은지 처음 3일 정도에는 이항암제가 남동생에게 효과가 있는듯 혈색도 좋아보이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퇴원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동생의 호중구수 (면역관계-백혈구 수치반영) 가 정상치보다 많이 떨어져 버렸읍니다. 호중구수치 뿐만 아니라 혈압도 너무 낮아지고 폐혈증 증세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환자의 보호자였던 여동생한테 전해 들은 바로는 항암치료 받기 전에는 물론 항암제를 투여받기 전후 항상 이런 수치 들을 체크해보았는데 항상 항상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상 Vital (생체) 수치를 보였다고합니다.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동생의 Vital 이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아서 의료진이 두가지 방책을 제시하고 환자가족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였읍니다. 1인 개인 병실로 옮기든지 아니면 중환자실에 가서 연명치료를 받는 것이었읍니다. 저희는 전혀 경험이 없어서 그냥 동생이 죽게 내버려둘수 없다고 생각해서 회복이 가능 할 수있다고 하는 중환자실로 보내기로 하였읍니다. 그렇지만 그날 저녁과 밤에 변화가 있었읍니다. 의사선생님이 재확인해보니 숨도 쉬고 있을 뿐더러 의식도 있고 의사소통도 가능하여 웃기도 하여서 1인 개인 병실로 보내기로 다시 결정을 번복한다고 듣고 여동생은 집에 돌아와 좋은 간병인을 구할 생각에 골몰해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사이에 남동생의 Vital 이 악화되어 그다음날 병원측에서 결국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다행히 중환자실로 옮기기전에 주말이어서 가까운 친지와 친구 몇몇이 남동생의 병문안을 와서 마지막 병문안이 될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고 갔다고 합니다. 중환자실 환자의 면회는 하루 두번 점심때 30분과 저녁때 30분으로 제한되어있고 면회인도 2-3 명으로 한정되어있다고 합니다. 아버님과 여동생은 점심면회때까지 기다려서 가까스로 남동생을 만나볼수 있었읍니다. 남동생은 인공호흡기를 단채 몸이 꽁꽁 묶여 있었는데 이때 의식이 반쯤 있는지 없는지 슬프고도 애잔한 그러면서도 텅빈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더랍니다. 여동생이 30분 면회를 끝내고 절망하며 집에 돌아온 순간 병원에서 임종소식을 전해주더랍니다. 그러니까 남동생의 임종이 가까운 줄 모르고 아버님과 여동생이 마지막으로 남동생 얼굴을 본셈입니다. 어떻게보면 남동생이 아버님과 여동생이 면회올때까지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나봅니다. 어머님은 거동이 불편하신 관계로 추석때 힘들어하는 남동생을 한번 보고 죽기전까지 아들의 얼굴을 보지못했읍니다. 어머님께 남동생 장례식이 너무 힘드실것같아서 저희 가족은 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장례식 하루 전에 잠시 작별인사를 하시도록 하였으며 장례식에는 모시지 않았읍니다.
저는 이카페에 가입한지 두어달이 지났는데 그간 암환자의 투병생활에 대해서 거의 crash course 로서 많이 배웠읍니다. 비록 제동생은 갔지만 설암환우 여러분들 용기있는 투병생활에 경의를 표하며 진심으로 행운을 빕니다. 특히 신연수님, 대방동 상남지님, 셋의 엄마님, 롤리타님, 그리고 승리의 힘, 라이프 김동우 전문가님들 모두 깊은 감사드립니다.
자료출처: 암과싸우는사람들 / 작성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http://cafe.daum.net/cancer94/JdI/3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