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256년을 산 이ㅡ청운(중국명:리칭윤, 李靑雲)의 1927년 즉 250세때의 모습이다.
중국 사천성에서 태어난 이청운(1677~1933)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깊은 산중에서 살며 약초를 캐고 장수비결을 수련했다. 추측컨대 이청운의 부모는 명나라가 망하자 세상을 등지고 산중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불로장생의 도를 일생동안 추구하였다.
이청운의 부모는 불로장생을 추구하며 터득한 것들을 이청운에게 그대로 물려 주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난 이청운은 어린 시절부터 장년기가 될 때까지 쭉 산중생활을 계속하면서 약초를 배우고 무술을 연마하여 체력을 단련하며 장수비법을 터득한 이청운은 나이가 들자 조금씩 이름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748년 71살의 나이에 무술사범과 군사고문으로 군에 복무하기 위해 카이흐시엔으로 이주했다. 이후의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고 단편적인 행적만 몇가지 전해지고 있다. 1827년에는 청나라 황실에서 150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공식문서를 만들었었다고 하는데 이문서는 중국 쳉두대학교의 우충치에 교수가 발견했다고 한다. 1827년에 150세면 1677년생이 맞는 셈이다.
이후 청나라가 망하고 1927년 사천성 군벌인 국민당의 양센장군을 만나 위의 사진을 촬영했다. 이청운은 양센장군을 만나 그의 젊음과 장수에 매혹된 그에게 여러 가지 수련기법을 가르쳐 주고 고향으로 돌아온 1년 후인 1933년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난 이제 집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타계했다고 한다.
이청운은 일생동안 23명의 부인과 사별하고 200여명의 자손을 두었다고 하는데 그는 노년에 전혀 200살이 넘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200살이 넘어서도 장년의 사람처럼 건강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했을까?
그는 항상 조용한 마음 즉 정(靜)의 마음을 가지고 거북처럼 앉고 비둘기처럼 걸어 다니며 개처럼 잠을 자면 장수한다는 장수비결을 남겼다고 한다. 마음을 항상 조용하게 가지면서 거북처럼 여유있게 지내고 비둘기처럼 힘있고 평화롭게 행동하며 개처럼 조심스럽게 잠을 자면 장수한다는 것이다.
이청운은 마음을 항상 조용하게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마음을 언제나 조용하게 가지는것은 쉽지 않다. 마음을 언제나 조용하게 평정심을 유지할려면 뇌가 튼튼해야 한다. 뇌가 단련되어 튼튼해지면 어떠한 자극이나 스트레스도 이겨낼 수 있고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쉬워져 마음을 언제나 조용하게 가질 수 있다.
이청운은 어려서부터 약초를 캐며 산중생활을 한탓으로 약초에 관해서도 조예가 깊었다. 이청운의 이러한 약초에 관한 지식도 그가 장수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약초에 관한 풍부한 지식, 튼튼하고 단련된 몸, 훌륭한 장수비결등은 이청운이 오래 사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200년이상 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의 강인하고 튼튼한 뇌라고 본다. 인간이 몸이 아무리 건강하고 훌륭한 장수비결을 터득하고 약초에 관해서 많이 알아도 뇌가 튼튼하지 못하면 오래 살 수 없다. 왜냐? 인간의 몸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장수할려면 뇌가 튼튼해야 한다.
256년이라는 긴긴세월을 건강하게 살고 간 이청운 그는 건강장수의 표본이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장수에 있어서 뇌의 중요성을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장수하는데 뇌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일생 동안 약초와 의학을 연구하여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에서 주는 특별상을 받았고, 200살이 넘었을 때에도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그는 무예에도 조예가 깊어서 구룡팔괘장(九龍八卦掌)이라는 무술을 창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타임지는 이청운에 대한 소식을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그는 청나라 강희16년(1677년)부터 옹정, 건륭, 가경, 도광, 함풍, 동치, 광서, 선통 등 황제 9명을 거치고 중화민국을 건국하였을 때까지 살았다. 1930년 미국의 뉴욕타임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 대학 오준걸(吳俊傑) 교수에 따르면 서기 1827년에 청나라 궁중에서 이청운의 150세 생일 축하연을 열어 주었고 또 1877년에 이청운의 200세 생일 축하연을 열어 주었다.”
