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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8.11.30
토요법회_ 김제원 교무님
반갑습니다. 오늘은 인도품 55장과 하산 송적벽 선진님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I. 하산(夏山) 송적벽 선진님
먼저 송적벽 선진님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송적벽 선진님은 1874년 생으로서, 대종사님보다 17세 연상입니다. 충청도 분이고요.
송적벽 선진님이 증산교의 일종인 태을교 교도였습니다. 강증산 선생님 제자입니다.
송적벽 선진님이 당시 증산교 교도들 사이의 연락책이었습니다. 정산종사님이 스승을 찾아서 가야산을 찾아 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원평에 송찬오(송적벽 속명)이 연락책이라는 소문을 듣기도 하셨어요.
송적벽 선진님이 원평에서 엿방을 하셨습니다. 엿을 고아 만들면, 사람들이 도매로 떼어가는데요. 그 과정에서, 지금 택시기사처럼 정보를 많이 알게 되신 거지요.
대종사님이 방언공사 마치시고, 금산사에 가십니다. 그때 금산사에서 어떤 분이 실신을 했어요. 그런데 대종사님이 그 분을 만졌더니, 실신한 사람이 살아나 버린 겁니다. 그런 소문은 귀신같이 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송찬오(송적벽 속명)가 놀라서 대종사님을 찾아와, 입교를 합니다. 원기 4년 8월 20일의 일입니다. 송적벽 선진님이 증산선생님의 베셨던 목침을 가지고 옵니다. 대종사님이 증산선생님의 후신이라 생각하신 겁니다.
이분이 키도 크시고, 적극적이고 인정도 많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잘 따랐던 것 같아요. 송적벽 선진님이 증산교도들을 많이 데리고 오십니다. 각산 김남천 선진님도 이때 같이 들어오십니다. 각산 김남천 선진님은 나이가 5세 더 많아요. 형님이지요 사실은. 비슷하게 입문을 하게 됩니다. 또 김정각 선진님, 체타원 구남수 선진님도 송적벽 선진님이 데리고 오십니다. (구남수 선진님이 완타원 이만갑 선진님의 연원이 되고, 이만갑 선진님이 이타원 장적조 선진님의 연원이 되고요.)
송적벽은 토수이고, 김남천은 목수입니다. 둘이 달려들면 집이 한 채씩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니까, 봉래정사(석두암)을 지으셨습니다. 영광의 영산원도 가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사실은, 이춘풍도 계시고. 그때당시에 대종사님께 뿅 가신 분들 있지요. 서중안 선진님이라든가, 서중안 선진님 부인이신 정세월 선진님이라든가. 정산종사님은 그 당시에 월명암 계시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줄포 시장에 가서 장을 봐서, 이춘풍 선진님이 공양을 올리고요.
이분들도 나이가 17세, 22세가 많은 거예요. 그 젊은 이십대 후반의 대종사를 받들어 모신 겁니다. 그만큼 대종사님이 위덕이 있다는 거지요.
대종사님이 주로 하신 법문이 성리법문입니다. 관심입정뿐만 아니라, 성리요. 정세월이 오니까 만법귀일 의두를 준다든가. 이런 법문들을 하셨어요. 그런데 송적벽은, 증산선생님이 주로 하신일이 천지개벽이거든요. 천지도수를 바꾸면서, 주로 물을 통해서, 태워서, 이적을 많이 내셨어요. 그분이 하신 역할은 해원입니다. 사람들의 원한이 얽힌 것을 천지의 원한이 얽힌 것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신 것이 강증산입니다. 대종사는 대종사인 것 처럼, 강증산을 천사라 하셨어요. 해원은 신사입니다. 그거는 귀신들. 천지공사를 통해서 해원공사를 하신 분입니다.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강증산교가 40여개로 쪼개집니다. 부인을 통해서, 제자를 통해서. 정읍쪽에 가면, 지금 조계사 건물이 원래 증산교 건물입니다. 정읍에 있던 것입니다. 차천자라고 증산선생님 제자가 차천자(보천교 교주 차경석)인데, 그때 당시에 나라를 세울 만큼, 부와 권력과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대종사님이 대각하실 때도, 지나가실 때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증산도 이야기를 했다고 하잖아요. 그 당시에 호남지역에는 차천자가 주름을 잡았던 상황입니다.
