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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성도로 성장하는 길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5절
설교의 핵심 메시지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난 성도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서론 — 신앙생활의 연수가 아니라 신앙의 성숙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성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지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는데도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라면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생명은 자라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것은 영적인 생명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거듭났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말씀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닌 지 20년,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쉽게 화를 내고, 남을 시기하고, 작은 일에도 원망하며, 다른 사람을 비방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 한 것과 신앙이 성숙한 것은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은 이후 얼마나 성장했는가?"
"나의 성품은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나의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얼마나 나타나고 있는가?“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베드로는 바로 이 문제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배척과 비방과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들에게 단순히 고난에서 벗어나는 방법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이 성장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은 우리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구속받은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1장 23절은 우리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 한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제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성도에게 나타나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 그렇다면 신령한 성도로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세 가지 길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신령한 성도는 옛사람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1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베드로는 신앙 성장의 첫 번째 과제로 죄를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버리고'라는 말은 헬라어 아포테메노이(ἀποθέμενοι)로, 옷을 벗어 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러워진 옷을 벗어 버리는 것처럼 옛사람의 죄악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특별히 지적한 다섯 가지 죄를 살펴보십시오.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입니다.
이 죄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죄라는 사실입니다.
악독은 다른 사람을 향한 악한 마음입니다.
기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외식은 겉으로는 경건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비방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왜 신앙 성장의 첫 번째 과제로 이런 죄들을 지적했을까요?
그것은 신앙의 성숙이 단순히 성경 지식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관계가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기도를 오래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비방한다면 그 사람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교회가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반드시 외부의 핍박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시기와 비방과 거짓과 분열이 공동체를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말이 한 사람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성도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죄를 버릴 수 있습니까?
먼저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보면서도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남의 죄가 아니라 내 죄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내 안에 미움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데서 회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죄를 버리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자리를 선한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미움을 버렸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거짓을 버렸다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시기를 버렸다면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비방을 버렸다면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죄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3절에서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말씀합니다.
죄를 버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그 죄를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은 인간의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의 역사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혹시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시기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말이 습관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십자가 앞에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고 사랑과 용서의 삶으로 나아가십시오.
이것이 신령한 성도로 성장하는 첫 번째 길입니다.
둘째, 신령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2–3절)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신앙 성장의 두 번째 길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사모하라'는 말은 헬라어 에피포데사테(ἐπιποθήσατε)입니다.
간절히 갈망하고 열렬히 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를 갓난아기에 비유합니다.
갓난아기는 배가 고프면 젖을 찾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젖을 찾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젖이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하게 하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이와 같은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좋은 음식을 찾아 먹고, 건강에 좋다는 것을 챙기며,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을 찾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하루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고픔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며칠씩 읽지 않아도 아무런 갈급함이 없다면 우리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이 음식을 먹어야 성장하듯이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장합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까?
첫째, 말씀을 읽는 시간을 생활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시간이 남으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시간을 구별해야 합니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좋습니다.
말씀을 펼치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앉으십시오.
둘째, 말씀을 단순한 지식으로 읽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것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질문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
"이 말씀은 나의 죄와 연약함을 어떻게 깨닫게 하는가?"
"이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어떻게 더 깊이 알 수 있는가?"
셋째, 말씀을 묵상하고 삶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감사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먹고 자라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더욱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베드로는 왜 말씀을 사모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이라는 말은 헬라어 크레스토스(χρηστός)로, 주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은 시편 34편 8절의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성도는 단순히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은혜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었을 때 주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었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미 맛본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복음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더욱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질 때가 있습니다.
낙심한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가 임할 때가 있습니다.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마음이 십자가의 용서를 깨닫고 자유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입니다.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시고 믿음을 굳게 하시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 가십시오.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은혜가 삶 속에 나타나게 하십시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할수록 그분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령한 성도로 성장하는 두 번째 길입니다.
셋째, 신령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4–5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베드로는 이제 신앙 성장의 가장 중요한 중심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앞에서는 죄를 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앙 성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부릅니다.
돌은 본래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로운 돌이십니다.
이 표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살아 계신 예수님께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종교적인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신의 교만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런데 5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베드로는 성도의 신앙 성장이 개인적인 성숙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함께 신령한 집으로 세워 가십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집을 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돌이 있어도 돌 하나만으로는 집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 돌이 기초 위에 놓이고 서로 연결될 때 집이 세워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다릅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연약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 가운데 있고 어떤 사람은 눈물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세워 가십니다.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초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목회자의 능력이나 성도의 숫자나 건물의 크기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와 설교와 사역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둘째, 서로 사랑하고 세워 주는 교회입니다.
연약한 성도를 비난하기보다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실수한 성도를 정죄하기보다 회개하고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고난당하는 성도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성도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셋째, 상처받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여 함께 변화되어 가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낙심한 사람이 있다면 위로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실제적인 사랑으로 도와야 합니다.
넷째, 예배가 삶으로 이어지는 교회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죄를 위한 완전한 제사를 이루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주일에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신령한 제사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령한 교회는 주일에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를 참으로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랑과 섬김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받아 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는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 갈수록 교회는 아름다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갑니다.
이것이 신령한 성도로 성장하는 세 번째 길입니다.
결론 — 신앙의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1–5절을 통해 신령한 성도로 성장하는 세 가지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옛사람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말씀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성장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영적인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이 말씀을 통해 자라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신앙은 어디쯤 와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한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메마른 상태에 있습니까?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다른 성도들과 사랑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을 은혜로 받아 주십니다.
상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오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믿음이 약해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완전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림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보배롭게 여기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자신의 신앙 경력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로움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신앙의 성숙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존귀하신 분인지를 나의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미움과 시기가 사라지고 사랑과 용서가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성숙한 성도는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 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 후 결단을 위한 세 가지 질문
나는 지금 버려야 할 죄를 여전히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며 다른 성도들을 세워 주는 사람입니까?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신앙이 세월만 오래된 신앙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숙한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미움과 시기와 외식과 비방을 버리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과 용서와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주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옵소서.
살아 있는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나아가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사람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