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4주 한국갤럽 여론조사결과 대통령직무수행평가 와 정당 지지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통령직무수행
잘하고 있다 34% 전주대비 +1%
잘못하고 있다 58% 전주대비 -2%
○정당 지지도
국민의 힘 34% 전주와 동일
더불어민주당 35% 전주대비 +2%
정의당 5% 전주와 동일
무당층 25% 전주대비 -1%
○대통령직무수행 평가 이유
긍정평가 이유 상위 다섯가지 부정평가 이유 상위다섯가지
일본관계개선 18% 외교 25%
외교 11% 일본관계/강제동원배상문제 23%
노조대응 8% 경제/민생/물가 7%
주관/소신 5% 독단적/일방적 5%
결단력/추진력/뚝심 5% 소통미흡 5%
3얼4주 여론 조사결과 대통령직무수행 긍정평가율과 여당인 국민의힘 정당 지지울이 34%로 우연의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대통령직무수행평가를 지역별로는 살펴보면 부정보다 긍정이 높은 곳은 대구/경북이 유일하고, 연령별로는 60대와 70대 이상이 부정보다 긍정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로는 ‘일본과 관계개선 18%’인 반면 ‘강제동원배상문제를 포함하는 일본과 관계개선’에 대한 부정평가는 23%로 나타났습니다. 외교에 대한 긍정 평가는 11%인반면 부정평가는 25%로 두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대일 강경노선을 취한대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도발과 모욕을 초인적인 노력으로 감내하며 북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유화책을 펼칠 명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남북한이 합치면 일본을 누를 수 있다’는 류의 자극적인 발언 등으로 북한에 대한 퍼주기 교류협력을 합리화하는데 당시 무조건 반일(反日) 정책은 안성맞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반일(反日) 의식이 강화될 수 록 민족 대동단결의 명분이 고조되고, 이를 대북지원정책을 펼치는데 그럴듯한 구실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대해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죽창가를 부르면 정권의 지지율도 덩달아 올라가니 문재인 정부는 임기중 친일세력을 프레임에 가두어 공격하는 구도가 최상의 정파적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퇴임하여 전직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일 감정이 무의식 중에 남아있는 한 반일(反日) 친북(親北)구도는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더불어 민주당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더불어 민주당에게는 반일친북구도를 바꿀 만한 충분한 인센티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난 16일 한일 확대 정상 회담 후 일본정부의 언론 플레이에 대해서는 윤석열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필자는 ‘한일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고 포지티브 섬 게임’이라고 말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먼저 협력체재를 구축하고 한미일의 글로벌 협력으로 관계를 확대해 나가면 양국이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공동번영을 누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양국협력의 미래가 밝고 유망하다 해도 외교는 국익을 위해 싸우는 일입니다. 양국 정상회담후 ‘일본이 이겼다’고 쾌재를 부르면 그것은 곧 ‘한국이 졌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정상회담에서 박근혜-아베시절 체결한 위안부 합의의 이행을 촉구했다는 기시다 수상의 발언과 독도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등의 일본측 언론 플레이로 윤석열 대통령을 곤경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상회담직후 일본의 3대 주요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인기가 급상승하여 빈손으로 돌아 왔다며 야당과 일부 국민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일본이 오는 4월에 지방 선거와 중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번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서 시기다 총리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킬지도 모르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위안부 피해 보상에 대한 대승적 결단을 내린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일본의 극우 세력이 펼치는 국내 정치용 이중 플레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특별수사 팀장의 신분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라고 인상적인 발언을 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현실세계에서 보다 소설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헨리의 소설 20년후(After Twenty Years)에는 20년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슬비 내리는 캄캄한 밤 친구를 재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20년전 그들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만들어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날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20년후 한 친구는 경찰이 되었고, 다른 친구는 죄를 저질러 현상금이 걸린 범인이 되었습니다. 경찰은 친구를 보는 순간 한눈에 그가 현상금이 걸린 범인인 줄 알았지만 그를 체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동료경관을 시켜 그를 체포하도록 하고 동료경찰을 시켜 메모믈 전달합니다. “자네가 시가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불을 붙였을 때, 시카고에서 현상 수배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네. 하지만 네 손으로 직접 자네 손에 수갑을 채울 수는 없었네. 대신, 돌아오는 길에 동료 경찰에게 부탁했네.” 오 헨리의 소설 속 등장 인물은 친구에 대한 의리와 임무에 대한 충성사이에서 인간적인 번민을 무릅쓰고 경찰의 임무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친구의 손에 직접 수갑을 채우는 일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처한 도덕적 난처함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던 같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독트린(doctrine)은 검사라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신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추구하는 정치지도자의 경우 사정이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정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를 구심점으로 하는 집단 사고로 의사가 집약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상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여 발목을 잡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 있습니다. 집단사고가 동반하는 의사결정의 본질과 단점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레스터 재니스(Irving Lester Janis, 1918-1990)에 의하면 집단사고를 ‘응집력있는 의사결정 그룹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안평가와 반대의견을 억누르고 합의를 이끌어 내려는 심리적 충동’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정치분야에서 집단사고는 1961년 잘못 계획된 미국의 큐바 피그만 공격부터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를 비축했다는 잘못된 믿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집단 사고는 스위스항공 파산과 엔론사태 처럼 세간의 주목을 끈 많은 경영 실패의 원인으로 지적 받기도 했습니다.
