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향연. 심문을 받고 있는 자는 무교동에서 제법 큰 맥주홀을 경영하고 있었다. 홀을 경영한 지는 1년쯤 된다고 했다. 그전에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했다. 그런자가 1년만에 시내 요지에 맥주홀을 차리고 고급 외제차를 굴리고 있다니, 아무래도 수상한 점이 많았다. 신원조회 결과 사기 전과 5범임이 드러났다. 사기 내용은 굵직한 것이 못 되고 하나같이 자질구레한 것들이었다. 그건 그렇다 하고... 도대체 무슨 돈으로 맥주홀을 차렸지? 그 정도로 차리려면 억대는 가져야 할 텐데... ? 그것도 사기해서 얻은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럼 무슨 돈으로 홀을 차렸어? 어디서 돈이 난 거야? 처, 처갓집에서 도와준 겁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거짓이었다. 조사결과 그의 처가는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처지였다. 4월 2일, 날이 새고, 점심 때가 지나고, 다시 저녁이 찾아왔지만, 변창호는 횡설수설하기만 할뿐 바른대로 불지를 않았다. 시간을 다투는 일인 만큼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강제로 자백을 받아야 했다. 할수 없다. 우리도 즐기는 방법은 아니지만 더 이상 지체할수 없지. 지쳐서 나간 김 대장 대신 심문을 맡은 박남구 형사는 곁에 있는 두 대원에게 눈짓을 했다. 두 대원이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자 변가는 항의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가만 있어. 수갑에 밧줄을 붙들어맨 다음 그 끝을 천장에 고정되어 있는 고리에 끼우고 잡아당기자 팔이 등짝 위로 치켜올라갔다. 그 상태에서 몸이 공중으로 붕 뜨자 관절이 미주치는 소리가 우두둑 났다. 아그그그그... 아이고, 나 죽네! 변은 비명을 지르며 혀를 빼물었다. 눈이 튀어나오고 이마의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체중 85킬로그램의 사나이가 팔을 뒤로 해서 천장에 매달렸으니 그 고통이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래도 대답 못 해?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아이고!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봐야 누구 하나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탁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깡마른 형사가 가장 무서워 보였다. 이건 시작이야. 우리가 당신한테 가할수 있는 고문은 3백 가지가 넘어. 시작부터 이러면 되나. 변가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팽이처럼 돌아갔다. 피를 토하는것 같은 비명이 지하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고! 그만! 그만! 마, 말하겠습니다. 돌리는 것을 멈추자 변가의 바짓가랑이 사이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줌을 싸고 있었다. 공중에서 풀려 내려온 그는 팔을 움직이지 못한채 한동안 흐느껴 울었다. 자기 딴에는 그렇게 당한것이 몹시 서러운 모양이었다. 오줌으로 질펀하게 젖은 바지를 그대로 입은채 그는 탁자 앞에 다가앉아 마침내 술술 입을 열었다. 1년전 슈퍼살롱과 함께 형님이 돈을 대주셨습니다. 그 돈을 홀을 차린 겁니다. 형님은 모든걸 비밀로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형 이름은? 변창식입니다. 탁자 위에서는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변창호가 그의 형과 헤어지기는 30년 훨씬 전인 일제 때라고 했다. 당시 20대인 변창식은 일본 와세다 대학 경제학부에 재학 중이었는데, 종전 무렵 소식이 끊겼다. 고향의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변창호는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기 때문에 형과의 소식이 두절될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형을 만났지? 2년 전 제가 수원 교도소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면회를 왔었습니다. 재일교포라고 했습니다. 형님의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하면서 출옥하는 대로 도쿄로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달후 출옥하자마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전화번호 가지고 있나? 없습니다. 그 전화는 사용하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30여 년만의 형제의 전화 상봉은 아주 감격적인 것이었다. 창호는 기억에도 어슴푸레한 형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엉엉 울었다. 부모가 모두 별세했으며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나중에 가서 너절하게 늘어놓았다. 형이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놓칠세라 바싹 늘어붙은 것이다. 형이 그 동안 어떤 모습으로 변했으며 정확히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 그는 알리 없었다. 형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모호한 상태로 얼버무렸다. 막대한 돈이 굴러들어오고 고급 외제차가 생기는 바람에 창호는 하루 아침에 알부자가 되었다. 형은 주소도 전화번호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언제나 자기 쪽에서 전화를 걸어오거나 사람을 보내거나 했다. 그 동안 부탁받은 일을 말해 봐. 별로 없습니다. 아무 거라고 좋아.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말해 봐. 돈을 준 적이 있습니다.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떤 여자가 찾아갈 테니까 자기 앞 수표로 5천만 원을 주라고 했습니다. 야부끼 에이꼬라고 하면 무조건 따지지 말고 돈을 내주라고 했습니다. 박 형사는 R호텔에서 추락사한 에이꼬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여자인가? 