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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학 1:12-1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정복당했고, 남유다와 앗수르는 바벨론에 의해 정복당했고, 바벨론은 바사 즉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당했고,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그리스는 로마에 정복당해, 이 땅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였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오래되었는데, 어제 새벽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수천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전쟁에 돌입했음을 선포했습니다.
어제 저녁, 중국 항저우에서 한국과 일본간의 축구 결승전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일본과의 경기라고 하면, 아무리 스포츠라고 한다 할지라도, 이기고 봐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게는 질 수 있어도, 일본에게만큼은 질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이 있음은 일본의 지배를 받은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포츠에서의 소리없는 전쟁이라고 하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렇지만도 않는 것 같습니다. 어제 홍대에서 거리 응원이 있었는데, 미리 준비한 의자수가 1,500석뿐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있었다고 하는데, 백만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과의 축구 경기보다는 불꽃 축제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수천 발의 미사일의 불꽃이 아니라, 10만여발의 폭죽의 불꽃이 하늘을 장식하기만을 기대해봅니다.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스 1:3)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한 지 9년만에 죽고, 그의 아들도 왕위에 오른지 7년만에 죽고, 그의 손자인 다리오 2세가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때, 예루살렘에서 되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학개서입니다.
학개 1:1절 말씀입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고레스 왕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터를 열심히 닦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만 중단해 버렸습니다. 16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지 70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시편 126: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곧바로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의 기초를 세우면서, 그들은 너무나 기뻐, 대성통곡했습니다. “꿈인가? 생신인가?”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서로 얼싸안고, 춤추며, 노래 불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그들은 성전을 짓다가 중단해 버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고 고백했던 그들은 씨를 뿌리는 것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고 열망했던 여호와의 성전 건축하는 일을 왜 중단했을까요? 그들은 왜 성전 건축의 꿈을 실현하다가, 그만 공사를 중단했을까요?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반대했습니다.
에스라 4:5-6절을 보면,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방인과 혼혈족인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짓는 것을 시기했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여호와의 성전 짓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페르시아 왕에게 이스라엘을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끈질긴 방해로 인해서,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들은 고레스 왕의 명령에 의해 성전 건축을 하고 있었는데, 왕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고 하니,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6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학개 선지자는 다리오 왕에게 상소를 올렸습니다. “고레스 왕 원년에, 왕이 조서를 내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왕의 조서를 찾아보십시오.”
다리오 왕은 신하들에게 “고레스 왕의 조서를 찾아보라”고 명령했고, 왕의 보물전각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는 고레스 왕의 조서를 발견했습니다. 한 번 내려진 왕의 조서는 그 누구라 할지라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 페르시아의 법이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에스라 6:15절을 보면,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고 했습니다. 약 16년 만에, 여호와의 성전 공사가 재개되었고, 4년에 걸쳐 성전 공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반대했습니다. 그들의 반대와 방해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반대와 방해와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은 중단되거나 멈추어져서는 안됩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방해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사명을 안고, 머나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파괴되고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워,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눈물과 땀으로 씨를 뿌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 건축하는 일을 중도에 포기하고, 미루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만이 진짜 이유였을까요?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짓다가, 왜 중단했을까요? 왜 다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16년 동안, 왜 계속 미루고 있었을까요?
둘째,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막상 무너진 여호와의 성전을 다시 세우려고 하니,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를 하고, 페르시아 왕이 성전 짓는 것을 중단하라고 하니, “얼씨구나 좋다”라는 마음으로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면서,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16년의 세월이 금방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보다못해, 하나님은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 1:4-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했을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랬을까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일까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그때 가서 지으려고 했던 것일까요? 포로생활 70년 만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중단한 16년 동안, 그들은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물론 바벨론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필요했습니다. 예루살렘 시내는 바벨론의 침략 때, 완전히 파괴되어, 70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루살렘 외곽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을 지었을까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판벽한 집”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보통 평범한 집이 아니라, 아주 값진 재료를 사용하여, 호화스럽게 꾸민 고급 주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넓은 잔디밭이 있고, 텃밭이 있고, 우거진 나무들과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멋진 정원이 있는 그런 큰 집을 의미합니다.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한 베어트리파크는 10만 여 평 대지에, 백여 마리의 반달곰과 불곰, 공작, 꽃사슴이 뛰놀고, 1000여 종, 40만 여점에 이르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동물원과 수목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곳에 출입금지 구역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아담한 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인이 살거나, 가끔 와서 머물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나는 시골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집에 살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판벽한 집이라고 하는 것은 살림살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집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별장처럼 잘 꾸며놓고 사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여호와의 성전 짓는 것을 중단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성전 건축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자신들의 일상적인 일에 매달렸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집을 짓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그 머나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들의 사명을 망각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일날, 시간이 남아서,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마땅히 먹고 사는 일상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산에 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 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손해를 주고, 염려를 주고, 고난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성전 건축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순종했을까요? 불순종했을까요? 거절했을까요? 받아들였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뒤로 미루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오늘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2-13말씀입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다윗 왕의 후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총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진다면, 그는 왕이 될 사람입니다. 정치적인 지도자입니다.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입니다.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남은 모든 백성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일반 백성들입니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일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서 크게 울려 퍼지고, 내 마음에서 뛰어야 합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완악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무감각해지거나, 강퍅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고, 절망이 소망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앞길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말은, “마음이 흥분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영적으로 깨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진 마음이 깨어났습니다. 잠자고 있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무관심이 관심으로 변했습니다. 절망이 소망과 열정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지금껏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자마자, 신속하게 각자의 할 일을 찾아,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은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다리오 왕 2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공사가 중단된지 16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 2: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 3:11-13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이,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을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너희 남은 사람들 가운데, 그 옛날 찬란하던 그 성전을 본 사람이 있느냐? 이제 이 성전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는 하찮게 보일 것이다”
솔로몬의 성전을 본 사람들에게는 뒷산에 올라가서, 평범하고 흔한 나무를 베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것이, 어쩌면 하찮게 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 눈에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이 비록 하찮게 보일지라도, 힘을 내어, 계속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덧붙여,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세워가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학 2:7-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성전 기초를 놓던 날까지 지나온 날들을, 마음 속으로 곰곰이 돌이켜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때에 곡간에 씨앗이 아직도 남아 있었느냐? 이제까지는,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나 석류나무나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았으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과 후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성전 세울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쌓기 전에는, 곡간에 씨앗이 남아 있지 않았고, 나무에는 열매가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울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갈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을 방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오직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감으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러 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삶을 살고자 하오니,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교회를 다시 세워나가고자 하오니,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에게 복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