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첩 당국 점검 나서
최근 미국에서 ‘잠재적 스파이 장비’로 논란이 된 중국 상하이진화중공업(上海振華重工業·ZPMC)의 대형 크레인이 부산항·평택항 등 국내 주요 항만마다 대거 설치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우리 방첩 당국이 실태 파악 등 보안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USA 미국 내 항구에 설치된 중국 상하이진화중공업(ZPMC)의 대형 크레인. /ZPMC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이 해양수산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항구 10곳에서 운용되는 크레인 총 809기 가운데 절반 이상(52.8%)인 427기가 ZPMC 크레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대우중공업 등 국내 업체의 크레인을 다 합친 것보다도 ZPMC 점유율이 높았다.
국내 최대 항구인 부산항의 경우 크레인 총 538기 가운데 298기인 55.4%가 ZPMC 제품이었다. 인천항은 113기 가운데 77기(68.1%), 울산항은 24기 중 15기(62.5%)였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있는 캠프 험프리스 인근인 평택항도 전체 28기 가운데 21기인 75%가 ZPMC 크레인이었다. 주한 미군은 평택항을 통해 기갑 장비 등 각종 무기와 물자를 반입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최근 주한 미군이 우리 군 당국에 평택항에 중국산 크레인이 운용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목포·포항·군산·마산·대산항 등 항구 5곳은 운용되는 전체 크레인의 100%가 ZPMC 크레인이었다.
앞서 미 정부는 이달 초 미 전역에서 항구와 선박 간에 컨테이너를 옮길 때 쓰는 ZPMC 크레인에 탑재된 첨단 센서가 미군의 해외 물자 이동 정보를 수집하며 ‘트로이 목마’ 같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ZPMC는 크레인을 운용하면서 항만을 드나드는 화물의 출처·목적지, 운송 경로 등 각종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ZPMC가 확보한 각국 물동량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미 안보 당국이 최근 중국산 항만 크레인 장비와 관련해 보안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국가정보원, 해양경찰, 해양수산부 등 각 기관이 보안 점검을 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항만 장비에 대한 보안 시스템 강화 조치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병길 의원은 “항구는 국가 기반 시설로 어떤 곳보다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돼야 한다”면서 “미국에서 ZPMC 크레인 문제가 ‘제2의 화웨이’ 사태로 커지는 만큼, 우리도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은 “ZPMC 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상하이 본부에서 세계 모든 크레인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며 자랑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말대로라면 평택항에서 주한미군 물자 운반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