네, 바로 이 여잡니다. 변가의 눈이 빛났다. 돈을 주었나? 네, 주었습니다. 형님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에... . 그것이 언제였지? 지난 3월 하순경이었습니다. 3월 26일 전이겠지. 이 여자는 26일에 죽었으니까. 박 형사는 땀을 닦으며 일어섰다. 얼굴빛이 창백했다. 같은 날 밤, 도쿄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되자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K일보 도쿄 주재 특파원인 엄명국 기자는 클럽의 구석 자리에 앉아 연방 트림을 해대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마신 술에 그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배우처럼 미남인데다 말솜씨가 좋은 그는 영어, 불어, 일어에 능통한 수재였다. 1년전 아내와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한 그는 현재 홀가분한 몸이었지만, 이국생활이라 항상 가슴 한쪽은 외로움에 젖어 있었다. 에이꼬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몰라? 그는 곁에 앉아 있는 나이 든 호스티스를 흐릿한 눈으로 곁눈질했다. 뺨이 훌쭉한 그녀는 주름살을 지우려고 화장을 짙게 하고 있었지만 나이만은 속일수 없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 자꾸 묻는건 모욕이에요. 여자는 입술을 내밀면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빌어먹을... 엄 기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에이꼬와 평소에 가까이 지낸 여자를 찾느라고 그는 고생이 막심했다. 그런데 막상 찾고 나니 여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를 주면 이 여자의 입을 열게 할수 있을까. 몸으로 때울까. 그러고 싶지는 않다. 생각 끝에 그는 1만 엔을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여자는 그것을 후하고 불어버렸다. 엄 기자는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집어 거기에다 1만 엔을 더 얹어 그녀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여자는 웃으면서 그것을 털어버렸다. 왜 이래? 난 더 이상 줄수 없어. 이제 줄수 있는건 이것뿐이야. 그는 손바닥으로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여자는 인조 속눈썹을 스르르 감으면서 말했다. 제가 필요한건 바로 당신 같은 아담이에요. 이렇게 비오는 밤이면 땀으로 목욕을 하고 싶어요. 엄 기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으스스 한기가 느껴졌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이 늙은 여우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는 안된다. 서울에 있는 홍 기자가 밉살맞게 생각되었다. 좋아, 갑시다. 여자는 묘하게 웃으면서 그를 따라나왔다. 뒷골목에 있는 삼류 호텔이었는데 밖에서 보기보다는 깨끗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히 해치우자.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옷을 홀홀 벗어던졌다. 여자도 그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옷을 벗었다. 벌거벗은 여자의 몸은 생각보다는 의외로 풍만해 보였다. 젖가슴은 무겁게 늘어져 있었고 배에는 군살이 주름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노장다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자는 많이 굶주려 있었던것 같았다. 뒤로 다가서서 허리에 팔을 두르자 흐흑 하고 숨을 들이키면서 마치 처음 남자에게 안겨 보는 숫처녀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멋있어요. 여자가 그의 그것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그는 여자의 두 다리 사이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밀어넣었다. 이름이 뭐지? 후미에... . 뜨거운 숨결이 확 끼쳐왔다. 아, 난 너무 무시당해 왔어. 남자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매일 나는 공만 쳤어요. 여자가 어느새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에 얼룩진 화장기가 얼굴을 지저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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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종] Z의 비밀 15. 육체의 향연
하 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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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2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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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혜
08.06.20 09:11
첫댓글
감사히 잘봤 읍니다~!
백세청풍
08.06.20 11:37
항상 감사드립니다.
나리아리
08.06.20 12:51
감사해요^^
재벌1세
09.08.08 13:35
찝찝
그리운남촌
14.07.15 11:05
잘 읽고갑니다~~
은 설
18.02.25 16:48
후미에...
머루와들꽃
19.08.19 21:30
감사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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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잘봤 읍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감사해요^^
찝찝
잘 읽고갑니다~~
후미에...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