耳石
― 김지녀
이것은 귓속에서 자라나는 돌멩이에 관한 기록이다
귓가에 얼어붙는 밤과 겨울을 지나 오랫동안 먼 곳을 흘러 왔다
시간을 물고 재빠르게 왔다 부서지는 파도의 혀처럼
모든 소리들은 투명한 물결이 되어 나에게 와 덧쌓이고
뒤척일 때마다 일제히 방향을 바꿔 내 귓속, 돌멩이 속으로 돌돌 휘감겨 들어간다
이것은 소리가 새겨 놓은 무늬에 대한 기억이다
돌멩이의 세계에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창문을 닫고 누워 처음으로 지붕이 흘려보내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캄캄한 밤을 떠다니는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다 몸에 붙어 있는 비늘을 하나씩 떼어 내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 지붕에 가닿을 듯 그러나 가닿지 못하고 지붕 위에서 소리들은 모두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사라졌다 빗소리가 해를 옮기는 동안, 내 귀는 젖어 척척 접히고 나는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아 갔다 천천히 단단해지며 돌멩이가 또 한 겹, 소리의 테를 둘렀던 것이다
언젠가 산꼭대기로 치솟아 발견될 물고기와 같이, 내 귓속에는 소리의 무늬들이 비석처럼 새겨져 있다
해양과학용어사전에 따르면 ‘이석(耳石)’이란 동물의 속귀에 들어 있는 칼슘카보네이트 성분의 평형석으로 동물들은 이를 통해 평형을 유지한다. 특히 어류의 경우에는 이것으로 연령, 서식처 환경을 알 수 있음은 물론 계군을 분리하는 데에 근거가 되기도 한단다. 김지녀의 시 <耳石>에서는 이를 시인의 귓속에 있는 ‘소리의 무늬’로 파악한다.
이 시의 형식은 좀 특이하다. 전체 다섯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상 1, 2연과 3, 4연 그리고 5연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1, 3 연의 제시를 2, 4 연이 설명을 하고 이어 5연에서 이를 통합한다. 시를 보자.
화자는 ‘耳石’을 ‘귓속에서 자라나는 돌멩이에 관한 기록’이라고 단정한다. 이어 2연에서 이를 설명하는데, 화자의 귓속에서 자라는 돌멩이에는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이 ‘돌돌 휘감겨 들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3연에서는 이석을 ‘소리가 새겨 놓은 무늬에 대한 기억’이라 단정하고 이어 4연에서 이를 설명한다. 즉 화자는 처음에 한 마리 물고기였는데 이후 ‘비늘을 하나씩 떼어 내고’ 화자의 귓속 돌멩이가 ‘소리의 테를 둘렀’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근거로 화자는 자신의 ‘귓속에는 소리의 무늬들이 비석처럼 새겨져 있다’는데 그것이 바로 ‘耳石’이라는 설명이다. 즉 화자는 ‘耳石’을 ‘귓가에 얼어붙는 밤과 겨울을 지나’온 모든 소리들이 ‘돌돌 휘감겨 들어’와 테를 두르며 ‘귓속에서 자라나는 돌멩이’라고 한다. 화자는 이를 통해 ‘소리가 새겨 놓은 무늬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의 ‘귓속에는 소리의 무늬들이 비석처럼 새겨져 있다’는 주장이다. 화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耳石’은 단순히 귓속에서 몸의 평형을 유지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즉 화자의 과거와 현재를 소리와 무늬로 저장해 놓은 ‘블랙박스’가 바로 ‘耳石’이란 주장이다.
건강한 사람들도 종종 ‘이석증’을 겪는단다. 갑자기 귓속에 통증을 느낀다거나 어지러워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는 몸의 평형을 유지해주는 이석에 이상이 생긴 때란다. 분명 이석은 우리 귓속에 있는, 우리들의 몸을 바로 서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 발로도 똑바로 설 수 있게 해주고, 특정 방향을 향해 곧게 나아갈 수 있게도 해준다. 그런 평형 기관을 넘어 이석을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장치라 해석하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다.
시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사물이나 관념에 대한 재해석’이다. 즉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일종의 고정관념 그리고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인식 수준을 뛰어 넘어 새롭게 가치판단을 해 주는 경우이다. 김지녀의 시 <耳石>은 바로 ‘이석’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 몸의 평형을 유지해주는 기관이란 생각을 뛰어 넘는다. 과거와 현재를 소리와 무늬로 기록해 놓은 돌멩이란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인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시인만의 상상력이요 통찰력이다.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는 블랙박스 - 문득 내 귓속 ‘이석’을 언제 한 번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
[출처] 김지녀의 <耳石>|작성자 이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