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루돌프 폰 골덴바움, 지기스문트 1세
각각 40억, 5억을 죽였고 추가로 지기스만트 1세는 100억명에 달하는 사람을 노예나 다름없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은하제국 초기 인구가 3천억명이었던걸 감안하면 전인구의 10% 내에 속합니다.(물론 많지만)
현실에서는 마시아스 응게마라는 더 미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적도기니의 독재자였는데 단 11년만을 통치했을 뿐이지만 이 기간동안 적도기니의 인구는 30만에서 15만으로 감소했는데 5만명이 살해당하고 10만명이 망명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에 내전도 없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건 전적으로 응게마의 행적으로 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죽여서 예를 들어 그가 집권하고 1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내각진에 있던 12명 중 10명이 살해당했고 정치인과 판사들도 대거 살해당하거나 망명해서 사법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의원들 역시도 2/3이 얼마 못가 살해당했고 반체제 인사가 숨어든 마을이 있으면 그 마을의 사람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하였는데 그 외에도 온갖 폭정을 행했고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아프리카의 폴 포트(캄보디아 독재자, 킬링필드 주도)'입니다. 다행히 죽을 때까지 잘먹고 잘산 루돌프나 지기스문트 1세와는 달리 응게마에 의해 동생을 잃은 오비앙 응게마(이름 보면 짐작되듯 마시아스의 조카입니다.)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 실각하고 곧 총살당합니다.(정작 이렇게 집권한 오비앙도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입니다.)
3. 오토프리트 1세
철저히 일정에 맞춰 산 사람으로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칸트(철학자)가 비슷합니다. 칸트는 철저히 규칙적으로 살았고 때문에 사람들은 칸트의 일정에 따라 스스로의 시계를 맞추곤 했습니다(당시 시계는 시간이 좀 틀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오토프리트 1세가 일생에 걸쳐 스스로 읽어본 책이 2권이듯 칸트 또한 규칙에서 어긋난 적이 2번 있었는데 하나는 장 자크 루소의 저작인 에밀을 읽었을 때와 프랑스 대혁명 소식을 신문으로 접했을 때였다고 합니다.
4. 카스퍼
애인에 빠져 왕관을 내던진 황제로 현실에서는 영국의 에드워드 8세나 루마니아의 카롤 2세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그래도 카스퍼는 퇴위한 후 조용히 사라져서 악행은 안 저질렀지만 에드워드 8세는 친나치 성향 행적을 저질렀고 카롤 2세는 다시 돌아와서 아들(카롤이 왕위를 버리고 떠나서 아들이 즉위해 있었습니다.)을 내쫓고 자기가 왕이 되어 폭정을 저질렀으며 끝내 나치의 편에 서 나라를 말아먹습니다.
5. 지기스문트 2세
대단히 사치에 빠진 황제로 현실로 치면 이멜다 마르코스가 비슷합니다. 이멜다는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내로 마르코스가 몰락할 때 그녀의 사치행각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멜다가 수집한 사치품들은 최고급 브랜드의 구두가 3000켤레였고 최고급 의상이 수백벌, 루이비통 손가방 한가득, 최고가 파티용 장갑 68벌, 유명 브랜드 팬티 3500장, 최고급 이브닝 가운 2000벌, 최고급 브래지어 500개, 최고급 가발 30개, 스타킹 200개, 보석 수백개, 최고급 신상 명품 가방 잔뜩이었으며 청구서에 따르면 하루에 300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아서 이멜다가 산 곳은 이탈리아산 대리석 바닥이며 천장은 수정 샹들리에, 욕실에는 100% 순금 세면대, 침대에는 자신의 황금 동상이 있었고 필리핀의 관광지 중 코코넛 궁전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도 이멜다가 자신의 사치욕을 위해 건설한 것으로 이거 짓는데 400억이나 들었습니다. 해외 순방을 할 때는 전용기 2대를 동원했는데 2대나 동원한 이유는 1대에는 자신의 드레스와 여행용 가방 수백개를 넣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파티장을 수십개나 짓고 파티를 하다 설탕이 떨어지자 군용 헬기를 동원해 가져왔으며 파티광이라 끊임없이 파티를 열고 엄청난 돈을 써댔으며 뉴욕에서 있었을 때는 수행원 40명이 그녀의 300개에 달하는 옷가방을 들어야 했고 5천달러어치의 꽃을 매일 주문했으며 아파트를 구입하곤 인테리어 비용으로 150만 달러를 지불했고 500만달러어치 여행을 했고 맨하튼에 있는 건물을 사기 위해 1억 2천만 달러를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려도 문제가 심했지만 이 사람이 한 짓거리도 당연히 큰 문제였고 안 그래도 개발도상국이던 필리핀을 철저하게 말아먹었습니다. 결국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마르코스는 21년만에 퇴임하고 이멜다 또한 물러나야 했는데... 2022년, 그녀의 아들 봉봉이 필리핀의 대통령이 됨으로서 다시 귀환하여 또 사치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정작 마르코스는 물러나고 3년 뒤 사망했습니다.)