엄청난 건물이지요. 그게. 그 정도로 큰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증산 선생님은 주술적인 거나, 신비 이적이 되게 많았어요. 지금도 원평을 가면 증산관련들이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제가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봤어요. 이야기를 해보니까, 이분의 주로 관심은 7일 정도를, 열심히 기도하고 주술하고 그러면 통령이라고 영이 올려요. 구인사도 그런 쪽으로 많이 하고 있지요. 이분들은 어떻게든지 통령이 되어 신비이적을 나투는 것이 대개 관심사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송적벽도 그것이 관심이었습니다. 대종사님이 그런 것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인도정의 공정한 법을 이야기한다든가, 관심입정이나 성리법문을 이야기한다든가, 그러는 거예요. 당신 양에 안차요. 불신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증산의 후신이 맞는가라는 의심이 나는 거예요.
김남천 선진님도 사실은 증산교에요. 예전에 서울교구장 하신 왕산님 성도종 교무님 계시지요? 이분은 증산교의 재무부장 하셨던 성정철 선진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변산에 계실 때, 초기에 증산식구들이 겁나게 많이 들어왔습니다. 증산도의 재무부장 했던 분이 대종사님께 들어왔으니까요. 그분 자녀들이 성도종, 성명종, 성시종 교무님 아버님이 성정철 종사이십니다. 성산님이라고. 그분이 증산교 있다 오신 분이에요. 송적벽, 구남수, 김남천 이분들이 다 증산교에서 오신 분들 입니다.
지금도 증산도에서는 원불교 대종사는 증산교의 기도방식을 해서 크게 깨친 양반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밑이라 생각합니다. 증산도에서 그렇게 얘기합니다. 제가 도전을 보니까 대종사님 법문과 비슷한 것이 너무나 많아요. 개벽사상이라든가, 해원이라든가.
다른 점이 뭐냐하면, 그런데 거기는 천사입니다. 대종사님은 사은을 밝혀서 은혜를 내놓으셨어요. 그래서 종사거든요.
실시품 3장에 나오지요.
한번은 저녁밥을 내놓았는데, 대종사님이 안 드셨죠. 김남천과 송적벽이 왜 안 드시냐고 하니까. 너희 둘이 싸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서 안 먹는다 하셨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가 그럴 일이 없습니다. 드시라고 말하고 내려갔어요.
대종사님이 그때 정산종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산종사님이 정산종사가 둘이 싸우고 송적벽이 나갑니다 라고 말했답니다. 대종사님보다 한수 더 보신거지요. 대종사님이 그런가 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둘이 싸우는데, 그걸로 싸운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증산 선생과는 달리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 성리를 이야기하느냐, 이적 좀 나투면 좋겠는데, 나 갈란다 그런 거예요. 김남천은 무슨 소리냐 이분이야말로 생활속의 법으로 더 그러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하지 말아라. 둘이 붙어버린 겁니다. 싸우다가 송적벽은 자기가 가지고 온, 증산선생님이 비었던 목침을 도로 가지고 나가셨습니다.
나갔는데, 법문을 보면 아예 나가고 끝난 것 같지요? 그러지 않아요. 송적벽 선진님이 59세 때 대종사님이 송적벽 선진님께 여름 하자, 하산 법문을 주십니다. 여름이 뜨거웠다가 식어버린 것이지요. 뜨거웠다가 식어버린 거지요. 꽃발신심. 꽃발 신심 나서 막 해버린거지요.
특히 장적조 같은 분들 이타원님인데, 그분은 부산 경남 쪽에 엄청나게 교화를 하신 분이에요. 덕무님도 그 뿌리일 겁니다. 밀양이니 장적조 선진님이 손을 데가지고, 부산교화는 장적조 이분입니다. 이분을 통해서 경상도 교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셨는데, 이때가 서중안 선진님이 와서, 이야기하잖아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구석에서 뭐하십니까. 중생제도를 위해 나오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원기 9년도에 먼저 창립총회하기 전에, 전주에서 몇 번 모여요. 그때 또 하산님이 옆에 옵니다. 그래서 조송광 선진님을 소개하십니다. 한의사요. 서중안 선진님이 불법연구회 제1대 회장이고, 조송광 선진님이 제2대 회장이거든요. 이분을 하산 송적벽이 소개하신 겁니다.
