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인상파 화가 반 고흐는 자화상이 많기로 유명하다.
조용필이 부른 대중가요 <킬리만자로 표범>에도 반 고흐가 나올 만큼 그는 불행한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반 고흐는 생전에 그림 한 점 제대로 팔리지 않을 정도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자화상(自畵像)은 자기가 그린 본인 얼굴이다.
반 고흐뿐 아니라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고 시인들도 자화상이란 시를 많이 썼다.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후략)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자 했던 윤동주는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 일본 감옥에서 사망했다.
27세로 세상을 떠난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남기지 못했는데 이 시는 그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작품이라고 한다.
자화상을 논하려니 서정주의 작품도 빼 놓을 수 없어 일부 옮긴다. 내 젊을 적에 윤동주 시와 함께 이 시 또한 수없이 필사를 했다.
과연 나를 키운 건 무엇이었을까. 오늘 윤동주와 미당의 시를 필사하면서 든 생각이다.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
한국에도 자화상 많이 그리기로 유명한 작가가 있으니 서용선 화백이다.
요즘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서용선 그림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나를 그린다>. 전시장에는 모든 작품이 자화상만 걸렸다. 이색적이다.
1951년 출생인 서용선은 자신의 얼굴과 닮게 그린 것이 아니라 닮지 않게 그리려는 듯 독특한 화풍을 자랑한다.
붓질이 거칠면서 칼라플하다고 할까. 그의 자화상을 보면서 마치 무당의 옷색깔처럼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더욱 좋았다.
보면 바로 누구 그림인지를 알게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흔히 말하는 화풍이다. 詩든 그림이든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것처럼 나같은 문화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는 일이 있을까.
너무나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그리는 서용선이 그랬다.
이 사람의 그림을 보면 화가란 단순한 그림쟁이를 벗어나 인문학적 소양이 얼마나 깊어야 하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작년에 아트선재센터에서 봤던 그의 신화적 그림에서 더욱 그렇다.
자화상은 본인의 얼굴이면서 타인이기도 하다. 잘 만든 거짓말의 연장선이 모든 인간의 서사라고 했던가.
이 말은 진실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얼굴값, 이름값, 역사에서 이름을 더럽혔던 사람을 여럿 만난다.
카페에서도 닉은 바로 자기 얼굴이면서 남들이 본인을 가늠하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사이버상이라 비록 거울에 비치지는 않더라도 얼굴값을 허투루 여기지 말 일이다.
첫댓글 대충 읽어 봤는데..역시는 역시~
근데, 이렇게 글을 품격있게 쓰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오..ㅋ
남동님을 힘들게 해서 어쩌나요.
그래도 저는 이런 글 계속 쓸 겁니다.ㅎ
제 삶이 하도 가벼워서 글이라도 진지해야지 안 그러면 저같은 팔랑개비는 깃털처럼 날아가 버릴 겁니다.
다음부터 제 글은 그냥 지나가셔야 힘들지 않을 텐데요.ㅎ
미술학원 다니던시절 가끔 가난한 학원생들이 돈을모아 모델을섭외했지요^^
그외에는 거울만 놓으면 공짜 모델이돼는 자화상^^
아~~
옛날이여~~~
아~ 마스코트님이 미술학원을 다녔던 시절이 있었나 보군요.
누구는 자화상이 그리기 쉽다고 하고, 누구는 제일 어려운 게 자화상이라 하더이다.
곱게 나이들어 가는 거울 속 얼굴처럼 님도 이쁜 자화상 하나 담고 사셨으면 하네요.ㅎ
붓으로 그리는 자화상은 유형이라면, 덕(德)으로
가꾸어내는 자화상은 무형이려니...
인상 팍팍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덕(德)이
부족한걸 어찌 하겠노 ?
붓으로야 수정할 수 있지만 보톡스를 맞아도
힘든 얼굴은 꾸준한 수양이 필요하리라...
나는 매일 아침에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고
마음에는 자화상을 다지며 살겠노라 했는데..ㅎ~
댓글이 더 명문이라더니 적토마 형 댓글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비유가 이렇게도 적절한지 감탄을 하네요.
외형의 자화상보다 무형의 내적 자화상이 그 사람의 본질이겠지요.
비록 제가 덕이 부족하지만 늘 다듬고 수련해서 멋진 적토마 형을 열심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ㅎ
@유현덕
德不孤必有隣 (덕불고필유인) 이라했으니
우리함께 덕(德)으로 수양하며 살아가세...
주어진 운명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개척하며
사는 재미도 즐거우니 늘 화이팅 ~!!
요즘은 외형의
자화상도 중요하지 않나요?
인상 북북 쓰지않는
방실방실 웃는 얼굴이라면요 ㅎㅎ
요즘 워낙
정치판에서
실체보다 만들어진
이미지에 우리는 그속을 모르게 되었네요
@정 아
그럼요. 외형의 자화상도 물론 중요하죠.
방실방실이라니 며칠전 세상을 떠난 가수
방실이가 생각나네요. 술이나 한잔하며 살자
해놓고는 본인이 먼저 떠났으니...흑~
서용선 화백이 화가로서의 재능 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추었다 하셨는데,
유현덕님이야말로 문학적 재능 플러스 인문학적 소양이 갖춰진 분으로 사료됩니다. ^^
풍부한 배경 지식과 지적인 탐구심, 거기에 더해 치열하게 살아오신 삶의 과정이
유현덕님의 단정하고 깊이 있는 글로부터 드러납니다.
