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사절요 충숙왕(忠肅王) 1330년 윤7월 기사中
上王,至黃州,王,道上胡跪,迎謁,上王曰,
汝之父母皆高麗也,何見我行胡禮,且衣冠太侈,何以示人,可速更衣,
訓戒嚴厲,王涕泣而出,
前密直副使李仁吉,以姦幸於王,上王曰,
汝眞犬豕也,
杖之,流于島,王中止之。
상왕(上王/충숙왕)이, 황주(黃州)에 이르니, 왕(王/충혜왕)이, 도상(道上/길 위)에서 호궤(胡跪/오랑캐의 무릎 꿇는 예법)하며,
영알(迎謁/마중 나가 알현함)하였는데, 상왕(上王)이 말하길,
너의 부모(父母)는 모두 고려인(高麗)이다,
어찌 나를 보고 호례(胡禮/오랑캐의 예법)를 행(行)하느냐?,
또한 의관(衣冠)이 태치(太侈/크게 사치함)하니, 어찌 이로써 시인(示人/사람에게 보임)하겠느냐?,
속히(速) 경의(更衣/옷을 갈아입음)함이 옳다.
훈계(訓戒/가르치어 경계함)가 준엄(嚴厲/매서움, 호됨)하니, 왕(王)이 체읍(涕泣/눈물을 흘림)하며 나갔다.
전(前) 밀직부사(密直副使) 이인길(李仁吉)은, 간사(姦)함으로써 왕(王/충혜왕)에게 행(幸/임금의 사랑을 받음)하니,
상왕(上王)이 말하길
너는 진실로(眞) 견시(犬豕/개와 돼지)이다,
장(杖)을 가하여, 섬에 유배(流)하려 하였는데, 왕(王)이 중지(中止)하였다.
첫댓글 그참.... 고려인으로서의 주체의식을 잃지 말라는 지적이야 당연히 타당한 것이기는 한데, 충숙왕이 아들 충혜왕에게 부모가 모두 고려인임을 강조하는 부분은 좀.... ^^
충숙왕의 경우, 그 모친인 야속진은 몽골 여자임....
게다가 충숙왕의 아버지인 충선왕(부) 또한 모친(조모)은 제국대장공주로서 몽골 여자.....
이 시기 고려 왕실을 혈통으로 이야기한다는 게 매우 웃긴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혈통만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치면, 충렬왕을 100% 고려인으로 본다고 할 때에....
충선왕 : 50% 고려인(아비(충렬왕) 고려인 * 어미(제국대장공주) 몽골인)
충숙왕 : 25% 고려인(아비(충선왕) ½ 고려인 * 어미(야속진) 몽골인)
충혜왕 : ?
개인적으로 충숙왕은 좀.... 불쌍타 여기는 임금입니다. 아비(충선왕)는 몽골을 너무 신경쓰느라 어찌 보면 고려왕으로서의 자각이 좀 약해서 원나라 수도에서 고려를 원격 지배...... 게다가 막판에는 고려왕과 심양왕을 서로 분리, 경쟁시킴으로써 다음 대 고려왕(충숙왕)을 평생 마음 고생시킨 셈이나 다름없었지요. 게다가 아들 충혜왕은 한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개망나니 패륜왕입니다. (다음 검색어에서도 충혜왕의 연관검색어가 패륜으로 뜨는군요. -_-;;;;)
아마 충숙왕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암 걸려 사망했을 겁니다......
@미주가효 고려사는 여엉 깡통인데 연산군보다 더 패륜이라니... 사실 연산군도 패륜이라기 보다는 복수혈전?으로 봐야하나... 충혜왕에 대해 이제부터 검색해봐야겠습니다.
@피그베이 연산군은 흥청망청 놀면서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보긴 했지만 충혜왕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죠...
@미주가효 충혜왕은 비록 반도의 군주였지만, 막장 스케일만큼은 대륙 수준이었지요.ㅋㅋ;; 오죽하면 별명이 강간왕일까요..;;
충혜왕도 문제이지만 그러나 당시 원 간섭체제하의 고려 왕실의 부조리한 면이 작용한 것도 없지 않지요 충혜왕의 조부인 충선왕은 부왕 충렬왕과 권력다툼을 하여 서로 원의 힘에 기대어 제거하려고 하였고 충혜왕의 백부 폐세자 왕감은 부왕 충선왕에게 정치적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지요 부왕 충숙왕은 아버지 충선왕과 권력 암투를 벌여 원의 힘에 기대어서 부왕 충선왕을 몰락시켰고 자기 아내인 복국장공주를 구타하여 사망케 하여 원으로부터 폐위당할 뻔 하였지요 조부와 부왕이 그 지경 그 모양이니 충혜왕이 좋은 영향을 받겠습니까 게다가 충혜왕의 모친 명덕태후는 무당을 측근을 시켜 구타하여 죽일 정도이니
충혜왕이 이런 안좋은 가정하에서 좋게 자라나기가 쉽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