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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Habsburg) 왕가 또는 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 최대의 왕실 가문을 말한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은
또는 하비히츠부르크 성(매의 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가문은 독일의 남부지방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하여
신성 로마 제국에서 큰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나중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선출에도 개입하였다.
독일왕으로는
최초의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은 루돌프 1세이다.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를 물려주었고
이때부터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왕가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이후에는
부르고뉴, 그의 아들 펠리페는 에스파냐 왕위에도 결혼으로 인해 개입하게 되어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일지역 뿐 만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의 왕위에도 관여하게 되고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는 에스파냐의 왕 카를로스 1세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계열과 에스파냐 계열의 가문으로 나누어 지게 되었다.
이 무렵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 독일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에스파냐 왕, 포르투갈 왕의 왕가로
유럽 최대의 왕실가문으로 부상했다.
1700년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발발하였고
1740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계승자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로 바뀌게 되며,
합스부르크 정통 왕가는 단절된다.
스스로를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칭하였고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는 몰락한다.
독일왕이 되기 전까지
합스부르크 왕가는 현재의 스위스와 남 독일 지역의 백작의 집안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나중에는 케른텐, 티롤의 공작이 된다.
루돌프 4세가 죽자,
그의 형제인 알브레히트 3세와 레오폴트 3세는
1365년부터 1379년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위를 공동으로 통치했다가
1379년 영토를 나누었다.
이때 합스부르크는 알브레히트 계열(오스트리아 공작)과
레오폴트 계열(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티롤의 공작)로 가문이 분리된다.
지기스문트는 자식이 없어 프리드리히 5세의 아들인 막시밀리안을 양자로 삼았다. 막시밀리안에 의해 합스부르크 왕가는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카를 6세는 아들이 없어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프란츠 스테판 폰 로트링겐과 결혼 시켰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대공녀 이자 헝가리 왕국과 보헤미아의 여왕으로 통치했다 (1740년–1780년). 가문의 이름 역시 로트링겐을 덧붙인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이 되었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합스부르크 정통 왕가는 단절되었다.
후아나 라 로카는 아라곤의 여왕, 시칠리아의 여왕, 나폴리의 여왕을 겸했다.
펠리페 1세가 사망하자 후안나 여왕은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다. 결국 1516년에 후안나와 펠리페의 아들인 카를로스 1세에게 왕위를 넘겼으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에스파냐 연합 왕국과 그에 부속되어 있는 카스티야-레온 왕국, 아라곤 왕국 그리고 아라곤이 통치하는 시칠리아 왕국과 나폴리 왕국의 왕이 된다.
카를로스 2세의 사후 에스파냐 왕위를 놓고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짐.
1580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동군연합을 이루면서, 이베리아 연합 왕국이 되지만, 1640년 포르투갈에선 브라간사 왕가가 왕위에 오르면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동군연합은 해체된다.
수세기 동안 헝가리 왕국의 왕위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헝가리의 왕위 계승은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젊은 왕위 계승자를 헝가리 왕으로 임명하여 제왕의 연습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다음의 헝가리 왕의 재위기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재위기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페르디난드 1세부턴 신성로마황제 및 오스트리아 대공이 헝가리의 왕을 겸하기 시작한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프랑스는 유일하게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이 나오지 않은 세력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의 가문의 지배하에 유럽을 두기 위해 또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가문의 딸들을 프랑스의 왕들과 결혼시켰다. 그 이외에도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의 많은 왕국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레오폴트 2세 이후 토스카나 대공국에선 합스부르크 토스카나 왕가가 출현한다.
1860년, 리소르지멘토로 토스카나 대공국은 사르데냐 왕국의 영토가 된다.
오스트리아에스테 공작가는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가에서 파생된 가문으로, 모데나 공국에서 공작을 배출하였다.
모데나 공국은 1859년, 샤르데냐 왕국에 합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