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6 UEFA챔피언스리그 4강이 맨체스터시티와 레알마드리드(이하 레알)의 경기로 막이 올랐다. 홈 팀 맨체스터시티의 팬들은 드디어 4강까지 올라온 팀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며 경기장은 무척 뜨거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기는 막강한 화력을 뽐내기보다 서로 힘싸움을 하다가 0:0으로 마무리되었다. 레알에게도 나쁜 결과가 아니지만 맨체스터시티에게도 2차전에서 얼마든지 희망을 걸 수 있는 상황이다. 맨체스터시티도 1골 이상 넣고 비기는 결과로도 결승 무대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원정팀 레알이 준비한대로 경기를 풀어간 경기였다.
(△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나는 다비드 실바. 그가 피치를 떠난 후 맨체스터시티의 공격은 더욱 답답해졌다. 출처: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1. 맨체스터시티의 전방 압박은 효과를 봤다.
양 팀 공히 눈에 띄는 찬스를 못 만든 전반전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엔 맨체스터시티의 ‘전방압박’이 있었다. 사실 레알마드리드처럼 수비수까지 기술 좋은 선수들을 보유한 팀을 상대로 전방 압박을 시도할 팀은 많지 않다. 하지만 맨체스터시티는 과감하게 전방압박을 시도했고 그 효과를 봤다. 맨체스터시티는 전방압박을 통해 주로 레알마드리드 빌드업의 1차 시작점인 페페-라모스 중앙수비수 라인에서의 실수를 유발했다.
모드리치가 압박에서 부드럽게 벗어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의 경우 패스미스가 평소보다 많았다. 결국 맨체스터시티가 공을 잡고 있지 않은 레알의 선수들에 대해 미리미리 견제를 잘해주었기 때문에 줄 곳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패스 타이밍이 약간이지만 늦어지자 맨체스터시티의 압박을 벗어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맨체스터시티도 전방에서 빼앗은 공을 바로 공격으로 연결시키진 못했다. 전방압박 전술엔 그에 어울리는 빠른 공격 전술을 필요로 한다. 전방 압박은 공을 전방에서 탈취해서 최단 시간 내에, 그리고 상대가 수비 조직을 갖추기 이전에 상대를 공략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방압박으로 좋은 수비를 보여도, 빠른 공격을 보이지 못했기에 맨체스터시티도 경기 흐름을 장악하진 못했다. 전방에서 공을 탈취하고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은 전방압박에 수반되는 체력저하를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2. 레알 주전 멤버의 빈 자리
이번 경기에는 레알의 주 득점원 호날두가 결장했고 그 빈 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바스케스가 딱히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스케스와 호날두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차이가 있다. 직선적인 드리블에 강점이 있는 베일, 돌아나가는 움직임과 연계에 강점이 있는 벤제마는 동료에게 공간을 많이 제공하는 선수이다. 그리고 호날두는 이 공간을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선수이다. 최근 호날두의 득점은 개인 능력에 기대지 않고 동료들과의 움직임을 통해 나오고 있다. 반면 바스케스는 재간 있는 드리블로 상대를 뒤흔들 수 있고 득점력이 있는 선수이지만, 호날두만큼 직접적으로 골을 노릴 수 있는 선수는 아니다.
BBC(벤제마, 베일, 호날두)라인이 시즌 내내 가동된 적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골무원(골+공무원)이라는 별명을 얻을정도로 꾸준하게 득점력을 발휘해 온 호날두는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했었다. 호날두가 공격에서 빠지자 레알의 공격 자체가 많이 약화된 모양이었다. 동료들과의 연계를 통해 골을 마무리할 선수가 부족했다. 잘 풀리는 경기의 BBC의 움직임이 여러 개의 점이 움직이면서 선으로 연결되는 느낌이라면 이번 경기의 레알은 점들이 각각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경미한 부상이 있었던 벤제마의 컨디션이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다. 물론 전반부터 강하게 압박한 맨체스터시티의 수비가 잘했지만 분명 벤제마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 BBC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몸 상태로 경기를 나선 베일. 하지만 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출처: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3. ‘체력 상태’가 관건
레알은 후반 시작과 함께 부상으로 몸이 무거웠던 벤제마 대신 헤세를 투입했다. ‘한 방’을 기대할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에게 경기를 맡기기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카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레알의 지단 감독은 체력 상태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하다. 기술도 체력이 있어야 보여줄 수 있다.