어빙 재니스가 지적한 잡단사고의 여덟가지 증상과 단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불패의 환상. 그룹은 절대 실패할 수 없다는 믿음.
2. 도덕성. 그룹의 동기는 본질적으로 훌륭하고 정확하다는 믿음.
3. 합리화. 모순된 정보나 데이터를 중요하지 않다고 해명하려는 경향.
4. 고정관념화. 그룹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바보로 매도하는 경향.
5. 자기검열. 그룹구성원들의 의구심을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경향.
6. 만장일치의 환상. 침묵은 동의와 같다는 믿음.
7. 마인드가드. 그룹의 가정에 도전할 수 있는 정보로부터 그룹을 보호하는 자칭 사상 경찰의 출현.
8. 동조. 반대의견을 배신으로 간주하는 경향.
최근 더불어 민주당이 당무회의에서 당헌 80조의 예외 조항을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게 부여하기로 하면서 그 과정에서 집단사고의 후유증과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아들 부시)의 이라크 침공 계획을 반대하던 국무장관 파월(Colin Powell)은 결국 자신의 의견을 굽히고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부시정부 결정에 마지 못해 동조했습니다. 그리고 파월은 UN연설에서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켜 이락을 점령한 결과 그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파월은 이일로 공들여 쌓아온 모든 명예가 곤두박질 치는 치욕을 경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파월은 리더에 대한 충성스런 반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 충성한다는 것은, 상사의 의견과 상관없이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제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매우 치열하게 의견이 대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이루어 지고 나면 토론은 끝납니다. 그 순간부터 충성한다는 것은, 그 결정이 자신의 의견이었던 것처럼 몰입하여 실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의 정조대왕은 세종의 시대를 이끈 양대 재상으로 황희(黃喜)와 허조(許稠)를 꼽았습니다. 허조는 꼬장꼬장한 성품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허조는 토론의 자리마다 소수의견을 냈고 언제나 최악의 가능성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다른 신하들이 동의해서 결론이 난 사안에 대해서도 끝까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세종은 이런 허조에게 중책을 맡기며 항상 그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백성들이 이해 하기 쉽도록 법전을 이두로 번역하여 나눠주라는 세종대왕의 지시에 대해 허조는 홀로 ‘백성들이 법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교묘히 법망을 피하고 노는 무리들이 생겨 날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 했습니다.
‘신문고를 백성들이 자유롭게 칠수 있도록 하라’는 세종의 결정에 대해서도 허조는 혼자 비판적인 의견을 내 놓았습니다. 신문고를 칠수 있는 조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담당 고을이나 관청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 까지 무조건 다 임금에게 가져와서 해결하려들 게 된다는 것 입니다.’
실록에 의하면 다른 신하들이 모두 찬성할 때조차 허조는 홀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세종 대왕은 ‘허조는 고집불통이다’ 고 불평하면서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세종은 허조가 정승이 되었을 때 상당 기간 이조판서를 겸임하게 했습니다. 인재를 정밀하게 살피고 편견을 예방하며, 인사 결정을 심사 숙고 하기 위하여 허조를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로 삼은 것입니다.
아무튼 세종은 충성스러운 반대자를 중용하여 시너지를 냈습니다. 세종은 신하의 반대를 통해서 자신의 결정에 잘못된 점이 없는지 반성하고 정책의 문제점을 점검해 나갔습니다.
세종실록에 허조가 한말이 이렇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소신이 반대했지만 끝내 전하의 허락을 받지 못했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만큼 고쳐 주셨으니 이제는 시행해도 문제가 없으실 것입니다.’
