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문학박사 시인도 많을진대 그분도 시를 쓸수도 있을것이다. 양주동 국문학 박사님이 맞다면 생생 카페지기 양사장님의 어머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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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오면 생각나는 이름 어머니..!!
일제 강점기에 이흥렬(李興烈) 이라는 음악의 남다른 재능이 많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작곡을 위해 피아노가 없으면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피아노가 없으니 음악공부를 더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소자는 음악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한편 어머니는 혼자 몸으로 유학간 아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가진것도 없었지만,
조금씩 늘어난 빚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부터 땅거미가 질때까지 동네 근처부터 원거리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 쉼없이 솔방울을 긁어 모았습니다.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 (1930년대 쌀 한가마는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습니다. 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래서 '이흥렬' 그가 제일 처음으로 작곡한 노래가 시인이며
문학박사인 양주동박사의 詩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1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2 어려서는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서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에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해,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첫댓글 어릴때, 여름 오후 7시 전후, 양주동박사의 흑백 tv방송이 눈에 선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보물입니다.
에프킬러님도 아시는군요. 양주동박사님이 우리나라 국보 1호 라고 하죠.
생생에서 중국에 패키지 상품으로 갈때는 클럽코인으로 교사들도 많이 왔었는데요,
교사들이 얘기해줘서 알았어요
저도생각납니다
세상에 백과사전같은 사람도 다 있구나 신기해하며 좋아했고 말씀도잘 하셔서 푹빠지며 듣던 기억이납니다
솔체님도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양주동 박사님이 우리나라 국문학 박사 1호로
국보급 이시라고 무한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생생 카페지기 양 사장님 아버님이시라는 말씀을 듣고 또한번 놀랐고요.
저 같은 미물이 그토록 훌륭하신 박사님의 자제분과 함께 향설란 선상에 있다니 신기했죠.
부전자전이라고,
클럽코인으로 교사들 모임에서 중국 장보고(?) 탐방 갔다오신분이
입에 침이 마르도륵 생생 양 사장님 말씀을 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배에서 내려서 역사 탐방을 하는동안 버스 안에서
행선지의 역사에 관해 말씀해주시는데 완전 감동 하셨대요.
또 한분은 본인이 고교 교사일때
양주동 박사님을 초대 강사님으로 모셨는데요,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었다고
회고하듯 말씀 하셨어요.
그래서 더욱 생생 카페에 가입하셨다고 하셨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녹음해서 올려주세요^^
생생사장님이 양주동박사님아들이신줄 몰랐습니다 여행중에뵌적은있었는데~
코로나 끝나고 뵙게되면꼭인사하고싶네요
모르셨군요. 저도 전혀 몰랐는데요,
예전에는 생생에서 가끔 패키지 상품으로 진행할때 있었어요.
그럴때 교사 모임에서 합류, 얘기를 듣게 되었죠.
솔체님 정말 반갑고요, 담에 기회되면 꼭 뵐수 있기를 바랄게요
https://youtu.be/4wCgRcReg-8
PLAY
옛날 시민회관이라 불렸던
지금의 세종문회회관에서
내 친구(동국대졸업) 결혼식에 주례 서 주신 분이 ..
그 당시 동국대 교수님 이셨던 양주동 박사님..
타칭이 아니고 ..
자칭 국보 1 호라고 주례사 하실 때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선생님도 양주동 박사님을 직접 뵈었군요!
어느 분은 양주동 박사님의 카랑카랑하신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고
말씀하셨어요. ㅎㅎ
ㅋ. 저도 2006년에 누군가가 말해 주어서 알았답니다. 어째튼 빨리 중국으로 놀러 갔으면 좋겠네요.
2006년에 들으셨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