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AFC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지막 6차전을 앞둔 가운데 FC서울(이하 서울)은 조 1위로 16강 진출 확정, 전북현대모터스(이하 전북)는 6차전 후 진출 여부가 결정되지만 조 1위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수원삼성블루윙즈(이하 수원)는 5차전에서 감격의 첫 승을 거두며 실낱같은 기회를 기다리며 조 3위에 위치했고, 포항스틸러스(이하 포항)는 손준호의 부상 이탈 등 악재를 견디지 못하고 탈락했다. 운이 따른다면 K리그 팀 중 세 팀이 16강에 진출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한 팀만 진출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를 두고 '부진'을 논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 해도 K리그를 대표한 4팀이 모두 조별 예선을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탈락팀이 벌써 나왔으니 '부진'해 보이긴 한다. 2014년 서울이 4강, 2015년 전북이 8강에 진출한 지난 2년의 성적이 과거에 비해 부진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2년간의 부진을 위기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을까. 우선 부진을 논하기엔 그 판단의 2년이란 '시간적 단위'가 너무 짧다. 부진을 논하려면 K리그의 전체적인 수준이 정말 떨어진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나아가 위기를 논하고자 한다면, K리그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부터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 2016 AFC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4승 1무로 독주하며 16강을 확정 지은 FC서울. 전북과 함께 K리그의 양강으로 꼽히며,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모두 순항하고 있다. 출처:AFC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1. K리그는 정말 부진한가. 경쟁이 치열해진 AFC챔피언스리그
우선 K리그의 성적이 정말 우려할만한 상황인가 돌아보자. 중국슈퍼리그와 일본J리그의 성적표를 돌아보자. 많은 투자가 이어진 중국슈퍼리그에서도 탈락팀이 나왔다. 디펜딩챔피언 광저우에버그란데(이하 광저우)가 충격적인 탈락을 맞이했다. 산둥루넝과 상하이상강은 16강 진출을 확정했고 장쑤쑤닝이 6차전의 결과에 진출 여부가 달려있다. J리그의 경우는 더 상황이 좋지 않다. 우라와레즈의 진출이 확정된 와중에 FC도쿄는 남은 6차전 경기 결과에 진출 여부가 걸렸고, 감바오사카와 산프레체히로시마는 탈락이 확정되었다.
J리그는 이번 시즌 조별리그에서 단 1팀도 조 1위에 오르지 못했다. K리그의 부진을 논하고 싶다면 J리그의 몰락부터 논하는 것이 맞다. J리그 팀들이 어려운 경기를 치르고 있는 것은 우리 K리그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어려운 경기를 치르는 것과 이유가 다르지 않다.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과거 축구 변방으로 여겨졌던 리그들이 더 이상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무엇보다 중국슈퍼리그 팀들은 비싸지만 능력을 갖춘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하고, 요소요소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쿼터 선수들을 기용해서 안정감을 높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타 리그의 성장으로 K리그와 J리그가 예전처럼 위세를 떨칠 수가 없다. 또한 AFC에서 챔피언스리그의 위상 제고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챔피언스리그 참가에 재정적 이득이 따르면서 대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K리그만 유난히 부진한 게 아니다. 이미 AFC챔피언스리그도 어떤 팀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치열해졌다. 광저우의 탈락은 이를 반증한다.
K리그에서 지나치게(?) 많은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2009년 포항(우승), 2010년 성남(우승), 2011년 전북(준우승), 2012년 울산(우승), 2013년 서울(준우승)을 기록하며 사실상 아시아 무대를 지배했다. 챔피언스리그로의 개편 이전까지 포함하면 수원과 부산도 아시아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다. 요컨대 K리그엔 절대 강자가 없이 누가 나와도 아시아 무대를 ‘씹어’먹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시대는 흘러갔다.
2. K리그 구단의 재정 축소
결국 원래부터 치열했던 K리그와 더욱 치열해진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도 성적을 낼 수 있는 스쿼드의 ‘질’과 ‘깊이’를 모두 갖춘 ‘빅클럽’이 필요하다. 현재 그런 전력을 구축한 팀은 현재 서울과 전북 두 팀이다. 실제로 K리그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에서 거둔 성적을 보면 현재 K리그의 순위와 똑 닮아있다. 나란히 K리그 1, 2위를 달리는 서울과 전북은 16강을 목전에 둔 반면, 리그에서 좀처럼 승리를 올리지 못하는 수원과 포항의 경우 조별리그에서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수원과 포항의 경우 전력 누수에도 불구하고 전력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스쿼드가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분명 투자 부족이 원인이다.
K리그는 지금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과거 독재자의 눈치를 보며, 기업의 퍼주기 식 지원을 통해, 돈이 많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축구에 대한 애정 때문에 팀을 꾸려가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기업이 구단을 통해 기업을 알리고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 역시 주요 목표겠지만, 이미 투자 규모에 맞게 수익을 내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다. 구단의 입장에선 위축된 투자에 안타깝겠지만, 어찌 보면 구단 경영의 합리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K리그 팀들의 자립이 쉽진 않다. 아직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팬들과 가까워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리그에 큰 돈이 구른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일 수 있지만, 투자가 없다고 해서 리그의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광저우의 적자가 우리 돈으로 약 1천67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치적 논리와 함께 적자를 감수하고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것이 영원할 순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K리그의 토대, 즉 팬과의 유대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팬들과 유대가 강한 잉글랜드 팀들이 외부 투자로 팀의 성적을 올리는 것과 현재 K리그에서 외부 투자로 팀의 성적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성남일화는 구단주의 투자를 통해 K리그와 아시아 무대를 호령했지만, 성남 시민들과의 유대감은 턱없이 약했다. 성남일화가 문선명 씨의 사망 후 겪어야 했던 일을 바라보며 축구팬들의 마음은 씁쓸했다. 풀뿌리에서부터 지지를 받는 K리그 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K리그와 각 구단들이 이 과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진정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K리그의 존재 기반이 팬이란 것을 잊었을 때가 정말 위기가 될 것이다.
