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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배낭여행!
젊은이들만의 특권인줄 알았던 배낭여행을 내가 하게 될줄이야 ㆍㆍ
미국에서 돌아오니 리투아니아는 방학중이다. 유학생들은 학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거나 여행중이고.
여기분들도 방학이라 거의 출타중이다.
갑자기 주님께서 방학을 팍~~~ 주신
황당함? 자유함? 안식의시간?ㆍㆍ
이틈에 하민이와소진이의 부탁으로
하민이와 12일간의 조지아ㆍ아르메니아 여행을 하며 하민이도 나름대로 변화된 자신의 가치관을 정리하고, 주님과의 동행이라는 새로운 삶의모습의 자신을 고백도 하지만ㆍㆍ ㆍ
나는 나 나름대로 두나라를 돌며 받은 새로운 충격이 있었고 끊이지않는 중보기도여행이 이런거구나! 라는 새로운 순례길을경험하게 된다.
12일간의 두나라여행후 리투아니아로 돌아와 10여일 리투아니아에 머물며
이방학을 뜻깊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혼자라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고
바울의 2차ㆍ1차ㆍ3차전도여정의 루트를 따라 선교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새로새록 움터옴을 본다.
그리고 찾아보니 리투아니아에서 아테네 항공권이 6ㅡ10만원대다.
이런 시간과 기회를 놓치지않으려 생각을 행동으로 세워본다.
그리고 7/17 수요일 새벽 출발하여
마음이 닿는곳으로! 발길이 닿는곳! 으로ㆍ
사도바울 2차 ㆍ1차ㆍ3차 순례길 이라는 큰그림만을 그려놓고 발을 내딛었다.
여자 혼자 배낭여행ㆍㆍ
그것도 60이 다된 중ㆍ노년기에 접어든 여인 혼자서?ㆍㆍ
아니 생각을 바꿔먹는다.
이제 노년을 맞이해야 하는 초년생 선교사가 선배선교사의 자취와 노고와
열정을 뒤따라가며 발로 밟아보며
새롭게 주신!
혼자서 노년을 시작하는!
아니 새롭게 주님과의 동행의 시점!
에서 놀라운 주님의 흘러가는 마음을 담고싶고,
주님과의 동행을 삶에 담아보려 한다.
혼자가 아니고!
주님과 함께 라고요!를ㆍㆍㆍ
고요히 외치며 나갈때
주님께서 동행하시며ㆍ인도해가시는 그분을 순간순간 발견하게 하실것이다.
주님은 정말 그렇게 동행해주신 증거를
느끼게된다.
혼자인데 심령속에 기쁨과 행복의샘이 흐른다.
기차로 데살로니키로 이동하는 이순간에도 터져나오는 행복이 나를 전율시킨다.
말씀을 들으며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감사와 찬양을 올리게된다.
*7/7 07시 위즈항공으로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아테네로!
10시경 도착. 숙소이동 후 오후 유적지
순례.
ㆍ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했던 아레오바고언덕.
ㆍ아테네여신의신전인 산꼭대기의 아크로폴리스
ㆍ아테네아고라
ㆍ로만아고라
ㆍ하드리아누스 도서관
ㆍ케리메이코스
ㆍ제우스신전
ㆍ신타그마광장등 ㆍㆍ
★그리스의 열 두 신을 참고하자.
1. 제우스(헬라이름)/쥬피터(로마이름), 맡은일(천지창조, 통치), 관련성구(행 14:12).
2. 헤라(헬라이름)/쥬노(로마이름), 맡은일(생산, 결혼).
3. 포세이돈(헬라이름)/넵츈(로마이름), 맡은일(바다).
4. 하데스(헬라이름)/플루토(로마이름), 맡은일(음부).
5. 아레스(헬라이름)/마즈(로마이름), 맡은일(전쟁).
6. 헤르메스(헬라이름)/머큐리(로마이름), 맡은일(상업), 관련성구(행 14:12).
