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 3,4위 전이 끝난 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황선홍과 홍명보의 손을 들어주어 관중의 환호를 유도하는 장면은 한국 축구를 10년 이상 끌어온 두명의 신화적 존재를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기는 동시에 새시대의 주역을 맞아야 하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었다.
황선홍은 이미 대표팀 은퇴와 더불어 올해말이 자신의 선수생활의 마지막이라고 공언했고 홍명보 또한 아무리 길게 잡아도 내년부터는 대표팀에 소집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었기에 이들의 빈자리는 당분간 너무도 커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아테네 올림픽과 독일월드컵의 유망주들은 선수자신들의 노력여하 또 우리 국민들이 쏟아붇는 애정여하에 따라 선배들을 충분히 능가하고도 남을 재목들이라 생각하기에 지금 한창 필자의 머리 속에 떠다니는 "될성부른 떡잎"들에게 격려와 채찍의 말을 전하고 싶다.
p.s-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내가 예전부터 나의 고3 시절 주변 사람들에게 '이천수'를 기억하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나중에 이천수가 뜨고 '이천수가 누구냐?'라고 물어볼 때 황당했다.(니들은 아니구...) 암튼 니들은 글로 이렇게 남기니 기억하고 지켜봐라. 신동근, 권집, 김근철! 내가 미는 유망주 3인방이다.
1. 19세 이하 선수들
김영광(1983/06/28) - 현재 청소년 대표팀 주전 골키퍼를 맡고 있는 염동균과 동갑이며 소속팀도 전남드래곤즈로 같다. 마치 울산에 같은 적을 두고 있던 김병지와 서동명의 관계와 유사한데, 전남에서는 두 선수를 모두 청소년팀에 보낼 수 없다고 하여 염동균을 전남에 합류하도록 조치했다는 후문. 1998년 16세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출전했으며, 당시 매산중 3학년으로서 주전 골키퍼였던 김영광에 대해 기영옥 감독은 '우리팀에서 믿을 선수는 골키퍼뿐이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기량이 안정적이다. 현재 염동균이 국대 파트너로 활약하며 김영광보다 높은 점수를 얻고 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김영광의 플레이에 받은 임팩트가 솔직히 더 크다.
임유환(1983/12/02) - 광양제철고를 졸업하고 한양대에 입학한 주전 중앙수비수. 현재 '제2의 홍명보'란 찬사를 듣고 있으며 대학무대에서 그의 수비력은 정평이 나있다. 2000년 19세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최성국과 함께 출전한 경력도 있는, 나이에 비해 노련성이 돋보이는 선수. 두뇌회전이 빠르고 위치선정이 탁월한 수비리더이다. 박용호가 잠머에 가까운 선수라면 암유환은 공격가담은 거의 하지 않는 노보트니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효진(1983/04/25) - 이번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게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허용만 하면 불안에 떨어야했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여효진의 등장으로 다음 월드컵에선 말끔히 씻어줄 것이라 믿는다. 드디어 우리나라에 잉글랜드의 캠벨이나 프랑스의 드사이, 네덜란드의 스탐처럼 190cm대의 초대형 센터백을 갖추게 될 것이란 사실. 히딩크의 평을 듣자면 장신임에도 유연한 몸과 안정된 기본기도 갖추었기에 "왜 이런 선수를 이제야 대려왔느냐"며 아쉬워했다고 하던데.....히딩크의 평가가 그 정도면 여효진 선수의 앞날은 밝은 것 아닐까? 대신고 재학시절 고교 최고의 수비수로 지목되었으며 큰 키에도 불구하고 발기술이 좋다. 다만 지난 아르헨티나 전을 미루어보아 순발력이 약간 부족해 보이는데 아직 어린만큼 본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듯.
