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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덴마크의 유명한 물리학자 닐스보어Niels H.D Bohr가 밝힌,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일련의 관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미시세계에 대한 해석인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 Copenhagen interpretation의 6가지 속성을 요약해 보고,
이에 동양사상인 노장老莊, 공맹孔孟,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사상이나 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으로
이미 우리 생활 관습과 사상思想 등에 젖어 찾아 볼 수 있는 몇몇 실례實例들을 비증比證하고
재해석해보면 많은 것들을 시사示唆해 준다.
현상 이쪽의 물리적 세계와 미지의 저쪽 무無 (음양陰陽 또는 공空)의 세계를 통섭統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렇다.
1. 음陰과 양陽은 하나다 -양자의 얽힘
양자의 속성은 음(-)과 양(+)이 같이 얽혀있고 절대 분리할 수 없다.
분리해서 작동을 해보면 양이 양할 때 음은 반드시 음하게 되어있다.
두개를 떼서 먼 거리로 떨어트려 놓고 실험해 보면 두 개의 전자가 동시에 서로 반대로 돌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반대작용을 한다.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거리에 놓고 실험을 해도 삽시간에 동시성으로 싹 바뀐다.
모든 물질은 사실 원자이고 원자의 움직임에 의해서 만물이 움직이기 때문에 양자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은 만물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과 같다.
빛과 어둠이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빛과 어둠이 하나다.
어둠의 우주가 빛으로 인해 밝게 보일 뿐이다.
남男과 여女가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하나다.
음과 양이 나누어져 있다고 거시세계에서는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까 다 얽혀있다.
내 안에 여자/남자도 있고 또 내 안에는 남자/여자도 있다.
어릴 때 남과 여로 분명히 구분 되서 태어난 것인데, 굳이 구분 지으면 하나는 양이고 하나는 음이다.
선善과 악惡 또한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어떤 상대에게는 악하고 어떤 상대에게는 선한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은 계속 바꿔가며 같이 있게 마련이다.
2. 음과 양은 서로 보완하며 순환 한다 -상보성相補性의 원리
음과 양이 돌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단계로 변화하고 있다.
한쪽만 있는 게 아니라 돌고 도는 과정은 서서히 한쪽 기운이 승昇하여 극대화됐다가 쇠락했다가 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생生과 멸滅이 끝없이 반복된다.
내 뿜으면 수용하고 수용한 것이 내 뿜으면 또 다시 수용하는, 그런 순환과정을 서로가 보완하는 관계로 돌아가게 된다.
물도 비가 되서 흘러내릴 때 처음에 구름으로 있는 상태에서 대기 속에서 차가워진 기운으로 오다 보면 비구름이 돼서 물기를 머금어서 비가 되서 떨어진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 물속에서 흐르다가 태양빛을 받아서 증발하면 또 다시 구름이 된다.
이게 돌아가는 순환과정인데 이것도 4가지 단계를 거친다.
물은 음음, 태양은 양양, 태양을 받아 증발되는 상태는 음에서 양의 기운이 승하는 상태고
구름이 되서 떠돌다가 점점 물기를 머금고 차가운 기운을 만나면 양음이 돼서 서서히 비구름으로 바뀌어서 떨어지면서 물이 되는 과정이 순환된다.
서로가 보완하면서 자연 순환의 원리가 만들어진다.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돌고 돈다.
상호간의 필요에 의해서 대기를 순환시킴으로써 수분이 유지되면서 만물이 성장하는 기운을 북돋아준다.
이와 같이 상보성의 원리에 의해서 만물의 기운이 순환한다.
3. 관측의 영향을 받는다 -관찰자 효과
전자를 쏘아 이중의 슬릿을 통과 시켜 보내고 보면 (Double slit 실험을 해보면),
관찰하는 순간 입자가 되고 관찰하지 않을 때는 파장으로 존재한다.
보고 있지 않을 때는 파장으로 존재해서 물체가 아닌 상태로 전파 같은 에너지로 존재하고 있다가 내가 보려고 관찰을 시작하는 순간, 어느 순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관찰하는 순간 전자는 영향을 받는다. 즉, 입자는 관찰/실험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관찰자가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 무늬를 띤 파장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을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라고 한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만물들은 내 하나의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만물은 다 달라지는 허상虛想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음이 지어낸 상이다.
부처님도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모든 것들은 다 공空하므로 색色이라는 것 역시 다 공이다.
살아가는 환경에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세상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은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 이 세상엔 실제로 없다.
