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탈북신학생 문은진 간증 (5/10/24)
저는 북한의 함경도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고, 중국 땅에 오기 전, 27살까지 사랑하는 부모님들과 두 남동생과 그 땅에서 살았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아 부모님들의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12살쯤 될 때부터 어른들 따라다니며 장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던 연유장사가 크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의 돈을 빌려서 했기 때문에 그 빚을 갚느라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부모님들도 그 어려움을 함께 감내하며 집에서 키우던 돼지도 팔고 최선을 다해 갚아나갔음에도 워낙에 20%라는 높은 이자 돈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마무리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빌릴 때 약속한 이자까지 물어야 깨끗이 끝나는 일인데 농사를 지어서 겨우 먹고 살아가는 저희 가정형편에서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끝내 탈북까지 결심하고 27살 되던 해(2011년)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탈북 루트를 찾기가 어려워서 1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중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알아보니까 한국에 대한 좋은 소문을 많이 듣게 되었고, 갈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 가면 좋겠다는 미련을 가지고 그 땅을 떠났습니다. 대다수의 탈북 여성들이 그렇듯이 저도 중국 한족 사람에게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팔려서 시집을 가게 된 저는 언어는 물론, 너무 다른 정서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에 매일 밤이 되면 이불 속에서 울다가 잠들곤 했습니다. 그런 생활을 몇 개월째 반복하며 살던 어느 날, 저처럼 팔려 와서 어느 정도 적응하고 살고 있는 탈북민 언니들이 선교사님들이 계시는 곳으로 저를 데려가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이 저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교사님들이 올 때마다 가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는데 제 뜻대로 안 됐습니다.
당시 저를 시집 보낸 언니가 선생님들에게 데려다준 언니 중의 한 사람인데, 제가 도망을 치면 35000위안이라는 큰돈을 물어내어야 하기 때문에 딱 한 번 데려가 주고 성경공부를 하는 곳에 데려가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봄에 선교사님을 뵈었었는데 가을이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마을에 사는 한 자매를 통해 선교사님들이 오신다는 날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마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 정도로 오셨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날짜를 아는 이상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였고 어떻게든 꼭 만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고, 저는 집 식구들에게 앞마을 언니들 집에 놀러 간다고 말을 하고 떠났습니다.
정말 그 언니들 집에 가보니 두 언니 모두가 시내에 나가고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성경공부 하는 곳에 갔구나 생각하면서, 나도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또 택시로 갔다 와야 하는 데 갈 돈만 있고 돌아올 돈도 없었습니다. 걸어서도 1시간 남짓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계산하고 올 때는 걸어서 오려고 생각을 했고, 문제는 딱 한 번 가본 집이기 때문에 똑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서 있는 아파트 중에 어느 아파트였는지 모른다는 것과 그 안에서 선생님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 언니들 몰래 만나야 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그날따라 가을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집에서 택시를 탈 수 있는 큰 도로까지는 한참을 걸어 나와야 되는데, 집을 나와서 큰 도로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진흙 길에서 농촌에 들어왔다가 시내로 나가고 있는 택시를 탔습니다. 저는 속으로 택시를 이렇게 쉽게 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오늘 제가 선생님들 잘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쉽게 저는 그 동네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가 똑같이 생겨서 어느 집일까 보면서 서 있는데 도착한 지 3분 정도 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어디에선가 한국말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놀랍게도 선교사님들이 제 눈앞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 큰 중국 땅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기도 힘든데, 도착한 지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눈앞에 마술처럼 나타난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만났던 임**선교사님과 다른 두 분이 오고 계셨는데 윤**선교사님과 다른 한 분이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저에 대해 잊지 않고 계속 그 언니들을 볼 때마다 안부를 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점심식사 준비로 장 보러 다녀오시는 길에 딱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기도를 했음에도 그 만남이 상한 갈대와 같은 저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도우심인 줄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서 저는 중국 예제원에 들어가서 3개월 양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희미하게 마음에 느껴진 부분이 있었는데, 해마다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자연재해, 또 중국 땅에서 내 뜻과 상관없이 여자들이 팔려 다니는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데로부터 오는 것들 일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제원을 떠나 한국으로 오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7시간 걸어야 하는 산을 넘을 때는 힘을 주셨고, 안전하도록 지켜주셔서 한국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원 생활을 하던 중에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길을 갈 것을 말씀해 주셨고, 또 담임목사님도 저를 보자마자 그렇게 기도해 주셔서 15년도에 바로 총신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학교공부와 너무나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던 저에게 공부는 어려웠습니다.
남한정착에 대학공부 등 어려움으로 예제원에서 교회까지 밤마다 기도하러 다니던 어느 날, 주님께서 제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나니 마음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평강을 느끼게 되었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에스겔 36장 26절의 말씀대로 죄로 인한 육신의 굳은 마음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주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딸아 내가 네 아버지고 네가 피할 피난처이며 나에게서부터 네가 살아갈 힘이 나오니 힘들다고 낙심하거나 쓰러지지 말라”고 든든히 지켜주셨습니다.
북한 땅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 땅에서 먼저 온 우리를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하나님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먼저 보내셨음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주님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자로써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나아가서 북한 땅의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공동체 안에서 배워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