권집(1984/02/13) - 동북고를 졸업하면서 국내팀들의 영입경쟁을 뿌리치고 독일로 가서 기어코 FC 쾰른 아마추어 클럽에 둥지를 튼 선수. 아직 프로선수로 계약을 맺지는 않은 처지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쾰른 입단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된다. 어렸을때부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명문팀들에게 입단 제의를 받을만큼 기량과 잠재력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일선지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덴마크와 벨기에의 전설이었던 미카엘 라우드럽, 엔조 시포처럼 90분동안 전혀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평가이다. 필자가 이 선수를 처음본 것은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 경기였다. 당시 필자는 '해트트릭 머신'이란 평가를 들으며 수원 삼성과 중학생의 신분으로 계약한 정윤성이라는 스트라이커에 주목을 하고 있었지만, 경기후에는 정확한 패싱과 키핑력을 지닌 권집이 오히려 기억에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경기 모습을 보지 못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높게 평가받아온 잠재력에 유럽에 축구를 배우기 위해 건너간 열정이 보태졌으니 분명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호(1984/10/22) - 브라질 유학을 마치고 중동고 3학년으로 복귀한 의지의 선수. 그후 브라질 유학 동기인 송한복, 이진호 등과 함께 이탈리아 세리에A 키에보 베로나 청소년 클럽 테스트에 응시, 이진호와 함께 합격 판정을 받은 유망주이다. 2000년 16세 대표팀에서 권집과 함께 미드필드를 좌우했던 선수로 경기를 읽는 눈이 빠르고 정확하다.
김근철(1983/6/24) - 풍생고 졸업 즉시 J리그 명문클럽인 주빌로 이와타에 스카웃된 유망주. 이미 김근철은 "드디어 한국에도 제대로된 공격형 미드필더가 나왔구나"란 평가를 들으며 고교 시절부터 축구관계자들을 가슴설레게 했던 유망주로, 기술은 기본이고 좋은 체격조건과 거친 몸싸움도 마다않는 근성이 기존의 윤정환과 고종수처럼 반쪽짜리로 묻혀버리지는 않을것이란 희망도 주었다. 물건을 보는 눈이 까다로운 일본, 그중에서도 최고의 명문팀에서 공들여 스카웃할 정도면 그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다고 본다. J리그 내에서도 톱클래스 유망주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만간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할 전망이다. 경기를 읽는 눈이 뛰어나며, 왕성한 기동력으로 팀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얌전한 플레이스타일에 가까운 권집보다는 상당히 공격적인 스타일, 수비형 미들보다는 현대축구의 공격형 미들쪽에 가까운 선수다
고창현(1983/9/15) - 이 나이 또래 국내선수 중에서는 최고수로 꼽히는 플레이메이커. 유망주가 많은 수원에서도 가장 첫손가락에 꼽히는 선수로 프로 데뷔전이던 아시안클럽컵 동아시아 4강전에서 고종수 대신 플레이메이커를 맡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며 주목받은 바 있다. 지난해 금호고를 대통령금배 우승으로 이끌면서 일찌감치 '제2의 고종수'로 평가받은 고창현은 뛰어난 순간 스피드와 슛 감각, 그리고 돌파력까지 갖춘 팔방미인이자 재간둥이다. 19세 팀에 소집되기만 하면 부상이 악화되어 중도탈락 하곤 하지만, 지난 아르헨티나와 2차 평가전에 출전해 코너킥 등을 전담하며, 정확한 패스와 유연한 드리블링을 선보였다. 단단한 체격에 노련미마저 풍기는 선수로 고교시절 뛰어난 크로싱으로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으로 기억한다. 수원 소속.
이종민(1983/09/01) - 현 19세 청소년 대표팀에서 최성국, 정조국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으며, 주목하고 있는 선수이다. 고창현과 함께 차세대 수원의 미드필드를 책임질 선수로, 김호 감독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100미터를 11초6에 뛰어 팀 내에서 가장 빠르며, 스피드를 살릴 줄 아는 드리블 돌파와 정확한 크로싱 능력을 보유했다. 원래 오른쪽 윙이지만 팀사정상 좌, 우, 중앙 모두 가리지 않고 뛸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보유했다.
