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7: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 여기서 '이것'이란 곧 이어 나오는 '영구히 이를일'과 대조되는 것으로 다윗과 그 가정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의미한다. 즉,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현재의 복도 감당하기 어려운 데 거기에다가 미래에 대한 더 큰 보장까지 해주신 데 대해 크게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일 - 이에 해당하는 '레메라호크'는 '미래에 관한 일'이란뜻이다. 원래 이 말의 기본 뜻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조트 토라트 하아담' 은 직역하면, '이는 인간의 율례입니다'이다. 그러나 이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해석이 분분하다.
(1)'토라'를 율례로 보지 않고 '교훈'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인간이 그 이웃에게 교훈을 하듯이 당신의 원대한 뜻을 깨닫게 하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토라'가 교훈이란 의미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옳지 않다. (2) '토라'를 인간의 도리,또는 관습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당신은 사람의 도리, 즉 사람이 자기 후손의 장래를 축복하듯 나와 내 가문에 축복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 (3) 본절을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전 인류를 지배할 명령입니다'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는전체 문맥과는 약간 동떨어진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4)'토라'를구약 성경에서 대개 그러하듯 하나님의 율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그럴 경우 여기서의 '토라'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인간 상호간의 규례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본절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규례에 따라 한 인간이 이웃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줌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나에게 극진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나이다'라는뜻이 된다.
눅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유대 왕 헤롯 때에 -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보통 대헤롯이라 하는데, 본문에서 '헤롯 때에'라 함은 곧 '그의 통치 기간 중에' 라는 의미가 된다. 그는 B.C. 37년 로마 제국 원로 회의를 세금 상납 및 치안유지 등의 약속으로써 매수하고,
특히 당시 실권자인 옥타비우스와 안토니오를 등에 업음으로써 유대 곧 팔레스틴 전체 분봉왕이 되어 B.C. 4년에 그가 죽기까지 유대의 실질적인 통치가 노릇을 하였다.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태생 이방인으로서 지략과 용기가 탁월한 정치가였고 특히 유대 백성에 대한 유화 정책상 유대교의 후원자로 자처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성전 재건을 위시한 수많은 공공 건물을 건립케함으로써 유더 백성들의 마음을 유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반면에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정적(政敵)을 제거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과 아내 및 장모, 처남, 삼촌 등을 죽일 정도로 잔인했다. 그런데도 그는 정치적 술수가 워낙 뛰어나, 로마의 비호 아래 대제사장의 임명과 폐위에까지 간여(干與)하여 그 타락함이 극에 달했다. 실로 이 시기는 종교적으로 타락한 시기였고 정치, 사회적으로 비극적이며 희망이 없는 시대였다.
이제 이러한 비극과 어두움을 버경으로, 누가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특별히 그는 말라기 선지가 B.C. 435-425 추정 이후 400년동안 하나님의 계시의 중단으로 인한 영적 암흑기를 마감하는 위대한 여명기가 시작됨을 알리려 한다. 아비야 반열 - 여기서 먼저 '반열'이란 '...동안', '때마다', '만큼' 등의 뜻을 지닌 전치사 '에피'와 '날', '하루' 등의 뜻인 '헤메라'의 합성어로서 성전의 매일 봉사를 위한 제사장의 직무 순서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아론 자손 곧 제사장 가문에 기초하여 24반열로 구분하는데 각 반열은 순서에 따라 1주일씩 성전에서 봉사하였다. 한편 24반열 중 아비야 반열은 8번째 순서였다.. 사가랴요 엘리사벱이라 - 사가랴는 히브리 이름으로 보통 스가랴라고 하며 유대인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다.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엘리사벱은 '내 하나님은 맹세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을 가고며 '엘리세바'와 동일 이름으로 여겨진다(출 6:23). 이들 부부는 모두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영예로 여겨졌다(Geldenhuys). 본래 율법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태생의 처녀에게 결혼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제사장 가문에서 아내를 취해야만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사가랴가 대제사장 가문(아론의 자손)의 처녀와 결혼했다는 것은 상당히 영광스럽고도 특기할 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한편 '엘키사벱'이 이스라엘 최초의 대제사장인 아론의 아내 이름과 같다는 사실은(출 6:23) 매우 의미있는 일치로 본다.
