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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42_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72 12.03.03 15: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 일찍 안개속에 일어나 밖을 보니 아파트 밑이 하나도 안보일 정도이다. 20일에 광양 백운산을 가기 위해 오늘 곡성으로 가야하는데 이왕이면 가는 길에도 여행을 즐기려 성산과 논산에서 11시에 만나기로 한 날이다. 11시 도착이면 8시넘어 출발을 해도 충분하지만 가는 길에 공주에 들러 공산성을 둘러보고 논산으로 가려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안개가 많이 끼어 어쩔까 생각을 하다 아침 7시에 출발을 하였다.고속도로에 올랐으나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앞차가 잘 안보일정도 이기에 겨우 80키로 정도로 달리는게 보통이다.
 
이럴 때는 서로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같은 속도로 달려주는 것이 사고예방에 도움이 되는 운전법이 될 것이다. 천천히 달려 천안고속도로 정안에서 국도로 나가 공주시내로 진입을해 복잡한 다리를 건너 공산성주차장에 도착을 해보니 아무 것도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끼어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좀 넘었다. 이제 성산이 기차를 탓을 까?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더니 첫차를 타고 와 지금 논산역에 있다 한다. 그 자리에 있으라 하고 달려가 상봉을 할 수가 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원래 대둔산을 오르기로 한 것인데 날씨가 이렇게 변해 버렸으니 가면서,
 
사찰을 돌아보며 내려가기로 하고 떠난 것이 논산과 완주에 7군데의 사찰을 돌고야 곡성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논산역에서 출발할 때는 확실한 여행지를 택하지 못한 탓에 시내로 통과하는 바람에 건양대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건양대뒷길로 임도가 있어 그리 들어가보니 관촉사 뒤쪽이다. 그곳에 주차를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을 다시 한 바퀴를 돌아 삼거리 주차장에 거금을 내고 주차를 하게 되었다. 일주문 앞에 서 보았으나 안개가 너무 끼어 하늘이 안보인다. 천천히 걸어올라 매표소에 도착한다. 입장료는 1500원씩이었다.

[관촉사 일주문(盤若山 灌燭寺)...]

일주문의 정면에는 '반야사 관촉사(盤若寺灌燭寺)'라고 적혀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둥근 기둥을 세워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짜아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섬으로써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

[관촉사 반야교(般若橋)...]

[관촉사 천왕문...]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어칸은 통로로 출입을 하며, 협칸에는 사천왕상이 2구씩 모셔져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내부의 천정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 구조이다.다.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선신(善神)으로 문 양편에 사천왕을 안치하므로 문 이름을 '천왕문'이라고 한다.

[경내 오르는 길목에...]

[경내 오르는 길목에 약수터가...]

[약수터 옆에 고뇌에찬 나무하나...]

[관촉사 경내로 오르는 계단...]

관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에 혜명(慧明)이 창건하였고, 법당은 1386년(우왕 12)에 건립하였으며, 1581년(선조 14) 백지(白只)가 1674년(현종 15)에는 지능(知能)이 중수(重修)하였다. 옛날 중국의 지안(智安)이라는 명승(名僧)이 이 절에 세위진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은진미륵)을 보고 “아아,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미륵이 빛난다” 하면서 예배하였다 하여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어렸을 때 소퐁온 기억이 새롭지만 처음오르는 반야교는 낯이 설었다. 전에는 일주문에서 한참 걸어 들어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가깝게 느껴지었다. 역사이야기로 듣기에 "옛날 이곳 반야산에서 여인이 고사리를 따고 있는데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울던 아이는 없고 바위가 솟아나고 있어 이를 위에 알려 조정에서까지 알 게 되어 바위에 불상을 조성할 것을 혜명에게 맡기었다" 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관촉사 미륵전...]

미륵보살이나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을 '미륵전(彌勒殿)' 또는 '용화전(龍華殿)'이라고 한다. 보통 다음 세상에 메시아로 강림하는 미륵부처님을 모시면 용화전, 도솔천에 모셔진 미륵보살을 모시면 미륵전이라고 한다. '미륵전'이라는 적은 현판 글씨는 연제(蓮齊) 이용현(李鎔泫)이 쓴 것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선신(善神)을 도상화한 그림을 신중탱이라 한다. 많은 신들을 배치하여 그리므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를 보이는 신중탱은 일반적으로 제석(帝釋)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무장을 한 신중들을 배치한다.