이산(1985/10/05) - 현재 19세 팀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유럽 프로무대에서 정식 프로선수 자격증을 갖고 있는 유망주. 중동중학교를 중퇴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기어히 프로선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으로 전통이 있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키우고 있어 전도가 유망한 선수이다. 그러나 19세 팀에서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는 더 두고보아야 할 듯 보인다. 아직 플레이하는 모습을 한번도 지켜보지 않아 평가는 유보이다.
오장은(1985/07/24) - 중학교 시절 국내 무대를 평정한 공격형 미드필더. 2000년 15세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치며 벨기에 2군리그 몰렌빅클럽 주니어팀에서 활약한바 있는 유학파 선수이다. 2001년 8월 일본무대에 진출, 도쿄FC 유스팀 멤버로 등록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올시즌 이나모토가 갖고 있던 최연소 출장 기록을 갈아치운 선수로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정교한 패스와 미드필더임에도 빼어난 결정력을 장점으로 하지만, 승부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조원광(1985/08/23) - 안양소속의 공격수. 한때 인터넷 축구게시판을 떠들썩하게 만든 바 있는 '인터 밀란, 아스날, 그리고 귀화를 전제로한 맨체스터로의 입단 제의를 받은 한국의 천재 선수'가 바로 이 선수이다. 이 선수는 나이에 비해 건장한 체격과 빠른 스피드,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개인기에 센스와 경기를 읽는 눈까지 지녔다는 평가를 지니고 있다. 경기중 근성을 갖추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큰 염려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현재 안양LG에 소속되어 유학을 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산과 조원광 두 동갑내기 선수 모두 현재 19세팀에 발탁되어 있지 않지만, 두 선수는 앞으로 주목의 대상이 될만하다고 판단된다.
김성길(1983/07/08) - 한양공고를 중퇴하고 J리그 2부팀인 오이타 트리니타에 스카웃된 유망주. 한양공고 시절 선배인 이관우를 연상시키며, '제2의 이관우'란 평가를 들었다. 빠르고 기술있는 선수로 경기 경험만 쌓는다면 J2에서 J1으로 올라가며 스타에 반열에 오른 박지성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성국(1983/02/08) - 유망주를 넘어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 선수. 지난 3, 4월엔 한반도를 떠들석하게 했던 선수는 다름아닌 최성국이었다. 심지어 월드컵 기간에도 "터키전엔 미래를 위해 최성국을 한번 기용해보자"는 목소리도 있었을 정도였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훈련멤버로 대표팀에 있는 동안 히딩크에게 누구보다도 욕을 많이 먹은 동시에 히딩크를 가장많이 미소짓게 했던 선수가 바로 최성국이라고 들었다. 볼이 발에 붙어다니는 듯한 드리블과 공을 갖고 뛸 때 더 빠른 동작을 보여주는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유망주. 70년대 한국 축구의 공격수였던 박이천 정명고 감독이 지도자 생활 중 발견한 최우수선수라고 격찬할 정도이다. 키가 작지만 점프력이 좋아 헤딩볼도 곧잘 따낸다. 19세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서 한국축구가 갖지 못한 테크니션 포워들서 성장하길 바란다. 긴말은 않겠다. 마라도나가 돼라!!!!!
정조국(1984/04/23) - 황선홍의 뒤를 이을만한 자질을 입증하고 있는 19세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단순한 유망주라고 평하기엔 이미 너무도 스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일본과 중국 청소년 팀을 상대로 골을 뽑았다고 해서 세계적인 스트라이커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황선홍도 최용수도 이동국도 그리고 김은중까지...한국에서 스트라이커 대접받는 선수치고 일본과 중국전에서 골을 뽑지 못한 선수는 없었다. 그런 국가들과의 대결에서 골을 낚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신고식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가 정조국에 그렇게 기대를 거는 것은 위 선수들이 갖추지 못한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아무도 하지못한 5회 연속 고교 대회 득점왕이란 찬란한 커리어를 갖고 있기에... 어린 나이지만 공간 창출력이 우수하고 우수한 슛팅 능력을 갖고 있다. 히딩크 역시 차세대 킬러로 이 선수를 지목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185cm의 신장이지만 계속 크고 있어 조만간 190cm에 달할 듯.