6. 아우구스트 2세
6년간 600~20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학살한 황제로 이에 비빌만한 인물로는 송후폐제가 있습니다. 남북조 시대의 남조 국가의 첫번째 왕조인 송나라의 황제였는데 그도 아우구스트 2세처럼 잔혹한 학살자였습니다. 사서에 따르면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즐거워하지 않았고 사람을 그냥 죽이는게 아니라 토막내 죽이는걸 즐기는 인간이었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사람은 즉위했을 때 9세, 사망 당시 14세로 사실 5년이나 재위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무수한 악행을 저질렀고 결국 그 또한 살해당하며 그의 죽음을 계기로 송나라는 급격히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7. 프리드리히 3세
억지로 총애하는 아들을 사령관으로 삼았다가 다곤 성역 회전을 말아먹은 황제로 이에 비빌만한 인물은 아마도 선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유야 뭐,,, 게다가 선조의 경우 인선 하나 잘못 했다가 나라가 망할 뻔 했으니 프리드리히 3세보다 더 큰 실책을 저질렀습니다.(다만 선조가 더 나은 점은 평소에 선조가 사람을 쓰는 솜씨는 좋은 편입니다.)
8. 구스타프
매우 허약했다고 나와있는데 그래도 구스타프는 몸이 허약한 것이지 정신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니 정상인 편입니다. 동진의 마지막 황제나 다름없는 사마덕종은 구스타프보다도 심하여 사서에 따르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더위, 추위, 배고픔을 모르며 식사와 용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로 치면 지체장애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할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본인이 황제인건 맞지만 정사는 다른 사람이 돌봤습니다.
그리고 최후 또한 좋지 못했는데 찬탈을 꾀하던 유유가 그를 살해했습니다.(그리고 얼마 안가 송나라를 세웁니다, 즉 후폐제는 유유의 후손입니다.) 사실 보통 이정도 장애인을 살해하는건 욕먹을 짓이지만 중국에서는 선양의 과정을 거쳐 찬탈을 하는데 선양을 하기 위해서는 현임 황제가 스스로 자리를 바치는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데 일상 생활조차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을 상대론 그럴 수 없으니 살해한 것입니다.
9.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는 재위 중 음모로 인해 시각장애가 되었다면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이사키오스 2세는 아얘 눈이 없는 황제입니다. 정확히는 1차 재위때는 정상이었는데 그 때에 저지른 실정으로 형에게 폐위당하며 눈이 뽑혔는데 8년 뒤 어쩌다가 복위됩니다. 허나 얼마 못가 폐위당해 사망합니다.
10, 만프레트 2세
동맹으로 망명해서 자랐다가 귀국해 황제가 된 인물인데 현실에선 진문공이 있어서 그는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동안 적나라, 위나라, 제나라, 조나라, 송나라, 초나라 6개국을 방랑한 끝에 고국인 진나라로 돌아와 군주가 되었습니다. 만프레트 2세처럼 진문공도 재위기간이 짧아 8년밖에 재위하지 못했으나 그는 그 8년 사이에 흔들리던 진나라를 일으켜 세웠고 이후 진나라는 춘추시대의 최강국 중 하나로 우뚝 솟아오르며 이 때문에 진문공은 제환공, 초장왕 등과 더불어 춘추오패로 꼽히며 제환공과 함께 춘추오패로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람입니다.
11. 오토프리트 4세
색욕이 엄청나 후궁이 1만명이며 자식이 600명이 넘었는데 현실에서는 서진의 초대황제 사마염이 후궁 1만명을 달성한 바 있고 또한 바쿠바족(자칭 쿠바 왕국)의 왕인 르켕으로 그는 아내는 800명 밖에(?)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2천명이나 되었는데 당시 바쿠바족의 인구는 5만명이었습니다.
12. 오토프리트 5세
이때까지 누적된 제국재정의 적자상황을 흑자로 돌려놓은 인물인데 현실에선 일본의 도쿠가와 요시무네나 우에스기 요잔이 비슷해서 이 둘도 적자재정을 흑자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한 사람들로서 특히 요잔의 경우 그가 맡고 있던 요나가와 번은 조상인 우에스기 카게카츠 때부터 지속적인 재정압박과 적자에 시달려 한때는 영지를 포기할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막장이었으나 요잔은 단 15년만에 모든 적자를 해소해버렸는데 어찌나 풍족해졌던지 요잔의 시기에 일본은 텐메이 대기근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전국적인 대기근임에도 불구하고 요잔의 요나가와 번(을 포함한 4개 번)은 대기근을 피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