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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33:1~3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24.11.10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고 하용조 목사님이 쓴 ‘설교사전’이라는 책에 보면 기도란 무엇인가를 55페이지 정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목사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기도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어렵지 않고 쉽답니다. 목사님은 “그냥 눈 감고 무릎 꿇고 기도하면 된다. 밥 먹는 것과 똑같다. 밥 먹는 게 어려운가? 밥 먹는 게 어려운 사람은 죽을 사람이다. 밥 먹는 것은 누구든지 쉽게 한다. 이처럼 기도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밥 먹는 것만큼 쉽답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성과 상식과 합리적인 것을 의지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성령을 의지한다. 가장 심각한 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이다. 기도하면 살고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듯이 기도하면 살고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기도 형태에 대한 진단도 남겼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적은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떤 이는 시끄럽게 기도한다고 비판하고, 병만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비난한다. 그런 기도를 하느니 차라리 기도를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 모두가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록 기도가 좀 순수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이라 할지라도 기도를 안 하는 사람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이 훨씬 낫다. 기도가 좀 서툴고 이기적이고 형편없어도 기도를 안 하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기도하고 계십니까?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먼저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라고 합니다. 왕의 시위대장 집 뜰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왜 갇혔을까요? 렘32장 2~5절입니다.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예언하였느냐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니까 왕이 듣지 않고 선지자를 가둬 버린 것입니다. 불순종의 길에서 돌이키라고 전해도 듣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채찍을 드셨는데 침략당할 것을 예언하니 그 말도 믿지 않고 도리어 선지자를 가둬버린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하여 완고해졌는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혹 죄를 범하여 넘어지더라도 완고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실 때는 속히 돌이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가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은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방이 막히고 둘러싸여있어도 하나님은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두꺼운 벽이 가로막혀 있어도 하나님을 가로막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은 차단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어도 하나님의 천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도 대역죄인들이 갇히는 바로왕의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고 입구를 막았어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풀무불 속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에 들어가 동굴 속에 숨어있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나는 비록 불순종으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돌이켜 회개하니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시위대장의 뜰에 있는 구덩이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가 어떤 음성을 들었습니까? 본문 2,3절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 이전에 들은 음성도 있습니다. 32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은 갇혀 있는 예레미야에게 사촌 하나멜이 찾아와서 아나돗의 땅을 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 땅을 사서 매매증서를 쓰고 토기에 담아 봉인해 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사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라고 알려주시니 샀습니다. 부동산 매매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참 쉽죠? 하나님은 심지어 바벨론의 침략을 앞두고 있는데도 땅을 사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장차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다시 토지를 자유롭게 매매하는 날이 올 것을 미리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어서 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일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하나님, 그의 이름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란 스스로 존재하는 자, 자존자라는 뜻입니다. 일을 행하다는 말은 일을 계획하고 시작하다는 말입니다. 뜻을 세우고 진행하다 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는 분, 시작하시는 분입니다. 있는 것을 통해 다르게 만들기도 하시고 또한 세상을 창조하실 때처럼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나 여호와께 능치 못하심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렘32:27에도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능자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일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소위 일만 만드는, 일만 벌이는 분이 아닙니다. 자꾸 일을 만들어 엮이고 꼬이게 하고 틀어지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이루시는 분, 완성하시는 분, 매듭지으시는 분, 완결하시는 분입니다. 시작한 일을 반드시 끝맺게 하시는 분,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사66장 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살전5장 24절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니 반드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이런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러면 안 될 것 같아도,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실 때는 우리가 보기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을 통해 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초자연적인, 초월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앞에서 하용조 목사님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은 기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는 일이 일어납니다. 일주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게 하여 무너지게 합니다. 불을 내려 거짓 선지자를 이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합리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까? 우리의 생각과 이성을 뛰어넘어버린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는 표적인 것입니다. 누가 봐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확실한 증거,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하나님께서 남기신 것입니다.
미디안과 전쟁한 기드온을 보십시오. 미디안이 쳐들어왔을 때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군사를 모았습니다. 처음에 모인 숫자가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미디안과 싸워볼 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대로 기드온 군대가 싸워 이기면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려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 할까”를 염려했습니다(삿7:2). 그래서 하나님은 삼백 명 외에는 다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힘과 전술을 다 뺀 후에 적군이 “메뚜기 떼처럼” 득실대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이”많은 적진으로 보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에 칼이 아닌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 그 속에 횃불을 감추게 하셨는데 전투가 시작되자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며 소리 지르게 했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어떤 병법서에도 나오지 않는 이색적이고도 신비한 전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미디안군은 이들의 횃불과 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다가 자기들끼리 죽이면서 자멸해 버렸습니다. 기드온이 자랑할 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는 간증을 할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런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는다는 것은 꼭 큰 소리내어 울부짖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임신하지 못한 서러움이 북받쳐 성전에 엎드려 기도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삼상1장 13절에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합니다. 한나는 하갈처럼 방성대곡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흐느끼는 그의 기도, 그 간절한 심정이 하나님께 통했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시 50장15절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렘 29장 13에도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크고 은밀한 일을 예비하시고 보여주신다는 약속을 간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르짖기 전에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있어야 합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일을 만들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응답하시면 된다는 믿음, 하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님만이 이 장애물을 치울 수 있고 벽을 허물 수 있고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기드온의 삼백 용사 외에 나머지 사람들을 다 돌아가게 했을까요? 즉 어떤 사람들만 남게 했을까요? 이들은 수많은 적군을 향해 창과 방패가 아니라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들고 나가라는 기상천외한 작전을 지시해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순종할 수 있는 자들만 하나님이 남기신 것입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다름 아닌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이처럼 믿고 순종한 이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들이 진정한 용사입니다. 믿음의 용사!
예레미야 선지자는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을 6,7,8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겠다고, 다시 돌아오게 하여 처음과 같이 세우겠다고, 죄악을 다 용서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도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레미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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