2. 23세 이하 유망주
신동근(1981/02/15) - 연세대 소속의 멀티플레이어. 개인적으로 이 선수를 볼 때 면 공격형 미들, 중앙 미들, 윙백까지 볼 수 있는 네덜란드의 반 브롱코스트가 연상된다. 올림픽 상비군 소속으로 올림픽 대표팀이 본격 가동되면 가장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선수로 생각된다. 히딩크 체제에서 활동한 바 있는 몇안되는 대학 선수로 청구고 시절부터 필자가 주변 사람에게 기억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얘기한 선수가 바로 신동근이다. 중고교시절 플레이메이커로 이름을 날렸지만, 최연소로 참가한 지난 나이지리아 청소년 대회때부터 윙백으로 포지션을 옮겼다. 윙백으로서 이영표와 대등하거나 그를 능가하는 기술을 갖춘것은 물론, 플레이메이커 경력답게 패싱력까지 겸비했고 이영표와는 달리 슛팅력도 갖추었다. 9월 부산 아시안게임때, 지난 올림픽때 박진섭이 그랬듯, 한국의 공격은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우(1982/05/09) - 고대 소속으로 현 대학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올림픽 상비군 소속으로 재치있는 발기술와 필살의 패싱력으로 수많은 우승컵과 최우수 선수상을 차지했다. 신장에 비해 체중이 적게나가 몸싸움에 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타고난 센스로 극복하고 있다. 공격형, 수비형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로 올림픽 대표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혹자에 의하면 현재의 고종수와 엇비슷한 레벨이라고... 그만큼 그를 능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이다.
박용호(1981/03/25) - 이천수, 최태욱과 함께 부평고 3인방으로 고교 무대를 평정했던, 그 나이 또래에서는 최고의 중앙 수비수로 꼽혔다. 부평고 3인방 중 컨페드컵 멤버에 속하는 등 가장 먼저 히딩크의 눈에 띄였지만, 결국 월드컵 본선에는 두 선수에 밀리는 아픔을 겪었다. 개인적으로 차세대 홍명보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플레이 스타일도 너무나 비슷하다. 예측해서 도중에 끊어내는 플레이가 뛰어나고 적절한 공격가담에 어시스트 능력까지... 홍명보에 비해 오히려 헤딩 능력 등은 더 뛰어나지만, 수비 리딩면에서 많이 부족해보인다. 오히려 리딩면에서는 비슷한 또래인 한양대의 임유환이 오히려 나아보인다.
최원권(1981/11/08) - 안양 LG 소속으로 고교 시절 이천수, 전재운과 함께 최고의 미드필더로 꼽혔다. 동북고의 플레이메이커를 맡으며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던 선수로, 청소년 대표 시절 조영증 감독에게 한국 플레이메이커 계보를 이을만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기동력과 지구력면에서 발군인 선수로 예전 박지성이 올림픽 대표팀때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모습과 비숫한 플레이를 펼친다고 연상하면 된다. 현재는 안양에서 조커로 활약하고 있으며, 조만간 주전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재운(1981/03/18) - 울산 현대 소속의 미드필더. 지난 프로무대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강릉상고 시절 시야가 넓고, 패싱력과 경기운영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란 평가를 받으며 활약했다. 박용호, 이천수, 최태욱, 최원권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으며, 현재 최원권과 마찬가지로 울산의 조커로 활약하고 있다. 프로무대에서는 조금 더 공격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데, 뛰어난 재능으로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박요셉(1980/12/03) - 올시즌 3억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안양에 입단한 특급 수비수. 깐깐하기로 소문난 조광래 감독의 눈에 띄여 벌써부터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박요셉은 아시안클럽 선수권에서 다부진 활약을 보이며 결승까지 올려놓는 실력을 발휘했고, 덕분에 두터운 선수층을 확보한 안양에서 주전 수비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난해 모교인 전주대를 대학선수권 정상으로 이끌며 MVP를 차지한 경험을 앞세워 프로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전주대 2학년까지 스트라이커로 뛰다가 포지션을 변경했고, 지난해 대학선수권에서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다는 것. 박요셉은 이러한 이력 때문에 ‘멀티플레이어’ 능력을 인정받아 대표팀에 발탁, 히딩크호에서 심재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원 조성환과 포지션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적극적인 수비와 안정된 패스력이 장점으로 '홍명보 같은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차세대 한국 중앙 수비수이다.