창립총회를 한 다음에, 익산에서 총부를 건설합니다. 서중안 선진님이 돈 많이 내시고, 하산님도 돈 많이 내시고 해요. 그렇게 해가지고 총부를 건설하지요. 총부를 건설할 때, 또 목수 토수인 송적벽 김남천이 같이 합니다.
너무 생활이 곤궁하니까, 뭔 수입처가 없냐 하다가. 원래 엿장사였잖아요. 송적벽이요. 송적벽이 제안한 겁니다. 우리가 엿을 만듭시다. 내가 기술이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팔면 되지 않겠습니까.
엿을 만들어가지고, 제자들이 갖다 파는 것이지요. 아니 근데 제자들이 나갔다 오니까, 너무 경계가 심한거예요. 그중에 머리좋은 이동안 선진님은 얘들아 이리 와봐 내가 엿을 줄테니, 너희들이 엿사시오 외쳐라. 그랬답니다. 이동안 선진님이 머리가 좋아요. 이동안 선진님 자녀들도. 그분은 그렇게 엿을 파신 겁니다. 당신이 쑥스러워서 가만히 있고, 애들 시켜서 외치게 하고요.
너무 경계가 심해서 엿장사를 스톱시킵니다. 여러분들이 초창기에 대종사님 제자들은 밥도 굶으시고, 엿장사도 하시고, 아카시아 잎도 드시고 그렇게 하신 거거든요. 나무나 논 밭 매주면 뭐 주 잖아요 그렇게도 하시고. 그렇게 해서 초기교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분들이 지금 오면 놀라자빠질 겁니다. 세상에 이런 시설이 있나하고요. 여러분들은 땅 집고 헤엄치기로 편안하게. 그런 선진님들이 고생을 해가지고, 우리 교단을 이룬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래요. 원불교 돈 많다며? 원불교 돈 많다는 소리를 몇 번 들은 것 같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무님들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그렇게 해서 이 교단이 운영됩니다. 하나하나 기관이 생기고. 재가교도들은 얼마나 헌신적으로 하나 몰라요. 신심 있는 분들이. 초기교단에 선진님들 중에 항마위 출가위 올라가신 재가교도들 있거든요. 대호법들이요. 재가였지만, 출가 못지않게 하셨습니다. 그런 정성에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고,
여러분들이 교당에 와서 선진님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잘 먹고 다니지요. 그 분들은 그냥. 얼마나 원불교 교당이 우리 집이라 생각하시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초기선진님들 교화한 것 보면, 상산 박장식 선생님 교화하신 것 보면, 박사시화 할머니가 상산님 집을 얼마나 자주 간지 몰라요. 그 집이 워낙 부자라서요. 아흔아홉칸집 집이에요. 남원에서요. 그렇게 가서 빨래도 하고, 타작도 하고. 그래도 모른 체 하는 거예요. 워낙 잘사니까. 얼마나 드나들었는지요. 나중에 상산님 어머니가 자네가 하도 그러니, 내가 익산에 한 번 가주마. 그래서 익산에 와서 대종사님을 뵙고, 상산님 어머니가 발심을 하신 겁니다. 나 회갑은 익산총부에서 해주라고 하시길래. 상산님이 별수 없이 익산총부에 왔다가, 총부에 대종사님이 그때 당시에 청소하는 것 까지 지도하셨거든요. 처음에는 빗자루로 하면 혼납니다. 먼저 걸레질부터 하고요, 그다음 빗자루질하고요, 그런 다음 걸레질합니다. 처음부터 걸레질하면 먼지 날리니까요. 빗자루도 이렇게 튕기면 혼납니다. 그 걸다 저희도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종사님이 마당 쓸어도, 흙은 고랑 빠진데다가
상산 박장식 선생님이 전주고 경기고 나오고 서울법대 나오신 분입니다. 일본유학을 가려다 못 갔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총부에 와서 엄마 회갑이라해서 와보니, 느낌이 다른 겁니다. 나무 하나 심어진 것, 돌 하나 있는 것, 청소하나 하는 것이요. 아 여기는 정말로 생활종교의 모습이고, 정말 깔끔하구나 하는 생각이 난 겁니다. 선 한 번만 하고 가라. 동선 한 번 나더니, 내 한 생 바치겠다 발심을 하신 거거든요. 남원 지부장도 하시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동선나고 나서, 나 출가하겠다고 나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초기 선진님들의 그런 연원을 대는 것, 또는 교단에 대한 애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대산종사님 어머니 같은 경우, 아님 전음광 선생님 어머니 같은 경우에, 떡이나 쌀을 이고 몇 시간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총부 식구들 공양했거든요.
