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한낮은 무덥다. 역사(驛舍)를 나오니 공기가 여간 후텁지근하지 않다. 목포역에서 두리번거리다보니 커다란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옥단이길이란 문학기행 탐방로에 대한 설명과 옥단이란 여인에 대한 간략한 안내글이 적혀 있다. 광장이 크지 않아 금세 눈에 띄기도 하지만 택시 승강장 바로 앞에 붙어있으니 목포역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없겠다. 광고판으로 치자면 제일 비싼 자리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목포 출신의 걸출한 인사들을 제치고 명당(?)을 차지하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옥단이가 단순한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옥단이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그렇게 스쳐 지나듯 만났던 옥단이를 목포의 여러 문화 행사를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옥단이를 한번 두 번 만나다 보니 그녀가 꽤 흥미있인 인물임이 느껴졌다. 요즘은 재미있고 적극적으로 타인과 어울리는 사람을 ‘인싸’(insider의 줄임말)라고 하지 않나. 옥단이가 바로 시대를 앞서간 인싸였던 것이다. 옥단이는 1920년에서 1950년 사이 목원동 골목에서 지게로 물을 나르거나 날품팔이를 해 생계유지를 했다고 한다. 나이도 출생지도 모르는 혈혈단신의 아낙네였다. 그 외 옥단이에 대한 정보는 아마도 목포 출신의 작가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에 나오는 묘사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묘사한 옥단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오동포동하게 살이 찌고 사팔뜨기인 눈이 아래로 쳐졌다. 숯검정으로 그린 듯한 두 눈썹에 붉은 볼연지와 입술연지를 했지만 미인 축에 끼지 못한다. 옷 입은 매무새도 엉성하고 말투도 어눌하니 동네 꼬마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기 일쑤고 놀림거리가 된다. 정해진 거처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래와 춤을 즐기고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인다. 1924년생인 작가가 유년시절 보았던 옥단이의 모습을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한 것일까.
정보의 여백과 인물의 결핍은 마른 창작 의지를 타오르게 할 불쏘시개가 된다. 만화 창작을 하는 나와 남편은 이런 옥단이의 매력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옥단이를 보면 볼수록 그녀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다. 어딘가 한참 모자라 보이는 인물이지만 작품 속 주인공으로서의 요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결핍이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의 주인공으로 옥단이를 점찍고는 그녀를 뒷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옥단이의 숨결을 느끼고자 찾아간 옥단이길은 그야말로 미로같았다. 큰 뿌리에서 잔가지들이 퍼지듯 넓은 골목에서 여러 개의 좁은 골목으로 갈라진다. 폭이 너무 좁아 막혀있는 길이 아닐까 의심하며 가다 보면 골목 끝은 좀 더 넓은 또 다른 길과 연결된다. 그 모습이 우리 삶과 어딘가 닮은 듯하다. 목원동 고갯길은 얼마나 가파른지 여간 체력이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투실투실한 몸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이 먹고 체력을 비축하지 않으면 물지게까지 지고 산동네를 올라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기 때문이다.
유달산 아래 번화한 일본인 마을에서 밀려나 산기슭을 따라 다닥다닥 자리를 잡은 조선인 마을. 여기엔 수도시설은커녕 우물마저도 몇 개 없었기에 물장수는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옥단이가 다녀가고 나서야 메마른 목을 축이고 가족들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물은 생명수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사람들의 삶을 지속시키는 물의 전령으로서의 옥단이, 힘이 장사인 소녀 옥단이 등 머릿속에 갖가지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옥단이는 본업과 부업을 부지런히 했던 의욕적인 여성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투잡, 쓰리잡을 했으니 말이다. 물장수 일 외에도 자질구레한 심부름부터 마을의 행사에 빠짐없이 불려 다니며 일을 도왔다. 한창 하던 일이 고될 때쯤 사람들이 청하면 춤과 노래도 곧잘 불렀다니 스타성도 겸비한 인물이다. 게다가 품삯에 연연하지 않고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되면 그만이었다니 내 일을 하고 남을 도우며 마음의 여유까지 가진 완벽한 삶이 아닌가. 열정적이면서도 평온함이 공존하는 옥단이의 모습에 아마 그 시절 궁핍하고 핍박받던 이들은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옥단이길을 걸으며 옥단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한다. 옥단이에 대한 사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섞고 치대서 찰진 반죽 덩어리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충분히 발효될 때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옥단이는 50년대 이후 행적이 묘연했지만 최근 목원동 터주대감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과거보다 훨씬 위상이 높아졌다.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찾아 하는 중이다. 문화해설사 노릇도 하고 때로는 역사 선생님 역할도 한다. 종종 찾아온 이들을 시간여행자로 만들어 주는 요술도 부린다. 그 길을 들어서면 정말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간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옥단이는 자기 이름이 붙은 길이 생겼으니 더더욱 신나게 사람들에게 여기저기를 안내한다. 옥단이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일제 강점기 조선인 마을의 삶, 목포의 역사가 펼쳐진다. 옥단이 덕분에 만인계터, 목포 청년회관, 불종대 등 역사, 문화 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니 벽화를 그리고 여기저기 가꿔 마을이 점점 예뻐진다.
옥단이길에는 공교롭게도 김우진, 차범석, 김현, 박화성 등 문인들의 생가가 모여 있다. 옥단이의 활동 시기와 작가들의 생존 시기도 앞뒤로 겹쳐진다. 그들도 옥단이가 길어 온 물을 사 마셨을까. 옥단이가 허드렛일을 하러 갔을 때 문인들과 얼굴을 마주쳤을까. 골목길을 걸으며 옥단이에 대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동네를 산책하는 내내 옥단이는 수많은 질문을 건네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옥단이는 유달산 아래 근대역사관 일대에도 종종 나타난다. 주말마다 물지게를 진 커다란 옥단이 인형이 거리 이동극을 펼친다. 이쯤 되면 옥단이는 그야말로 목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인물 아닌가. 관람객들도 공연에 참여하고 목포근대문화역사거리 일대를 함께 걸으며 옛 목포를 되짚는다. 옥단이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한다.
옥단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생각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타인에게는 스토리의 영감을 주고 본인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내는 셈이다.
과거는 슬프지만 옥단이는 즐겁다. 한바탕 떠들고 놀면서 일제 강점기의 목포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냥 옥단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 길을 따라 목포의 역사를 되짚어가다 보면 암울했던 시대가 가슴에 와 박힌다. 사람들이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옥단이는 노래와 춤을 멈추지 않는다. 옥단이만큼 목포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인물이 있을까. 옥단이처럼 목포의 애환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역시 옥단이 안내판이 목포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옥단이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조금 더 귀 기울이며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