허조가 반대 의견을 내면 세종이 경청하며 반영해 주셨고 또 언제나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설령 자신의 의사와 다른 결정이 내려 지더라도 온 힘을 다해 헌신한 것입니다. 이는 다른 신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종이라고 인간적인 약점을 무릅쓰고 무조건 바른 생각만 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렸을까요?
세종이 훌륭한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왕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신하를 곁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에서 충성스러운 반대파가 자유롭게 반대의사를 개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독트린은 ‘충성스런 반대파’와 맥이 통하는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인맥일변도의 편중 인사에서 탈피해야만 넓은 안목으로 국정에 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식이 입에는 좋지만 신체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콜린파월(Colin Powell)이나 허조(許稠) 같은 ‘충성스러운 반대파’ 를 남은 임기동안 적극 발탁하여 정책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정치 초보자로서 ‘제대로 하기로 마음 먹었구나’ 라는 인상이 대중의 무의식에 각인 될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윤석열대통령 주변에 양신(良臣)이 보이지 않습니다. 양신(良臣)이란 ‘전심전력으로 국사를 처리하고, 매일같이 군주에게 좋은 의견을 바치며, 예의로써 군주를 염려하고, 훌륭한 계책은 군주에게 아뢰고, 군주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면 따르고,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바로잡는 부류의 신하’를 말합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의 납간(納諫)편에 나오는 당태종(太宗)과 충성스러운 반대파 위징(魏徵)의 대화록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충성스러운 반대파의 진언을 당태종이 받아들인 좋은 사례로 인용합니다.
정관 6년, 당 태종의 공적이 크다고 생각한 다수 신하들이 태산에 가서 봉선(封禪)의식을 행하도록 부추기는 일이 생깁니다. 모두가 찬성하는 그 일에 위징은 태종에게 봉선 의식을 하지 말하고 간언 합니다. 당태종과 위징의 대화록입니다.
당태종. 나는 그대가 지금 진실된 의견을 말하고 숨기는 것이 없기를 바라오. 나의 공적이 높지 않소?
위징. 공적은 높습니다.
당태종. 덕행이 두텁지 못하오?
위징. 덕행이 두텁습니다.
당태종. 아직 잘 다스리지 않았소?
위징. 잘 다스려 졌습니다.
당태종. 매년 오곡을 풍성하게 수확하지 못하고 있소?
위징. 수확은 풍성 합니다.
당태종. 그러면 무엇 때문에 봉선을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위징. 폐하의 공적은 비록 높지만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폐하의 은혜가 기억되지 못했고, 폐하의 덕행은 비록 두텁지만 아직은 은택이 사람들에게 두루 퍼지지 못했습니다. 화하(華夏) 중원은 비록 안정되었지만, 아직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봉선대전의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먼 곳에 있는 외족들은 비록 폐하를 우러러 사모 하지만, 아직은 더욱 많은 물건으로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한 징조가 나타났지만, 크고 작은 형벌이 아직도 천하에 가득합니다. 몇 년간 연속하여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지만, 식량 창고는 텅 비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봉선을 거행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군주의 도의 기본은 신하와 백성과의 상생과 협력입니다. 당 태종은 신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군주의 도리는 먼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요, 만일 백성의 이익을 손상해 가면서 자기 욕심을 채운다면, 마치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아서 배는 부를 지 언정, 곧 죽게 될 것이오. 만일 천하를 안정되게 다스리고자 한다면, 먼저 군주 자신의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하오. 몸이 곧은데도 그림자가 기울고, 윗사람이 훌륭히 다스리려고 노력하는데, 아랫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경우는 없소.”
위징(魏徵), 허조(許稠), 콜린 파월(Colin Powell) 등은 고상한 말로는 양신(良臣)이라고 부르고 좀 쉬운 말로는 충성스러운 반대파라고 해야 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검사시절 윤석열 독트린과 양신(良臣)내지 충성스러운 반대파는 그 기질 면에서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필자는 국정운영 초기의 미숙함과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진면목을 보여 주면 아직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관망하는 국민여론도 점진적으로 변하리라고 믿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좋은 한주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추기: 이글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에릭 펠튼지음 ‘위험한 충성’, 문학동네간
○브라이스 호프만지음 ‘레드팀을 만들어라’, 오네이도간
○유성운 지음 ‘사림, 조선의 586’, 이다 미디어 간
○김준태지음 ‘탁월한 조정자들’, 교보문고 간
○김원중 지음 ‘경영사서’, 민음인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