여러분들은 차타고 총부가서 시봉금 쪼금 내고 오면 되잖아요. 참 세상 만고지.
II. 인도품 55장
인도품 55장을 보겠습니다. 이춘풍이 누구냐 하면, 정산종사의 고종사촌 형님입니다. 뭐냐하면, 정산종사가 가야산을 갔다가, 다시 정읍까지 오시잖아요. 정읍에 계신데 대종사님이 찾아가셨지요. 둘이 형제의 의를 맺고, 나중에 정산종사가 영광으로 오시지요. 정산종사를 찾으러, 집안 식구들이 와요. 왔다가 대종사님을 만나고 뿅가. 그래서 그 집 식구들이 다 싸들고 옵니다. 그 아버지가 구산 송벽조, 그리고 송벽조의 고모부가 이춘풍입니다. 이분들도 오는 거예요. 대종사님 위덕이 그 정도였어요. 그 경상도에서 집팔고 논팔고 싹 오신 겁니다. 그래서 여기 원광선원에서 변산 가는 길이 이춘풍 집이었어요. 그런데 산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인도품 55장 보시면, 그래서 이춘풍이 여쭙기를 “지난 번에 저의 자식이 산에 갔다가 포수의 그릇 쏜 탄환에 크게 놀란 일이 있사온데, 만일 그 때에 불행한 일을 당하였다 하오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사올지 취사가 잘 되지 아니하나이다.”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이 먼저 이춘풍에게 묻지요. “그대의 생각대로 한 번 말하여 보라.”
이춘풍은 “법률이 이러한 일을 다스리기 위하여 있는 것이오니, 법에 사실을 알리어 부자된 심정을 표함이 옳을 듯하나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옆에 있던, 송적벽에게 대종사님이 물으니까, 송적벽 선진님은 “모든 일이 인과의 관계로 되는 것이오니, 그 일도 인과의 보응으로 생각하옵고 아무 일 없이 하겠나이다.” 숙명론적 인과론이지요.
대종사님이 사산 오창건에게 물으시니까. 사산 오창건은 “저도 공부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반드시 법에 호소하겠사오나, (저는 공부하는 처지이니까 저) 또한 천명으로 돌리고 그만 두겠나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강연자가 말했듯이, 심정을 생각해보세요. 키우던 병아리를 물어간 까치도 그렇게 미운데. 내 자식이 포수총에 맞아서 치사를 했다. 그러면 과연 여러분들 인과로 쉽게 돌릴 수 있으며, 또는 천명으로 돌릴 수 있겟는가 생각해보세요.
중고등학교 때 홍콩영화를 보면, 홍금보나 성룡 나오잖아요. 주로 영화가 아버지 원수를 갚는 것이지요. 스승을 만나서 열심히 무협을 연마한 다음에. 불의를 정의가 징계하지요. 권선징악의 영화이지요.
내 가족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일생을 그 사람에게 앙갚음하는 것이 목표이지요. 그 정도로 하는 것이지요.
대종사님이 뭐라하셨어요? “세 사람의 말이 다 중도를 잡지 못하였도다” 하셨습니다. 세사람다 중도를 못잡았다 했습니다. 한 사람은 법에 알리겠습니다. 인과에 돌리겠습니다. 천명에 돌리겠습니다. 중도에 맞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하신 말씀이 법률은입니다. “대개 지금의 법령 제도가 사람이 출생하거나 사망하면 반드시 관청에 신고하게 되어 있으며, 더욱 횡액을 당하였거나 의외의 급사를 하였을 때에는 비록 관계 없는 사람이라도 발견한 사람이 관청에 보고할 의무를 가졌나니, 외인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부자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처지리요. 그러므로, 나는 오직 국민의 처지에서 부모로서 즉시 관청에 사유를 보고할 것이요, 그 후의 일은 법을 가진 관청의 처리에 맡기고 나의 알 바 아니라 하겠노라.”