조병국(1981/07/01) -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고교시절과 대학 재학시절 최고의 수비수란 평가를 들어온 유망주. 연세대를 중퇴하고 수원삼성에 입단, 조병국은 이미 8기 히딩크호에 깜짝 선발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조병국은 '대표팀 체력왕'이란 게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히딩크 감독이 유럽 전훈에서 조병국을 'bully'(황소 같다는 의미)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남다른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183cm, 78kg의 듬직한 체격과 힘과 높이를 겸비하고 있어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국제용'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특히 엄청난 점프력를 이용해 공중볼을 따내는 모습은 유럽 선수들에 밀리지 않을 정도. 연세대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한 바 있으며, 무엇보다도 침착성이 돋보이는 샛별이다.
조성환(1982/04/09) - 2001년은 조성환에게 있어 스타 탄생의 무대였다. 리그가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대신고를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주전 수비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인해 뜻밖의 출장 기회를 잡은 조성환은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펼치며 무너진 수원삼성의 수비를 재건할 중심 축으로 자리잡으며, 월드컵 대표로 발탁되기도 했으며, 시즌이 끝난 후에는 차세대 수비수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182cm, 77kg의 듬직한 체격에 중앙 수비수의 필수 요건인 뛰어난 헤딩 능력을 보유한 큰 재목. 특히 어린 나이답지 않은 침착성과 걷어 내기에 급급하지 않고 동료에게 정확하게 연결해 주는 넓은 시야와 안정적인 플레이가 장점이다. 아직은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만 미래의 한국 대표팀의 중앙 수비를 담당할 차세대 선두 주자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김두현(1982/07/14) - 지난 시즌 수원삼성이 건진 보배 중의 하나인 김두현. 통진종고를 졸업하고 2001년에 입단한 그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경기 리듬을 살릴 줄 아는 영리한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아직 폭발력을 갖추지는 못한데다 체력이 다소 약한 것이 흠이지만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에 수비력을 갖춘 전형적인 미드필더로 보이지 않는 팀 기여도가 높다. 경기 흐름을 매끄럽게 연결해야 하는 미드필더로서 매우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난 시즌 15경기에 출장하여 1개의 도움을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성공 가능성이나 활약도는 통계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시즌 정규리그 들어서는 일약 주전급으로 도약, 절대적이었던 고종수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정되기도 했다.
손대호(1981/09/11) - 지난 2월에 열린 아시안클럽 선수권 대회 동아시아 4강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골을 신고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선수. 그는 이미 올림픽 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되는 등 전문가들로부터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루키이다. 지난해 J리그파들이 합류하지 못하자 최성국, 정조국, 박요셉 등과 함께 한시적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바 있으며, 특히 대포알 같은 슈팅력을 선보여 연습장을 찾은 시민들의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체력이 강한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명지대를 중퇴하고 올해 프로에 입단했다. 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지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선수이다.