7. 헤파이스투스(헬라이름)/볼칸(로마이름), 맡은일(대장간).
8. 아프로대테(헬라이름)/비너스(로마이름), 맡은일(연애).
9. 아폴로(헬라이름)/졸(로마이름), 맡은일(음악, 문예).
10. 아데미스(헬라이름)/피아나(로마이름), 맡은일(사냥), 관련성구(행 19:27).
11. 세레스(헬라이름), 맡은일(농업).
12. 미네르바(헬라이름), 맡은일(지식).
★아덴-아덴(Athens)은 에게해의 지류 샤론만에 위치하였으며 피라에우스(Piraeus)항구에서 약 8 km 떨어진 내륙도시이다. 북쪽으로는 파르네스 산, 동쪽으로는 펜텔리쿠스 산, 남동쪽으로는 히멧투 산이 둘러싸고 있는 좁은 평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아티카의 영웅 데세우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아테네(Athene)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아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페리클레스(B.C.495-239)에 의해 이 도시는 전성기를 맞아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건축되었다. 아울러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이 꽃을 피웠으며 민주주의의 기초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펠로폰네수스 전쟁(B.C.431-404)으로 인하여 아덴은 빛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 문학적, 역사적 명성은 그대로 남아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는 찬란했던 옛 영광이 사그라든 뒤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만은 계속 지속되고 있던 터라 그 도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이런 신들의 도시였던 아덴에서 홀로 이들에게 힘겹게 전도했을 바울의 마음이 전해져 안타깝다.
베뢰아에서 전도하다 쫒겨와 이곳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오기전 홀로 복음을 전했을 고독과 어려운 마음이
있었으리라.
이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의 웅장함에! 기고만장했던 이들의 교만에 그만 눌리지는 않았을까?ㆍㆍㆍ
여러이유로 아덴에서 바울은 교회를
세우지못하고 또 고린토스로 향하여야
했던 바울!
그런 마음이 전해져 이 도시를 향한 중보기도와 스페인 불교도라는 형제에게 전도하며 길고도 긴 하루를 보낸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피곤하여 감기는 눈으로 돌아와 꿀잠휴식.ㆍ‥
★아레오바고-이는 문자적으로 ‘법정’ 또는 ‘아레스의 평의회’라는 뜻으로 주로 종교와 교육,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 기구였다. 바울 당시 시의 모든 행정관들은 이 평의회의 구성원이었으며 면책(勉責) 특권을 누렸다. 한편 바울이 끌려간 아레오바고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아덴인들의 비공식적 집회를 가리킨다고 본다(Barnes). 이 견해는 바울의 연설투가 법정상의 변호와 거리가 멀고 또 재판 진행에 관한 어떤 암시도 없다는 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반면에 이를, 바울의 가르침 내용을 심문하기 위해 열린 공식 법정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Hemer). 이 견해는 디오누시오라는 아레오바고 관원에 대한 언급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34절). 걸론적으로 이것이 반드시 법적 재판의 형식을 띤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적 집회의 성격임에는 분명하다고 봄이 무난할 듯하다.
*7/8.코린토스를 향하여.
여지없이 4시전에 눈이 떠져 오늘 고린도를 향하여 준비하고.
메테오라 기차도 예약하고 출뱔한다.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고린도유적과 고린도 운하를 향하여!
아테네에서 고린도는 1시간20분 가량 걸리는데 가는길이 계속 지중해 바다를
끼고 버스가 달려, 보고싶은 바다를 마음껏 보며 마음에 품어버리려는듯 눈도장을 찍어둔다.
탄성을 자아내며 바다를 지난다.
고린도가 왜 당시에도 로마퇴역장군 들의 휴양도시였는지 이해가 된다.
바다와 섬들을 낀 아름다움과 풍부한 해산물, 즐길수있는 타락한 성적 문화가 만연했던곳 ㆍㆍ
지금도 그유적에서 타락한 성문화의 도구가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었다.