[눅 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이 두 사람이...의인이니 - 이 말은 원래 구약적 개념으로서 율법적으로 온전한 자에게 붙여진 관용구였다. 여기서 '의인'이란 '옳은', '똑바른', '정직한' 등의 뜻을 지닌 '디카이오스'의 변화형으로서, 특별히 이 말이 법률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정당한 판단에 따른 긍정적인 시인 내지는 평가를 받은 자들 의미하기도 한다.
더욱이 이 단어가 '하나님앞에'라는 병행 문구와 같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확실시된다. 즉 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바른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자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마샬은 '의인'이란 말이 '순전히 윤리적인 측면의 인격에 대한 평가이기 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인격을 가리킨다'고 했다. 사실 인간이 그 인격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나설수 없다(롬 3:10). 그런 까닭에 성경적인 의미의 '의'는 믿음을 가진 죄인에게서 그 죄와 죄의 대가를 제거하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디카이오스'의 의미를 결정지어 주는 객관적인 기준이 되시며 그 말의 의미를 변치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의의 기준이시다. 진정 인간은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믿음'만으로 의인이 될 수있다. 그런 점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벱은 본성적이고 본질적으로 의인이기 보다 바로 '하나님 앞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로 인해서' 의인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이 '의인'이란 말은 선민 이스라엘에서 가장 탁월한 칭찬의 말로 간주되었었는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경건한 인물에게만 붙여졌다.
이것은 유대인의 이상형이었다. 예를 들자면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신약 성경에 와서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자랑했던 바울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구약 율법 시대의 의인관 관에 따른 표현이었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단죄하는 복음관에서의 평가로 볼 수는 없다.
한편 이러한 구약적 의인관에서 볼 때 특히 누가복음 내에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벱, 마리아와 요셉 부부들 및 시므온과 안나 등이 하나님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또 그분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모의 경건한 삶이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겠는가?
계명과 규례- 여기서 '계명'을 나타내는'엔톨라이스'는'명령', '교훈' 등의 뜻을 지닌 '엔톨레'의 복수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당부하시고 지시하신 권위에 찬 명령들을 의미한다 개역 성경에서는 이 '엔톨라이스'를 주로 '계명'이란 말로 번역하고 있다(롬 7:8-13). 그리고 '규례'를 가리키는 '디카이오마신'은 '옳게 여기다', '정당화하다', '공의를 행하다'는 뜻인 '디카이오오')에서 유래한 말로서 '하나님께서 정당히 여기시는 것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옳게 여기시는 것들'이란 의미를 지닌다. 결국 위의 '계명'과 '규례'는 인위적인 요소가 배제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거룩하고 온전한 명령과 생활 규범들을 가리킨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혹자는 이 양자를 분리하여 '계명'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심판의 근거가 되는 종교, 도덕적인 법령을, '규례'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의식적이고 제의적인 예법(禮法)을 각각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또다른 학자들은 이 양자를 대조시키지 않고 히브리인들이 즐겨쓰는 셈어적인 중복 기법으로 보아 두 개념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다. 즉 여호와의 법령을 강조하기 위해 중복적으로 두 단어를 사용한 것일 뿐 그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 후자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흠이 없이 행하더라 - 여기서 '흠이 없이란 '비난받거나 책망받을 것이 없이'라는 뜻으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켰다는 사실을 수식하고 있다. 실로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사가랴와 엘리사벱의 종교. 도덕적인 삶을 책망하거나 비난할 수 없을 만큼 그들 두 사람은 경건히 생활했던 것이다. 결국 그 두 사람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참된 신앙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