김동진(1982/01/29) - 안양공고를 졸업하고 안양LG에 입단한 차세대 미드필더. 최태욱, 박용호, 최원권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함께 안양LG에 입단해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게임의 완급조절이나 패스의 정확도에서 신인답지 않은 능숙함을 보인다는 평가를 듣고 있으며, 박항서 감독에 의해 아시안 게임 멤버로도 선발되기도 했다. 스피드와 근성을 보완한다면 차세대 한국 대표팀의 미드필드 한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규선(1981/09/24) - 서울체고를 나온 고졸 3년차 선수. 박규선은 182㎝의 큰 키를 이용한 헤딩이 일품이며, 100m를 12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까지 겸비해 윙플레이어로도 활용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국적인 용모로 별명이 '용병'이며, 18세 이하 청소년 상비군을 거쳤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무리없이 경기를 소화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강단이 있고, 정면돌파가 위력적이다. 단, 세기가 부족한 것이 흠. 고교시절 이천수, 현 수원소속인 조재진, 최태욱 등에 비해 덜 알려진 선수지만 울산 코칭 스태프의 전폭적인지지 아래 프로 무대에서 차근차근 발전하고 있다.
3. 아직 지울 수 없는 천재들
고종수(1978/10/30) - 히딩크는 고종수를 평하기를 "나는 이선수를 매우 좋아한다.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길 원치 않는 것 같다."라고 했다. 지금도 재활의 의지가 매우 약한 것 같다는 김호감독의 푸념이 들리고 있다. 제발 정신차려라. 국민들에게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가 왜 이리 사라져 가야 하는가?? 최소 한번의 월드컵 출장 기회는 남아있지 않은가?? 이미 타고난 재능을 갖춘 천재형 선수에겐 4년여의 시간은 노력여하에 따라 선수의 값어치 자체가 달라지는 시간이다!! 제발 부탁이다. 신이 준 선물을 썩히지말고 조금만 성실해지자!!
이동국(1979/04/29) - 최근 2년간 꼬이고 꼬였던 이동국 선수의 주변 상황이 한 초대형 유망주 스트라이커를 나락으로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아쉽다. 사람들의 평가가 냉정한것은 이미 한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에 이어 이동국이 아닌 "정조국"을 거명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이라고 본다. 이선수가 월드컵 출전 좌절이라는 현실 앞에 무너지기에는 너무 어리다. 고작 23살!! 최소 2번은 더 나갈수 있다. 98년 아시아 청소년 일본과의 결승에서 보여준 "360도 터닝 캐논슛"은 아무나 하는 동작이 아니란걸 알고있기에 이동국의 화려한 재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이관우(1978/02/25) - 내가 가장 가슴아파 하는 선수가 바로 이관우 선수이다. 19세 당시의 이관우는 모든면을 종합해 볼때 오늘의 최성국보다 조금이라도 낳으면 낳았다고 평가한다. 나는 이관우 선수가 아직까지 재기하지 못하고 허구헌날 "유리몸"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부상의 악령에서 벗어나질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있다. 바로 "97년 쿠칭 참패"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팀내에서도 팬들에게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 이관우는 죽지 않았다."는 그 조바심이 자꾸 이관우 선수에게 부담으로 연결되고 이는 잦은 부상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고 본다. 축구에 있어 "체력"만 빼고 모든것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았던 이관우 선수가 남은 과제 하나를 완성하는 날이 바로 부상의 악령을 털고 붉은 유니폼을 다시 입는 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은중(1979/04/08) - 대표팀의 에이스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이 가장 아꼈던 선수는 이동국이다. 그러나 가장 자기와 비슷한 플레이를 펼친다고 했던 선수는 바로 김은중이다. 사실 고교 시절 이동국은 김은중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신문에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스트라이커'라는 기사가 실렸겠는가? 