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 이후 진보운동의 과제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장장 6개월의 촛불항쟁에 이은 이른바 '장미대선'이 1주일 앞으로 박두했다. 5월 9일, 정권은 교체될 것이다. 지지율 1위의 문재인 후보와 2위의 안철수 후보의 격차가 뚜렷이 벌어지고 있다. 기호3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반문 정서의 보수층이 전략적 지지를 철회하고 호남 수도권 등의 중도층이 문재인 대세론에 편승하면서, 현저히 추락하고 있다. '안보장사' '종북좌파론' '강성귀족노조론' 으로 수구보수층의 입맞에 발라맞추는 기호2번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추격을 받고 있다. 안철수와 홍준표의 인위적 단일화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호1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실하다.
이제 대선 결과에 대한 국민의 호기심은, 1위의 문재인 후보가 과반에 육박할 것인가, 안철수 홍준표 중에서 누가 2위를 할 것인가, 그리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얼마나 얻을 것인가로 옮아가고 있다. 역사의 전진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현 단계에서 문재인 후보가 안정적으로 당선되고 심상정 후보가 선전하며 홍준표 후보는 15%를 넘지 않길 학수고대할 것이다. 그래야만 촛불민심의 남은 과제, 즉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유리한 정치지형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던가. 모든 선거, 특히 대선은 전쟁과도 같고 그 막판은 최후의 결전과도 같이 무자비하지 않던가. 문재인 후보의 안정적 당선을 위해 그 좌측과 우측의 지지 기반을 사정없이 파 먹는 과정에서 결국 심상정 후보의 두 자리 득표는 좌절되고 안철수 후보 대신 홍준표 후보가 2위 자리에 올라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돼지흥분제 강간미수공범, 구시대적 색깔론자, 홍준표를 중심으로 친미수구보수세력이 재결집하고 부활하여 사사건건 개혁과 통일을 가로막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우선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 더불어 민주당은, 이미 밝힌 바대로 '통합정부'를 구성하여 여소야대(더불어민주당 119석, 자유한국당 93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33석, 정의당 6석, 기타 8석)의 한계를 극복하려 할 것이다. 통합 아니면 연합, 연합 아니면 연대,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총리나 장관 인사청문회부터 공약사항 입법까지 최소 3당의 협치가 없이는 국정을 안정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 1차 대상은 단연코 국민의당일 것이며, 박근혜 탄핵을 반대한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좌로는 정의당, 우로는 바른정당의 협력을 얻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 때, 주도세력인 친문세력의 패권주의를 어떻게 조절 통제할 것인가, 국민의당의 분파주의를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는 국민통합, 개혁국정 수행의 요체로 작용할 것이다.
국민의당은, 대선의 안철수 득표율과 호남의원들의 태도에 따라 그 운명이 좌우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가령 안철수가 15~20% 이상 득표하고 호남세력을 잔류시키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흡수통합 의도에도 차기 대권을 겨냥해 독자 생존에 몸부림치지 않을까. 하지만, 15% 미만 득표에다가 중추세력인 호남의원들, 특히 천정배 정동영 최경환 등 개혁적 성향의 의원들이 민주당의 통합 추진에 합류한다면,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왜소하게 잔존하거나 바른정당과 통합하는 길을 택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차기 대권 경쟁력에서도 안철수는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에 비해 유리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의당은, 문재인 통합정부 참여 제안이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중도-보수 성향의 내각 참여는 뜨거운 감자다. 진보정책 실현과 국정경험 축적을 위해 연합정부에 참여할 필요도 있지만, 그랬다가 문재인 정부의 한계로 뜻을 펴지 못하고 원성만 사고 당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연대냐 정치연대냐, 전체 진보세력의 소통과 공감이 필요하다. 또 노농빈 등 기층민중과 촛불시민들의 진보대통합(대연합)정당 건설 제안에 어떤 태도를 취할까? 정의당 중심으로 하든지, 아니면 말고? 심상정과 정의당이 대선국면에서 좀 떴다는 이유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안심할 만큼, 조직적 대중적 기반이 튼튼한가?