내가 관심 있는 세상 외에는 우리는 아예 그런 세상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그런 세상은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만이 존재하고 있고,내가 인식하지 않는 세상은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에너지로 또는 파장이라고 하는 허상으로 흩어져 있는 거다.
그런데 비로소 내가 인지한 그 순간 그런 세상이 있었네 하고 보이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을 보면서 어느 순간에 달이 보이고, 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인데, 알고 보면 우리는 달을 인지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다. 밝으니까 달이 있겠지 라고 생각도 안한다.
내 몸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심장을 보면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를 위해서 활동을 해주고 있는 심장을 봐도 우리는 심장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우리는 심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어느 순간 우리가 심장을 인식한 순간 심장은 그때부터 있는 거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만물은 내 마음 하나 먹기에 따라 물질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늘 바뀐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4. 공명共鳴에 의해서 삽시간에 변화된다 -양자도약跳躍
원자의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전자 띠를 구성하고 있다.최외각 전자라고 하는 마지막 띠까지 여러 층의 띠가 있다.
전자가 운동을 하는데 이 전자가 여기 있다가 한쪽을 넘어서 건너편 띠로 레일을 건너뛸 때
여기서 이동하는 궤적이 쭉 나타나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여기 있다가 싹 소멸하고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전자의 움직임은 그렇게 나타난다. 전자는 이동하는 경로가 없다. 여기서 사라졌다가 저기서 삽시간에 나타난다.
실험의 결과가 이런 게 미시세계니, 거시세계 원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양자도약이 수시로 일어난다.
전자라는 속성이 양자도약에 의해서 빛을 내면서 흡수하고 내뱉을 때에 따라 빛을 내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깜빡깜빡하면서 다이오드Diode 같은 컴퓨터가 존재하고 있는 원리가 양자도약이라고 하는 전자의 에너지 움직임 때문에 전자기기들이 작동하는 원리다.
분명히 존재한다. 깜빡깜빡 하면서 빛이 난다.
전자가 움직일 때 전자가 이동할 때마다 빛이 생겼다 사라졌다하는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이걸로 기계를 만들어서 이렇게 잘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도약이라는게 그렇게 일어나는데 그걸 딱히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어쩌든 이걸 양자도약이라고 하고 이론을 갖다 붙인 거다.
임계점 臨界點-Critical point, 물이 끓을 때 평상시는 가만히 있다가 100도가 딱 되면 끓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반응이 없다가 끓는점이라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왔을 때만 끓는다.
액체에서 기체로 확 바뀌는 물질변화가 일어나는 양자 도약 현상과 유사한 현상이 우리는 일상생활 속 거시세계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서서히 바뀌는 것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한 순간에 확 바뀌는 거다.
우리 삶에 대운大運이 오는 징조, 인생의 변환점이 올 때도 한 순간에 바뀐다.
그래서 인간은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
5. 숨어 있는 무극無極과 텅 비어있는 진공/고요상태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라고 하는 전자 입자를 관측할 때 에너지로 파장으로 존재하고 있고 물질, 질량으로 존재하고 있는 두 가지의 속성이 있는데
파장의 에너지 값, 운동량을 측정할 때는 질량은 측정이 되지 않고 ,질량을 측정할 때는 운동량이 측정되지 않는다는 원리다.
그래서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서 빛을 쏘면 전자라고 하는 입자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리가 쓰는 그런 주파수 가지고는 측정이 안 되고 너무 작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가시광선으로는 주파수가 안 보인다.
가시광선은 웨이브가 너무 크고 웨이브가 촘촘한 X선, 감마선으로 밖에 측정이 안된다.
이 X선이나 감마선은 빛의 힘이 세기 때문에 입자를 관측하는 순간, 입자를 탁 건드리는 순간 간섭을 받아서 위치가 빛의 영향을 받아 다른 데로 가 버린다.
그래서 그 위치 값이 확인이 안 된다. 이렇게 불확정성의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라고 하는 자아自我, 나라고 하는 에고, 나라고 하는 의식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활 속에 들어가 어떠한 사건과 상황에 몰입되어서 푹 빠지면
그 상황에 함몰되어 다른 게 안 보인다. 감정 몰입沒入이 된다.
게임을 할 때 게임 속 케릭터로 로그인해서 게임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케릭터가 되어버리면
그 게임 속 케릭터 하나에 죽고 살고 거기서 일희일비 하면서 내가 유저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다시 말해 나라고 하는 몸이 에고 상태인 디바이스의 자율주행 모드에서 로그아웃한 상태에서 살고 있을 때는
내게 주어진 현실, 사람들이 내게 주어진 미션들 이런 것들에 파묻혀서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고 있다.