실제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면 네덜란드의 클루이베르트와 매우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유연한 컨트롤, 정확한 패스, , 탄력있는 헤딩까지... 다만 그가 클루이베르트에게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피지컬'이 부족한 점. 그의 영원한 숙제이다. 대전이라는 약체에 소속된 것, 한쪽 눈 실명이라는 장애까지 갖춘 그가 또래 선수들처럼 대표 선수로 자주 발탁되거나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기는 그다지 쉽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그의 잠재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진섭(1977/03/11) - 현재 프로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쳐보이는 박진섭. 지난 올림픽 대표팀을 기억하는 이에게 그의 존재는 아쉬움이 클 것이다. 3백에서의 오른쪽 윙백이 어울리던 그에게 4백에서의 윙백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이 히딩크에게서 외면 받았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더욱이 작은 체구와 몸싸움에 약한 그의 모습에 기술면에서 큰 차이가 없던 송종국과의 경쟁에서 그가 앞서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진섭이 지도자에 따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점은 그가 여전히 생각하는 축구, 기술 축구, 고급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히딩크는 체격, 체력을 보다 중시했지만, 그의 기술을 보다 중요시하는 지도자를 만난다면 그는 다시 대표 유니폼을 입고 우리곁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일(1980/03/30) - 지난 나이지리아 청소년 대회를 기억하는가? 사상 최강이라는 이동국-김은중 투톱에 당시 축구관계자들과 매니아들에게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천재 플레이메이커 김경일이 가세, 역대 최강의 대표팀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이후 김경일은 잊혀졌다. 대회 당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여전히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고교 시절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싱력, 고종수와 비할 수 있는 프리킥 실력, 그리고 한국의 플레이메이커들이 갖추지 못한 수비력까지 갖춘 그이기에 그의 존재가 아쉽다. 그를 키운 금호고의 기영옥 감독은 이렇게 김경일을 설명했다. '윤정환, 고종수 다 내가 키웠다. 하지만 모두 김경일만큼은 아니었다'
김경일선수 99년 전남입단, 전남에있다가 2004년에 대구로 이적 그후 대구FC와의 계약연장 불발 후 2005년 충남 서산시민구단에서 몸담음 ,그후 소식은 서산 시민구단이 해체위기에서 서산오메가FC로 재창단되면서 김경일선수를 출전선수 목록에서 보지못했습니다. 이선수도 무릎수술을 너무 많이한(5번넘게 했다고하내요 부상이 망친케이스죠,,)
첫댓글 재밌네요ㅋ 요즘 유망주들로 이런글 써서 5년뒤쯤에 보면 재밌을듯하네요ㅎ 근데 김경일이란 선수는 어떻게됬어요? 대단했던 선수였나본데 궁금하네요
오 좋은 글이네요? ㅡ;;; 박진섭 선수는 갠적으로 무척 좋아했드랬죠.;; 올림픽 대표시절 덜덜
한줄요약..............................................은 농담이구요,, 이거 쓰신분 정말 ㄷㄷㄷ;;;; 19세 이하 유망주까지 꿰뚫을 정도면 얼마나 축구에 빠져 사셨으면.... 대단대단
김경일은 어떻게 됬음 제 친구이름 김경일
신동근 김경일 빼고 다안다..ㅎㅎㅎㅎ
아 진짜 지금까지 온 선수는 별루 없네ㅜㅜ
김경일선수 지금 대구에 있죠?
아~ 김경일 선수, 한동안 나카타를 보유한 일본을 부러워 할때 우리도 그에 못지않는 플레이메이커가 나오는구나 하고 몹시 흥분했던 기억이;; 청소년 대회때 골대를 맞춘 중거리슛 이후로 종적을 감췄다는;;ㅠㅠ
김경일선수 99년 전남입단, 전남에있다가 2004년에 대구로 이적 그후 대구FC와의 계약연장 불발 후 2005년 충남 서산시민구단에서 몸담음 ,그후 소식은 서산 시민구단이 해체위기에서 서산오메가FC로 재창단되면서 김경일선수를 출전선수 목록에서 보지못했습니다. 이선수도 무릎수술을 너무 많이한(5번넘게 했다고하내요 부상이 망친케이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