몇개의 기둥외에는 폐허로 남아있는
유적터ㆍㆍㆍ
유적터에서 찾아내서 보관하고있는 유적들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침 한국여행팀이 2팀이 들어와 있는 덕분에 자세하게 박물관 설명을 한국어로 듣게되고,
폐허가 된 유적지를 돌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을 듣게된다.
머지않아 이런 폐허전의 모습들을 쓰리디로 재현될 날이 또 얼마남지 않을듯하다.
한국어 안내를 뒤따라다니며 꿀팁의 설명들로 재미나게 코린토스 유적을 이해하게 된다.
고린도에서 버스를 내리면 어디로 가야될지 몰라 서성거리게 되는데ㆍㆍ
물론 택시로 가면 가장 용이하지만 그런 사치는 사양하고 학생들께 묻자
친절하게 구글사용 버스편을 알려주어
시간이 좀 남아서 고린도의 해변에 끌려 한바퀴 돌고 찾아가 유적지를 탐방한다.
돌아오는 길에 세계3대운하에 속한 기가막힌 고린도운하를 보기위해 버스로 이동하는데 이번에도 한여청년이 운전수에게 물어서 친히 버스정류장까지 인도해준다.
감사의 허그를 하고 ㆍㆍ
주님께서 매번 이런 천사를 붙여주셔서
주님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끼게되서
주님과의 동행이 넘 행복하게 스며든다.
도착하여 오썸하고 아찔힐 고린도운하를 보고 아테네로 돌아가며 아쉬운 마음에 다시한번 아테네 제우스신전을 돌며 중보하며 숙소로 돌아간다.
내일 새벽 출발, 기차로 4시간 걸리는 메테오라수도원지역을 또 기대하며 ㆍㆍ
★고린도-는 북쪽으로 중부 그리스와 남쪽으로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를 연결시키는 고원 위에 위치했다. 이 도시의 동서쪽에는 각각 항구가 있어 전략상 요충지였다. 한편 이 도시는 B.C. 8세기에 크게 번성하여 B.C. 6, 7세기경에는 영화와 세력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B.C. 146년 고린도는 로마의 장군 무미우스(Mummi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주민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B.C. 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울러 이곳은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는 우상 숭배의 도시였다.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른 바울은 이 같은 사실들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우상 숭배의 중심지 아덴에서의 경험을(17:16-34) 잘 분석하여 타락의 중심지 고린도에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7/19(금) 메테오라를 기차로 이동! 4시간.
시계를 잘못보고 6시인줄 알고 깜 놀라 일어나보니 4시다. 기도하며 준비를 시작하여 일찌감치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보지 않은곳은 아무래도 아직은 부담이되는지 실수하지 않으려 1시간이상 일찍 나서는 부지런을 떠는것은 내마음에 불안을 제거하려는 습성에서 나온듯ㆍㆍ
메테오레에 가려면 기차를 칼람바카에서 내려야했다.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자
한국청년 박ㅇㅇ 24세 무신론형제를 만나 식사후 함께 메테오레를 더듬어 찾아가본다.
희한하고 기이한 기암괴석 꼭대기에 오스만투르크 시절 박해를 피해
은둔수도했던 수도원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신심을 드러낸 수도원들이 지금은 경탄하며 찾아가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 아찔한 수도원의 정경과 자연이 하나되어 빚어낸 모습이 일품이어서 나도 모르게 정신이 팔려 발품을 판게 6시간 트레킹이 되어버렸다.
내려갈 길은 내리막이라 만만찮게 보고
출발했는데 동네를 하나 건너, 숙소로
오는길은 멀고멀어 진이 빠져버렸다.
7시간반이 넘는 트레킹을 했나보다.
형제와 수퍼에 들렸더니 기름이 별로없이 가즈런히 놓여있는 삼겹살에 꽂혀 그냥 상추와함께 콜^^~~~구워서 맛나게 먹고 씻고 꿀잠에 빠졌다.
