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네. 이러한 육바라밀 수행을 계속한다면 어떤 험난한 고해라도 능히 건너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믿게나. 이익과 손해, 즐거움과 괴로움, 명성과 무명, 비난과 칭찬의 여덟 가지 실상을 잘 살펴 이 경계를 꼭 뛰어넘도록 하게. 사람이 가문과 인품과 미모와 박식함을 갖추어도 지혜가 없고 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 사람을 어찌 귀하다 하겠는가. 하지만 용모가 추하고 아는 것이 적을지언정 지혜가 있고 계율을 생명처럼 지키려 한다면 오히려 공경 받아 마땅하다네. 백년에 한 번 바다 위로 올라오는 눈 먼 거북이가 바다에서 떠다니는 널빤지 조각을 우연히 만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네. 그러나 축생의 몸 버리고 인간의 몸 얻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나. 사는 동안 착한 벗 의지하고 바른 서원 세워야 하네. 지혜가 없는 선정은 있을 수 없고 선정이 없는 지혜는 갈수록 약해진다네. 번뇌는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얽어매나니 부디 생사의 고리를 끊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바라네. <윤리-수행법 전하며 대승-중관 핵심 사상 세세히 밝히고 있어> 지금부터 1800여년 전 용수(龍樹, Nagarjuna) 보살이 남인도 사타바하나왕국의 왕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그는 절친했던 왕에게 불교인이 지켜야할 윤리덕목과 수행방법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열심히 정진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이 편지는 얼핏 보면 그저 좋은 말만 옮겨놓은 교훈록 정도로 비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용수가 추구했던 대승불교의 정신과 중관철학의 핵심도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열반의 방법으로 지혜와 더불어 계율을 중시했던 용수보살의 확고한 신념도 살펴볼 수 있다. 용수는 중관학의 창시자로 대승불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있다. 뚜렷한 행적은커녕 심지어 언제 태어났는가도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다. 구마라집(344∼413)의 『용수보살전』은 지나치게 신비적이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그나마 용수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드문 전기 자료 중 하나다. 이에 따르면 용수는 남인도의 바라문 출신으로 어렸을 때 이미 천문, 지리, 베다 등 모든 학문에 능통했던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학문에 싫증을 낸 그는 친구들과 함께 술사로부터 은신술을 배우고 왕궁에 들어가 욕락을 즐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일이 발각되면서 친구들은 모두 살해되고 용수만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애욕이 고통의 근원이며 화의 뿌리라는 것을 깨닫고 출가했다. 이후 소승에 이어 대승경전을 깊이 공부한 용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불교와 외도의 논사들을 차례로 격파했다. 또 바다 속 용궁에 들어가 대승경전을 얻고 90일 만에 대승의 본질을 체득했다고도 전해진다. 남인도의 최강국인 사타바하나왕조의 왕과 친해진 것도 이 무렵이다. ‘국왕을 불법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바른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먼저 왕을 교화한 후 그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붓다로 불리는 용수는 비판정신과 현실참여의 성격이 대단히 강하다. 특히 공(空)이라는 치밀한 부정의 논리학을 통해 초기불교 정신과는 달리 이론화되고 특권화되는 교단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리고 극단과 분별을 뛰어넘어 다 함께 성불로 향할 수 있는 육바라밀과 보살행을 강조함으로써 마침내 찬란한 대승불교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용수보살권계왕송(龍樹菩薩勸誡王頌)'이라 불리는 이 편지는 한역 및 티베트역본이 남아있으며, 한글대장경에도 수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