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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자라게 하라(마 19:13-15)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우리들의 가정에서 자녀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신앙지도에 있어서 새로운 각성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때 매우 의미있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자녀교육입니다. 자녀가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이 병들어 있다면 부모의 사명은 실패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랍비에게 가서 안수기도와 축복을 받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어느날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와서 안수기도와 축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13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부모들처럼 귀한 분들이 어디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기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서 여러가지 어렵고 곤란한 상황, 주위의 꾸짖음과 핍박에 굴하지 않고 와서 예수님께 간구하는 부모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녀들이 예수님께 안수를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하나는 안수와 거의 같은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께 기도해주심을 바래서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신앙입니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대해서는 각자마다 해석이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 오늘 예수님께 찾아온 이 부모들처럼 거룩한 목적과 꿈을 가진 부모를 보셨습니까? "예수님께 안수를 받고 싶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 자식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지는 아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경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부모들은 새벽부터 자정까지 자식들을 학교에, 학원에 맡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한테 부모들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릅니다. 모두가 천재교육, 영재교육, 일류병에 휩싸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끔찍스럽지만, 또 현실적으로 그 끔찍한 일을 자기만 안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그 교육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문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가치관을 서슴없이 심어준다는 데 있습니다. '너는 뒤지면 안된다. 좀 그릇된 방법으로라도 아무튼 이겨야 한다. 승리해야 한다"고 몰아댑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경쟁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만 키웁니다.
거기에다 사회에는 우리 아이들을 오염시키는 수많은 유혹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세상은 세상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갈라서 생각합니다. 어떤 믿음 좋다는 부모가 주일에 자녀를 친구 생일 잔치에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필이면 예배시간에 생일 잔치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아무런 갈등 없이 "생일 잔치에 가라. 교회 학교는 하루쯤 쉬어도 돼" 하면서 아이를 친구 집에 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일에 공부하지 않고 교회 와서 성경 공부하는 것에 부모들이 얼마나 예민해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한 시간 정도 교회가는 것은 괜찮지만 교회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는 건 안된다는 반응이 부모들에게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자녀교육도 잘 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정도가 지나쳐서 무엇을 위해 자식들에게 그렇게 열심을 내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못합니다. 저는 본문의 이 부모들을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 부모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보겠습니다. 이들의 생각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어린 자녀가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것이란 뜻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혹시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도 가운데 자라신 분이 계십니까? 주일학교 이전부터 찬송소리를 듣고 자란 분이 계십니까?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입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어디서 생겼습니까?
(딤후 1: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 믿음의 전승이 디모데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오늘 우리는 자녀들을 정말 잘 키우고 있는가, 바르게 키우고 있는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가문의 3대의 신앙을이어가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뿌리깊은 복있는 가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어린아이들이 방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성령받으면 방언합니다. 아이들도 성령 충만하면 전도합니다. 어린아이도 어른과 똑같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인격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그릇입니다. 말씀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은 변합니다. 기도하면 부진한 아이들이 변합니다. 자폐증 아이들도 변하며, 이상성격의 아이들도 변하며, 불안신경증을 가진 아이들도 영적 치유가 가능합니다. 아이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예배하고 찬양합니다. 물론 예배 끝나면 또 까르르 웃고 놀고 게임기 앞에 가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공부시키는 그 정열, 그 열심의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바치면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변하겠습니까? 십분의 일만 아이들에게 믿음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투자를 한다면 우리 자녀들은 얼마나 변하겠습니까? 이런 믿음의 부모만 있으면 우리의 자녀들이 변할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로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13절에 "제자들이 꾸짖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실수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영혼을 보지 못하고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린이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셨습니다.
14-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예수께서는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며 무리들 한 가운데 세우시고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에 주님의 안수 기도를 받은 어린아이 가운데 후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 된 유명한 이그나시우스(Ignatius)가 나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린이들과 우리 자녀들을 축복하며 천국의 기둥과 같은 인물이 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겠습니다.
1.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젖이라고 비유하시며 (벧전 2:2)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성장을 모유나 우유 또는 음식물을 먹고 자라는 신체적인 성장이나 학교나 학원에서 선생님을 통한 지적, 정신적 성장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는 영적인 성장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통해서 그들의 내면적인 인격성장이 이루어져야 함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모든 부모들은 한결같이 큰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기의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정말 무엇이 잘되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는 것, 모든 부모의 기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혼입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이 훌륭해서 정말 똑똑한 자녀가 되었다 해도 그의 영혼이 병들어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먹고 영적으로 성숙해야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저의 친구목사의 아들이 저희교단 총회 고문변호사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인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 데 그 목사님이 아들 자랑을 하면서 목사인 자기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더 철저히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손자하고 대화를 하는데 성경을 날마다 읽고 묵상한 것을 기록해서 아버지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 매일 숙제라는 것입니다.