좀비처럼, 노예처럼 살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물리량을 측정할 때 그 안에서만 존재하는데,
내가 쓰윽 빠져나와서 진공상태라고 하는 무아상태에서 로그인을 하고 보면 나라는 현재의 좌표가 보인다.
그러니까 물리량 측정은 고요한 진공상태에서만 측정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변화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내 존재를 측정할 수 없다. 진공 상태인 무아無我라야 진아眞我를 측정/찾을 수 있다.
수시로 변화하고 있는 내 자신이 언제든 나는 파장으로 움직이고 입자로 존재하고 계속 바뀌고 있는 나 자신이 수도 없이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이 어떤 게 나라고 내가 나를 선입견, 편견, 고정화된 나의 패러다임으로 나를 가둬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인지하는 것이 불확정성의 원리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과 스피노자의 ‘의식意識’ 3중 현상 과정의 해석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6. 확률밀도에 의해서 존재 한다 -확률 분포의 원리
이중슬릿실험으로 파장이 생기는데 두 개로 생기는 게 아니라 간선무늬가 생겨서 여러 문양이 생긴다.
분명히 두 개가 생겨야 되는데 관측하지 않을 때는 여러 가지 문양이 생겨 패턴이 생긴다.
정확하게 수치로 얘기할 수 없다.
정확하게 법칙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공식으로 나와야 될 것 아니냐 하니까 확률이다. 대충 확률로 밖에 얘기 못한다.
확률밀도로만 존재한다고 말하니까,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
모든 과학은 증명이 돼야 되는데 확률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 그렇게 말했더니, 닐스보어가 아인슈타인한테 명언을 했다고 한다.
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마라. 신이 확률로 존재한다고 할 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그때 그때 다르다.
신이 장난질치는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다를 수 있나?
그러니까 신이 하는 말이다. 정확하게 신이 하는 말이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마라. 나는 신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그게 진짜 진리다. 결과는 신이 주관한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들은 행운이나 불행이나 인생에 닥치는 모든 일들은 알 수 없다.
나는 이거 하고 싶어서 이렇게 가고 있다가 어느 순간 이거 안하고 저걸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확률로 봤을 때 이거할 확률이 높아
하지만 이것도 안 할 수 있다. 그게 내 마음이라는 게 진짜 자유다.
내가 이거 하겠다는 예측된 결과를 반드시 이런 결과 값을 낼 거다라고 하는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그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풀어주는 말이다. 원자운동의 속성이 그렇다는 거다.
항상 이 자리에 가서 꽂히라는 법이 없다.
20세기부터 과학자, 물리학자가 제기하는 의문이 뭐냐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반문을 제기하는 것에서 20세기, 21세기 과학이 시작된다고 말을 한다.
질문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자는 전달자에 불과 하다.
오로지 그 어떤 정보나 지식에 대한...
양자 물리학은 비결정론의 물리학이다.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대입代入하고자 하는 기초 데이터에 관찰 대상 그 물질 자체가 항상 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추는 순간 바뀌어 있어 어떤 것도 결정지어진 게 없다.
초기 값도 모르는데 어떻게 결과 값을 알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신神의 입장에서 우리가 물질을 만들 때 그렇게 만들었다.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때그때 다르다. 내 마음이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사는 거다.
이렇게 우리는 신에게 이래라저래라 말하지 마시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왜 당연히 이래야 된다고 생각해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제는 이랬지만 오늘은 이럴 것이거든 하고 순간적으로 내 마음이 바뀌었거든,
내 인생의 룰은 내가 정하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사람이다 하고,
자유自由를 선언하는 말로 얘기할 때 그 누구도 반박할 사람은 없다.
한편 우주를 수數의 세계로 보고 미적분微積分으로 풀 수도 있다고 하겠으나,
위에서 이미 말한 바 양자물리학이 비결정론의 학이라고 선언한 이상,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물리物理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런데도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 기계에 불과하다.
초기에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는 우연이다.
하루가 24시간이거나 1년이 365일인 것은 우연이다.
(중략)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독서왕’ 떨림과 울림 p.312~313, 물리학자 김상욱)
-李自綠이자록/jarock,lee-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leeih4441
@올빼미 무? 혹시 心을 말씀하시는지요?
@인향만리 무라는 단어를 말이 아닌 실재로 인식한다면 천부경을 논할만하죠.