[암반위에 지은 절이라더니 경내에 커다란 암반이...]

[관촉사 대웅보전...]

대웅전은 미륵전 전면 좌측에 자리 잡고 있으며 미륵전 축과는 직교되는 위치이다. 대웅보전 전면에는 누각을 지어 미륵전 축과 별도의 불전영역을 조성하였다. 현재 관촉사 주출입은 누각 하부를 지나 대웅보전 마당을 통해 드나들도록 바뀌었다. 대웅보전은 하층 정면 5칸, 측면 4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인데 보기 드문 중층건물로서 1996년에 지었다. 안에는 배면 가운데 칸을 후불벽으로 삼아 불단과 닫집, 후불탱을 걸어 장식하였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조성하고 다듬은 원형 초석을 놓은 다음 원형기둥을 하층기둥을 세웠다.

내부에는 내진주를 모두 고주로 써서 중층가구를 결구하였다. 하층 정면은 꽃살문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기둥 상부는 창방과 평방을 짜고 다포계 공포를 올렸는데 외2출목이다. 상층 공포는 외2출목, 내3출목이다. 내부는 상하층이 트인 중층이며 상층은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처마는 상하층 모두 서까래와 부연을 썼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팔작으로 만들었다. 내부는 상층만 단청하고 하층 포는 백골로 두었다.

[관촉사 대웅보전 입문...]

[관촉사 대웅보전 문살 문양...]

[윤장대를 밀며 한 바퀴 돌고 소원을 빌면?...]

[관촉사 명부전...]

명부전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는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신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상, 판관, 인왕 등이 함께 조성된다. 나무를 깍아 만든 높은 수미단에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지장삼존상을 모시고 있다. 중앙에는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지장보살이 깍은 머리에 스님 모습으로 한 손에는 육환장(六環杖),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좌우에는 젊은 수도승인 도명존자(道明尊子)와 문인의 모습을 한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뒤에 걸려 있는 후불탱은 지장탱(地藏幀)이다.

[관촉사 석조미륵 보살입상(灌燭寺 石造彌勒 菩薩立像) 주변...]

[관촉사 삼신각 오르는길...]

[관촉사 석조미륵 보살입상과 석등...]

관촉사의 상징이라할 만큼 매우 중요한 불상으로 전체높이가 18m에 달하는 거대한 고려 초의 불상이다. 보통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보물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조성 시기는 '관촉사비명'에 따르면 970년(광종 21)에 시작하여 1006년(목종 9)에 이르기까지 3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의 백호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묵기(墨記)에는 968년(광종 19)이라는 기록이 있다.

'관촉사사적비명'이 조성당시와 거리가 먼 조선후기의 기록임을 감안하고, 묵기가 불상의 조성과 함께 봉안되었을 것이므로 불상의 조성시기는 968년 설이 보다 믿을만하다. 절을 찾기 위해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해탈문을 들어서면 눈앞에 거대한 이 미륵보살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처음 불상을 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 당당한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불상에서 풍기는 인상은 불상이라기 보다는 친근한 이웃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이다. 얼굴의 표현이 이마가 좁고 턱이 넓으며 코와 귀, 입을 다소 크게 나타냈기 때문이다.

[관촉사 종각...]

[관촉사 석문 (충남 유형문화제 79호)...]

관촉사 경내에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문으로 크기는 바깥너비 194cm, 안너비 137cm, 바깥높이 196cm이며 석문 자체의 크기는 높이 1.8m, 너비 2.0m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입구의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윗면 천장에 5개의 장대석을 얹음으로써 4각형의 석문을 이루고 있다. 돌기둥은 너비 40㎝의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축조연대에 관한 고증이나 기록은 없으나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사찰이라는 도장에 들어가기 위한 문이라는 뜻에서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구전에 의하면 관촉사를 창건하였을 때 참배객이 너무 많이 몰려 이를 막기 위해 담장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는데, 그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석문이라고 한다. 고 전해준다.