최근 서울과 전북의 약진이 반가운 것은 단순히 투자에서 나오는 성과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서울과 전북은 K리그에서 가장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팀이다. 단순 이름값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 이룬 결과가 아니다. 이미 텔레비전에서 메시와 호날두를 매주 볼 수 있는 국내 축구 팬들에게, 데얀이나 김보경은 놀라운 영입은 아니다. 팬들에게 다가가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고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으기 위한 노력이 투자에 따른 성적과 함께 시너지를 발휘했다. 두 팀은 이번 시즌 나란히 성적처럼 평균 관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팀으로 평균 1만 7천명 이상의 관중을 기록하고 있다.
3. K리그의 홀로서기와 자존심 지키기
부진한 성적이 장기간 동안 이어진다면 팬들의 마음이 떠날 것이다. MSN을 보유한 FC바르셀로나도 탈락하는 것이 토너먼트이다. 당연히 K리그 팀들도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언급한대로 예전과 같이 성적을 강요하는 것은 이미 강팀들간의 전쟁이 되어버린 챔피언스리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런 부진이 이어지면 K리그의 위상도 당연히 하락할 것이다. 하지만 K리그의 엄청난 전력 약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특히 이번 시즌 서울의 전력은 우승을 노릴 만하다. 전북 역시 점점 선수들의 발이 맞아가면서 경기력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워낙 전력이 탄탄하기에 우승 도전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북이 시즌을 앞두고 공격적인 영입을 했지만 중국 리그처럼 이적 시장의 '큰 손'이라고 할 팀은 없다. 서울은 어린 선수들의 성장과 함께 요소요소에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해서 전력을 강화했다. 성남FC, 수원FC 같은 시민구단들도 조직력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처럼 거대한 투자가 없는 와중에도 K리그는 좋은 축구를 보여주고 있다. 투자가 줄었지만 당장 성적이나 전력 약화를 논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당분간 K리그를 양분하고 아시아 무대에 지속적으로 도전할 두 팀, 전북과 서울의 존재는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을 것이다. 모기업의 투자도 기대할 수 있는 ‘진짜배기’ 빅클럽의 등장은 K리그로서도 반길 일이다. 두 팀이 전성기를 보내며 국내와 아시아에서 K리그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안 K리그 3위 그리고 FA컵 우승을 두고 다른 팀들이 조금 치열하게 경쟁하는 양상도 나쁘진 않다. 전북과 서울 외의 팀들이 아시아 무대에서 경험도 쌓고, 챔피언스리그의 금전적인 이득도 누리기 위해 펼치는 경쟁도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아틀레티코마드리드의 등장 이전까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철저한 양강 구도를 이뤄왔지만, 누구도 이를 두고 위기라고 하지 않았다. 확실히 성적을 내는 팀이 있고, 나머지 팀들은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이제 K리그는 홀로서기에 막 시작한 단계이다. 구단의 풍족한 지원으로 좋은 선수들을 사모을 수 있는 팀은 전북과 서울(혹은 울산?) 정도를 제외하면 없다. 다들 마케팅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분명 고난의 길이 되겠지만 우리나라 축구계를 더욱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이것은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는 과제이고,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K리그 구단들이 나아갈 방향이다.
(△ 경기장을 가득 메운 '승격팀' 수원FC의 홈 개막전 '깃발라시코'. K리그에도 점점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있다. 출처:수원FC 홈페이지)
아마 K리그의 어느 팀이 아시아 무대에 나가도 ‘깡패’처럼 마구 때려부수고 다니는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찬란한 위엄에 향수를 느끼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아시아의 타 리그들이 성장했고,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전 아시아 축구계의 관심이 높아졌고, K리그는 자생을 위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상황이 크게 변했는데 아시아 무대에서의 성적만을 두고 절대적인 부진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만주벌판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치세가 그립다고, 지금은 왜 만주벌판으로 못 가냐고 묻는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K리그의 발전은 결코 성적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K리그의 나아갈 길은 자립을 위해 지역 내의 팬들에게 얼마나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에 있다. 다행인 것은 투자가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올 시즌 평균 관중은 K리그 클래식 기준으로 1500명 정도 증가했다. 이는 K리그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는 것, 그리고 빠르진 않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적’이 부진하다며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K리그를 흔드는 일이다. 이미 K리그는 지향하는 목표에 맞는 노력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성적이 그리 나쁘지도 않다. 이번 시즌 전북과 서울은 이미 우승 후보로 꼽힐만한 팀이다. 위기를 맞았다기보다는, 누군가가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우수한 학교 성적이 바르고 건강한 사람이란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K리그가 성적만 잘 나오는 허약 체질보단, 성적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잘 갖춘 존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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