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24/200401]‘불미나리전’ 드셔 보셨나요?
어느새 사월 하고도 초하루. 천지자연天地自然은 완연히 봄이건만, 역병 때문에 시절이 하수상하다. 내 사는 곳만 ‘청정지역’이라고 안도해서는 안될 일. 정부에서는 연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온라인 개학’을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었던가? 모두 초유初有의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쩐지 부웅 떠있는 듯하다. 우리는 또 이 와중에 총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러거나말거나 하루가 길고도 짧은 농촌의 봄날은 이미 시작된지 오래이다.
#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산기슭 또랑가에 맨먼저 올라오는 식물로 ‘불미나리’가 있다. 들어보셨으리라. 밭미나리, 돌미나리라고도 하는데, 거머리가 있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약한 놈이 줄기 속에 숨어있다).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물, 해독·이뇨·이담·지혈·해열과 간장질환·고혈압 치료에 특히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새파랗고 야리야리한 그 불미나리를 한 웅큼 뜯어왔다. 마침맞게 뒷산 저수지에서 잡아온 보리새우(암컷은 알이 배 조금 거멓고 통통하다)가 있질 않는가. ‘불미나리 전’을 하자! 4시 반쯤 복지관에서 퇴근하는 아버지께 막걸리 한잔과 함께 맛을 보시게 하자!
먼저 1. 양푼에 계란 2개를 깨넣고, 밀가루를 붓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고루 휘젓는다. 2. 후라이팬에 기름을 듬뿍 두르고, 조금 달아오를 때 잘 씻은 불미나리를 절반쯤 잘라 후라이팬 바닥에 깐다. 3. 계란물을 미나리 위에 얹히고, 그 위에 새우들을 넉넉히 덮는다. 4. 납작한 주걱으로 살살 눌러주면서, 밑면이 익었다 싶으면 후라이팬을 들어 중국집 쉐프들처럼 전을 공중에 띄우며 뒤집는 ‘묘기’도 부린다. ‘불미나리 전(부침개)’ 성공이닷! 별미別味다. 톡톡 씹히는 새우맛도 그렇고, 새참으로는 최고닷!
난생 처음 직접 만들어본 불미나리전. 흐뭇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문득, 10여년 전 전남의 어느 군수가 자기 군의 특산품인 불미나리로 만든 VIP용 선물이라며 준 ‘불미나리 환丸’(당시 작은 병 하나에 25만원이라고 했다)도 생각났다. 미나리를 말려서 빻아 둥글게 만드는 게 환이다.
# 친구가 모래내시장에 들렀다며 막 잡은 돼지 피로 만든 ‘싱싱한’ 선지를 한 뭉치 사가지고 왔다. 실가리 넣고 선지국을 끓여먹으라는 건데,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의를 봐서 버릴 수도 없고 무청실가리도 배춧잎 실가리도 없어 아주 난감했다. 아내에게 이실직고를 하니, 곧바로 선지국 끓이는 법 레시피를 보내왔다. 1. 선지를 깨끗이 씻고 반드시 소금을 조금 넣고 물을 끓인 뒤 그것에 선지를 삶는다. 2. 오래 삶지 말고 살짝 데치듯 담갔다 물이 끓으면 꺼내서 먹기 좋게 썰어둔다. 3. 묵은 김치 속을 다 빼내고 흐르는 물에 씻어서 먹기 좋게 썬다. 4. 간편식 사골곰탕 2개에 선지를 넣고 청양고추, 다진 마늘 등을 넣어 끓인다. 5. 선지가 다 익을 때까지 끓인다.
손은 언제나 서툴지만, 시키는 일은 잘 한다. 간을 보는데 제법 맛이 우러나 있다. 선지도 조금 떼먹어보니 팍팍하지도 않고 비위도 상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해장국을 먹어도 선지만 건져낼 정도로 싫어했는데 말이다. 휴우-, 이것도 성공이닷! 오늘 아침 아버지께 내가 끓였다면 한 그릇 듬뿍 퍼드리리라. 하지만, 이런 선물은 정말 싫다. 친구야, 너 좋아한다고 다시는 이런 것 사오지 말라.
# 전 부치고 남은 불미나리는 약간 데쳐 초고추장에 무쳐 무침으로 먹을 것이다. 마침, 이웃집 아주머니가 막 뜯은 머위와 쑥을 한 소쿠리 가져오셨다. 이것이라고 못해 먹을 것인가? 찹쌀-맵쌀가루와 버물린 쑥버무리도 해먹을 것이고, 맛있는 쑥국도 끓일 것이다. 어렵지 않다. 아니, 쉽다. 된장을 적당히 풀어야 하는데, 간이 문제이다. 일주일 전, 내가 끓인 쑥국이 너무 맛있다며 아버지는 한번에 두 그릇을 잡쉈다. 내 몸에 이미 봄이 출렁출렁. 머위(우리는 머우나 머구라고 부른다) 역시 살짝 데쳐 초고추장으로 무쳐 먹어도 ‘안봐도 비디오’ 별미일 터. 그 쌉쌀한 듯, 약간 쓴맛의 머위는 지금은 잎이지만, 조금 있으면 머위대(줄기)가 죽인다. 쭉쭉 잘 뻗은 머위대를 세 토막 정도로 잘라 씻고 5분여 삶아 쓴맛을 뺀 후 들깨가루로 볶아놓으면 그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 진동을 한다. 모두 천연 무공해 봄나물들이 아닌가? 조물주가 초근목피草根木皮로라도 살 수 있게 설치해놓은 ‘작품’들인가? 봄나물, 만세닷! 초보주부, 별 것 다 하며, 또 하루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