관청에 알리라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무술을 연마해서 처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관청에 알려서 법으로 처벌하도록 나는 법을 믿고 법에 맡기겠다는 말씀입니다. 법률은이 사은에 있지요. 그 사은은 인과보응의 신앙문에 있지요. 법이 때로는 권장하는 조목으로, 때로는 징계하는 조목으로 은혜가 있어요. 은혜는 권장만이 아니에요. 징계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것이 인과의 법칙이거든요. 잘햇으면 권장과 선을 하고, 잘못되었으면 징계해주고, 이게 법률은인 것이지요. 이것이 인과보응이거든요.
인과라고 해서 무조건 참고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송적벽이 이야기한 것은 딱 힌두교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무조건 인과로 돌려버려요. 거기는 아직도 계급이 있지요. 맨 위가 브라만이지요. 그래서 자기가 불가촉천민이라 하면, 나는 여러 생을 거쳐서 이랬으니 그냥 참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태국도 그래요. 정 못 참겠으면 네 죽고 나 죽자하면서 달려 들어요. 그 분들이 인과 신앙이 확실하거든요. 그런데 인과를 과거에 집중한 숙명론적 인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불교나 불교의 인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는 현실의 종합입니다. 현실의 종합이 과거입니다. 현재의 내 심신작용, 몸과 입과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그것은 나의 미래를 내가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 인과의 원리로 내 미래를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과는 인과이지요. 대신 국가의 법률에 맡기는 것도 인과가 적용되는 것이라 말씀하신 겁니다. 이해하시겠지요?
이 이춘풍 선진님의 따님이 항타원 이경순 종사님, 달타원 이정화 대봉도입니다. 지금 대구지역에는, 대구지역사람들이 가장 원불교에서 종법사님들 빼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이 항타원님입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분들 중에 항타원님의 은혜를 안 입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요. 이춘풍 선진님의 따님이시지요.
여러분들이 본인 공부를 잘 하시는 것도 좋고, 본인이 교당에서 맡은 일을 잘하시는 것도 좋아요.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습니다. 연원을 대는 것입니다. 대종사님 한 사람이 최소한 9명을 대라 하셨습니다.
연원을 대는 것이 큰 불사입니다. 연원을 댄다는 것은 내가 대종사님 법을 통해서 아, 나라는 존재가 영생을 사는데, 내가 지은대로 받게 되는 인과 속에서 영생을 사는구나, 하는 진리에 대한 느끼고 받아들이고, 보물로 여긴다면, 나만 알면 안 되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너무너무 고마운 것이, 낳아주고 길러준 것도 고마운데, 원불교 만나게 해주신 것 뿐만아니라, 출가 까지 시켜주셨잖아요. 얼마나 고마운가 몰라요. 아버지의 공덕으로 제가 이렇게 출가까지 하게 되었고요. 더 나아가 원불교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어떤 존재보다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 외에 가장 큰 은혜가 대종사님의 법을 만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어떤 책보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교전입니다. 어떤 책보다 저에게 은혜가 되었던 책이 교전입니다. 세상에 식당도 소개하고, 책도 선물하고, 사람도 소개하고, 직장도 소개해주는데, 진짜 소개해줄 것은 대종사님 법이고, 진짜 전해줄 책은 정말 어떤 책보다 가치 있는 책은 교전이라는 확고한 신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질문 있으면 하십시오.
III. 문답
[문]
인도품 55장에서, 관청이 부패해서 포수가 처벌 받을리가 없다고 치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요.
[답]
법률은이랑, 최초법어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최초법어에 “규칙 밝혀 주는 정치에 복종하여야 할 것이요.” (제가의 요법 4.)라 나오는데요. 생략된 말이 있습니다. “정당한 규칙”입니다. 정당하지도 않은 데에다가 복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법률은에도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이라 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법률은에 보은한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는 것이 법률의 도입니다.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는 것이 법의 생명이거든요.
