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들에게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자연스럽게 그리기
그림을 그려보고자 하는 욕구는, 저 아래 깊은 곳에 이미 새겨진 원초적 본능이다.
‘그리기’는 무엇보다 몸을 쓰는 일로써, 아무것도 아닌 듯 모든 것 같은 일에 몰두하여, 순간 내 몸과 ‘자유’를 막연하게나마 연결 지음으로, 스스로, ‘자유로운’ 몸의 주인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한다.
선을 보고 선을 긋는 그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도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나도 보이고 세계도 보이는 이 놀라운 경험, 자기 몸(감각)이 실재하는 세계와 연결되는 사건으로, 그 세계와 함께 몸을 움직이며 시간을 ‘잃는(되찾는)’, 매혹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미 그림을 그려본 또는 그리고 있는 사람 중 이 말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반대로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 아닌 매우 다행한 일이다. 매우 다채롭고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이며 사람이다.)
어쨌든 나는, 혹 ‘그리기’에 작든 크든 ‘어떤’ 관심과 (막연할지언정) 욕구가 있는 사람들에게, 앞서 말한 그런 ‘그리기’를 ‘자연스럽게 그리기’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소개해 나갈 작정이다.
물론 처음 하는 일은 아니다. ‘그리기’를, ‘그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이 일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내 평생의 즐거운 일이다. ‘자연스럽게 그리기’라는 이름은 2012년 겨울부터 사용했고,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랜 기간, 다양한 장소, 다른 사람들과 진행한(하고 있는), ‘ 자연스럽게 그리기’의 경험과 지식을 이곳에서는 좀 더 정리된 글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자연스럽게 그리기’로 함께했던 분들에게는 계속 이어지는 대화의 역할을, 이 지면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될 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그리기’를 시도(시작)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연결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만나는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다른 그림들을 보는 게 항상 내 소원 중 소원이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당신도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런 ‘우리’가 이제 그림을 그리려는 이유는, '그들에게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강요된 복종의 관성을 깨기 위해서 ‘그리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열심과 노력도 좋지만 먼저 욕망에 이끌린 첫 번째 그림들을 그려야 하며, (같은 말이지만), 측정(평가) 가능한 ‘그리는 기술’보다는, 항상 저항 가능한 ‘그리는 몸’을 기르는 일에 관심과 애정을 쏟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예상 가능한 기승전결을 떠나야 그 너머에 있는 진짜 그리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으리니.
제롬(www.75jero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