만약 하지 않으면 아빠한테 혼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그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변호사가 되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바른 신앙을 실천하는데 앞장서겠다고 하면서 법대를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서 기독교로펌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데 덤으로 총회 고문변호사로 섬기며 교회를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신령한 말씀의 젖을 받아먹고 영적인 영양분을 잘 섭취하여 심령이 강건하게 잘 자라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중고등부나 청년부에서 말씀묵상을 가르치고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보다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요삼 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에서 그 유명한 조용기목사님의 삼박자 축복이 나왔습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고 육체도 강건한 복을 받는다는 원리인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서라고 할수 있는 잠언서에 자녀를 위한 부모의 가르침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그 중에 한 말씀을 소개하면 잠 3:1-8까지의 말씀입니다. (잠 3:1-8)“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며 행하면 영혼도 잘 되고 범사가 잘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훌륭한 인물이 된 것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그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2. 기도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귀로 듣는 교육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교육에 더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옆으로 기어가는 게가 새끼 게들을 향하여 앞을 보고 바로 걸어가라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헛일입니다. 여전히 옆으로 기어가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행하는 그것을 보고 자녀들의 인격은 그대로 형성되고 맙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어느 성도의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그 가정의 어린아이가 나와서 "목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인사를 하고 나서 “목사님! 우리 엄마는 교회에 다녀도 신앙은 없어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의 상태를 먼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아무리 좋은 여건과 풍부한 생활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생활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최대의 의무는 기도의 생활을 가르쳐 주는 일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기도하여 무릎으로 살도록 가르쳐 준다면 우리 자녀들의 발걸음은 결코 떨리지 아니할 것이며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데리고 나갔는데 얼마나 열심이셨는지 새벽마다 자는 저와 제동생을 깨워서 새벽기도를 시켰습니다. 그때는 너무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미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엄했기 때문에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저희 두 아들이 교회가서 새벽기도시간에 하도 졸으니까 담임목사님이 “박집사님, 아이들 새벽에는 안데리고 와도 됩니다.”하고 말씀하신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열정이 오늘 저의 몸속에 베어 있습니다.
가끔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그런 열정이 오늘 저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런 열정이 오늘의 세아들중 두 아들이 목사가 되어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유명한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은혜스러운 추억이야말로 그의 자녀들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되며 그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 있는 분이 어거스틴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바로 모니카(Monica)입니다. 자기 아들이 마니교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Monica)는 아들 어거스틴을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기도하였는지 모릅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여년을 애타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 어거스틴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날로 더 심해졌습니다.
모니카는 절망하며 자기 교구의 목사인 암브로스(Ambros)감독을 찾아가서 흐느껴 울며 호소했습니다. "목사님, 제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버리시나 봅니다. 제가 아무리 애타게 이렇게 오래 기도해도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나 봅니다. 제가 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위하여 10여년을 하루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 한 것같습니다. 저는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면서 한참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때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하는 모니카의 모습을 보고 있던 암부로스감독은 "자매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세요." 그래서 마침내, 그녀의 기도로 기독교 역사상 빛나는 어거스틴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기도로 키운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 그의 어머니의 기도를 잊지않고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3. 헌금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십일조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더 큰 축복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며 십일조는 물질 축복의 최선의 길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드릴 줄 아는 신앙인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헌금에 인색하면 자녀들도 인색합니다. 신앙생활의 우선 순위를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것은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신앙교육입니다. 자녀 양육에서 우선순위를 바르게 할 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더 빛나게 됩니다. 부모님 여러분이 우선순위를 바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자녀도 따르게 됩니다. 딸들은 시집가서 친정어머니가 한대로 남편에게 합니다. 아들들은 장가를 들어서 아내에게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한대로 자기 아내에게 합니다.
무엇을 물려 주시렵니까? 아파트입니까? 집입니까? 돈입니까? 지위입니까? 신앙밖에 없습니다. (시 128:1-4)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4. 교회안에서 생의 뿌리를 내리게 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식물의 최후의 결실은 어떠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따라서 좌우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이 생의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있는지 주목하여 관찰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심리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어린이의 인격 형성의 50%는 3세 미만에 형성되고, 나머지 50%는 20세까지 형성된다고 합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가정입니다. 더위가 올지라도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그 행사가 형통하는 가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렘 17:7)“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잘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가정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 우리의 자녀손들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서 어떠한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 갈길을 다 마칠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복있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을 가까이 하고 교회에 삶의 중심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요, 흠없는 인격을 갖추었던 사무엘이 우연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녀가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나는 그 아들 사무엘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간절하고 깊은 기도를 드렸던지 당시 제사장 엘리는 그의 입술을 주목하여 볼 때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였으므로 술에 취한 여자로 착각하였으며, 사무엘이란 이름의 뜻도 “내가 여호와께 구하였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삼상 1:12-20).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한나의 믿음을 따라 사무엘이 어렸을 때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성전에서 살며 제사장을 도우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아니할 때 하나님의 법궤 밑에 누어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삼상 3:1-9). 이러한 사무엘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그를 사용하여 사사기 말기에 가장 암울하고 어두울 때 빛의 사자와 같이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 쓰임받았습니다.
이처럼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이 그 아들이 성전에 깊이 뿌리내려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행동이라고 하는 결과를 낳고, 행동은 여러번 반복되는 동안에 한 사람의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짓게 되며, 인격을 가진 삶은 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의 자녀들을 어렸을 때부터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게 하기위하여 교회 안에 뿌리를 내리도록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문인 버나드 쇼는 “인간 최악의 죄는 무관심"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서 소홀히 하거나 무관심한다면 하나님 앞에 잘못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 가슴을 치며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자녀에게 좋은 믿음의 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주 안에서 살아가도록 신앙지도에 전심전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 안수기도를 받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열정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축복기도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열정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안수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천국은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겠습니까? 다 자란 자녀들이 할지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다 천국백성이 되어 이 땅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영적인 부분에 대해 부모로서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세상으로 나아가던 발걸음을 주님께로 옮길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들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이 귀한 부모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주님 앞에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