그러나 대종사님의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에도 보면, 그 불의를 징계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객기로 확 들고 일어나서 자기만 죽어버리면 그건 바보라 그랫어요. 그걸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기르고, 고렇게해서 그 사람들이 아니할 수 없게끔, 상생의 도로 푸는 방법을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을 상생으로 제시해주신 것이 대종사님의 해결책입니다.
[문]
사경을 하다가 든 의문입니다.
불지품 8장 보시면, 보살은 희로애락에 초월하여 마음을 쓴다하셨고, 부처는 희로애락을 노복같이 부려 쓴다 하셨는데, 희로애락을 초월하는 것과 노복같이 부려쓰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요.
[답]
좋은 질문입니다. 희로애락을 초월하는 것은 항마위정도고요. 노복처럼 쓰는 것은 출가위, 여래위입니다.
보통사람은 희로애락 감정 속에 살잖아요. 희로애락을 초월한다는 것은 참마음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떼어놓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피경을 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그 감점에 속지 않는다, 매몰되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복처럼 쓴다는 것은 희로애락을 마음대로 쓰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이 제자를 무지하게 혼냈거든요. 총부입구에서 가끔씩 대종사님 악 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혼난 놈 나오고 나면, 어 누구냐 하면서 가면을 확확 바꾸면서, 이중적으로 왓냐. 하신겁니다. 희로애락을 노복처럼 쓰신 겁니다.
마음을 자유로 쓰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지, 경계를 피하거나 버티기 위해서 마음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초월도 어렵지요.
IV. 명절대재에 대한 설명
내일 대재라 일찍 마치려는데요.
대재가 뭔지 잠깐 설명 드리겠습니다.
원불교에는 4축2재가 있습니다. 법회 외에요. 여섯 번의 4변의 경축일, 2번의 재입니다. 1월1일 신정절, 4월 28일 대각개교절, 음력 4월 초파일 석존성탄절, 8월 21일 법인절이 있습니다. 재가 두 번 있습니다. 큰 재, 대재가 있습니다. 대종사님 돌아가신, 6월 1일 날 육일대재입니다. 12월 1일이 명절대재입니다.
출가위 이상이 되고, 대종사님 같은 주세불은 법을 마음대로 짜는 분입니다. 생일도 사실은 공동생일입니다. 그리고 각종 그 절기가 있지요. 그 절기들이 대종사님이 보니까 예법이 너무 많은거예요. 이걸 이름 있는 절기들을 모아 버린 겁니다. 그래서 명절입니다. 이름 있는 절기를 모아서, 대재로서 한꺼번에 해버려요.
추석 같은 것이 포함된 것입니다. 12월 달에 모든, 곡식 또 다하고, 조상들한테 일년 이렇게 농사짓고 이렇게 살았고. 추석 같이 지내는 것입니다.
6월 1일은 슬프게 하는데요. 12월 1일은 조금은 경축일입니다. 12월 1일은 재이지만 약간 기쁘게 합니다. 왜, 명절대재는 약간 즐거운 날입니다.
그래서 출석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축이재에 빠지면 결석입니다. 오늘 법회 봤는데, 사축이재를 빠지면 결석입니다. 여러분 사축이재때 오시면 항상 재미를 봅니다. 일반교도들이 다 돈을 내고, 떡이 있고 과일이 있습니다. 메뉴도 좋습니다. 정성스럽게 공양을 합니다.
내일 오후에 단별로 모임을 갖지요? 마지막 모임입니다. 12월 11일에 단 원을 발표하고. 그 다음 주부터 단회를 새 단회를 하도록 합니다. 그 때 부터는 새 단에 관심을 갖도록 하세요.
첫댓글 초벌 해주신 성해교우님 감사합니다.. 대재 덕에 설교가 조금 짧았음에도..감사를 드립니다.^^*
와 정말 빠르네요. 감사합니다. ^^
타이핑 공양 업로드 공양 감사합니다! 먹는 공양도 좋지만 타이핑 공양도 정말 소중하군요!
성해교우님 유미교우님께 너무나 감사드려요 ^^^^^^^^^
성해, 유미 교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꽃발신심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고 오래오래가는 신심을 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