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쟁이젓(감정젓)
곤쟁이는 서해 깊은 바닷속에서 잡히는 매우 작은 새우로써
조선 중기 기묘사화를 일으켜
대사헌(검찰총장) 조광조 등 70여 명에게 사약을 받게 하여 죽인
당시 우의정 남곤과 금부당사 심정의
곤과 정을 따서 유래되었다는 설
조광조보다 11살 위인 남곤은 한양의 한 동네에서 자랐는데
학문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천재였으며
나이 차를 떠나 친구로 지냈다
어느 날 등산할 때 그날따라 예뻐보이는 여인들이 많다
17세 조광조는 마음이 심쿵, 얼굴은 홍당무인데
남곤은 무표정인지라
조광조는 남곤 대비 수양이 부족한 것 같은 생각에
부끄러움이 들었다
어머니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즉시 이삿짐을 싸자며
얼마 전 아버지가 어천도(평안도 영변의 어천역) 찰방으로
보직되어 간 곳으로 떠났다.
어머니의 말씀은 한 마디로
아들의 감정 노출이 정상적이고
남곤의 감춘 감정은 모질게 독하여
아들이 배워서는 안 될 거짓 수양이다
훗날 남곤이 정치를 한다면 인정사정없는
무서운 정치를 할 것이다.
조광조는 이 무렵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영변 관할)에 유배 온 김굉필에게
수학하면서 20세부터 이름을 떨치고
남곤은 김종직 문하가 되어 이름을 떨친다.
조광조 어머니의 말처럼
훗날 남곤은 조광조를 싫어하는 심정·홍경주와 함께
이런저런 무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기묘사화를 일으켰고
영의정이던 정광필이 중종에게
모반이 아니고 무고라며 충정어린 대변을 했지만
조광조는 38세로 화순에 위리안치(집밖으로 못 나감)된 후
곧 사약을 받았다.
조광조는 사약을 마시기 전
유언장에 조상 묘에 묻어주고
머나 먼 길 가야하니
가벼운 관을 써달라고 한 후
절명시 한 수 적는다.
‘임금을 어버이같이 사랑했고
나랏일을 내 집 일같이 걱정했다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에 내려와서
거짓 없는 내 마음을 훤히 비추리라’
조광조의 이상정치는 후세의 귀감이 되고
그의 학문 태도와 현실 대결의식은
후세 선비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당시 사약받은 사람들은
기묘명현(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신하)으로 명명되었지만
기묘사화를 일으킨 주역 남곤·심정·홍경주는
기묘삼간(기묘사화를 일으킨 세 명의 간신)으로
사약을 받거나 관직과 시호를 삭탈당했다.
남곤은 기묘사화 직후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렀지만
만년에는 죄를 자책하였으며
화를 당할까봐 평생 써서 간직했던
본인의 시와 글들을 불태웠다.
맛깔나는 곤쟁이젓은
매우 작으면서 숙성되면 밤색으로 변하니
남곤과 심정의 소인배 같은 마음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함을 빗댈만한 특징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