인사동을 가끔 가는데 3월 17일 이전에 갈 수 있게 되면 소개하신 전시를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달항아리님의 댓글을 읽고 제가 너무 포장만 잘했나 싶어 부끄럽습니다.
깊이는 없으면서 아는 체만 하면서 사네요.
토포하우스가 괜찮은 작가를 많이 소개하는 갤러리입니다.
건물 외형도 이쁘고 격조 있어 보여 인사동과 딱 어울리는 화랑이지요.
제가 며칠 전 전시장 갔을 때 찍은 토포하우스 외형 사진 첨부합니다.
모쪼록 그림 많이 보시고 행복하세요.ㅎ
아프리카 그림을 보는 듯 강렬하네요
무료임에도 시간내서 전시회 구경 한다는 거 쉽지 않은데
두루두루 문화생활 잘 즐기시니 풍요로운 삶의 여정이 될 듯요
네, 저도 헤라님처럼 이 작가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붓칠이 거칠고 원색적이라서 무척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화풍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전시는 가능한 놓치지 않으려고 하나 허술한 제 삶처럼 자주 빠뜨리며 산답니다.ㅎ
서용선 화백의 자화상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도대체 이게 뭐지 싶습니다.
화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당췌 모르겠으니 이 무지함을
어찌 하오리까.
현덕님께서 그림을 읽어 주셔서
그나마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다방면에 지식이 깊은 지적인 글
잘 보고 갑니다.
제라님의 솔직한 소감이 마음에 듭니다.ㅎ
추상화처럼 보이는 몇 작품은 5년에 걸쳐 완성한 자화상도 있더군요.
저도 그림을 잘 모릅니다.
그저 그림이 좋아 자주 관람을 하고 그러다 보니 이런 글을 쓰게 하는 감상도 생기는 것뿐입니다.
행여 제 글이 그림과 친숙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네요.
시로 그림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풍성한 문화생활을 하시네요.
그러니 이렇게 풍성한 글도 나오는거겠지요.
흔히 사진과 인물화를 비교할때 사진은 피상을 한번에 카피하는거지만
인물화는 수없는 붓질을 통해 그리기때문에 아우라가 있다고하데요.
인물화가 아니더라도 고흐의 구두를 보면 그렇기도 한데
거기에서 고흐의 삶 전체를 느낀다는겁니다.
이와달리 팦아티스트의 작품 구두를 보면 단조롭기 짝이없는데
그건 또 현대 이미지의 특성을 잘 표현한것이라 하니 알듯 모를듯 하지요.
여하튼 시도 자화상도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도 현실에 바탕을 두되 어떤 이상이나 지향점을 품어야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것 같데요.
이런 댓글 접할 때면 선배님은 중후하면서 팔팔한 50대처럼 보입니다.
문화생활로 치면야 석촌 선배님이 훨씬 풍성할 거라고 생각하네요.
고흐의 구두를 언급하며 붙인 설명에서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고흐 구두와 감자 먹는 사람들을 좋아해서 자주 화집을 들춰보는 편입니다.
그가 겪은 밑바닥 생활고와 고독이 자화상보다 더 깊이 묻어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석촌 선배 뵙게 되면 그림 이야기로도 끝이 없을 듯하네요.ㅎ
모쪼록 풍성하고 건강한 날들 오래 누리셨으면 합니다.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니를 알겠느냐 하는 노래도 있던데
자화상은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 그린 것인지
화가는 제일 먼저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그림을 시작한다고
그것이 나를 아는 거 부터인지 내 안에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는 건지
칡뫼 김구님 전시회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 분 그림에 푹 빠졌더랬지요
현덕님의 예술 감각은 한 곳에 국한되지 않은 무한한 장르로
헤엄치듯 늘 배우시는 분 저도 현덕님께 배웁니다
아이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야 만학도 운선님을 제가 어찌 따라 갈런지요.
서용선님의 자화상을 보면 하나도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없으니 자기 안에 여러 정체성이 담겨 있음을 표현한 거라고 봅니다.
천불상 모습까지는 아니어도 제 얼굴부터 안방에서 넥타이 차림과 욕실에서 보는 얼굴이 다르게 보이는데 화가들 자화상이야 오죽 다양하겠는지요.
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나 제가 운선님한테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 저는 남는 장사랍니다.ㅎ
풍부한 지식에다
문화소비까지
알뜰히 챙기시다니
그것도 두분 손잡고
다니며 문화생활이라니
일찌기 좋은환경이 주어졌다면
어떤분야에서 큰인물
되셨을것 같습니다
ㅎㅎ 정아님이 마치 저의 일상을 지켜본 것처럼 아시네요.
우리 부부는 가끔 티격태격하지만 밥 먹을 때와 문화소비할 때는 아주 순해진답니다.
큰 인물 될 사람이야 저는 택도 없으니 부지런히 마당쇠 노릇이나 할려고 합니다.
앞에 서는 것보다 뒤에 있을 때가 더 편하더라구요.
정아님 평화로운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