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와 윤회>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경전의 대부분은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초기 언어인 산스크리트Sanskrit어나 팔리Pali어가 아니라 중국의 한자를 원본으로 하여 번역된 것들입니다. 번역된 아주 최근의 몇몇 경전을 제외하고는 다 그렇습니다.
중국에서 불경이 처음 번역된 것은 기원 직후의 일로 약 2천년전입니다. 최초의 번역경은 ‘42장경’입니다. 이 시기는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한 후 500~7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입니다. 그리고 중국에 ‘최초의 불교’가 알려질 때 인도에서는 이미 그 알려진 불교 사상은 사라지고 소위 ‘대승불교’가 흥기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세계 곳곳에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인터넷 등을 통해 천안통天眼通과 천이통天耳通이 실현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육로나 해로로 운송되는 방법밖에 없었으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사상이란 일반화되어야 ‘수출’이 가능한데,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사상의 수출입은 여러 여건이 맞아야 가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인도에서는 이미 대승사상으로 발전해 버린 불교가 중국에 처음 수입이 되자 현실적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즉, 불교를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중국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중국에는 이미 노자와 장자 사상이 충분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물론 유교도 성행했지만 유교는 노장老莊사상만큼 ‘불교적’이지 않아서 노장사상에 불교를 담아 표현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노장의 틀을 빌려 표현한 불교를 격의格儀불교라 합니다.
무위無爲 같은 말도 실은 도가道家의 용어이지 불교의 용어는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도道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차라리 우리말 ‘깨달음’ 혹은 ‘깨침’이 언어적으로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격의불교는 중국에서 불교가 사상적으로 독립된 대우를 받을 때까지 계속 되는데, 제가 얼핏 추측해 보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0년 이상은 지속된 것 같습니다. 근거를 대보겠습니다.
공空사상을 설명한 경전을 모아놓은 것을 ‘반야부’ 경전이라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여러분도 즐겨 독송하는 금강경과 반야심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에는 공空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질 않습니다. 무無와 비非자를 사용하지만 결국은 공空을 설명하고 있거든요. 하나만 예로 들면 “불법佛法은 즉 비불법非佛法이요, 이름만 불법이니라”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금강경의 구성은 동진東晉 때의 도안道安(314~385)이 서분序分, 정종분正宗分, 유통분流通分으로 구분하고〔이 구분은 실은 모든 경전에 적용됨〕,그 유명한 달마와의 대화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없다’의 주인공 양무제의 아들인 소명 태자(501~531)가 처음 32분分으로 나눈 것이 현재에 전해져 온 것입니다―저는 소명 태자의 32분으로 나눈 방법이 금강경의 뜻을 파악하는데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다음 작업은 금강경을 소명 태자의 것보다 더 멋지게 분별分別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확인되는 것은 불법의 대가인 소명 태자도 공空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했다는 사실인데, 이는 전적으로 소명 태자의 탓이 아니라, 그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에 대한 ‘대체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체어란 일반인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준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요즘 유행인 ‘올레길’, ‘힐링’이라는 단어가 몇 백년 후에도 살아 남을 정도로 보편화될지는 의문입니다. 설령 보편화가 되어도 ‘아가씨’처럼 고유의 뜻이 변질된 경우라도 사용이 불가합니다. 게다가 귀중한 경전을 번역하는데 신조어를 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중국에 불교가 들어와 금강경까지 유통되는 성과는 있었지만, 소명 태자 시대(530년대)까지도 불교의 공空이라는 개념을 공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로부터 다시 150여 년이 지난 652년 드디어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唐의 현장 법사가 서역 즉 지금의 인도 대륙에서 불상과 경전을 가지고 652년에 귀국하게 됩니다. 현장의 위대함은 그가 지금으로 치면 ‘단독 무산소 에베레스트 등정’에 비견되는,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 왕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해 온 엄청난 범어 경전을 한역한 공로에 있습니다. 그의 서역행을 소재로 <서유기西遊記>라는 이야기가 창작될 만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송하는 한문 반야심경도 바로 현장이 한자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등장하는 단어가 공空인 것입니다.
“색즉시공空 공空즉시색……”, 그런데 아직도 미진한지 현장도 공空만 쓰질 못하고, ‘無無明 亦無……’ 즉, ‘무명도 없고, 무명이 없음도 없고’라고 이중 부정을 병행해 개념을 정립해 나갑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공空 한 글자면 될 것을 ‘…없음도 없고’ 하니, 있는 것 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 되는데, 실은‘없음의 없음도 없고…’ 또, ‘없음의 없음의 없음도 없고…’, ‘없음의 없음의 없음도 없고 역시나 없고…’가 한없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개념상의 어려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금강경 한역의 격의불교 한계에 대한 언급이 길어 졌지만, 실제 하고 싶은 말은 다음 몇 줄입니다.
무아無我인데 어떻게 윤회輪廻하는가는 논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무리하게 무아無我를 놔두고 윤회輪廻를 설명하자니 궁색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무아無我는 격의불교 때 잠시 빌려서 쓴 용어이니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단어입니다.
앞으로는 무아의 대체어로 ‘공아空我’를 사용한다면, 몇 세대가 지난 후에는 불교의 무아는 ‘없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설명에 진을 빼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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