2019. 7/20( 토)
하루만에 떠나기가 아쉬워
하루를 더 연장하고 아침에는 내일 출발할 베레아행 교통편을 알아보니 데살로니키로 가서 이동해야한다는 것,
그래서 데살로니키 기차표를 사고,
점심을, 간단한 빵으로 해결하고,
오늘은 메테오라의 가장 큰 수도원을 버스로 올랐다.
바위산꼭대기의 아찔한 내부들을 관람하고 산꼭대기에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취해 2시간을 즐기는 여유를 부리고,
그 상쾌한 바람과 그늘을 뒤로하고 산정상의 능성을따라 수도원들을 바라보며 마음껏 메테오레의 경관에 취해 4시간쯤 머물다 하산하여 오는길에 수퍼에 들러 장을 봤다.
오늘 아침엔 형제에게 북어국을 끓여주었더니 ㅇㅇ형제가 어향가지 요리를 해주신데서 재료를 사서,
간만의 맛있는 저녁만찬으로 메테오레의 행복하고 멋진여행을 마무리한다.
이틀간의 동행해준 준호는 아픈손가락인 죽은조카와 이름이 똑같았다.
주님께서 이영혼을 특별히 붙여주신 느낌! ㆍㆍ그영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여행하는 준호에게 생명이신 예수님을 트레킹 내내 전하고 간증하게된다.
내일이면 형제는 아테네와 이집트로!
난 데살로니키ㆍ베리아ㆍ빌립보ㆍㆍ
를거쳐 터키를 향하므로 오늘이면 이별이다.
부디 형제가 주님을 깊이 인식하여
영원한 예수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나라의 자녀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하며 축복하게된다.
2019. 7/21-7/23. 데살로니키로 기차이동!하며 주일예배. 3시간반.
다행히 구글이 잘찾아주어서 단번에 숙소를 잘찾아갔다.
근데 분명 11유로짜리 호스텔인데 다인실인거 제외하고는 너무
청결하고 좋은시설인지라 깜짝 놀라 기쁜 데살로니키 추억을 만든다.
2박을 하며 하루는 데살로니카 유적들을 탐방.
2019. 7/22. 베리아(베뢰아)ㅡ베르기니를 탐방.
바울의 설교제단.
ㆍ별로 흥미도 없는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인 필립2세의 궁전터와 무덤, 박물관을 발품을 팔아 땡볕속에서 다니게된다.
다 유적들이 허물어져 영화의 덧없음을
증거해주고. 특히 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대왕의 무덤은 찾을수도 없으니 세계를 정복했다는 그들의 권세가, 너무도 허무함을 보여주며 허탈감을 안겨준다.
즉 한때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세상의 영화ㆍ권세가 풀의꽃과 같음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바울의 전도ㆍ루디아의 헌신등은 영원히 기억될것이다.
가치있게 기억되는 인생을 살수 있다는 게 기적같은 축복임을 실감하며.
바울의 걸었던 그자취를 따라가며
다시금 인생의 향방을! 바르게 하도록
인도해주신다.
“10 밤에 형제들이. 읍장들이 보석금을 받고 조건부적으로 야손의 일행을 석방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 체류는 양측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야손이 읍장들에게 끌려갔을 때 아마 바울일행은 데살로니가의 어느 비밀장소에 숨어 있었을 것이고 낮보다는 다소 안전한 밤이 되서야 소수의 새로운 개심자들의 길 안내로 데살로니가를 떠날수 있었을 것이다.
*베뢰아-데살로니가 남서쪽 약 80 km 지점, 마게도냐 평원 남쪽 올림푸스 산맥 기슭의 조그마한 언덕에 위치했다. 당시 이 도시에는 많은 인구가 살고 있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2019. 7/23. 네압볼리(까발라)ㆍ빌립보(필리피)!
-빌립보 유적만 둘러보고 가려고 터미널로 향했는데 카발라 즉 바울이 터키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첫지역인 네압볼리가 지금의 까발라인데, 곧바로 출발하는게 있어 시간을 절약할겸 카발라로 향했다.