대선 이후 경제와 한반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상반기 중 2% 후반, 하반기에는 다소 낮아져 연간 2.6%를 기록할 전망이다. 세계경기 둔화, 미국의 무역제재,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올해부터 감소하는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이후 연간 20만 명 이상 씩 줄어 성장잠재력을 하락시킬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국내 시중금리가 올라 가계부채 폭탄과 기업자금 악화가 우려된다. 요컨대, 고령화와 핵심 생산연령인구 감소로 수요활력이 약해지고 노동부족에 따른 생산차질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는 보건의료 등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소비를 늘려 인력 부족 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다. 인공 지능, 로봇 등 노동제약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들이 세계경제 성장세를 높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한반도 위기는 계속 되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최근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대북 정책 기조를 정했다. 북한에 대한 직접 군사적 압박, 중국을 통한 경제적 제재, 유엔을 통한 외교적 고립에 집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미, 6자 대화를 탐색하는 듯하다. 트럼프는 지금 최대의 압박 이후 협상을 통한 실리 확보라는 전형적인 장사꾼 외교를 구사하는 모양새다. 8월이면 또 다시 대규모 을지연습으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기에 한국의 대선 이후 6~7월이 대화와 협상의 적기다. 그러나 트럼프가 아직 대북 전략 수정을 결단하지 못하고 있다. 북 핵-미사일 시험 중단에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으로 응답하고, 북 핵 동결에 북미 평화협정 체결로 화답하는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결심하지 못하면 오바마의 실패한 ‘전략적 인내’를 답습할 뿐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북 핵 폐기 전제의 평화협상에 북한은 결코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속아서 칼 맞은 리비아처럼, 핵-미사일이란 전쟁억지력을 완전 폐기한 이후 미국의 약속 불이행에 이은 침공-전쟁-재앙의 끔찍한 비극을 되풀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경제-안보평화가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진보운동은 정권교체 이후 촛불민심을 대변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해 더욱 힘찬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문재인 정부 등장, 진보정치세력의 약진이라는 확대된 정치공간을 활용하여 민중 자신이 요구하고 투쟁하고 압박하고 견인하여 쟁취하는 대중운동, 직접 민주주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대중투쟁을 기본으로 대화와 협상을 결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의존하거나 문재인 정부를 적으로 간주하는 양 편향을 극복해야 한다. 촛불항쟁을 이끈 '퇴진행동'의 해소 결정, 여러 개로 난립하여 영향력을 감퇴시킨 대선연대기구들은 현재 운동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지만, 대선 후 개혁과 통일을 위한 하나의 크고 강력한 연대기구로 통폐합하는 게 바람직하다. 진보민중운동 내의 적폐를 청산하는 계속 혁신을 통해 정치적 도덕적 전략전술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최저임금 1만원,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조할 권리, 노동시간 단축, 정치제도 개혁, 재벌체제 개혁, 언론개혁, 사회공공성 강화, 사드배치 중단,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평화협정 등을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둘째, 진보대통합(대연합)정당을 올 말까지 건설하여 2018년 지방선거에 대응해야 한다. 대선에서 선전한 정의당도 자만하지 말고 대선에서 저조한 민중연합당도 깊이 성찰해야 마땅하다. 진보정치의 성장 잠재력은 이번 대선에서도 증명된 만큼, 노농빈 등 기층 민중과 촛불시민들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모든 진보정치세력이 혁신하고 통합하면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그리하여 역사를 발전시키는 강력한 추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은 내부의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외부의 공안탄압과 고립약화로 인해 이 땅 진보정치가 시대적 사명을 다하지 못해온 뼈아픈 교훈을 주고 있다. 다시는 노동자 민중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기지 않도록 통합적 지도력 확보, 중심균형세력 구축, 민중 속의 진정성 발현, 차별화된 진보의제 제시와 함께 안의 패권주의 분파주의, 밖의 공안탄압 고립책동을 능동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한반도 평화 없이, 남북 교류협력 없이 경제도 살릴 수 없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 수 없으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진보정치의 획기적 발전도 이룰 수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국내수구세력의 간섭과 방해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민간 자주평화통일세력이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각계각층, 전국 각 지역의 민간이 사드 배치 철회, 평화협정 체결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6.15, 10.4선언 이행,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다방면의 남북교류협력,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민족대회 성사에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민간의 폭넓은 참여만이 내외 냉전수구세력의 온갖 장애물을 걷어내고 문재인 정부의 긍정적인 외교안보통일정책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특히 기존 자주평화통일운동의 협소한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중간층, 합리적 보수층을 최대 망라하는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정세는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선도 투쟁 기능과 광폭 참여 기능의 변증법을 요청하고 있다.
촛불혁명은 1단계 박근혜 탄핵-구속, 2단계 정권교체를 경과하여 3단계 사회대개혁과 자주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60년 4.19혁명과 ’87년 6월항쟁은 미완으로 끝났다. 직접 민주주의 구현과 대중운동의 활성화, 노동진보정치대통합 실현,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민족대단결 촉진으로 2017년 촛불혁명을 완성시키자. (2017년 5월 2일 새벽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