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미국 땅 달리는 철마를 먹으로 그린 조선인이 있다?
강진희가 1888년 그린 <화차분별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근무하면서 볼티모어 등에 열차로 여행 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간송 수장고에서 흥미로운 게 나왔지. 약 100년 전 미국에 간 조선 관리가 그린 그림첩 하나를 찾았는데, 한번 보시겠소?” “당연히 봐야지요.”
39년 전인 1983년 5월 초였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놀라운 발견이 한 언론에 공개됐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 유출될 뻔한 민족의 문화유산들을 사들여 소장·전시해온 한국 미술사의 보루와도 같은 곳. 미술관을 우연히 들러 술동무였던 40대 미술사학자 최완수 연구실장을 만난 당시 <동아일보>의 30대 미술 담당 기자 이용우는 최 실장이 보여준 19세기 말 작가 강진희(1851~1919)의 그림첩과 청나라 외교관리 팽광예의 합작 그림첩 <미사묵연(美槎墨緣)>의 작은 수록 그림 한 점을 보고 눈을 번쩍 치켜떴다. 놀랍게도 미국산 종이에 먹으로 기차를 그린 그림이었다. 두 열의 증기기관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하나는 강물 위 현수철교를 달리고 다른 한 열은 산을 지나 언덕배기를 달리는 풍경이 아닌가. 화폭 상단엔 작가가 쓴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란 제목이 선명했다. 아래쪽엔 첨탑 달린 서양식 5층 집까지 묘사돼 있었다. 28x34㎝ 크기의 화첩에 적힌 연대와 장소는 1888년, 미국이었다. 이 땅에서 처음 근대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된 것이 1899년이다. 그러니까 11년 전 조선 왕조의 외교관이 미국 땅에서 연기 뿜는 철마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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