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돌아보는 고국의 모습-
노량해전 격전지 관광
여수를 둘러싼 바다에는 어디에나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여수와 이순신의 관계는 깊다.
여수 곳곳에 남은 이순신 관련 유적들과 매년 5월 열리는 축제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여수에서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 장군은 전라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지금의 여수 지역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을 치르기 위해 출정을 했던 곳이 여수 묘도였다. 그는 임진왜란의 시작과 끝을 여수와 함께했다.
묘도는 여수 북쪽에 있는 광양시로 가는 길목에 있다.
여수와 광양은 2013년 전면 개통된 이순신대교로 연결되어 있는데, 노량해전이 치러진 해역이라는 연관성에 의해 이름 지어졌다.
진해령 여수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 하동에 속한 노량리 앞바다라 노량해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전투는 순천ㆍ광양ㆍ여수ㆍ하동ㆍ남해에 걸친 해역 전체에서 벌어졌다”라고 말한다.
7년에 걸쳐 이어졌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은 왜군으로서는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전투였다.
그러나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장악했던 상황. 순천왜성에 갇혀있던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아군에 구원을 요청했고, 시마즈 요시히로를 비롯한 왜군 선단은 경남 사천과 남해 등지에서 출동해 구출 및 퇴각 작전을 펼쳤다.
전투 결과 왜군 선단 대부분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만다.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일화는 삼척동자도 알 만큼 유명하다. 이로 인해 노량전투가 끝나고 나서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알려졌고, 그의 죽음에 조선 수군과 백성은 물론 명나라 수군과 진린 도독도 크게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묘도휴게소에 자리한 이순신대교 홍보관은 이순신대교의 모습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이면서 노량해전 격전지를 살피기에도 좋은 곳이다.
홍보관 내 전망대에 오르면 건너편 광양을 비롯해 동서 해역이 펼쳐진다. 지금은 한가로운 바다 전경이 펼쳐지지만, 노량전투 당시에는 조선ㆍ명ㆍ왜 3국의 군선이 바다를 새까맣게 채웠을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묘도휴게소 아래에 있는 도독마을도 잠시 들러볼 만하다.
명나라 진린 도독이 거느린 명나라 수군이 주둔했다 하여 도독마을로 명칭이 굳어진 이곳은 전투 당시 장면을 벽화로 그려놓은 것 외에 딱히 관련 유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바다와 이순신대교를 더욱 가깝게 볼 수 있는 장소다.
San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