그는 스무 살 무렵에 깊은 산속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한 선인(仙人)을 만나서 불로장생의 도를 배웠고 그것을 일생동안 실천하였던 까닭에 장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늘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거북이처럼 앉으며, 참새와 같이 움직이고, 개처럼 잠을 자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자신이 장수한 원인이 3가지에 있다고 했는데 첫째, 일생동안 채식을 하는 것이고 둘째, 마음을 밝고 평온하게 하는 것이며 셋째, 일생 동안 연잎, 결명자, 나한과, 구기자, 병풀, 참마 같은 약초를 달여 마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사람은 혈통(血通), 요통(尿通), 변통(便通)의 3통을 유지해야 건강하고 장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혈액과 소변, 대변이 잘 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나라 왕실에서 2백 살 기념 잔치를 열어주다
이청운은 의학 특히 양생술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그는 200살이 넘었을 때에도 행동거지가 장년(壯年)과 같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신선’과 같이 여겼다. 그는 운남성에서 태어났으나 90여 세 되었을 때 사천성 개현(開縣)으로 와서 정착했다. 민국 16년(1927년), 이청운은 사천의 군벌 양삼(楊森)의 요청을 받고 만현으로 가서 양생술을 가르쳤다. 양삼은 이청운을 상빈으로 모시고 그를 위해 새 옷을 준비했으며 사진관에 부탁해서 사진을 찍은 후 크게 확대해서 주방에 걸어두었다. 성내 각 신문은 앞을 다투어 이 기이한 인물에 대해서 보도했고 온 사천성이 들썩거렸다. 1931년, 만주일보는 9월 15일 다시 이청운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청운이 250세가 되던 해에 사천성 개현 사람인 유성훈이 그를 인터뷰했다. 당시 이청운은 신이 나서 고전을 인용해 가면서 양생술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양생경험 뿐 아니라 고금의 양생술과 교훈을 언급했다. 유성훈은 이를 기록하여 ‘자술’이라는 글로 남겼다. 이 글은 뒷날 양생술의 명저로 널리 알려졌다. 유성훈이 이청운에 대해 회고한 글이 1986년 ‘기공’이라는 잡지에 실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청운이 구술하고 유성훈이 기록한 ‘장생불로비결(長生不老秘訣)’ 1,000여 자도 동시에 실렸다. 북경의 몇 개 신문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하였으나 당시 ‘기네스 북’에서는 의심을 품고 이청운의 장수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래 살려면 오래 사는 것을 먹어라
‘자술(自述)’이라는 글에서 이청운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수명에는 장단이 있다. 이는 원기가 주재하는 것이다. 원기(元氣)는 원기(原氣)라고도 하는데 타고나기도 하고 태어난 뒤에 길러서 얻을 수도 있다. 이것은 신장(腎臟)에서 발원하여 단전(丹田)에 보존되고, 삼초(三焦)를 빌려서 전신에 이른다. 원기는 오장육부 등 모든 장기와 조직이 움직이는 동력의 원천이다.”
그는 원기를 아끼는 것을 촛불에 비유하여 생동감 있게 설명했다. “만일 촛불을 등롱 안에 놓아둔다면 불이 타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놓아둔다면 수명이 짧아지거나 바로 꺼지고 말 것이다.” 양생술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이청운은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을 아주 좋아했다. “그대의 형(形)을 힘들게 하지 말고, 그대의 정(精)을 흔들지 말며, 그대의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 생각을 적게 하여 신(神)을 기르고, 욕심을 적게 하여 정(精)을 기르며, 말을 적게 하여 기(氣)를 길러야 한다.” 그는 양생술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자의 이 말의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청나라의 학자인 육롱기(陸蘢基)의 말도 아주 좋아했다. “땔감이 충분하고 쌀이 충분하면 아무것도 걱정할 일이 없다. 나는 일찌감치 관청의 녹봉(祿俸)을 먹지 않았으므로 놀랄 일도 없고 욕을 볼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았으므로 이자를 내야 할 일도 없었고 전당포 문 앞을 드나들 일도 없었다. 그저 맑은 차와 담백한 밥을 먹으므로 장수할 수 있었다. 이것이 양생의 묘결이고 장수에 대한 잠언(箴言)이다. 이 이치를 얻으면 장수할 수 있으므로 애써 영약(靈藥)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금단(金丹)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는 수명을 기르려면 옛사람들의 가르침대로 자(慈), 검(儉), 화(和), 정(靜)의 네 가지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청운은 자신의 양생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위장이 상한다. 잠을 지나치게 오래 자지 않는다. 지나치게 자면 정기가 손상된다. 나는 2백 년을 살면서 한 번도 음식을 지나치게 먹은 적이 없고 한 번도 지나치게 잠을 잔 적이 없다. 배고픔과 추위, 고통과 간지러움은 부모가 대신할 수 없다. 쇠약해지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처자(妻子)가 대신할 수 없다. 스스로를 아끼고 스스로 보전하는 것이 양생의 법칙이고 관건이다.”
그는 구체적인 생활방법에 대서도 언급했다. 그는 자잘한 일에 대해 조급해 하면 몸이 상한다고 했다. “춥고 더운 데 조심하지 않거나, 발걸음을 너무 빨리 하거나, 술과 음탕한 일에 빠지면 반드시 몸이 상하기 마련이고 손상이 커지면 죽는다. 그러므로 선인(先人)들이 남긴 양생술에 따라서 살면 수명을 기를 수 있다. 걸음을 걸을 때 너무 빠르게 걷지 말고, 무엇이든지 눈으로 너무 오래 보지 말고, 귀로 끝까지 듣지 말고, 피곤할 때까지 앉아있지 말고, 오랫동안 누워 있지 말라. 추위를 느끼기 전에 옷을 입고, 더위를 느끼기 전에 옷을 벗고,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기 전에 음식을 먹어라. 음식은 여러 번에 나누어 먹되 적게 먹고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고 부귀영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장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