그런데 우리는 무를 모릅니다
그러니 천부경 논할 가치도 없죠.
@올빼미 아니 없을 무입니다.
@올빼미 거기서 무는 멍사라 생각되거든요
@올빼미 네 그 말씀이셨군요~
죽으면 그 無가 되려나요?
혹시 그때는 알까요?^^
명사로서 無가 心은 되지못하나요?
@인향만리 아마 살아서 모르면 죽어도 모를걸요.
총량 불변의 법칙에서 출발하면 모든 옛 사람들이 한 말들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싶네요.
일체유심조 마음먹기에 따라 지어진다.
돈이 좋아 돈을 가졌더니 있던 친구가 없어지더라.
무언가를 가지면 무언가는 잃을 것이 분명한 이치인데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잃을 것인지는 본인의 마음먹은 대로 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파랑색 빨강색은 별로이고 보라색을 좋아 했는데 각각의 색소
를 떼어놓고 보니 빨강색 분자는 그대로 빨강색이고 파랑색은
그대로 파랑색이더라.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든 나를 감싸고 있는 우주의 양이나
성질은 변하지 않는데 세가지 삼원색 칼라로 조합할 수 있는 색은
1600만 가지나 되는 만큼 각각의 인생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의 어떤 좋은 말도 답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단지 답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줄 뿐이지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그리는 화가와 같은 입장이 아닐까요......^^
아니 위에다가 설명했는데 왜 딴소리하세요.?
일체유심조는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아니라고 말했자나요. 참나.
멋진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인생에서만요~^^
@올빼미 우주도 아닌 당신이 인식하는조그만 세상은 당신의 마음이 만들어내것에 불과하다는 말이고
이는 물질계가 그렇다는것이 아니라
당신의 인식 체계가 그렇다는 말이라고요. 참나. 답답하네.
@올빼미 일체유심조를 두번 말씀하셔도 되는데~ㅎ
앗 더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네요~
@인향만리 글 쓰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
@올빼미 다시 무로 돌아가서요.
@올빼미 네~ 그러는군요~
솔직히 저는 모르고있습니다.
영혼없는 얘기를 써서그럴까요?
혹시 진실하지 못해서 그럴까요?
@올빼미 진짜로 아파보면 알게 됩니다.
@올빼미 죽음에 직면 해보거나.
@올빼미 무?를 알게된다는 말씀이신거죠?
@인향만리 아니 바로 윗글에 대한 대답이었고요
@올빼미 무를 알고자 한다면
살아있으면서 죽으면 알게 됩니다.
@올빼미 제법무아 라고 하는거죠.
@올빼미 네 글쓰는 것이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는 것을 진짜 아파보면 알게된다~.~.
@인향만리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아니잖아요. 지나간거 패스 해요 그냥
@올빼미 오늘의 핵심입니다.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을수 있는자만이
천부경을 해석할수 있다 입니다
@올빼미 제법무아...변하지 않는 나라는 실체는 없다. 인연따라 생겨나서 변하는 존재일뿐...
그러니 나라는 집착을 버려라~
@올빼미 언어적인 해석은 무의미합니다.
@올빼미 경험해라? 실천해라?
@인향만리 아니 아니고요.
내가 없을때 진리를 이해한다가
제법무아 뜻입니다.
@올빼미 내가 있는한 진리는 안보인다 이말입니다.
@올빼미 네 나라는 것이 없을 때
그 집착에서 자유로울 때...
고맙습니다~
@올빼미 내가 죽어야 살수 있다는 말이죠.
@올빼미 그러면 경이로운 무 를 알게되고
그때 천부경을 논하세요
@올빼미 네 무슨 말씀인지 조금 이해가 됩니다
@올빼미 선생님 오늘도 가르침 고맙습니다~
@인향만리 잠시만요
@올빼미 제행무상은 영혼따위 없다라는 뜻입니다
@올빼미 불경에 다 나오는건데 아직도 영혼타령하면 안됩니다.
@올빼미 저는 굳이 영혼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은 내 몸에 있지만 미래에도 그 영혼이 지금의 나라는 생각조차도 없겠지만...
@인향만리 ㅎㅎㅎ 네 그만 쉬시죠.
@올빼미 담에 또 봐요.
@올빼미 넵 고맙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걍 무시하세요 시시콜골한 답변 다 대꾸해주는걸보면 정말 대자대비하시네요
참으로 깊은 知識에 歎服합니다, 어디서 그런 지식을 배웟나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