[관촉사 동종의 에 섬세한 그림이...]

[동종을 매달고 있는 청룡뇌...]

[관촉사 석조미륵 보살입상 주변...]

[관촉사 5층석탑...]

[관촉사 사적비(事蹟碑)...]

이 비석의 비문에는 부처상을 만들 돌의 융기, 혜명에 의한 불상의 조성, 관촉사란 절 이름의 유래, 불상의 보수, 불상에 대한 찬미 등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귀부(龜趺)는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으며, 그 아래에 80cm× 57cm의 편평한 돌이 깔려있다. 귀부와 비좌 사이에 연꽃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60cm×30cm×133cm의 크기이다. 글자는 비신의 전·후·측면 일부에서 확인된다. 고 전해준다.

[관촉사 석조미륵 보살입상...]

[관촉사 석조미륵 보살입상앞 해태석...]

[관촉사 배례석 (충남 유형문화제 53호)...]

관촉사 석등(보물 232)에서 약 10m 동쪽으로 떨어진 화단에 있는 직사각형의 대석(臺石)으로 길이 204cm, 너비 103cm, 높이 40cm이다. 바닥에는 2단의 직각괴임을 각출(刻出)하고 그 위의 면석에는 전면에 3개, 단면에 2개의 안상(眼像)을 새겼고, 안에는 고사리무늬 같은 버섯구름 모양을 양각했다. 1단의 면석 위에 2단의 괴임이 있으나 서남향의 면석은 마멸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윗면 중앙에는 커다란 연꽃이 있고 그 좌우에는 중앙의 것보다 약 3㎝ 정도 작은 연꽃 2송이가 있는데 형태가 모두 같다.

즉 단판8엽(單瓣八葉)이고, 중앙에는 커다란 원좌(圓座)가 있으며 그 안에는 가운데 1개와 주변의 8개의 씨방이 연주문(蓮珠文)처럼 돌려져 있는데 음각이다. 연꽃의 잎끝이 뾰죽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꽃잎이 뾰죽하게 양각되어 꽃이 가지에 달려 있는 듯 실감나게 조각되어 있다.

[관촉사 석등 (보물 232호)...]

하대석은 8꽃잎의 복련(覆蓮)을 조각하고 윗면에 2단 받침을 마련하여 간주(竿柱)를 받고, 간주석(竿柱石)은 원주형으로 중앙부 원대(圓帶)에 4꽃잎의 복련을 장식하였다. 상대석은 방형이며, 하면에 8꽃잎의 앙련(仰蓮:위로 향환 연꽃)을 원형으로 조각하였다. 화사석(火舍石)은 2층으로, 하층의 주화사(主火舍)는 마치 네 기둥집 모양으로 되었고, 상층 화사석은 형식적으로 전·후면에만 화창(火窓)을 조각하였다. 옥개석은 네 귀가 반전(反轉)을 보이고, 정상에는 보주(寶珠)가 있다. 968년(고려 광종 19)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 알려 준다.

[관촉사 5층석탑...]

[관촉사 구석 돌담 위에...]

[단풍과 지붕의 아름다운 조화...]

[사철나무 열매...]

매번 어느곳으로 여행을 하던지 들르게 되는 논산이고 잠시 들르면 되는데도 발길이 닿지 않고 또 날씨가 흐리지 않으면 봄꽃나드리 인파에 그냥 지나치던 그런곳을 이렇게 한적하게 구경을 할 수 있어 무척이나 오래보낸 시간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내를 다 돌아보고 내려서니 11시가 훨씬 넘었다. 이제 날씨가 개어 하늘이 파랗게 보일 정도이다. 다음 목적지는 논산시 중산리에 있는 쌍계사가 제일 가까운 곳이다.

쌍계사를 향하여 발길을 돌린다. 주차장 삼거리에서 643번 지방도를 이용해 조금 지나자 바로 밤색표지판이 반긴다. 탑정호이다. 옛날엔 논산저수지라 한 것 같은데... 언제부터 탑정호라 불렀는지 모르겠다. 고속도로 밑으로 통과 가야곡을 지나 양촌쪽으로 달리다가 쌍계사라는 표지판을 따라 깊숙이 들어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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