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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포 들꽃풍경 원문보기 글쓴이: 까망가방
천상병 예술제- 詩가 흐르는 천상음악회
2011. 4. 24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천상병예술제가 있었다.
천상병시인, 그리고 목순옥여사....그 흔적과 체취에서
존경하는 삶과 존재를 배우고자....
천상병 詩人
목순옥여사
천상병 예술제 2011. 4. 23 - 5. 1
詩가 흐르는 천상음악회
2003년 행사 포스터 - 추모 10주기
전시관 입구
詩畵 전시
나는...오십 여섯살이나 된 지금에도
집이라곤 없다...셋방살이다......
세상에는 집도 많건만 어찌하여.... 내겐 집이 없는가
옛날의 예수님도 집이 없었는데
나는 셋방이라도 있으니 그저 영광이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나의 가난은 ...천상병 시 일부 발췌)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불평이 있겠는가....
(영화 같은 이야기)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10>천상병 실종 사건
정치체제는 살벌했고 시대는 암울했으나 이런 일 저런 일 개의치 않고 문단 친구들에게 푼돈이나 얻어 술만 마시며
세상을 낭인처럼 살아가는 시인이 있었다. 천상병이었다. 1967년 이른바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다소의 기벽은 있었으나 문단에서 인정받는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중앙정보부가 이 사건의 수사를 시작하면서
천상병은 주요 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강빈구에게서 돈을 받아 썼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강빈구는 천상병과
서울대 상대 동기생으로 오랜 친구였다.
강빈구에게서 받았다는 돈이 술값 정도의 푼돈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결국 6개월 만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천상병이
서너 달 동안 중앙정보부에서 당한 무지막지한 고문의 후유증은 컸다.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이따금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겨우 마흔을 갓 넘긴 나이였으나 글을 쓸 수도 없었고 따라서 수입이 전혀 없었으므로 천상병은
이전처럼 문단 친구나 지인들에게 푼돈을 얻어 술을 마시는 일로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71년 여름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해 7월 31일 몇몇 문인과 술자리를 가진 후
그 다음날부터 어디서도 그를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나갔고 해가 넘어갔다. 이제 사람들은 천상병이 필경 술에 취해 어디엔가 쓰러졌다가
그대로 세상을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기에 이르렀다. 박재삼·성춘복·민영 등 동년배의
문단 친구들이 모여 천상병의 일을 의논했다. 사망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누군가 ‘그렇다면 유고시집이라도 내
그의 넋이라도 위로해 주자’고 제의했다. 모두가 찬동했다.
사망하지도 않은 천상병의 유고시집 『새』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첫 시집이 되었다.
실종되던 무렵 천상병은 술에 취한 채 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행려병자로 처리돼 서울 시립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증명서 따위가 있을 리 없었으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당연했다.
마침 천상병의 담당 의사가 수필을 쓰는 김종해 박사였다.김종해는 신문사와 출판사에 연락해 환자가 혹 천상병이
아닌지 확인하도록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연락을 받은 문단 친구들은 곧바로 시립 정신병원으로 달려가
그 환자가 천상병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막상 천상병은 친구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쨌거나 천상병은 그렇게 해서 다시 세상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건강도 차츰 좋아져
퇴원한 지 몇 달 뒤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과 결혼식도 올렸다. 그 후 20년은 새로운 삶이었다.
9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상병은 많은 작품을 남겼고, 그의 아내는 그의 대표 시 ‘귀천(歸天)’의 이름을 딴 찻집을
인사동에 냈다. 그 ‘귀천’의 첫 연은 이렇다.
천상병시인과 목순옥여사의 사진 전시
깊숙하게 한모금.....
진한 페이소스를 느낀다.
아래사진 1점 퍼옴
김동리선생의 주레로 결혼
그때가 천상병은 43살의 노총각이었고, 목순옥은 36살의 노처녀였다.
(영화 같은 이야기)
천상병시인과 목순옥여사 결혼.....
천상병의 친구 여동생이기도 했던 목순옥은 반년이 넘도록 소식이 끊겨 죽은 사람으로까지 인정했던 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통조림 몇 통을 사들고 응암동 시립정신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때 나온 천상병의 병명은
'신경황폐증', 기계에 기름을 치지 않아 기계가 멈춰 서듯 정신마저 황폐해진 상태라고 했다.
