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드컵 예선전이 점점 더 재미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결국 짐을 싸야 할까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경기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
니다.
두 나라는 포클랜드 때문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
다.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개심 같은 걸 두
나라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네갈은 프랑스를 이긴 날을 국경일로 정했다는, 아
나운서 설명을 들은 것 같습니다.
중 국은 한 번만 더 지면 끝장이고.
우리는
미국 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스포츠 외적인 요소를
가지고 오는 걸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본과 하는 경기를 볼 때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는 강렬한 소망을 가지고 시청하기는 저 또한 다른 한
국 사람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바램 안에는 한국이 그들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사실도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일본한테 지는 걸 싫어합니다.
독 쿄대첩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이민성 선수는 그 한 방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습니다.
폴란드와 경기를 하기에 앞서.
붉은 악마들이 폴란드 국가 연주 때 야유를 보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던 나로서는 몰랐던 내용입니다.
지금도 '설마' 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런 잘못은 저질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 사람들이 자기들 국가 연주
때 시끄럽게 굴었다고 해서 식민지 통치를 받아야 했
던 것과 같은 증오 나 적개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집에서 미친 듯이 경기를 지켜봤지만.
마라도나가 내게 와서 경기를 분석해줘도 난 믿지 않
을 것입니다.
폴란드 전을 승리로 이끈 선수는 붉은 악마, 당신들이
었습니다.
첫 번째 골이 터졌을 때, 스탠드를 박차고 나올 듯이
소리를 지르던 당신들은, 그 날 밤의 주인공이었습니
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미국 전.
나는 붉은 악마들의 2승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미국 국가 연주 때 등을 돌립시다.
미국이 성조기를 내걸고 국가를 연주할 때 우리 모두
등을 돌립시다.
나는
나의 제안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이 맹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그들이 단상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향해 전의를 불사를
때.
조용히
가만히
침묵으로
등을 돌려
그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포츠 외적인 요소를 끌어들이는 건 분명 잘못입니
다.
하지만
하지만
미국에게는 그러고 싶습니다.
우리는
차세대 전투기 선정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고 있습니
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부당하다고 선언하며 옷을 벗고 나
오는 뉴스까지 보아야 했습니다.
아무도 에프십오가 차세대 전투기로 적당하다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뻔히 다 알고 있는 사실 앞에서도 우리는 그
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우리는
조그만 방에서 텔레비전이나 켜놓고 응원이나 해야 하
는 우리에게는 그런 부당함에 속수무책입니다.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길들여진 듯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의해 악의 축과 대립하는 나라가 되어
버립니다.
테러범 한 사람을 잡기 위해 한 나라를 초토화시키는
그들을
우리는 마냥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미사일에 팔 다리를 잃은, 눈을 상실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반전 캠페인은커녕
그들 전쟁을 돕기 위해 군인을 보내야 했습니다.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우리는 성조기를 걸고 그들을 위해 묵념을 해야 했습
니다.
나는 송탄 미군 부대 옆에서 살아 보았습니다.
클린턴이 방문하고 부시가 방문한 오산 미공군 기지가
바로 그곳입니다.
그곳 주변엔 미군을 상대하는 한국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여자에게도 미군을 상대
하는 창녀가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자랑스러워할 만
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군에게 강간당하고 갈취 당하고, 쓰레기 취급을 당
하다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당해 싸다는 태도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살인을 돕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이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
고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을 죽인 미국인조차 마음대로 벌주지 못
합니다.
카투사.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비굴한 군대 조직.
한국 군인이 성조기 앞에서 경례를 해야 하는.
우리의 주권은 미군에게 있습니다.
매향리 주민들은 여전히 미군 전투기의 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군 기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염 물질.
노근리 학살 사건.
차라리 노근리에서만 있었던 일이라면 울분을 가라앉
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송탄을 오산이라고 지금도 고집하고 있는 자들
입니다.
지명을 자기들 멋대로 읽어 오폭 당한 마을이 과연
노근리 하나였을까요?
미국 대표팀은 미군 부대를 방문해서 무얼 느끼자는
걸까요?
그들이 그어놓은 삼팔선 앞에서 강한 국력을 새삼 확
인하는 걸까요?
그들이 심어놓은 정의 앞에 경이로움을 간직할까요?
동계 올림픽에서 그들이 보여준 정의.
아직
세계 시민은 도발적인 미국식 애국심에 대해 정당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강대국의 논리로.
잇속만을 챙기는 외교 논리 앞에서.
지구인이 지구인에게 가져 마땅한 휴머니즘은 침묵으
로 사라졌습니다.
안톤 오노를 중심으로 그들이 보여준 정의에 대한
분노는
우리가 그때 가졌던 울분은,
월드컵 열기에서 완벽하게 소외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가지게 된
분노와 증오와 적개심, 세계인들을 상대로 가지게 된
살의에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세계 시민은
재고 미사일이 너무나 많은 한 국가의 군대가
소총을 들고 싸우는 국가를 상대로,
그 나라에 사는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상대로,
행한 학살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량 학살과 파괴를
막지 못했습니다.
멈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정의 앞에 무력했습니다.
우리에겐 힘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도발하는 국가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저들은 언제든 전쟁이 필요한 시기가 오면
북한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것입니다.
그들의 정의, 그들의 세계, 그들의 안녕.
이제는 정말 지겹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성조기 앞에서 그들 만의 애국가 앞에서
등을 돌릴 권리가 충분합니다.
안톤 오노와 호주 심판의 합작에 의한 분노는 잠시 접
읍시다.
그들이 지구촌 사람들을 상대로 저지른 만행과 악행과
도에 넘치는 학살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저들과 달리 침묵으로 메시지를 전달합시다.
소주 병을 던질 필요도 없고, 두루말이 화장지를 던질
필요도 없습니다.
야유를 보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그들의 국가가 연주될 때
그들의 자랑스러운 성조기에서 등을 돌립시다.
우리처럼
저들에게 정의를 빼앗긴 지구촌 이웃들을 대신해
조용한 메시지를 전합시다.
저들의 정의에 희생당한 무고한 사람들을 생각합시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은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할 것
을 요구해도
저들의 안톤 오노처럼 비겁한 승리를 구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 누구보다 16강 진출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 선수들
은 폴란드 전에 그랬던 것처럼 플레이를 위한 플레이
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붉은 악마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목청이 나갈 정도로
당신들이 원하는 바를 주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원할 것입니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미국 선수들은 축구 경기를 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열심히 뛰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그들의 성조기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No Justice.
우리는 작고 힘없는 한국의 소시민이지만.
그들을 이길 것입니다.
10억의 시청자들에게
조용한 메시지를 보내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작고 조용한 승리를 만끽할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비폭력으로.
이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등돌린 한국인이라는 뉴욕타임즈 머릿기사를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지구촌 축제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그들만의 정의를 강요하는 그들에게
선량한 세계 시민을 대신할 가장 정중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