이다음 갈곳인 필리피 즉 빌립보와 어떻게 연결이될지 궁금해하며 ㆍㆍ
카발라는 터키로 넘어가는 관문인데.
가보니 바닷가에 꽤큰 대도시인 느낌이다.
로마스러운 멋진 수로도 남아있고.
감격스런 바울기념교회도 만나게 되고,
요새와같은 정상에서 멋진 도시와 바다의 정경도 바라보며 ㆍㆍ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필리피로 향했다.
ㆍ빌립보로 가려면 드라마로 향하는 버스를 타서 중간에 필리피에서 내려달라고 하면됐다. 버스는 30분마다 한대씩 있었다.
카발라에 비해 너무 작은 소박한 빌립보!
돌산자락에 에베소 옛유적들이 흩어지고 쓰러지고, 허무러진채 ㆍㆍ
바울이 갇혔다는 감옥도 찾아보기 힘들고 ㆍㆍ
3천명을 수용할수 있다는 극장ㆍ 나중엔 기독교인들의 사자먹이의 장소가 되었다는ㆍㆍ
돌아보는데 크게 시간들이지않고 둘러본다.
ㆍ지나가는 차가 태워주셔서 루디아가 성인이되어 존경받는 리디아(루디아) 침례교회를 탐방하고 ㆍㆍ
드라마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데살로니키로 돌아왔다.
*빌립보- B.C.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샘’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퇴(敗退)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다.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였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마게도냐 지경 첫성 빌립보- 누가가 빌립보를 이렇게 표현한 사실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곤 한다.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 n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등 대다수의 본문에 따르면 ‘프로테 메리도스 테스 마케도니아스 폴리스’(’마케도냐 지경의 첫성’)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첫째가는 도시라 할만한 곳은 빌립보가 아니라 오히려 B.C.167-146년 사이에는 암비볼리였고 그 후에는 그 주의 수도 데살로니가였다. 그런하면 어떤 사본들에 ‘프로테’(’첫째’)대신 ‘프로테스’(’제1의’)로 되어 있어 빌립보가 ‘마게도냐 제1지구의 도시’였음을 가리켜 주고 있다.
이렇게 바울의 그리이스 2차전도 현장의 기념장소들을 발품을 팔아 다쫒아다녀 보고 이제야 그리스 알파벳을 보고 읽을만 해지니까
그리스와 이별할 시간이 된것같다.
로마에 있을때는 1C 이후 기독교회의
신앙과 박해받았던 현장들을 보게되었다면,
그리스에서는 로마제국이전의 BC 3-4C의 알렉산더와 그의 아버지 필립2세의 자취를 마주대하게 된다.
난 박물관도 ㆍ역사유적들도 즐겨하지 않는곳인데 성경역사의 추적이라 그 현장을 찾아 마음에 담아보며,
2천년 훨씬전의 역사의 현장에서 서서!
오늘세대에 바울처럼 주님이 주신 사명이 또다른 모양과 또다른 지역을 향한 주님의 애타는 마음이 있으시기에 그 음성과 지시에 귀기울여본다.
다음 서야할곳을 주님은 인도해 가시리라ㆍㆍ
바울이 소아시아인 에베소를 뒤로하고
오늘의 카발라( 네압볼리)로 인도하셨듯이
다음의 나의 마게도냐의 카발라는 어디일까 생각하며 그리스와 이별을 갖으려한다.
처음엔 카발라에서 버스로 이스탄불로
향하려했다.
그런데 어제 데살로니키 터미널을 한번 돌아보니까 불가리아 소피아까지 버스로 5시간ㆍ20유로면 이동이 가능했다.
또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것도
버스로 잘되어있어서 시간상 불가리아에서 1 주일정도 머물러도 좋을것 같아서 ㆍㆍ
하민이가 그렇게 권면했던 불가리아
소피아로 밤버스로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