그에게 병문안을 다니는 횟수가 늘자 천상병은 유난히 목순옥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면서 그녀에게 의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스 목, 언제 또 올래? 팥빵이 먹고 싶다." 이렇게 의지하는 그를 내칠 수 없어 마침내 두 사람은
서울 변두리 수락산 기슭에 사글세 방을 하나 얻고 김동리 선생 주례로 72년 5월 14일 결혼식도 올렸다.
그때가 천상병은 43살의 노총각이었고, 목순옥은 36살의 노처녀였다.
결혼 후 남편을 대하는 내 마음은 남편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를 보살피는 심정이었다.
아내 덕분에 천상병은 천원권 적선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됐으나 그런 만큼 아내의 두 어깨는 더욱더 무거웠다.
남편을 곁에서 돌보기 위해 병풍 자수를 집에서 놓아 번 돈으로 쌀 한말 연탄 열장씩을 사서 살았고
1977년 청계천 8가에서 친구와 함께 고가구점을 경영했으나 결국 고생만 하고 문을 닫았다. 그 3년동안 쌀 한되를
살 돈이 없어 눈물을 삼킨 적도 많았으나 그들은 행복했다. 그런 때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던 시인 강태열이
"천 형, 막걸리 값이나 하면서 돈은 천천히 갚으라"고 선뜻 3백만원을 빌려주며 지금의 가게 '귀천'을 추천했다.
그 온정 덕분에 목순옥은 천상병의 '수호 천사'로 의연히 일어설 수 있었다. 20여년을 같이 살았으면서도 아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 돈을 벌고 쌀을 사는지 도통 관심조차 없이 태평했던 천상병. 막걸리 한병, 담배 한갑이면
천하에 부러울게 없었던 그는 의지할 아내와 눈을 부칠 방까지 해결되고나자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목순옥여사
천상병시인의 유품과 친필 원고, 노트
1989년 8월 13일 일기
오늘 비로서 아내에게서 일기책을 구했다.
내가 바라던 두투운 일기책이니 내 마음에 썩 들었습니다.
이제 매일같이 상세하게 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명색이 시인이랍시고 그저 빈둥빈둥 놀아서야 뭐가 시인이겠습니까?
이렇게 매일같이 일기라도써서....
천상병시인이 일기책(장)을 목여사께서 한권 사주자 그리도 반갑고 좋아라 하는 마음에
일기를 쓰는 첫날에 소회를 적으셨네요. 참 순진하신...어린아이 같은 그 표정이 빤히 보여집니다.
천상병시인의 소탈한...아니 가난한 유품들....
歸天 찻집
전시장에 시설해놓은 歸天(귀천)찻집
작은 공간이지만 천상병시인의 흔적과 목순옥여사의 때묻은 손길이 정스럽게 배어져 있다.
모과차 한모금....목젖을 타고 흐르는 진한 단향이 못내 그리움을 더한다.
카운터
목순옥여사께서 모과차를 끓여주시는듯한....그 자리의 애잔한 추억
"문딩아~~" 라고 부르는 천상병시인의 목소리가 금새라도 ....
생전에 목여사께서 운영하시던 인사동 귀천 찻집의 소품들
"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
귀천(歸天)찻집앞에서
찻집아가씨^^(아르바이트 학생) 가 친절히 사진도 찍어준다.
전시관 천정의 유리창....
귀천을 한 천상병시인과 목순옥여사의 하늘통로 같다.
어쩜 저 하늘창을 통하여 두분께서 잠시 소풍나오시지나....
하늘나라 어디에선가 천상병 시인의 짖궂은 응탈에도 가만히 손잡아 주실터....
그곳나라에서도 막걸리 한사발에 한개피 사루시려나....
헛허허허, 그리 하세요^^
하늘
천상병詩人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하소서.
2011.4.24. 일
까망가방입니다.
귀천(歸天) - 詩 : 천상병. 작곡 : 정덕기, 노래 : 바리톤 박흥우, 피아노 : 조영선
첫댓글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맘속에 있다는 것을 천상병 시인과 목순옥 여사를 보며 배워 갑니다.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이 카페는 유익한 정보가 참 많습니다.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인 성악가가 부르는"귀천"을 들어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3년전에 시인을 잘아는 지인과 딸과 셋이 함께 인사동 조그만 찻집에서 책도 몇권 구입하고 목순옥 여사님이 직접 끓여주는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저승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등 많이 감상했는데 아담한 체구의 목순옥여사님이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상세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