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속의 세계/
티끌로 본 화엄 세계
이시우(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아침마다 자고 일어나 먼지를 쓴다. 티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자고 난 자리에 있는 티끌은 덮고 잔 요에서 나오거나 우리 몸에서 나온 것이다. 몸에서는 항상 새로운 세포가 생기고 오래된 것은 떨어져나간다.
그래서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생(生)과 사(死)를 연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즉, 새로운 세포가 태어나면 죽은 세포는 떨어져나가 숨어버린다. 이처럼 탄생과 죽음이란 두 가지는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있게 된다. 이것을 생과 사의 이중적 동거성(同居性)이라 하며, 이런 성질은 만물의 존재성의 특징이다.
한편, 티끌은 연기관계를 통해서 더 작은 것으로 분해되거나 다른 것과 합쳐 더 커지기도 한다. 또한 티끌 자체가 외부 환경에 따라 특성이 변한다.
그래서 티끌[色]은 일정한 자성이 없이 변화하면서 처음의 티끌의 모습이 숨어버린다.[空]
그러나 연기적 변화로 옛 티끌의 모습이 사라져도[空] 새로운 티끌[色]은 남는다.
이러한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무자성을 뜻하는 공성(空性)과 존재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화엄 세계의 특징이다.
존재의 이중적 동거성은 상의적 연기 때문에 생긴다.
그럼 티끌은 어떤 연기과정을 거쳐 생기는 것인가?
우리 몸에서 생긴 티끌은 외부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해 가는 연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 몸은 어디서 왔는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태어날 때 부모가 지닌 생물학적 유전 정보와 부모가 살아오면서 지은 업식을 함께 전해 받는다. 이들은 제 8식인 아뢰야식에 들어 있다. 부모는 각자가 윗 세대의 조상들로부터 몸을 받아 태어난다.
이와 같이 계속 윗 세대로 소급해서 올라가면 현재 내 몸에서 나온 티끌 속에는 인간의 탄생 기원에서부터 누적되어온 정보가 들어 있는 셈이다.
나아가 인간의 씨앗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것은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를 탄생시킨 원시 물질의 재료에서 온 것이다.
그러면 이런 원시 태양계 물질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별들의 세대[종족]를 살펴보자.
대폭발 이론에 의하면 약 140억 년 전에 한 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매우 뜨거운 복사에너지가 방출되고, 이것이 점차 식으면서 수소나 헬륨 같은 가벼운 원소가 생기면서 물질시대로 변해갔다. 그러면서 원시 은하물질에서 별들이 탄생되었다.
별들은 평생 먹을 양식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아집과 법집이 없기에 분별심과 차별심이 없는 무심, 무념의 여여한 일생을 무위적으로 살아간다.
집단으로 탄생된 별들 중에서 태양 질량의 10배 이상 되는 무거운 별들은 수백만 년의 짧은 일생을 마치면서 임종 때 큰 폭발로 초기 질량의 70% 이상을 밖으로 방출한다.
인간은 마음을 비우면서 깨달음에 이르지만, 별들은 임종을 맞으면서 불안정해질 때 물질을 방출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무여열반에 이른다.
여러 별들에서 방출된 물질이 서로 모여 제 2세대의 별들을 탄생시킨다. 이들 별들 중에서 매우 무거운 별들이 빨리 생을 마치면서 물질을 방출하면 이로부터 제 3세대의 별들이 탄생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 은하계에는 대체로 다섯 세대의 별들이 탄생되었다.
태양은 제 1·제 2·제 3세대의 별들이 방출한 물질에서 탄생된 제 4세대의 별에 속한다. 그리고 태양이 탄생된 물질에서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과 인간이 탄생되었으므로 태양계의 천체와 인간은 우주에서 제 4세대별에 속한다.
결국 우리 몸 속에는 우주 탄생에서부터 제 3세대 별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정보가 들어 있으며 이러한 우주적 정보는 내 몸에서 나온 작은 티끌에도 들어 있다. 따라서, 하나의 작은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티끌을 보면 우주를 볼 수 있고, 우주를 보면 티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티끌의 화엄 세계는 화엄종의 초조인 두순(杜順: 558∼640)의 법계관문과 의상(義湘: 625∼702)의 법성게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우리 은하계 내에 흩어져 있는 물질을 성간 물질이라 한다. 이것의 약 10%는 티끌이며 나머지는 가스이다. 이들 티끌에는 우리 은하계의 모든 진화적 정보가 들어 있다. 즉, 은하계 내 별들이 복잡한 연기관계를 거치면서 진화해 온 이법(理法)의 정보가 들어 있는 것이다.
내 몸에서 나온 티끌에도 이런 이법에 따라 생긴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 있고 또한 내가 살아오면서 쌓은 업식도 들어 있다. 이처럼 모든 티끌은 우주적 이법, 즉 불법을 따르는 연기과정를 거치면서 생겨났다. 그러므로 티끌은 이법을 따르고 이법은 티끌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것이 화엄 연기에 따른 티끌[事]의 이사무애(理事無楝)다.
각 은하에는 약 천억 개의 별들이 들어 있다. 현재 관측으로 알려진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천억 개 이상 있으며, 이들은 총체적으로 역동적인 연기관계에 얽혀 거대한 인드라망을 이루면서 분포한다.
즉, 은하들이 한 곳에 모두 모여 있지 않고 인드라망의 그물 망처럼 분포하면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융통융섭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그림 1)
그래서 티끌에서 은하에 이르는 중중무진의 세계가 총체적으로 이완(弛緩)되어 만물은 동등성과 평등성을 유지한다. 이런 우주적 인드라망의 연기적 이법이 하나의 티끌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세존께서는 2,500여년 전에 이미 알고 장엄한 화엄의 세계를 설하셨다.
손바닥 위에 티끌을 하나 올려놓고 조용히 티끌을 살펴보며 관(觀)해 보자. 이 티끌이 어디에서 왔든 나와 만날 인연이 되었기에 내 손바닥 위에 있게 된 것이다. 이 티끌 속에 내가 들어 있을 수도 있고, 가족이 들어 있고, 민족이 들어 있고, 인류가 들어 있고, 나아가 우주가 들어 있다.
이 티끌이 어떤 인연을 맞아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면 나와 만난 인연은 고운 업식을 전해 줄까 아니면 나쁜 업식을 전해 줄까? 그리고 우리는 이 티끌에서 인간의 번뇌의 씨앗이 되는 여덟 가지 식(識)에 근거한 염오식[生滅門]을 읽을 수 있는가? 또한 무위적 자연성, 동등성, 평등성, 이완성 등의 청정식[眞如門]에 해당하는 우주심을 읽을 수 있는가?
만약 우주심을 볼 수 있다면 티끌도 우리처럼 부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주 법계에는 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부처가 있다는 세존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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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님은 전 서울대 교수이며, 한국 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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