반면 맨체스터시티는 후반전에 전반전 ‘오버페이스’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전반전부터 강한 압박을 수행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필요한 때 골로 마무리 짓지 못하면서 레알과 전면전을 계속 이어가야 했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선제골을 터뜨렸다면 수비적으로 전환하면서 역습을 노리는 전략도 가능했지만, 공격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강한 압박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는 결국 팀 전체의 기동력 저하로 이어졌다. 맨체스터시티의 개인 능력 역시 뛰어나지만, 레알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압박의 강도가 떨어지고 밸런스가 무너지자 주도권은 레알에게 공간을 허용했고 공격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스털링을 헤수스 나바스 대신 투입해봤지만 팀의 기동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엄청난 변화를 보이진 못했다.
4. 경기 결과를 뒤바꾸는 골키퍼
골키퍼의 경기 영향력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경기를 결정지을 만큼 결정적이다. 전체적 수비 라인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역시 골키퍼가 담당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선방’을 통해 골을 막는 것이다. 가끔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은 패배를 무승부로, 무승부를 승리로 만들기도 한다. 골키퍼도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조 하트는 그런 의미에서 경기를 지배했다. 이번 경기 자체가 많은 찬스를 양산하며 화력을 폭발시키는 경기는 아니었다. 제한된 기회에서 골을 만드는 집중력이 경기를 결정짓는 경기였고, 레알이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픈 플레이에서 찬스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세트피스에서는 분명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하트는 53분 라모스의 결정적인 헤더는 잡아냈고, 78분 카세미루의 헤더는 발로 걷어냈으며, 81분 베일의 머리를 맞은 후 페페가 슛으로 연결한 공은 가슴으로 걷어냈다. 하트는 결정적인 슛을 모두 걷어내면서 팀의 패배를 막았다. 71분 헤세의 헤더가 골대를 맞춘 것은 행운이 따랐다.
맨체스터시티는 레알의 골리 케일러 나바스가 몸을 날려야 하는 위협적인 슈팅은 거의 날리지 못했다. 경기 종료 직전 데 브라이너의 프리킥이 그나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공격 작업은 열심히 했지만 마무리로 연결되지 못했다. 다비드 실바의 전반전에 부상으로 경기장을 떠난 것이 특히 아프게 다가왔다.
(△ 결정적인 슈팅을 선방하는 조 하트. 골키퍼의 '미친' 선방은 상대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오늘의 레알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출처: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5. 총평
맨체스터시티에겐 절반의 성공을 한 경기였다. 전반전 전방 압박을 통해 레알을 잘 눌러주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레알 수비수들의 지속적인 실수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를 빠르고 간결한 역습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은 뼈아팠다. 아마 다음 경기에서도 이번 경기와 비슷한 양상의 공격을 보인다면 레알의 골문을 열긴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곧 탈락을 의미한다. 지지 않는 경기가 아니라 이기기 위한 경기를 위해서는 조금 더 날카롭고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는 프리미어리그 팀이 아니라 스페인과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자 레알마드리드이다.
반면 레알마드리드의 지단 감독은 무승부도 괜찮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한 듯하다. 에이스인 호날두가 결장한 원정에서 무리하게 승부를 결정지을 필요가 없었다. 스페인 현지 언론에서는 다음 홈 경기에서도 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1주일 동안 호날두의 몸 상태만 회복된다면 훨씬 강한 전력으로 홈에서 맨체스터시티를 상대할 수 있다. 레알 입장에선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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